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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모두의 전쟁 (3) (123/145)


123. 모두의 전쟁 (3)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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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랜달이 짧은 당황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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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달 경? 왜 그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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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누가 오는데요?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클리마도 진작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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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이 아닐 것…… 같아요. 저 발소리는…… 더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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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녀석. 그런 것까지 간파하는 모양이네. 너 진짜 쓸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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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내 창백하던 얼굴이 일순 미미하게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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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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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대인 척 해 보고, 정 안 되면 제가 길을 막을 테니 앞서 가십시오. 거기, 길 안내를 해 주시는 분도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시녀가 토끼 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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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아니, 하지만 비 전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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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의 정체가 들키면 곤란할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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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있는 게 더 낫지요.”

시녀는 의외로 이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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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전하의 시녀와 함께 있는데 설마 의심을 하겠습니까. 비 전하가 쓰실 초를 가지러 간다고 하겠습니다. 별궁의 기사분들이 도와주시는 거라 둘러대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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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신세를 져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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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전하께서 무사히 별궁을 떠나게 하시라 명을 내리셨으니까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시녀가 랜달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 일꾼들이 다니는 좁은 길에서 왕을 데리고 들어오는 근위대 일행을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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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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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를 가지러 간다고? 이 상황에서?”

근위대는 말이 많았다.

밖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해를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려댔는데 안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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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갑자기 초가 떨어져서…… 비 전하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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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게 말이 되나?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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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그런 건 잘 모릅니다. 그저 시키신 대로…….”

시녀가 목소리를 떨며 고개를 숙이자 근위대도 더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왕이 가만히 있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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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 게냐! 짐을 언제까지 이런 더러운 길에 세워 둘 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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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전하.”

근위대는 할 수 없다는 듯 시녀 일행을 향해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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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물러서라. 전하께서 가셔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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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시녀와 함께 리에네 일행도 벽에 붙어 섰다. 근위대는 자신들과 같은 복장을 한 리에네 일행에게 너무 짜증이 난다는 듯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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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너희들도 투구를 벗어. 적과 구분하기 위해서 그러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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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알았다.”

랜달이 눈치껏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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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나? 그렇게나 문을 두드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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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잘…….”

다행히 다른 근위대 기사가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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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 전하께서 다시 역정을 내시길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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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국왕과 본궁의 근위대가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리에네는 혹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까 봐 입술을 꽉 물고 버텼다.

저벅저벅…….

잘만 멀어져 가던 근위대는, 그러나 마지막 긴장이 사라지기 전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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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그런데 거기. 칼에 묻은 건 피 아냐? 별궁에만 있었는데 피가 묻을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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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들켰다.

랜달은 그 와중에 재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가 한 일은 팔을 뻗어 왕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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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졸지에 목덜미가 붙들린 왕이 헛발질을 하다 쿵 넘어졌다.

랜달이 혀를 찼다. 인질로 붙잡으려고 했는데 거리가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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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십시오! 어서!”

왕이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근위대도 주춤거렸다. 랜달은 미련을 버리고 리에네의 등을 떠밀었다.

클리마가 재빨리 리에네의 손을 잡고 뛰어갔다. 랜달이 그 뒤를 따라가다 시녀의 귀에 대고 빠르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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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지 마십시오. 근위대가 아니라는 걸 몰랐다고 하면 됩니다.”

영리한 사람이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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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다!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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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를 부축해!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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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이다! 잡아라!”

리에네 일행이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왕을 호위하던 근위대 일부가 뒤쫓아 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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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줄었네. 이 정도면 뭐.”

랜달은 리에네를 먼저 보낸 다음 뒤를 맡았다.

쫓아오는 근위대는 모두 세 명이었다.

랜달은 하나를 베어 넘기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낮춰 그 뒤에 다가오는 자의 턱을 머리로 받아 버렸다.

뻐억!

턱뼈가 머리뼈에 부딪히자 근위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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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다음.”

랜달이 다음 상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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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다음 상대는 공교롭게도 랜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오른쪽 뒤편에서 갑자기 칼이 뻗어 나오자 랜달이 당황해 손으로 칼을 움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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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아파!”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손바닥에 칼날이 파고들었다. 랜달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칼을 쥔 채 발을 들어 상대의 무릎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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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상대가 휘청하는 틈에 어느샌가 달려온 클리마가 돌을 들어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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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잘했다, 이 녀석! 공주님은?”

랜달은 손이 아파 죽겠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리에네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리에네는 저 앞에서 길을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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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앗! 공주님!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어디서 놈들이 튀어나올 줄 알고요!”

랜달이 펄쩍 뛰며 부리나케 리에네를 향해 움직였다. 클리마도 부상을 입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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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걸 봐서 간 거예요. 두 사람 다 괜찮나요? 랜달 경은 손을 다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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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

일꾼들이 쓰는 통로를 벗어나자 별궁의 뒷마당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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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죠?”

대답은 클리마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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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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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왜 저쪽이야? 저쪽은 정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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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고 있습니다. 소리가, 소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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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군이 왔다는 말이로군. 그럼…… 젠장! 세 명으로 끝난 게 아니었어?”

유감스럽게도 아니었다. 뒤를 쫓아오는 놈들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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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둘만 됐어도 상대할 텐데 왜 넷이야. 하필 손을 다쳤는데. ……공주님!”

부르기만 했어도 리에네는 랜달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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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도망쳐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리에네가 클리마가 가리킨 방향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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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이 무거울 텐데 잘 견디고 계십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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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괜찮아요. 갑옷이 무거워서 잘 달릴 수가 없긴 하지만. 그나저나 정말로 손은 괜찮은 거예요? 칼을 못 잡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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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은 혹시 근육이 잘못됐을까 봐 무서워서 일부러 손을 쉬게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괜찮아질 겁니다.”

별궁의 정문과 일꾼들의 통로는 끝에서 끝이었다. 길쭉한 뒷마당을 고스란히 달려가자 뱃속이 찢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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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 거죠. 후, 후우…….”

어쨌거나 끝까지 달려가자 닫혀 있는 문이 보였다. 다행히 근위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면 우글대고 있을 것이다.

랜달은 다친 손을 움직여 보다 왼손으로 칼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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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야. 너 저 문 혼자 열 수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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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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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 아, 잠깐. 그 전에 준비 좀 하고. 문을 연 뒤 공주님을 지켜.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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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해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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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클리마가 보통은 두 명이서 들어 올리게 되어 있는 커다란 빗장을 혼자서 밀어 올렸다.

쾅!

빗장이 걸림쇠에서 벗어나자마자 랜달이 발로 문을 걷어찼다.

문이 열리고 드러난 것은 자욱한 피 냄새와 바닥을 나뒹구는 시체, 그리고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쇳소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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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랜달은 왼손으로 힘겹게 근위대의 목을 베어 넘기며 블랙을 찾았다.

티와칸에게 블랙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엉뚱한 남의 갑옷을 입고 있어도 블랙이 움직이면 저절로 알아보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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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이 고개를 돌렸다. 투구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를 피할 여유도 없이 마음이 급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퍽, 쿵!

블랙이 등 뒤에서 다가드는 근위대를 옆으로 피하며 발목을 걷어찼다. 쓰러진 근위대의 등에 칼을 한 번 꽂았다 뽑은 그가 피 묻은 칼을 쥔 채 이쪽으로 달려왔다.

블랙이 방향을 바꾸자 싸움의 방향도 바뀌었다.

길을 열겠다는 뜻을 알아들은 티와칸이 블랙의 동선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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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비켜라, 자식들아!”

랜달이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두르며 걸음을 옮겼다.

성에 차지 않긴 했지만 왼손으로 칼을 쓴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이전에도 가끔 오른손을 다쳤을 땐 왼손을 썼고, 랜달은 지금껏 살아남았다.

별궁의 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근위대가 양옆으로 쪼개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좁은 길에서 일행이 합류했다.

리에네를 확인한 블랙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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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데는 없습니까?”

반가운 마음은 지금 발을 붙일 데가 없었다.

리에네가 별궁 안에서 고립된 줄 알고 쌓였던 긴장이 무뎌지는 것도 잠시, 블랙은 몇 배나 더 날카롭게 주위를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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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당신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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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없습니다. 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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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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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은 어때. 쓸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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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보셨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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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길을 막기 전에 방향을 잡아. 말이 있는 곳으로. 네가 치고 나가면 내가 뒤를 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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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빠집니까? 대공녀는 궁에 없을 수도 있다지만 왕은 확실히 별궁에 있습니다. 온 김에 목을 따고 가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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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우리도 절반쯤 죽는 걸 각오해야 한다. 이만하면 됐어. 샤르카의 왕도 겁을 먹었을 테니 앞으로는 일을 저지를 때 머리를 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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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까 거기서 한 칼에 찔렀어야 했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제 국경으로 이동해 페르모스와 합류해야 했다. 진짜 전쟁은 그다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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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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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샤르카의 근위대가 막 이쪽을 에워싸려고 하던 그 순간 랜달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블랙이 곧장 뒤를 맡고, 나머지 티와칸이 두 사람을 따라 길을 만들었다.

클리마는 제 몸으로 리에네를 덮을 것처럼 바짝 붙어 서서 몸을 옮겼다.

숨이 차고, 막혔다.

리에네는 아무도 죽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샤르카의 근위대는 끝도 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길에는 끝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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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샤르카의 왕도를 빠져나온 그들은 골목 안으로 숨어드는 게 아니라 수도 외곽의 산중으로 들어섰다.

길을 꽤 돌아가야 했지만 도심은 그들이 외지인인 이상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산중에 흐르는 물은 차가웠지만 깨끗했다. 땀에 젖은 몸을 대충 헹궈 낸 이들이 짐을 풀어 옷을 갈아입었다.

여관을 나온 뒤 동선을 미리 확인하는 김에 가져다 놓은 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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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은 저쪽 바위 뒤에서 씻으면 됩니다. 저기서는 안 보입니다.”

블랙은 리에네를 물가에 앉힌 뒤 신발을 벗겨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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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손대지 말아요. 남의 신발이라 왠지 안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아요. 게다가 땀도 엄청 흘렸거든요.”

땀만 흘린 게 아니었다.

칼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몸에 맞지 않은 갑옷과 신발 때문에 여기저기가 다 긁혀 있었다.

리에네는 온통 젖어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다른 손으로 블랙을 밀어냈다.

블랙이 리네에의 발을 쥔 채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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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싫어하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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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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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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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좀 싫어해도 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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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블랙이 결국 신발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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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당장 표정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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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로 내내 걸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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