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134/145)


134.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2022.07.13.



“……네?”

리에네가 일단 고개를 갸웃댔다.


“아기라뇨. 그건 아직 한참 먼 일인데요.”

대관식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얘기였다.

그런데 헨튼 부인에게는 아닌 듯했다.


“티와칸 공이 하시는 걸 보면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공주님께 영 달거리 소식이 없지 않겠습니까.”

“……엇.”

갑자기 목이 막혔다. 오랜 세월 리에네를 알아 온 플램바드 부인이 곁으로 다가와 등을 툭툭 쓸어 주었다.


“웬걸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 이이와 얘기를 나눴지요. 아무래도 그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잠깐……. 그건…… 그러니까…….”

“샤르카 왕국에 다녀오시느라 요새 공사가 아주 다망하셨지요. 그 바람에 잊으신 게 아닙니까?”

“그렇……네요? 날짜를 잊고 있었어요.”

“티와칸 공께서 요새 자꾸 공주님께서 살이 내리셨다고, 잘 챙기라 당부하시는 걸 보니 더 생각이 기울지 않겠습니까. 요새 잘 못 드셨지요?”

“…….”

블랙이 그런 얘길 하긴 했다. 며칠 전 밤에.

생각해보니 자신이 음식을 잘 못 먹으면 플램바드 부인이 득달같이 나섰어야 하는데, 의외로 부인이 그간 아무 말이 없었다.


“알고 있어요?”

“그게 아기님 때문일까 싶었지요.”

그러다 점차 확실해지자 오늘 말을 꺼냈다는 뜻이었다.


“오늘쯤 의사를 불러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티와칸 공께도 알리고요.”

“그래야……겠죠?”

“그래야지요.”

“맞습니다.”

리에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정말 아기일까요? 아무런 느낌도 안 드는데.”

“지금은 그럴 만합니다. 아직은 모를 때지요.”

“만약…….”

“네, 공주님.”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면요?”

“달거리를 한 달 넘게 걸렀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요.”

두 부인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혹시 아기님을 원치 않으시는 겝니까?”

“네? 아니,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잘 모르겠어요.”

리에네가 괜히 머리카락을 꼬았다.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티와칸 공께서 이유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런데……. 그냥 아직 실감이 잘 안 드나 봐요.”

“그건……. 그래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의사는 좀 더 나중에 부를까요? 원하시면 저희도 입을 닫고 있겠습니다.”

“음……. 네. 그게 좋겠어요. 일단 로드 티와칸께 말할 방법을 찾아볼게요.”

“알겠습니다.”

그 말에는 순순히 동의한 두 부인은 다른 일에는 칼 같았다.


“그럼 저는 옷장 정리를 하러 가겠습니다.”

“내가 거들지요.”

“그럼 아주 좋지요.”

두 사람은 당분간 아주 바쁘게 생겼다.

일꾼을 늘리고, 훈련을 시키고, 이 넓은 곳을 구석구석 새로 채우는 건 할 일이 몹시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만일 정말로 아이가 생겼다면…….


“……부인은 잠잘 시간도 없을지도.”

아이를 무사히 낳는 순간까지 플램바드 부인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옷장을 비운 김에 새로 짓는다는 옷에 아이 옷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생각이 흐르다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났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리에네가 무심결에 배를 살짝 쓸어 보았다.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럼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은 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 * *



“공주님! 공주님!”

시간은 이른 저녁이었고, 물에 잠긴 곳이 아직 좀 남아 있었어도 하늘은 맑았다. 맑은 하늘에 드리워진 노을은 유독 더 붉었다.

리에네는 오랜만에 후원을 찾았다.

기분 탓인지 늘 황량하던 후원에 하나둘씩 새 풀들이 자라는 것 같았다.

추워지는 계절인 만큼 전체가 녹색이 되려면 한참 기다려야겠지만 벌써 공기가 달라진 듯했다.

마른 먼지 냄새가 아닌, 축축한 나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자꾸 숨을 들이마시던 중이었다.


“공주님!”

랜달이 입구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랜달 경. 무슨 일인가요?”

랜달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주군이 모셔오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지금 가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요?”

블랙은 페르모스와 함께 강가에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무리 짓겠다는 하수로 공사 때문이었다.

날이 추워지는 속도가 작년보다 빨라서 아무래도 그건 무리지 않을까 싶었다.


“네. 보여 드릴 게 있다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블랙이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할 얘기라도 있나. 공사에 관한 말을 하려고 그러나? 시간을 넘겨야 해서 그런 거라면 나는 상관없다고 말해 뒀는데.


“그럼 가요.”

“옷을 갈아입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해가 지면 추워질 텐데요.”

“이대로도 괜찮아요.”

후원에 나온다고 망토를 두르길 잘했다.

곧 해가 질 테니 강가로 가려면 시간을 아끼는 게 나았다.


“강 어느 쪽이에요? 얼마나 걸리겠어요?”

“말을 타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삼십 분쯤 걸릴 겁니다.”

“그렇군요.”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말안장을 얹은 말을 보자 엉뚱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떨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말을 잘 타는 편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

강가라면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곳도 많은데.


“…….”

그런 생각을 하자 도저히 말을 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공주님? 안 타십니까?”

손에 쥔 말고삐를 리에네에게 건넬 준비를 하던 랜달이 물었다.

리에네가 고개를 돌렸다.


“못 가겠어요.”

“네? 못 가신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미안하지만 지금은 말을 못 타겠어요. 마차는 안 될까요?”

“길이 없는 곳이라 마차는 어렵습니다. 말을 바꿔 드리면 괜찮겠습니까?”

“그럼 와서 얘기하자고 해 줘요. 아니면 직접 데리러 오든가. 나 혼자서는 못 가겠어요.”

“제가 모실 겁니다.”

“경과 내가 말을 같이 탈 수는 없잖아요.”

리에네는 괜히 두 번 걸음을 하게 만든다는 미안함을 담아 웃어 보였다.


“그렇게 전해 줘요.”

“……?”

랜달은 등을 돌려 가는 리에네를 조금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거 좋지 않은데…….”

설마 리에네가 블랙의 청을 거절할 줄은 몰랐다.

랜달이 석연치 않은 얼굴로 턱을 쓸었다.


“매번 잘 타시던 말을 갑자기 타기 싫다 하시는 것도 그렇고. 설마 두 분이 다투기라도 하셨나.”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여성과 함께 오래 지내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로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문제였다.


 

* * *

역시나 블랙은 아주 심각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음……. 글쎄요.”

“그걸 저희가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

아마도 나우크 왕국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똑똑한 인간일 페르모스에게 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걸 같이 봤으면 싶었는데.”

물이 빠져나간 강둑에는 거짓말처럼 보라색 꽃밭이 자리를 잡았다. 사실은 꽃이 아니라 풀에 더 가까운 식물이었지만, 색이 뚜렷해 달빛 아래서는 꽃밭처럼 보였다.

마침 오늘따라 달이 컸다.

달이 낮게 내려앉은 보라색 밭은 이제껏 나우크에서는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잘게 부서진 은색 달빛이, 아직 맺혀 있는 물방울에 부딪혀 반짝거렸다. 요정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이 예쁘고 낭만적인 장소에 서 있는 용병들은 어울리지 않게 표정이 어둑했다.


“오라고 한 게 문제였을까.”

“글쎄요…….”

“직접 데리러 갔어야 했나.”

“글쎄요……. 저희도 잘…….”

블랙은 리에네가 화난 이유를 몰라서, 그리고 티와칸들은 혹시라도 블랙이 이 보라색 풀밭을 통째로 나우크 성 안으로 옮겨 가라는 말을 할까 염려스러워서였다.

페르모스가 눈치 빠르게 동그란 가시공처럼 생긴 풀을 몇 개 꺾었다.


“받으십시오, 주군.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공주님께 직접 여쭤보시는 게 빠릅니다.”

블랙도 동감이었다.

다만 걱정이 될 뿐이었다.


“정말로 화가 난 거라면 어쩌지.”

“그럼 용서를 구하셔야지요.”

블랙이 잠시 페르모스를 노려보았다. 페르모스가 움찔 놀라 랜달의 등 뒤로 얼굴을 감추었다.


“그건 알아.”

알지만 그 과정은 싫다는 얘기였다. 화가 난 리에네를 마주해야 한다는 게.


“이럴 시간에 가 보십시오. 정말로 공주님께서 화가 났다면 한시라도 빨리 용서를 구하시는 게 맞습니다.”

페르모스가 랜달을 방패로 삼고 이런 말을 했다.

랜달이 왜 나를 중간에 끼워 넣느냐며 펄쩍 뛰었지만 페르모스는 꿋꿋이 버텼다.


“……가겠다.”

블랙이 휙 몸을 돌렸다. 그러다 다시 와서 페르모스가 손에 쥔 보라색 풀을 낚아채 갔다.

따라오라는 소리도 없는 걸 보니 알아서들 하라는 말 같았다.

다들 블랙이 말을 달려 떠나는 것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이럴 때 굳이 옆에 따라붙을 이유가 없다는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싸우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도무지 그런 낌새도 없었는데.”

“우리가 뭘 알겠냐. 두 분 사이의 일을.”

“그래도 주군이 잘못하셨을 겁니다.”

“아, 그건 당연하고.”

어쨌거나 다들 충성스러운 부하였기에, 부디 리에네가 블랙을 적당히 용서해 주기를 기원했다.

* * *

정말로 달이 컸다.

일 년에 며칠밖에 볼 수 없는 달이었다. 리에네는 테라스 난간에 기대앉아 홀린 듯 달을 바라보았다.

코끝이 약간 차가웠지만 기분 탓에 춥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계속 울렁거렸다.

아이가 생긴 거라면. 그런 거라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좀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캄캄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아이가 생긴 거라면.

일단 그 남자는 몹시 기뻐할 거야. 나우크가 정말로 그 사람이 살 집이 되는 거야. 어쩌면 그 남자는 울지도 몰라. 여덟 살 때부터 미뤘던 울음을.

아이를 낳을 때까지 두 부인과 블랙이 늘 곁을 지킬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가 듬뿍 애정을 줄 것이다.

얼마 전까지 텅 비어 거미줄만 늘어나던 성은 구석구석이 사람의 온기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매일 꿈일까 싶을 정도로 행복하겠네.

리에네가 무릎에 뺨을 대며 작게 웃었다.

아들일까 딸일까.

상관없겠지. 건강하기만 하면. 그 남자를 닮아도 예쁠 테고, 나를 닮아도 다들 귀여워할 거야.

어쩌지. 벌써 보고 싶어.

혼자 생각에 잠겨 이런저런 표정을 짓던 리에네는 뒤늦게서야 블랙이 테라스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랐잖아요. 왜 그러고 있어요? 왔다는 말도 없이.”

“말하려고 했는데…….”

“했는데?”

“……생각을 잃었습니다.”

“왜요?”

블랙은 눈으로 말을 했다.

달빛 아래 공주님이 날아갈 것처럼 보여서. 그럼 어떻게 붙들어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왜 그렇게 쳐다만 봐요?”

“……춥습니다.”

블랙은 제 망토를 벗어 리에네의 몸에 둘렀다.


“어쩌면 먼지 내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리에네가 싱긋 웃었다.


“당신은 가끔, 전부 다 아는 것 같아요.”

블랙은 테라스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리에네의 발목까지 망토로 감쌌다.


“뭘 말입니까?”

“춥다고 들어가자는 대신 망토를 둘러 주잖아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항상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블랙이 나직한 한숨처럼 말했다.


“그랬다면 방금 전까지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렇게 묻는 걸 보면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왜 화를 내요?”

“오기 싫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이것.”

블랙이 더블릿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시들어 보이는 풀이었다.


“이런. 벌써 이렇게 되다니.”

블랙이 혀를 차며 시든 풀을 테라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게 뭔데요? 주려던 거 아니었어요? 그럼 줘요.”

블랙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시들었습니다. 다음에.”

“꽃은 아닌 것 같은데.”

“멀리서 보면 꽃 같았습니다.”

“아아……. 그래서 보여 주려고 했던 거로군요.”

“오늘은 달이 좋아서. 꽤 그럴싸했습니다.”

리에네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게 새삼 블랙에게 반해서라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다.

……이 남자는, 숨 쉬듯이 나를 사랑해 주네.

제 아이는 그래서 행복할 것이다.

블랙은 자신을 사랑하듯 아이를 사랑할 테니까.

블랙의 아이는 그래서 행복할 것이다.

자신도 그만큼 온 힘을 다해 애정을 쏟을 테니까.


“나 할 말이 있어요.”

“혹시 마음이 상할 만한 일이라면 시간을 좀 줘요. 준비를 하게.”

“그럴 일은 아니고……. 놀랄 일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흠……. 그럼 말해도 됩니다. 잘 놀라지 않는 성격이라.”

리에네가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가 생긴 것 같대요.”

블랙이 평소처럼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입니다. 축하해야겠군요.”

“아……. 정말 안 놀라네요. 그래도 더 기뻐할 줄 알았는데.”

“공주님한테 기쁜 일이라면 나한테도 그렇습니다. 선물을 보낼까요?”

“음……. 선물도 좋죠. 뭘 해 주실 거예요?”

“뭐가 좋겠습니까? 골라 줘요.”

“음……. 왕관은 어때요? 아이 머리에 맞춰서, 작게요. 어쩌면 아이하고 셋이서 함께 대관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왕관?”

블랙이 눈매를 약간 찡그렸다.


“그건 공주님이 낳는 아이가 써야 할 것 같은데. 다른 건 안 됩니까?”

“내가 낳는 아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그렇다면……. ……아니, 잠깐.”

블랙이 뭔가를 쫓는 것처럼 손을 흔들었다.


“잠깐……. 공주님이…… 아니, 뭐라고 했습니까? 아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태어날 거래요.”

“…….”

블랙이 동작을 멈췄다. 어쩌면 숨을 잠깐 멈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래도 그때 같아요. 샤르카 왕국에 간 첫날.”

“…….”

“어쩌면 그 전일 수도 있고. 그 이후일 수도 있고.”

“…….”

멈췄던 눈에 서서히 떨림이 번져 갔다.

리에네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는 눈가를 어루만졌다.


“지금은 놀란 거 맞죠?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이 놀라는 것 같은……. ……아.”

블랙이 망토로 감싼 무릎에 이마를 묻는 바람에 리에네가 잠시 놀랐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놀랐구나.”

“네.”

블랙은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리에네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제 귀에까지 들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또 말해 봐요. 왕관 외에 뭘 원하는지.”

“음……. 일단은 그걸로 됐어요.”

“나는 부족한 것 같은데…….”

“시간은 많아요.”

리에네가 블랙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나머지는 매일 조금씩 생각하기로 해요. 급할 이유가 없으니까. 지금은 일단 기뻐해 줘요.”

블랙이 몸을 일으켜 리에네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그가 하지 못하는 말을 심장 소리가 대신했다.


“기쁩니다.”

살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라는 말일 것이다.

블랙의 심장이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도요.”

리에네가 블랙을 마주 안았다.

팔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가 둘러 주었던 망토가 흘러내리며 까만 하늘을 날아갔다.

리에네는 당황하거나, 주워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웃었다.

그런 일조차 내일도 오늘만큼 행복하리라는 계시 같았다.


“이제 좀 추운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갈까요?”

“뜻대로.”

블랙이 리에네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리에네는 익숙한 자세로 안겨 침실로 들어섰다.

달랑거리는 두 발의 움직임도, 마주치는 눈길도, 그러다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 서서 나누는 입맞춤도.

그 모든 게 전부 계시였다.

신이 인간에게, 혹은 인간이 제 삶에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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