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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신의 목소리 (109/145)


109. 신의 목소리
2022.04.17.


당황해 안색이 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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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마침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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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은 말이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자신을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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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요. 날 데리러 온 게 맞죠? 그 잠깐 사이에 보고 싶었던 거예요?”

리에네는 말을 돌리며 블랙의 팔을 잡아끌었다.

귀가 멀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마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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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우가 깨어났다고 합니다.”

블랙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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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행이네요. 지금 보러 갈 건가요? 나도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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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그러나 블랙은 길을 가로막고 선 그 자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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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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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을 대신해 미간이 소란스러워졌다. 짧은 시간 동안 블랙의 미간이 여러 차례 일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들었구나.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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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리에네가 블랙의 손에 깍지를 끼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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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을 안 했습니까?”

그를 힘으로 움직이게 만들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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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을 할 일이 아니잖아요. 확실한 일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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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중에 아홉이면 절반입니다.”

……그것도 들었구나.

그를 피할 방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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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한테 아무 일도 없을 확률이 절반이나 되는 거죠. 그리고 그건 그냥 왕실 기록서에 남아 있는 숫자예요. 거기에 가이너스 왕들이 병에 걸렸다는 말은 하나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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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리에네.”

그가 제 이름을 부르면 밑도 끝도 없이 누가 심장을 어루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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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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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요. 왜 뭔가를 하려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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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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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리에네는 발끝을 들어 블랙의 입술을 제 입술로 막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필요 없는 말이잖아요.

아직 모르는 절반의 일로 우리가 달라질 건 없으니까.

블랙은 평소처럼 리에네를 당겨 키스를 되돌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이러지 말아요.

그럼 나도 아무것도 못 한다고요.

당신은 나를, 나는 당신을. 서로 꼼짝도 못 한 채 지켜만 보다 삭아 버릴 거야.

그런 건 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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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러면 신전은 나 혼자 갈 거예요.”

리에네가 붙잡았던 손을 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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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사제가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 죽겠는데. 당신은 왜 그런 것도 몰라주고 굼뜬 거예요.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는 기분이 몹시 안 좋을 것 같아요. 화가 나서 오늘 밤은 혼자 자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럼 기분이 더 나빠질 테니까 내일 아침도 혼자 먹고 싶겠죠. 그래도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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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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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음대로 해요.”

리에네가 홱 등을 돌렸다.

감방을 지나 감옥 입구로 향하는 계단을 밟기 시작했을 때 블랙이 뒤쫓아 왔다.

그는 계단을 한 칸 올라가 있던 리에네를 홱 잡아끌어 제 품에 가두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이렇게 심장이 거칠게 뛸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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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또 같은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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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해요. 나는 그대로 할 테니.”

리에네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

자존심도 무엇도 없이 전부 내던진 채 자신을 붙잡고 있으라는 애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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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해요.”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로 간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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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생각하면 돼요. 둘 중에 어느 쪽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할지. 당신이 없는 것과,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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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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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몰라서 묻는 건 아니잖아요.”

리에네는 그에게 안긴 채 더 바싹 몸을 기댔다.

이 감촉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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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당신이 준 행복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고 느끼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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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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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쉬운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어쩌다 또 손톱 가위 같은 게 나올 때면 나는 내가 오해를 했건 말건 당신한테 막 화를 낼 거예요. 당신 잘못이거든요.”

화를 낸다고 해 봤자 천장을 쳐다봤던 게 고작이었지만 리에네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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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대답이 쉬울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얘기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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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결정했으면 두 번 다시 마음을 바꾸지 마세요. 그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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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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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이요. 맹세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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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마주 안은 채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이제 그만 가자며 발을 떼는 순간에도 동작이 한없이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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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요.”

계단을 반쯤 오르던 리에네가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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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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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로즈 경도 데려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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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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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사제가 과거에 알고 있던 얘기를 할 거잖아요. 웨로즈 경이 그 얘기를 직접 들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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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이 원하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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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상관없어요. 나는 웨로즈 경이 2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정확히 아는 걸로 족해요. 그래도 마음을 바꿀 수 없다면 그건 내가 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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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해요.”

 

대신전으로 향하는 일행에 웨로즈가 합류했다. 며칠에 걸친 단식으로 안색이 파리해졌으나 그는 부축을 마다하고 제 발로 꿋꿋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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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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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이 늙은 몸을 또다시 살려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마나우는 수척하긴 했어도 정신은 또렷했다. 다행이었다. 카비노의 후유증은 남지 않은 듯했다.

페르모스는 그게 다 자신이 만든 해약 덕분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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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왕을 맞이하기에 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전은 지금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혼란이 없다면 이상할 노릇이었다.

신전은 그간 여섯 가문의 대변인 노릇을 하며 세를 불려왔다.

클라인펠터의 충실한 종노릇을 하던 이전 대사제가 죽고, 20년 전 죽었다고 알려진 마나우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고위 사제들은 대개 여섯 가문과 얽힌 세력들이었다.

젊은 사제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마나우가 독에 쓰러지고, 범인으로 지목된 게 또다시 클라인펠터였다.

클라인펠터가 떨어져 나간 다섯 가문은 왕실의 눈치를 보느라 신전과도 거리를 두었다.

새로 써진 리세베리 조약에 의하면 신전은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다섯 가문은 그 어떤 행사도 할 수 없게 되어 있긴 했다.

다섯 가문이 신께 재물을 바칠 수는 있었지만, 한 사제에게 줄 수는 없었다. 신전의 재산은 왕실 비서관이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여간 그런 변화 속에서, 이탈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 이상 신전이나 사제라는 지위는 출세와는 상관없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절반이 넘는 사제들이 신전을 떠나 세속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사제들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곧 정리가 될 것이다. 이제 신전은 진심으로 신께 귀의하는 삶을 원하는 사제들만 남아 온전한 신의 목소리로 돌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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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은 그칠 겁니다. 대사제께서 깨어났으니.”

리에네의 상냥한 말에 마나우가 짧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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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몸에게 바라시는 게 무언지?”

마나우는 자신을 찾아온 리에네 일행을 차분히 돌아보았다.

두 번이나 죽음을 겪었으면 인간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는 이제야 대사제다운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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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있었던 일을 듣고 싶어요. 가이너스 왕가의 비밀과 클라인펠터가 훔치고 싶어 했던 열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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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알아내셨습니까…….”

마나우가 탄식을 하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이 또한 신의 뜻이 아닐까 싶었다.

가이너스 왕가의 최후도, 나우크의 가뭄도 그랬듯이 그것을 끝내고자 하는 것도 신일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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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너스 왕가는 신의 권능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마나우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 * *

신의 권능을 훔치지 않았다.

아마도 신께서 허락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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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을 다루는 능력 말입니다.”

나우크를 지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왕국으로 이끌었던 근본은 모두 가이너스 왕가가 소유했던 치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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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가이너스 왕가는 그토록 강한 힘을 지녔던 게지요.”

그러나 너무 강한 힘이라는 것은 결국 양날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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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가인지 가이너스의 왕들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요.”

얘기를 듣던 이들의 표정이 제각각 변했다.

리에네는 블랙의 손을 꼭 쥐었고, 블랙은 자신을 움켜쥔 리에네의 손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페르모스는 인상을 잔뜩 쓴 채 눈짓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고, 웨로즈는 리에네를 향해 굳은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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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두고 가이너스 왕가의 저주라 했습니다.”

왕이 죽고 난 뒤에는 항상 치수에 문제가 생겼다.

왕가가 지닌 권력의 기반이었던 치수법은 왕에서 왕에게로만 전해져야 했던 비밀이었다.

20년 전에는 비밀의 전승에 틈이 생겨났다.

아직 어린 왕자는 너무 허약했고, 슬슬 저주라 불리는 병이 드러나기 시작한 왕은 왕자에게 비밀을 전하는 데 회의적이었다.

어린 아이가 비밀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왕자는 요양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을 신전에서 보냈다.

그 틈을 클라인펠터가 파고들었다.

어리고 약해 빠진 왕자를 잘 구슬리면 신이나 다룰 수 있는 권능을 자신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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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리석게도…… 멀쩡히 살아 있는 왕이 죽은 다음을 걱정했습니다.”

나우크가 이제껏 가이너스 왕가 덕에 누려 온 영화를 한순간에 잃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사실은 자신에게 주어진 풍요를 걱정했을 뿐이었다. 모든 게 제 욕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걱정이 테르난 클라인펠터를 도울 변명이 되었다. 신전을 찾아와 몰래 요양 중인 왕자를 만나도록 길을 터 주었다.

왕자는 쉽게 말을 듣지 않았고, 왕은 클라인펠터가 신전에서 한 짓을 알게 되었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 준비를 했다.

왕은 클라인펠터를 숙청할 계획을 세웠다. 펨브로윈 왕이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클라인펠터라는 이름은 그때 사라졌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왕은 이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결국 성공한 것은 숙청이 아니라 반역이었다.

반역에 성공한 클라인펠터는 신전을 장악했다. 그가 원한 것은 신의 목소리였다.

가이너스 왕가가 그간 신의 권능을 훔쳐 사용했기에 신께서 노해 저주를 내렸으며, 그 저주의 증거가 왕의 죽음이라는 말을 퍼트리고자 했다.

신께서는 도둑맞았던 권능을 되찾아 가셨다. 나우크의 물은 계속 말라 갈 것이다. 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새 왕이 필요하다. 새 왕의 이름은 클라인펠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거짓이었다.

마나우는 클라인펠터가 나우크를 위해서라는 고상한 이유로 반역을 일으킨 게 아니라는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가 입을 다물자 고문이 이어졌다.

클라인펠터는 마나우가 변심한 이유가, 펨브로윈 왕이 죽기 직전 그에게 열쇠를 넘겼기 때문이라 멋대로 짐작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숨만 간신히 쉬고 있을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테르난 클라인펠터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그저 우연이라기에는 불길한 시차를 두고 첫째 아들도 죽었다.

이런 가문에서 왕이 나올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가이너스 왕실의 죽음에 저주라는 굴레를 씌웠으니 다음 왕은 저주와 관련이 없는 몸이어야 했다.

나우크에는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반역에 가담했던 가문들이 왕이 될 만한 자를 골랐다.

아르사크 가문이 왕관을 쓰게 된 데에는 가문들 간의 알력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들은 가장 세력이 작고, 그래서 다루기 만만한 가문을 새로운 왕실로 내세웠다.

어쩌면 아르사크 가문은 클라인펠터의 이름을 잇는 다음 왕에게 왕관을 넘기는 수단으로 여겼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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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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