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417)

84화

점심 식사 시간.

엘레인은 쌍둥이 형제들과 함께 황족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식탁엔 황태후만 있을 뿐, 황제는 보이지 않았다.

“할모니. 아빤 어디 갔어여?”

“글쎄다. 보아하니 일 때문에 바빠서 점심을 거르려는 모양이로구나.”

황태후는 엘레인의 동그란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다가 무릎 위를 가리켰다.

“아들 녀석도 없는데… 오늘은 이 할미 무릎 위에서 먹으련?”

“아, 아뇨. 에레이 혼자 먹을 수 이써요.”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갔다가는 식탁 위에 있는 진수성찬을 모두 맛봐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 사태만큼은 피하려고 다른 빈자리를 향해 다가가자, 황태후는 꽤나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요즘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 거지?’

아르닐과 라네즈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의자에 안착한 엘레인은 황태후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최근 들어 아침도 따로 먹는데 이번엔 점심마저도 거르고 일을 한다니.

설마 무언가 큰일이라도 터진 건가?

“후후. 아들 녀석이 매우 걱정되는 모양이로구나.”

심각한 표정의 엘레인이 귀여운지 황태후가 우아하게 웃었다.

괜히 본심을 들킨 것 같아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인 엘레인이 소심하게 물었다.

“…할모니는 왜 바쁜지 알고 있어여?”

“당연하다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단다. 단순히 가을 수확제 준비로 바쁜 것뿐이니까.”

“가을 수확제?”

벌써 그 커다란 축제를 할 때가 온 건가?

엘레인이 감탄하며 커다란 눈을 끔뻑이자, 황태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 수확제는 농산물을 수확할 즈음에 하는 축제란다. 농산물 수확을 기념하며 이웃 사람들과 그 행복을 나누고 대지의 신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하는 날이지. 참고로 이번 감사제에 신성 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혀서 작년보다 아들 녀석이 할 일이 더 늘어나 버렸단다.”

타국의 감사제에 신성 제국의 참여라니.

그래도 동맹국이라고, 나름 친밀함을 표현하고 싶은 모양이다.

덕분에 황제가 할 일은 늘어나 버렸지만 말이다.

“꼬맹아. 아버지는 어디 가서 굶어 죽을 사람은 아니니까 우린 우리대로 밥이나 먹자.”

“그래. 저쪽은 앞으로도 쭉 신경 끄고 우리끼리 신나게 놀자.”

쌍둥이 형제들은 황제의 부재가 기꺼운 모양인지 평소보다 신나는 얼굴이 되었다.

황태후는 경쟁자가 줄어듦에 크게 기뻐하는 두 황자를 보며, 그들의 심정에 적극 동의했다.

“일이 늘어나봤자 겨우 두 배로 늘어난 것뿐이란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 끝낼 수 있을 정도니 너무 걱정하지 말려무나.”

심기일전.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황제를 따돌리자고 하는 가족들.

그들의 따뜻한 사랑에 엘레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할머니. 엘레인이 키운 왕 블루베리 먹어봤어요? 그거 엄청 맛있던데.”

라네즈가 고기 위에 뿌려진 블루베리 소스를 맛보며 말했다.

최근 추가로 열린 왕 블루베리를 선물로 줬었는데, 다행히 그의 입맛에 딱 맞았던 모양이다.

“물론이지. 오늘 아침 와플과 함께 먹어보았단다. 뛰어난 정원사가 기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맛이 아주 좋던데?”

“정말요? 그러케 맛있었어여?”

“그럼. 정말이고말고. 가을 품평회에 참가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더구나.”

가을 품평회? 그건 또 뭐지?

엘레인이 고개를 기울이자, 다른 쪽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품질이 좋고 맛이 뛰어난 작물과 특이한 모양의 작물을 뽑는 대회인데 가을 수확제의 가장 큰 대회이자 묘미이지. 각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데다가, 이때 대회가 끝나면 거기에 내놓았던 수확물들을 경매에 부치곤 해.”

“엥? 아무리 그래도 고작 농산물인데 경매까지 해? 1등 한 거 아니면 딱히 살 필요도 없을 텐데.”

“보통이라면 그렇겠지만….”

라네즈의 지적에 아르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그 대회는 자선 사업가들이 여는 대회거든. 경매에서 벌어들인 돈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기부하는 차원에서 사는 거지.”

“우와.”

그런 뜻이 있었구나.

나름 뜻깊은 대회에 엘레인의 눈이 절로 초롱초롱해졌다.

축제를 즐기면서 그 풍족해진 마음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다니.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괜히 흐뭇해지는 마음에 헤실헤실 웃고 있데, 아르닐이 방울토마토를 콕 찍으면서 말했다.

“아마 이번 수확제는 더 활기가 넘칠 거야.”

“그건 왜?”

“올해 페른 영지에서의 밀 농사가 풍년이거든. 거리에 빵 굽는 냄새가 넘쳐날걸?”

“오오. 그럼 이번에도 호박 머핀을 팔겠네? 그거 별로 안 달아서 맛있던데.”

“바보 형. 나는 호박이 아니라 밀 농사가 풍년이라고 말한 거거든?”

투닥투닥. 쌍둥이 형제들이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 껴서 싸움을 구경하던 엘레인은 익숙한 단어를 주목했다.

“아르 오빠. 페른 영지가 밀로 유명해?”

“으응. 제국 내에 유통하는 밀의 40퍼센트가 페른 영지에서 생산되고 있어. 그러니까 이번 풍년은 다 네 덕분인 셈이지.”

“엥? 나?”

갑자기 난 왜?

뜬금없이 지목당한 엘레인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그러자 아르닐이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페른 영지에서 생산하는 밀 중 절반을 베스 마을에서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최근에 네가 그 베스 마을을 구해냈고 말이야.”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엘레인이 활약한 덕분에 LA실린이 만들어졌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아르닐이 흐뭇하게 웃자, 라네즈와 황태후도 자랑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덕분에 쑥스러워진 엘레인은 괜스레 뺨을 긁적였다.

“어쨌든 이번 대회에 한번 참가해 보지 그러려무나. 이 정도 맛과 품질이라면 필시 그 대회에서 우승을 노려봄직해.”

“정말 그럴까여?”

“당연하지. 우리 꼬맹이가 만든 슈퍼 울트라 왕 블루베리인데 그 누가 뽑지 않고 견디겠어?”

황태후로도 모자라서 라네즈까지 그리 단언했다.

이렇게 옆에서 자꾸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니, 확신이 잘 서지 않던 엘레인도 조금은 솔깃해졌다.

“그롬 한번 도전해 보까…?”

“오오! 바로 그 자세야!”

어째 라네즈가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누가 승부욕에 죽고 사는 사람 아니랄까 봐.

참으로 그다운 반응에 엘레인은 푸핫. 웃고 말았다.

***

황궁에서도 그 활기가 느껴질 정도로 수도는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황궁도 사절단을 맞을 준비로 한창인지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긴장된 분위기를 내뿜는 곳이 있었으니….

“자자. 다 모였으면 이제 시연을 시작해 볼게.”

빗자루를 든 아르닐이 모여든 청중들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세계 최초로 열린 빗자루 시연회.

황궁 앞마당에 비록 열 명 남짓한 숫자가 모인 초미니 시연회지만, 아르닐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이곳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참석해 있으니까 말이다.

아르닐은 모두가 잘 보이게 빗자루를 들어 올리며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자, 일단 사용 방법은 간단해. 그냥 여기에 있는 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우우웅—!

아르닐이 두 개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막대 끄트머리에 박힌 마나석이 작동하며 빗자루가 공중에 붕 떴다.

그 놀라운 모습에 모두가 ‘오오오!’를 연발하고 있던 찰나.

주위에 있는 낙엽을 발견한 빗자루가 저절로 그것들을 한쪽으로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우와. 지짜 자기 혼자 움직여!”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역시 천재 마법사 3황자님이셔.”

엘레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칭찬이 쏟아지자 아르닐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으쓱으쓱. 사방에서 쏟아지는 동경의 눈빛과 감탄사를 온몸으로 느낀 아르닐은 성인군자에 빙의하여 온화한 목소리를 내었다.

“봤지? 이제 너희들이 낙엽을 일일이 쓸어 담을 필욘 없어. 이 지니어스한 빗자루가 알아서 다 해줄 테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저흴 위해서 이렇게 귀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주시다니…!”

“앞으론 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낙엽이 사방으로 흩날릴까 걱정할 일은 없겠네요. 흐윽!”

“낙엽 지옥 탈출! 마법 천재 3황자님 만만세!”

사방에서 열렬한 찬사가 빗발쳤다.

현장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가 하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라네즈가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뭐야. 대단한 건 맞지만, 저렇게 울 정돈가….”

“글쎄요. 적어도 지금 같은 때엔 낙엽 담당 일손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카론의 말에 라네즈가 순순히 수긍했다.

여전히 이 뜨거운 열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 동생 녀석이 어떤 사심을 가졌는지는 충분히 알겠다.

“오빠 지짜 대단하다. 사람들 힘들까 봐 직접 만든 거야?”

“뭐, 그렇긴 하지.”

내가 이 정도로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야.

마치 그렇게 외치는 듯한 눈빛으로 산뜻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엘레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역시 미래의 마탑주는 뭐가 달라도 한참 다르구나.’

회귀 전 세상엔 이런 마법 빗자루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아르닐이 마음만 먹으면 더 대단한 아티팩트들도 줄줄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

‘저것 봐. 운디네도 많이 신기한 모양이네.’

바람의 정령이 없는데도 혼자 움직이는 빗자루가 신기한지, 운디네가 콩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옆에 딱 달라붙었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괜히 흐뭇해진 엘레인은 문득 두 번째 버튼에 눈이 갔다.

“근데 오빠. 밑에 버튼은 뭐야?”

“이거? 이건 폭풍 모드야.”

“폭풍 모드?”

뭔가 어감이 꽤 불길한 것 같은데….

엘레인이 애매한 얼굴로 두 번째 버튼을 노려보고 있자, 아르닐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씩 지어 보였다.

“별건 아니고. 가벼운 낙엽이랑 달리 무거운 눈을 치우는 모드인데…. 그건 겨울에 보여줄게.”

저 수상한 웃음만 보면 뭔가 더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설명만 들었을 때는 불길한 어감과 달리 꽤 평범한 모드였다.

‘궁금한데 한번 눌러 볼까 말까.’

엘레인은 아르닐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와중….

한쪽에서 웬 소란이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인데?”

“저 사람은 재무대신인데…. 싸우는 건가?”

궁금한 건 엘레인뿐만이 아닌지, 라네즈와 아르닐이 관심을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하물며 상대가 빈틈이 없기로 유명한 재무대신이라면 흥미진진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무언의 결탁과 함께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말소리가 좀 더 명확하게 들려왔다.

“이해할 수 없군요. 제 기억이 맞다면 작년에도 조성금을 증액했을 텐데요. 지난번에 올려준 돈으로도 모자란 겁니까?”

“그으. 워낙 아이들이 빨리 크잖습니까. 보육원에 의탁하는 아이들이 더 늘어서 작년에 올려주신 돈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싸늘하게 말하는 쪽은 재무대신. 그리고 그런 그에게 고개 숙여 부탁하는 남자는 꽤나 푸짐한 몸의 귀족이었다.

굽실거리며 내민 명단을 받아든 재무대신은 침음을 흘렸다.

“으음. 확실히 늘긴 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간의 평판이 좋은 그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확실한 편이 좋았다.

“올해 구입한 물건의 품목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주섬주섬 꺼낸 종이를 받아든 재무대신은 매의 눈으로 품목들을 훑어보았다.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은 확실히 늘었고…. 털실은 왜 이렇게 많이 샀습니까?”

“아이들이 손수 양말과 목도리를 짜서 서로에게 선물해주고자 하더이다. 참 마음씨가 곱지 않습니까?”

“흐음….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도록 하죠.”

여전히 찜찜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이상은 없다.

활짝 웃는 그를 잠시 빤히 바라보던 재무대신은 의표를 찌르듯이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조만간 보육원에 감찰관이 들를 시기인 건 아시죠?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언제든지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흠… 좋습니다.”

재무대신은 이만 남자를 놓아주기로 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귀족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명단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 왼쪽 덤불에서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아. 황자 저하, 황녀 저하시군요.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응. 잘 지냈어. 그보다 방금 저 귀족은 뭐 하는 놈이야?”

“그러게. 목소리가 꽤 커지던데.”

쌍둥이 형제의 물음에 재무대신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황궁에선 어디에서나 듣는 귀가 있는 법인데. 그 귀가 아직 어린 황자와 황녀일 줄은 몰랐다.

“큰일은 아니고. 조성금 증액 문제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엥? 그런 문제를 보통 밖에서 이야기하는 거야?”

보통 그런 건 안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르닐이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자 재무대신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저 역시 불시에 찾아온 그가 당혹스럽더군요. 그나저나 날씨도 쌀쌀한데, 세 분은 왜 이곳에?”

“아아. 방금 막 빗자루 시연회를 끝낸 참이야.”

“호오. 자동으로 낙엽을 쓸어 모으는 빗자루를 개발하신다고 하던데 정말 성공하셨나 보군요.”

“엇.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어?”

“무려 황궁이잖습니까. 그나저나 혹시 그 빗자루를 상품화해서 팔아보실 생각은….”

“그것참 좋은 생각….”

각고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빗자루를 인정받은 아르닐과 그 빗자루를 팔아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재무대신은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엘레인은 무언가 끈끈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까부터 계속 무언갈 하고 있는 라네즈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오빠 거기서 뭐 해?”

“어? 아, 아니…. 난 그냥 움직이는 판에도 빗자루가 움직이나 궁금했을 뿐이야. 진짜 다른 의도는 없었다구.”

“그게 뭔 소리야?”

엘레인의 물음에 안절부절못하던 라네즈가 조용히 한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에는 아까 재무대신과 이야기하던 귀족이 마차에 올라타고 있는 장면과….

“빗자루!?”

엘레인은 경악했다.

마차 위에 낙엽이 쌓여 있기라도 한지 아르닐의 마법 빗자루가 그곳을 슥삭슥삭. 아주 열심히도 청소하고 있었다.

“오빠가 던져써?”

“그, 그러니까 단순히 궁금증 때문에 한 거긴 한데. 던져놓고 나니까 저걸 가져올 방법이 없네…?”

라네즈가 하하! 하고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허탈함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이럇!”

“헉. 출발해버려따.”

“아, 안 돼….”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어하던 중에 님은 속절없이 떠나버렸다.

성문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를 허망하게 바라보고만 있는데, 바로 지척에서 지옥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긴말할 필요 없이 지금 바로 보여드릴게요.”

“그것참 기대되는군요.”

싱글벙글 웃는 낯의 아르닐이 재무대신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바로 앞에 도착한 그는 석상처럼 굳은 라네즈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바보 형. 내 빗자루 어딨어?”

“어….”

“음….”

차마 그의 눈을 마주할 순 없는지라, 라네즈와 엘레인은 서로 눈을 피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마차 위에 덩실덩실 춤추듯 낙엽을 쓸고 있는 빗자루를 발견한 아르닐은….

“컥.”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