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417)

205화

엘레인은 자신을 드워프라고 소개한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불룩한 배에 거친 수염 그리고 푸근한 인상까지.

‘인상은 푸근한데 왜 이렇게 성격이 거칠지?’

엘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살아오는 환경과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인상이 바뀐다고들 하는데 드워프에게는 통용되는 말이 아닌가 보다.

하긴 회귀 전에 만났던 대부분의 드워프들이 그랬었지.

어쩌면 그냥 인간이 싫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저들끼리 성질을 내는 건 그다지 보지 못했거든.

“플로스 영지의 영주를 찾는 거라면 멀리 가실 필요 없어요.”

“설마 네가 그 영주라는 말은 아니겠지?”

“바로 알아맞히셨어요.”

“?”

드워프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입을 슬쩍 벌렸다.

누가 봐도 놀란 얼굴로 3초 동안 그런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눈썹 사이를 와락 일그러트리며 불평을 터트렸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영주를 하다니. 요즘 인간들은 그렇게도 인재가 없는 건가.”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되죠. 알고 보니 엄청난 동안일 뿐이고 사실은 성인식을 치른 사람이면 어쩌려고요?”

“뭐? 정말 그런 거야?”

“아뇨. 제가 그런 케이스라는 뜻은 아닌데요.”

“이거… 여간 평범한 친구는 아니었구먼.”

엘레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라면 굳이 이럴 필요 없이 둥글게 둥글게 말했겠지만, 드워프들에게 그렇게 했다가는 자기주장도 제대로 못 하는 호구 취급을 당한다.

원체 드워프들은 직설적이고 할 말을 다 하는 것을 좋아하는 종족이라 불만이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해주는 쪽이 좋다.

그리고 그러한 대처가 먹혀들었던 것인지 드워프는 엘레인을 어린데도 당찬 꼬마 영주라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무례를 저질러서 미안하구먼. 딱히 인간들을 싸잡아서 욕하려던 건 아니었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주의해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오해할 수 있거든요.”

“내, 명심하겠네.”

드워프는 약속했다.

오해할 만한 발언은 삼가겠다고.

하지만 약속과 별개로 똑 부러지는 어린 영주는 처음 보는지라 그는 신기하다는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응? 아, 그렇지 참. 내가 이런 걸 봤는데 말이야.”

드워프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더니 엘레인 앞에 쫙 펼쳐 들었다.

“이건 이번에 발행한 신문이네요?”

엘레인은 아까 전, 황제가 보고 있던 신문과 똑같은 신문을 가지고 있는 드워프를 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신문을 대량 생산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해도 인간들을 고깝게 보는 드워프 도시에까지 퍼졌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말이다.

“별일이네요. 드워프는 인간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맞는 말이야. 여전히 대부분의 드워프는 인간들을 싫어해.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들에게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

당장 드워프 도시만 해도 베네딕트 제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전까지는 욕심 많은 인간들 사이에 껴서 그들 간의 정치나 전쟁에 이리저리 휘말렸다면, 지금은 베네딕트 제국 덕분에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드워프들을 괴롭히던 인간이란 족속이 드워프 도시를 비호하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덕분에 드워프들은 인간들을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고맙게 여기기도 했다.

한마디로 애증의 관계라는 뜻이다.

어쨌든 이래도 저래도 인간들과 뗄 수 없는 사이이니 인간들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 수가 비록 적더라도 인간들의 신문을 굳이 찾아보는 드워프는 존재했다.

툴란. 그의 친구처럼 말이다.

“보이는 것처럼 내 목적은 이 세계의 기록을 경신하는 거다. 고작 일곱 통 따위가 세계 기록이라니. 코웃음도 안 나오더군그래.”

“설마 그것 때문에 드워프 도시에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당연하지. 이건 우리 드워프 종족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야. 술을 논하는 자리에 우리들이 빠지면 섭섭하지 않나? 보아하니 여기 이 우승자도 수인이던데, 설마 종족 제한이 걸려 있거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노마스북에는 누구나 이름을 올릴 수 있어요.”

“아주 좋은 대답이로구먼.”

드워프는 아주 만족스런 대답이라는 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럼 이 친구도 데려와 줘.”

“네? 기록을 경신하는 거라면 심사위원 앞에서 증명만 하면 되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이 친구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내가 도전하러 왔다는 것을.”

드워프는 자신만만하게 자기 가슴을 땅땅 치며 말했다.

이른바 그런 것이다.

내가 공격하러 왔는데 무방비하게 얻어맞기 전에 각 잡고 방어는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 그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은 엘레인은 뺨을 긁적였다.

‘하긴 은근히 승부욕이 있는 필립 할아버지라면 미리 말씀드리는 게 좋을지도…?’

지난번에 아르헤가 찾아왔을 때에도 은근히 승부욕을 불태우던 필립이었다.

하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기록한 업적이니 경쟁자의 등장 정도는 미리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알겠어요. 제가 말씀드려볼게요.”

“좋아. 아주 좋아.”

결정을 내린 엘레인은 드워프를 잠시 영주성에서 기다리게 한 뒤 필립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뭐? 벌써부터 내 기록에 도전하려는 녀석이 나타났다고?”

필립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허롭게 웃었다.

그리고는 싱글벙글 웃는 낯짝 그대로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영주님. 그 녀석 지금 어디에 있는감?”

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을 마주한 엘레인은 어색하게 웃었다.

* * *

“호오. 자네가 내 기록에 도전한다는 그 드워프인감? 도시에 짱박혀서 안 나오는 자들이 왜 여기까지 왔대?”

“고작 오크통 일곱 통 가지고 전 세계적으로 자랑을 해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

“허어…. 술에 자부심이 넘친다더니 정말이었구먼. 고작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와?”

“당연하지. 너희 수인족이 고기를 좋아하듯 우리도 술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잠깐. 그거 편견이야. 우리 수인족 중에도 과일이나 채소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그 기록, 내가 갈아 치워주지.”

“자신감이 아주 대단한데. 좋아. 나도 내 한계를 다시 한번 깨보지. 그때는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거든.”

“바라던 바다!”

오자마자 빠르게 공방을 이어나가던 그들은 대뜸 대결하자는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물론 드워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이번 대결은 비공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역시 인간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둘만의 대회를 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자존심 빅매치.

세계 최고로 술 잘 마시는 사람을 가리기 위한 중대한 대결!

인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노마스족 양조장 뒤편에 자리 잡은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오크통 일곱 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말이야.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

“흥. 포기라니. 드워프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다. 그리고 내 친구가 기르는 개 이름이 일곱인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나?”

“아니, 잠깐만. 그건 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개 이름이 일곱이라고?”

“그래. 그 녀석이 일곱 번째로 태어난 녀석이거든. 그래서 일곱이라고 지었다지.”

“허 참. 위대한 포유류에게 그딴 성의 없는 이름을 짓다니. 같은 갯과 수인으로서 굴욕이구나.”

“너 지금 내 친구 욕하는 거냐?”

엘레인은 서로 으르렁대는 드워프와 수인을 보고 두 눈을 끔뻑였다.

정말이지 세계 최강자들의 싸움이다.

어른이지만 유치하게 싸우기 종목이 있다면 거기서 1, 2등을 할 것 같은 모습이랄까.

‘어쨌든 슬슬 말려야겠네. 이러다가 하루 종일 말싸움만 하겠어.’

그들도 이런 식으로 시간만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엘레인은 적절한 타이밍에 손을 들고는 유치한 대화를 중재했다.

“그만하고 이제 슬슬 진지하게 대결에 임하는 게 어때요? 이러다가 날 새겠어요.”

“어험험.”

“크흠. 이거 미안하구먼.”

드워프가 헛기침을 하고, 필립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들에게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은 엘레인은 자신이 맡은 역할. 심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양손을 들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을 가리기 위한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은 상관없고요. 최소 일곱 통 이상은 마셔야 한다는 점. 꼭 상기해주세요!”

“물론이지.”

“얼른 시작하자고.”

엘레인의 말에 두 종족은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맥주잔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잠시 뒤.

“자! 그럼 대결 시작~!”

명랑한 외침과 함께 양손을 아래로 내리자마자 필립과 드워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속도로도 지기 싫은 건지 치열하게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는 두 종족.

덕분에 잔에다가 술을 따르고 있는 카론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와아. 필립 할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저 드워프도 장난이 아니네.”

우스갯소리로 드워프들의 조상은 술고래다 따위의 말을 하곤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귀 전 엘레인이 보았던 드워프들은 그래도 술병에 술을 따라 먹기라도 했지.

지금 눈앞에 있는 드워프는 무려 오크통을 통째로 들고 입안에 콸콸 쏟아붓고 있었다.

‘카론이 술을 따르는 것도 못 기다려줄 정도인가? 엄청나네.’

덕분에 카론은 한결 편해졌다.

필립의 술잔에만 따라주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필립은 그것이 자존심 상했는지 하얗게 센 눈썹을 들썩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옆의 드워프처럼 오크통을 통째로 들고 들이마시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괜히 호기를 부렸다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답도 없으니까.

‘벌써 일곱 통을 다 비워가는군. 배가 불러오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마실 수 있다!’

대신 필립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데에 더욱 힘을 쏟아부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으니 정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캬하~! 일곱 통 돌파!”

“쿠헉! 뭐라고?”

옆에서 들려오는 호쾌한 소리에 필립은 순간 사레가 들렸다.

벌써 일곱 통이나 비웠다니.

심지어 저 녀석. 얼굴엔 여유가 넘친다!

“왜 그러지? 설마 벌써 포기하는 건가?”

“누, 누가 포기를 한다고! 아직 더 마실 수 있네!”

“하하핫! 그렇게 나오셔야지.”

오로지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언제고, 드워프는 지금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신명 나게 웃어 재꼈다.

그런 그에게서 느껴지는 프로의 기운에 필립은 인정하고야 말았다.

‘이 녀석은 찐이다!’하고 말이다.

* * *

승부는 얼마 가지 않아 바로 판가름 났다.

일곱 통을 넘기고 반 정도를 더 먹고 나서 필립이 포기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끄윽. 더 이상 먹었다간 목구멍으로 술이 튀어나올 것 같구먼.”

“크흐흐.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좋은 자세지. 그럼 나는 더 달려볼까?”

하지만 드워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수 10도짜리 맥주로는 취하지도 않는지 그는 계속해서 노마스 맥주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그 결과.

“말도 안 돼. 오크통 열 통이라니. 어떻게 그만큼 마셨는데도 저렇게 멀쩡하지?”

드워프가 무려 열 통이나 마셨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걸 마시고도 조금밖에 부르지 않은 배는 더욱 놀라웠다.

마시면서 증발이라도 했나?

참으로 놀라운 광경에 모두들 입을 떡 벌리고 있자니, 입가의 거품을 닦아낸 드워프가 만족스레 웃었다.

“끄으… 잘 마셨다.”

“허 참. 그만큼 마셔놓고 취하지도 않나?”

“고작 이 정도 도수로 취하면 드워프가 아니지. 어쨌든 재밌는 승부였다.”

드워프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불쑥 내밀었다.

비록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긴 했지만, 딱히 원망스러운 것은 아니기에 필립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도 그럭저럭 재미있었네. 덕분에 내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쪽 이름은 뭔가?”

“응? 내 이름 말이야?”

“그래. 계속 그쪽 저쪽 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것도 그렇지…. 음. 내 이름은 툴란이다. 기억해 두라고.”

“좋아, 툴란. 나는 필립이라고 하네.”

필립과 툴란은 악수를 나누며 씨익 웃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라고.

그래도 함께 대결하는 동안 정이라도 들었는지 처음 옥신각신하며 싸우던 모습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혹여나 싸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엘레인은 원만하게 해결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축하해요. 다음에 노마스북을 새로 출간할 때는 툴란 씨의 이름으로 갱신되어 있을 거예요.”

“아암. 이걸로 드워프의 자존심은 지켰군그래.”

툴란은 가슴을 쭉 펴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자기애가 강한 드워프답게 자기 자신을 토닥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다들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있던 그때.

문득 툴란이 오크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말이야. 이 술 누가 만들었는지 아나?”

“네? 대회 내용은 알면서 그건 몰랐어요?”

요상한 물음에 엘레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머쓱한 듯 크흠. 헛기침하는 툴란.

“내가 본 신문은 그게 처음이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 맥주를 만든 인간이 누군가? 내가 아는 드워프 술집에 스카웃하고 싶은데. 내,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툴란의 말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술을 만든 자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드워프가 운영하는 술집에 스카웃하고 싶다니.

심지어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건 이 맥주를 만든 자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매우 존경하고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그 맥주를 만든 장본인은….

“그거 내가 만들었는데?”

“뭣이라?”

화들짝 놀라 묻는 툴란의 모습에 필립은 어깨를 들썩였다.

아무리 결과에 승복한다고 해도 약간 의기소침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법.

“뭐, 내가 술을 좀 잘 만들기는 하지. 으하핫!”

덕분에 필립은 다시금 의기양양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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