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417)

171화

유감스럽게도 엘레인은 그를 놀릴 생각이 없었다.

전력으로 그의 계획을 망치려고 하는 것일 뿐.

엘레인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썩은 감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바로스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 엄청난 양의 식료품이 제 손에 들어오거든요.”

“그, 그런 거였군요. 그런데 그 조만간이라는 게 대체 언제쯤인지요?”

“한 달 뒤요. 마차 일곱 대는 꽉꽉 채울 양이라서 한 달하고도 2주 동안 군사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많은 양을 대체 어디서…. 아니, 그것보다는 이 질문을 먼저 드려야 될 것 같군요. 혹시 그쪽이 상단주이십니까?”

바로스는 설마설마하는 얼굴로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상단을 이끄는 사람은 왼쪽의 소년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옆의 꼬마 녀석은 너무나도 어렸으니까.

하지만 아까부터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저 꼬맹이였다.

바로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묻자 엘레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상단주인데요?”

“참고로 저는 부상단주입니다.”

엘레인이 활기차게 말하고 아르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소년이 상단주라면 그러려니 넘어갔겠지만,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저 꼬마가 상단주라고?

저 꼬마의 부모는 혹시 미친 게 아닐까?

바로스는 혼란스럽다는 듯이 이 정신 나간 상인들을 바라보았다.

저 꼬맹이가 어린 나이에 고생을 하든 말든 솔직히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그게 자신과 엮여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저 꼬마 녀석. 셈은 할 수 있는 건가?

저런 듣보잡 꼬맹이가 접근할 정도로 팍스 교단의 위상이 떨어진 건가 싶어 짜증이 확 났지만, 반대로 저 미숙한 꼬맹이를 잘 속여넘길 수만 있다면 이쪽에서 엄청난 이득을 볼 수도 있다.

이게 웬 호재인가 싶어 부르르 몸을 떤 바로스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달만 기다리면 식료품을 줄 수 있다고요?”

“네. 최고의 품질이라고 약속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대량 구매하는 대가로 현시가의 10퍼센트 정도는 할인받을 수 있겠군요.”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요?”

“예?”

바로스는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쪼끄마한 소녀가 ‘어, 그런 건가?’라고 하거나 ‘하긴 대량 구매를 해주는 고객은 몇 없죠. 그러니 할인 정도는….’ 따위의 말을 하며 수긍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로 싸늘했다.

당황한 바로스가 입술을 달싹이자 엘레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제가 어리다고 많이 얕잡아 보인 모양이네요. 이번 거래는 그냥 없었던 걸로 하죠.”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정당한 거래를 요청한 것일 뿐인데요.”

“지금 시장에 식료품이 바닥났다는 건 아무리 어린 저라도 알고 있어요. 제가 시장 조사도 안 하고 여기로 찾아온 줄 아세요?”

“그, 그 말씀은.”

바로스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하자 엘레인이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애초에 2배 정도는 부를 거라 생각하고 대주교님을 찾아온 거예요.”

“두, 두 배라니! 안 그래도 식료품 가격이 확 뛰었는데 거기에 두 배 가격으로 판다고!”

“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네 배. 이거 아니면 저와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걸로 알고 그냥 갈게요. 참고로 현재 시가를 먼저 운운한 건 대주교님이에요. 아시죠?”

엘레인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딴말하면 정말 손절할 것 같은 기세에 바로스는 머릿속이 다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토끼 나부랭이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호랑이 새끼였을 줄이야!

바로스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저 꼬마 상인이 아니면 언제 식료품을 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쪽 사정을 알고 다른 상인들이 더 비싼 값을 부를지도 모를 일이지.

결국, 그는 상대를 얕보고 입 한번 잘못 놀린 대가로 2배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던 식료품을 무려 4배 가격에 매입하게 되었다.

“자자. 계약서에 도장 꾹 찍으시고요.”

“저, 정말 한 달 뒤에는 물건을 꼭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음… 정 그렇게 불안하시면 신께 맹세라도 할까요?”

“차라리 그럽시다! 맹세의 서약서는 제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맹세의 서약서.

신전 측에서 준비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서약서로 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서약서다.

물론 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서약이니만큼 대주교와 성녀. 즉, 급이 되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 서약서의 내용을 어긴 사람은 모든 교단의 공공의 적이 되어 정의의 철퇴를 맞게 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최상급 계약서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그 서약서를 먼저 언급할 정도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나 보군.’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 봤지만, 확실히 사기당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괜히 입을 놀리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

맹세의 서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 바로스는 쓰린 속을 잡고 엘레인 일행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치고 신전 밖으로 나온 엘레인은….

“우와. 진짜 맹세의 서약까지 해줄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오르칼 형이 확실하게 하려면 그것까지 받아오는 편이 좋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받아낼 수 있을 줄 몰랐어.”

아르닐도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 동생이 협상에도 소질이 있다니.

마법 쪽에만 뛰어난 자신과 달리 여러 방면으로 두루두루 능력이 좋은 여동생은 정말이지 대단해 보였다.

“역시 엘레인 너는 천재야.”

“에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이건 간단히 운으로 치부할 게 아니야. 생각해 보면 형이 가르쳐준 건 겨우 한 달 뒤에 식재료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과 현시가의 두 배에서 네 배로 판다는 계약서를 받아내라는 것뿐이었지. 상세하게 협상을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 주진 않았잖아?”

그나마 해준 조언이라고는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어린 엘레인을 얕잡아 보고 바로 등쳐먹으려고 했고, 엘레인은 가뿐하게 그의 욕심과 이기심을 이용하여 이쪽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가져와 상대방이 똥줄 타게끔 만들었다.

덕분에 맹세의 서약서를 얻어낼 수 있었고 말이다.

“형이 어째서 네게 모든 일을 맡겼는지 이제야 알겠어.”

“저와 3황자 저하께선 이런 일엔 젬병이니까요.”

카론의 말에 아르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지만, 이런 쪽으로 머리 굴리는 건 그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바보 형과 건축밖에 모르는 레눔이라는 수인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자꾸 그렇게 칭찬하면 부끄러운데…. 그리고 오르칼 오빠가 그 많은 식량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성립할 수조차 없는 작전이었잖아.”

“그 형이야 원래 뇌지컬이 대단한 사람이고.”

오르칼은 일반인과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어나더 레벨의 두뇌 소유자였다.

말을 하면서도 인정하기 싫은지 뚱한 표정을 짓는 아르닐의 모습에, 엘레인은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긴. 오르칼 오빠는 이런 작전을 즉석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니까.”

“맞아.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건 악마의 머리에서나 나올 법한 작전이라는 거지.”

“어…. 그건 나도 동의.”

앞으로 팍스 교단이 겪을 일들이 무엇인지 안다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엘레인은 적으로 두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금 깨달으며 그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오빠 쪽은 잘되고 있으려나?”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첫째 형님인데 어련히 잘하시겠지.”

아르닐의 말대로 그라면 절대 실패할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그림자가 항상 붙어 있으니 위험할 일도 없을 거고.

“그럼 얼른 돌아가 볼까?”

“나랑 좀만 놀다 가면 안 돼? 노마스족 구출은 바보 형이랑 그 수인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 아니야.”

“그래도 같이 가서 도와줘야지. 그래야 빨리 일이 끝나지 않겠어?”

“에휴. 내 동생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착한 거람.”

아르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엘레인의 자그마한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하기를.

“좋아. 그럼, 일 끝내고 나중에 나랑 놀아주기다?”

“그야 물론이지.”

“좋아. 그럼 다들 내 손 잡아.”

후일. 여동생과 단둘이 논다는 약속을 받아낸 아르닐이 카론의 손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 빛무리에 휩싸인 그들은 곧바로 라네즈와 레눔이 있을 통곡의 협곡으로 이동했다.

* * *

한편 이번 소식을 들은 자르크 공작 측 기사들은….

“우리 보고 한 달이나 기다리라고? 지금 장난쳐?”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말도 안 나온다고 했던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린 그들은 이내 분노에 차서 길길이 날뛰었다.

“턱도 없는 자금으로 군량을 사라고 하질 않나. 직접 공수해 주겠다고 해 놓고 부실한 식단으로, 그것도 3주밖에 못 버틸 군량만 제공한다고 하질 않나….”

“설마 이 넓은 평원을 2주 만에 점령하라는 건 아니겠지. …설령 그게 가능하다 쳐도 그다음은 어떻게 하라고? 일 끝났으니 바로 군사를 빼라 이 말인가?”

자르크 공작령의 기사들은 공허의 평원 점령에 필요한 작전 수행 기간을 최소 한 달 정도로 잡고 있었다.

물론 실제 수인족의 저항 정도에 따라서 훨씬 늘어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점령 후에도 수인족의 반격에 대비해 방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 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3주 치 식량, 그것도 전장에 나갈 사람에게 너무한 수준의 식량을 제공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교단 놈들이 우리를 못 믿고 평원에 발을 못 붙이게 하려는 게 아닐까요?”

“에이 설마. 지금 우리가 팍스 교단의 유일한 손과 발인데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나온다고?”

“그러니까 더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지금 자기네들 때문에 피를 흘리는 사람이 누군데 이딴…. 아무리 공작님 명령이라지만 정말 너무하는군!”

차라리 약속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최상의 대우와 물자를 보급해 준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가 너무 올라서 힘들다며 오히려 그들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어떡하냐. 이대로면 나중에 사례금으로 군비를 준다고 했던 것도 못 믿겠는데.”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선 자르크 공작님과 직접적으로 계약을 했으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 문제는 작전 기간 동안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야.”

“하긴. 행군을 하고 있는 와중에 사냥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명예와 신뢰를 중히 여기는 기사로서, 설령 이런 대우를 받았다 해도 갑자기 회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어떨까? 그들 대부분은 어느 장원이나 마을에서 끌려 나온 사람들이었다.

행군도 익숙지 않을뿐더러, 군영지를 세우거나 수인과 싸우는 일 모두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다.

그런데 교단에서 추가로 보내준 군량은 보리나 채소류뿐. 눈 씻고 찾아봐도 육포 하나 보이지 않는 저열량 식품이었다.

그 힘든 일을 하면서 이걸로 3주를 버티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양을 넉넉하게 준다고 쳐도 병사들이 탈진해서 쓰러질 것이다.

아니 쓰러지고 끝이라면 그나마 낫다.

강제로 고향을 떠나 원정 나온 그들에게 충성심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불만이 쌓이면 탈영할 수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자르크 공작에게 받은 군대가 전투 한 번 치르기도 전에 스스로 와해된다는 건 다르지 않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네.”

“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결국, 기사들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시장으로 향했다.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자르크 공작님께서 크게 실망할 것이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사비를 털어서라도 군량을 사는 게 나았다.

“일단 돈 좀 모아 봐. 얼마 정도 있어?”

“으음. 이 정도 모였는데 이걸로 필요한 군량을 모두 살 수 있을까요? 팍스 교단도 한 달이나 걸린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우리가 일주일 동안 먹을 만큼은 남아있겠지. 더 늦기 전에 어서 가 보자.”

기사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친. 그새 가격이 또 이렇게 올랐어?”

“이 정도면 우리 동네 물가의 거의 두 배인데요?”

기사들은 경악하며 가판대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시장을 싹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는데, 가격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했다.

순간 이곳 상인들이 담합해서 기사들을 등쳐먹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때 가판대에 있던 상인이 헤헤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식료품이 귀해졌으니 당연히 비싸지지요.”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심지어 청과물이나 채소류밖에 없잖아? 육포나 건어물 같은 군량에 적합한 건 없나?”

“아이고 기사님들. 그거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이제 찾나요.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은 남은 게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러믄요. 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상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허 참.”

기사들은 극심한 허탈감에 다리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앞길이 막막하네.”

“어쩌죠? 병사들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어쩌겠어. 양으로라도 때우려면 저거라도 사 놓아야지. 교단에서 보내준 군량으론 3주 버티기는 고사하고 부대가 와해되어 버릴 텐데.”

어쨌든 아쉬운 건 기사들 쪽이었다.

결국,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신선 식품이라도 싹 끌어모은 기사들은 우울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사냥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병사들 사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네요.”

“사냥 갔다가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수가 있어. 군영지를 나간다면 우리가 나가야지…… 제길, 이러려고 기사가 되었나 싶다.”

앞날이 빤히 보였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힘없는 발길을 재촉하며 시장을 빠져나가기 전. 누군가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듣자 하니 군량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웬 놈이냐?”

후드를 푹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 채 접근한 두 남자는 누가 봐도 수상했다.

경계심을 끌어올리어 그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자, 왼쪽 남자에 비해 키가 작은 남자가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진정하시지요. 저는 그저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을 뿐.”

“진실? 무슨 진실을 말하는 거지?”

“상인들 말입니다. 같은 상인으로서 지금 그들의 행동은 상도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요.”

“갑자기 상도덕이 왜 나오지? 그들이 우릴 속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정답입니다. 현재 그들의 창고에는 지금 기사님들이 찾고 있는 식량이 엄청나게 쌓여있습니다.”

“뭐라고?”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이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도 의아하거니와 굳이 모습을 드러내어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저의도 궁금했다.

혹시 사기꾼 아니야?

라는 얼굴로 상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를 바라보자, 그 속내를 읽은 듯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했잖습니까. 진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따라오시죠.”

그리 말한 남자. 오르칼은 그림자와 함께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저들이 저리 당당하게 나서니 경계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이 무색하게도 기사들은 어색하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일단 따라가 봐?”

“그래.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결국, 기사들은 수상한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시장가의 뒤편.

상인들이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가 죽 늘어선 거리였다.

“여긴….”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직접 보시죠.”

오르칼은 두리번거리는 기사들을 향해 빙긋 웃으며 창고 문 하나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그곳엔.

“뭐, 뭐야. 정말 식량이 엄청나게 많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들은 분명 남은 식량이 없다고 했는데?”

기사들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놀랍게도 창고 안에는 각종 식료품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런 그들 뒤로 들려오는 한마디.

“어떻게 된 일이긴요. 팍스 교단과 상인들이 손잡고 기사님들을 물 먹인 거지요.”

“!?”

그 한마디는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