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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모두의 전쟁 (2) (122/145)


122. 모두의 전쟁 (2)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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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재미있는데요.”

방금 근위대의 목을 베어 넘긴 누군가가 말했다.

근위대 옷을 입고 있으니 왕의 침실까지 가는 길은 아슬아슬한 놀이 비슷한 게 되었다.

근위대인 척 시침을 떼고 걷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들러붙는 진짜 근위대를 처리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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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되면 밤새도록 이렇게 놀아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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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하지 마라. 놈들의 숫자는 아직도 많아.”

스물다섯, 랜달이 빠졌으니 스물넷이 상대한 숫자가 두 배도 넘었지만 그래도 근위대의 숫자는 몇 백이나 남아 있었다. 한꺼번에 상대하게 되면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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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빨리 대공녀를 찾아야 해. 놈들이 침입 사실을 알아내는 순간은 곧 올 것이다.”

말을 하기가 무서웠다.

캉!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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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저쪽에서 몰려옵니다. 이제 알았나 봅니다. 와, 굼뜨긴.”

블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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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서 가겠다. 뒤를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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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군.”

슷!

블랙이 왕의 침실이 있는 본궁 중심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김없이 칼소리가 이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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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다행히 왕은 티와칸이 도착하기 전에 근위대의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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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봐라. 뭐가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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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티와칸이 근위대로 위장해 궁 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몸을 피하시는 게…….”

퍽!

왕은 참지 못하고 근위대를 향해 베개를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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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지 않아? 그런데 짐에게 몸을 피하라는 말을 하는 게냐! 그것도 짐의 침실에서! 너희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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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위대로 위장하는 바람에 쉽지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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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퍽!

베개 두 개가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왕은 고작 어제 겪었던 일을, 그래서 그토록 혼비백산했던 일을 오늘 또 겪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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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의 근위대는 전부 눈이 없기라도 하단 말이냐! 놈들이 얼마나 몰려왔는데 그걸 상대 못 한다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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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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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왕이 노기를 견디지 못하고 악을 썼다.

그러나 왕도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실까지 오는 길을 지키는 근위대가 전부 한칼에 베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빠르고 소리 없이 사실에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라 했다.

어제도 그랬으니 오늘도 그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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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다면 어디로 가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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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일단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니…….”

사실 근위대도 아직 허둥대고 있었다. 근위대장의 목이 잘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빈자리를 메꿀 새도 없었는데 티와칸은 빈틈을 아프게도 파고들었다.

근위대장이 했어야 할 일을 각자 알아서 하려니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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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일단 별궁으로 피하십시오. 그쪽은 규모가 작아 이쪽보다 방어가 수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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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 거기는 지금 왕비가 있잖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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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어가 더 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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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안내해라.”

왕은 이를 부드득 갈다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침대에서 내려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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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찾아와서 유감입니다, 비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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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레라스 왕비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투구를 벗는 리에네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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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으니 말씀을 마저 드리고 싶군요. 너무 놀라지 마시고 편히 앉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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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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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알려드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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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쟁?”

딜레라스 왕비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하지만 섣불리 비명을 지르거나 사람을 부르려 하지는 않았다. 한 방을 쓰던 시녀가 몸을 달달 떨며 일어서자 입을 다물라 했다.

단지 랜달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이 무서워서는 아닐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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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지 모르겠군요. 어제 블리니 왕자비가 저에게 암살자를 보냈습니다. 저를 대신해 다른 소중한 이가 칼을 맞았어요. 하지만 누가 해를 입었든, 이것은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타국의 왕실을 상대로 벌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나우크에서는 샤르카의 국왕에게 정식으로 블리니 왕자비의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샤르카의 국왕은 왕자비를 처벌하는 대신, 나우크에 근위대를 보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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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딜레라스 왕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쟁이라는 말이 너무 뜬금없어서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는데 이제야 실감이 났다.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상대가 너무 빨라 실감이 늦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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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양국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기 전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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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왕비가 옷자락을 쥐어뜯을 것처럼 잡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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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힘이 있으리라 보오? 나는 본궁에서도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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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그러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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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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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크가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블리니 왕자비의 처벌. 이것은 비 전하께서도 바라시는 바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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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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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처벌을 나우크에서 하고 싶습니다. 나우크가 샤르카 왕실에 요구한 것은 블리니 왕자비의 처벌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입니다. 비 전하께서 샤르카의 국왕을 대신해 이를 약속하신다면 나우크는 전쟁을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딜레라스 왕비가 눈가를 찌푸렸다.

블리니가 사라지길 바라는 건 왕비가 더 간절했다. 나우크의 공주가 내민 조건은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도 없었다. 시작된 전쟁을 끝내는 조건치고 너무 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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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 몸은 국왕을 대신할 수 없소. 공주께서도 알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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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샤르카의 국왕은 군대를 모으겠지요. 오늘 밤 죽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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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기가 사라진 얼굴이 벌써 시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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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본궁이…… 그러니까 본궁에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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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비 전하. 운이 좋으면 살겠지만 죽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왕이 죽든 살든 결과는 같습니다.”

운이 좋아 근위대가 티와칸을 막아선다면 왕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반대로 왕이 죽는다 해도, 스물다섯 명으로는 왕국을 점령할 수 없었다. 샤르카는 왕의 죽음을 나우크에 물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결과는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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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전하께서는, 왕이 징집령을 내리기 전에 귀족가를 움직일 수 있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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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군대를 모으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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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우크가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알아도 전쟁에 찬성할 귀족은 없을 줄 압니다. 찬성하는 이들은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비 전하께서는 왕의 명령을 거부할 만한 귀족들을 알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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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딜레라스 왕비가 저도 모르게 이불을 탁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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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알겠소. 판을 키우지 말자는 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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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했듯이 나우크가 원하는 것은 샤르카 왕국이 아니라 블리니 왕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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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하리다.”

바셰드 왕자의 죽음을 계기로 왕실과 귀족들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다.

일단 왕과 왕비부터가 그랬다.

왕비는 왕을 용서하지 못했고, 왕은 왕비를 별궁으로 내쫓았다.

지금 왕실에는 본궁으로 거처를 옮긴 왕자비가 왕의 옆방에서 잠을 청한다는 망측한 소문도 돌고 있었다.

바셰드군을 마음대로 움직여 죽인 죄를 아들이 뒤집어쓰게 된 제5왕제 또한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일단 왕비의 가문과 제5왕제만 전쟁에 반대해도 왕이 모을 수 있는 군대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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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샤르카의 왕을 대신해 비 전하께서 서약서를 써 주시리라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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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준다면 나는……. ……아.”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딜레라스 왕비가 손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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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왕자비를 죽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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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당장 죽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받을 게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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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궁에는 왕자비가 없소. 본궁에 있거나 아니면 궁을 떠났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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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을 떠났다고요?”

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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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긴 하지만. 샤르카의 북서쪽, 게름 협곡 근처에 사냥을 위해 쓰는 작은 성이 하나 있소. 왕이 좀 전에 그곳으로 무얼 보냈다 하는 말을 얼핏 들었소. 전쟁이 일어날 판에 한가로이 사냥을 하려던 게 아니라면, 혹 왕자비를 그곳에 보내 감춰 두려 하지 않았을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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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법도 하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쿵쿵!

멀리서 성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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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있어! 누가 별궁에 숨어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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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비 전하께 가 봐!”

입구에서 경비들의 시체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별궁이 시끄러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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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몇이나 오려나.”

랜달이 침실 문을 약간 열고 밖을 살폈다. 너무 많은 숫자가 오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딜레라스 왕비도 곤란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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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다른 출입구는 없습니까? 애먼 사람들을 다 죽일 수는 없……. 아, 이런.”

말해 놓고 보니 죽인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 것 같아 아차 싶었다.

왕비가 호의적이라는 건 알았지만 아예 같은 편이라고 여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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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러나 왕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이들을 무사히 내보내야 했다. 그래야 왕자비에게 죗값을 물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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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람들은 내가 단속을 할 테니 공주는 몸을 피하시오.”

리에네가 차분한 웃음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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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전하의 호의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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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나우크와 내가 함께 원하는 것을 공주께서 꼭 얻으시길 바라오. 어서 가시오.”

왕비는 시녀에게 일꾼들이 쓰는 길을 안내해 주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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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님들이다. 꼭 무사히 별궁에서 나가시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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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비 전하.”

 

리에네와 랜달, 클리마는 근위대와 마주치기 전 딜레라스 왕비의 방을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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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도 없습니다. 벌써 내뺀 모양입니다.”

왕의 침실까지 뒤졌지만 블리니는 없었다. 왕도 보이지 않았다. 간발의 차로 왕을 놓친 듯했다.

흐트러진 이부자리와 어수선한 침실 모양이 방금 사람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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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녀의 흔적은? 왕과 함께 도주했을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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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잘……. 방을 쓰던 흔적은 왕의 침실이 유일합니다.”

퍽!

블랙이 칼에 매달려 있던 시체를 거칠게 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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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도망치는 재주가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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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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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도주했겠지. 이쪽으로 간다. 왕이든 대공녀든 둘 중 하나는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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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면 별궁 방향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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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표정이 칼이 되었다.

츳!

칼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블랙이 발끝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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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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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군.”

 

얼마 가지 않아 근위대가 몰려들었다.

별궁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듯했다. 왕이 별궁으로 갔다는 증거였다.

* * *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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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라! 국왕 전하시다!”

쾅쾅!

별궁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목청을 높여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딜레라스 왕비는 별궁의 모든 이들에게 시체를 치우고 문을 닫아건 다음 쥐죽은 듯 있으라는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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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라! 안 들리나!”

쾅쾅!

마음이 급해진 왕이 버럭 소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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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부숴라! 그럼 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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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전하. 그럼 놈들도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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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근위대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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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으로 들어가는 다른 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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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이 쓰는 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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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쪽으로 모시겠다. 본궁에서 넘어오는 저 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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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근위대도 나름 애를 쓰고 있었다.

설마 남의 옷을 입는 놈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을 뿐이었다. 이제 놈들의 정체를 알았으니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놈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숫자가 많았다면 근위대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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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투구를 쓰고 있다. 우리끼리는 투구를 벗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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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낫겠군. 어이, 다들 투구를 벗어! 투구를 쓴 놈들이 티와칸이다!”

별궁의 입구에 모여든 근위대는 전부 투구를 벗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별궁에 티와칸이 나타나는 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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