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리오스 라프탄 백작의 저택.
그곳으로 초대를 받은 의원들과 엘레인 일행은 길쭉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저택은 기사들의 낡은 갑옷처럼 그리 좋지 못한 상태였다.
백작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적게 분포한 사용인들도 의아했지만, 테이블 위의 사정 또한 좋지 못했다.
부드러운 빵과 수프. 몇 가지 고기 요리 등.
일반적인 평민들의 식탁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호화롭지만, 귀족 그것도 무려 백작가의 식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부실했다.
의외로 라프탄 백작은 가난한 걸까?
엘레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백작가의 내부를 살피고 있을 때.
의원들이 미심쩍은 얼굴로 속닥거렸다.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다니. 영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래도 자기 영지민을 살려줬다고 고맙기는 한가 보지. 아까 너희들도 봤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걸.”
“그렇기는 하지만…. 갑자기 잘해주니까 이상해서 그러죠.”
의원들은 당한 게 많은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가 요리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라프탄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네. 이걸 좀 찾느라 늦었네.”
라프탄 백작은 와인병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지은 그는 곧바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고르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요즘 대륙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와인이라네. 친우에게 선물로 받았는데, 구하기가 아주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군.”
“그 귀한 걸 우리에게 줘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자네들에게 주는 거 아닌가. 수많은 영지민들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데 이 정도 술쯤이야 아깝지 않네.”
이번에는 정말 큰일이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인지, 라프탄 백작은 의원들에 대한 감사함을 숨기지 않으며 옅게 웃었다.
“뭐… 그렇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라프탄 백작의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진 걸까?
비고르를 비롯한 의원들은 달콤한 향이 흘러나오는 와인잔을 건네받고 조용히 고급스러운 맛을 음미했다.
그런데.
“음? 이거 정말 맛있군요!”
“그러게요. 와인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으음. 달콤한 블루베리 향이 아주 감미로워요.”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라프탄 백작도 이 와인은 처음 마셔 보는 건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인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저런 반응들인 걸까?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엘레인은 와인병의 라벨을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이거 뭐야! 나 왜 저기에 있어?”
엘레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인병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라벨지에는 탐스러운 왕 블루베리 사이에서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하고 있는 엘레인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으응? 이제 보니 이거 밤톨 꼬마 얼굴이네?”
“비고르 의원님. 알고 보니 라넬 의원님의 조수는 아주 유명한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까 고급 와인에 얼굴이 붙어 있는 거겠지.”
수군수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엘레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인 엘레인은 카론의 옷깃을 잡아당겨 귀에 속삭였다.
“있잖아. 저거 아르헤가 만든 로열 블루베리 와인 맞지? 저기다가 내 허락도 없이 얼굴을 그려 넣으면 어떡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로열 블루베리 홍보도 되고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엘레인은 손바닥 위로 얼굴을 묻었다.
아까 들어보니 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같은데. 사방으로 얼굴이 알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이로써 신문이랑 와인. 두 가지 매개체로 내 얼굴이 알려지고 있는 건가.’
내가 일을 저질러서 신문에 한 번씩 얼굴이 실리는 것과 누군가가 꾸준히 광고를 하고 있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엘레인은 부끄러움을 날려버리기 위해, 작은 손바닥 위에 얼굴을 부비부비 비볐다.
그리고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고개를 든 엘레인은 뚫어져라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카르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아니. 음. …되게 잘 나왔네?”
“으아, 정말!”
얼마나 재밌는지 카르넬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거기서 더욱 부끄러움을 느낀 엘레인은 애꿎은 절인 야채만 난도질해댔다.
“크흠. 어쨌든 다들 우리 영지민들을 구해주어서 정말 고맙네. 자네들이 돕지 않았다면 많은 생명들이 바스러졌겠지.”
헛기침을 하여 목을 가다듬은 백작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덕분에 날뛰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던 엘레인은 야채 뒤적거리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하기를.
“영주님께선 정말 의원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건가요?”
“그러하네만…. 왜 그러는가?”
“정말 고마우면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해서요. 이왕이면 의원 마을에서 무늬만 경비원인 깡패들을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뭐? 하지만 그건….”
“왜 그러세요? 영지민을 보호하는 건 원래 영주님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요?”
쉴 틈 없이 팩트 공격을 해대는 엘레인 때문에 라프탄 백작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엘레인은 그를 정의신교 측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듯 가라앉은 엘레인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것일까.
머뭇거리며 입을 달싹이던 그는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미안하네. 참으로 부끄럽다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내겐 아들이 하나 있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팠는데 그 때문에 정의교단 신전에 몸을 의탁하고 있지. 아들이 온전하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없었네.”
한숨과 함께 터져 나오는 그의 울적한 말에 엘레인은 물론이고 의원들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그런 속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엘레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덧붙였다.
“그럼 재정이 좋지 못한 것도 아들의 치료비 때문에 그런 건가요?”
“그러하네. 악귀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신성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거든.”
하긴 신성력이 돈 잡아먹는 귀신이긴 하지.
가만히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던 엘레인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요. 아까 아들이 어릴 때부터 몸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자기 악귀 얘기는 왜 나오는 거예요?”
“왜냐니…. 그야 아들이 아픈 이유는 악귀가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대주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지.”
“저스티스 대주교가요?”
라프탄 백작은 멍하니 눈을 끔뻑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물론 악귀라는 것은 정말로 실재했고 악귀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존재했다.
당연히 놈들을 쫓는 데에는 신성력이 아주 제격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저스티스 대주교가 그런 말을 했다니. 갑자기 신뢰도가 뚝 떨어지는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그 화려했던 저택이 이렇게 될 정도면 상당히 오랫동안 아들 치료를 그 교단에 맡겼다는 건데, 대체 얼마나 강력한 악귀이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는 건지 모르겠어.”
엘레인이 의심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비고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정의신교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라프탄 백작은 괜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왜 그러는가? 뭐가 잘못된 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라프탄 백작의 모습에 엘레인과 비고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긴 자기 아들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어찌 진정할 수 있겠냐마는.
“괜찮으시다면 아들의 병세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최대한 증상을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으음… 알겠네.”
잠깐의 고민 끝에 라프탄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는 의원이 그렇게 대단한 자들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 식중독에 걸린 영지민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달리 먹었다.
적어도 저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판단하자고 말이다.
“우선 먼저 말해둘 것이 있네만, 아이가 처음부터 아팠던 것은 아니네. 다섯 살 무렵 이가 아파서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
“이가 아팠다라….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됐습니까?”
“잇몸에서 자주 피가 흐르기 시작했네. 혹여나 선천적으로 잇몸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해서 부드러운 음식을 위주로 주었지만, 그마저도 점차 거부를 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하루에 두 끼도 겨우 먹였네. 그때까지만 해도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하면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는 것이네.”
라프탄 백작의 말에 식탁 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백작의 아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한 사람. 비고르만큼은 평정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진단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부종이 생긴 거군요. 혹시 늘 피곤해하며 손가락으로 살을 눌렀을 때 살이 바로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알았나? 자네 말대로 딱 그런 증상을 보였네. 그때부터 우리는 사제들을 불러서 치료를 받게 했지. 문제는 그래도 몸이 나을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기만 했다는 것이네.”
라프탄 백작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나을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부모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속과 다르게 비고르를 포함한 의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증상이 그거랑 비슷하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내가 보기엔 악귀 같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인 것 같은데….”
라프탄 백작은 의원들끼리 숙덕거리는 말을 듣고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저스티스 대주교는 분명 악귀 때문이라고 했는데, 의원들은 아니라고 하니 그동안 정의신교를 향해 있던 믿음과 신뢰감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조용! 아직 진단은 끝나지 않았어. 영주님께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잖나.”
그때 비고르가 카리스마 넘치는 눈과 목소리로 소란스러움을 잠재웠다.
덕분에 복잡한 심경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라프탄은 조용히 비고르와 시선을 맞추었다.
“영주님. 자제님이 그동안 뭘 드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 것도 알아야 하는가?”
“물론입니다. 그걸 알아야 치료법을 확정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고르의 말에 라프탄은 잠시 침묵했다.
그가 보기엔 의원들의 치료법은 좀 이상했다.
붕대를 매고 약초를 찧어 환부에 바르는 방법은 들어봤지만, 치료법을 알기 위해 식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왕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 것. 끝까지 들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만약 저들의 말대로 악귀 때문이 아니라면.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의원들뿐이니까 말이다.
“…아들이 처음 이가 아파서 음식을 못 먹을 때에는 죽을 주로 먹였네.”
“무슨 죽을 먹였습니까?”
“흰쌀죽을 먹였네.”
“아이고. 하필이면 또 흰쌀죽을 먹였네.”
백작의 말에 의원들이 한탄했다.
비싸고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라프탄 백작의 입장에선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들은 비고르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렸다.
“제가 보기엔 영주님은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예. 이건 악귀가 달라붙어 생긴 증상 따위가 아닌, 단순한 영양실조입니다.”
“여, 영양실조…?”
라프탄 백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들과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 고작 영양실조 때문이라니.
그 믿을 수 없는 말에 백작은 개소리 집어치우라며 반박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크나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비고르는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병이 생긴 원인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차례대로 설명하자면 잇몸에서 피가 나는 건 괴혈병이라고 해서 채소를 못 먹어서 생기는 병입니다.”
“채소를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니? 우리 아들은 채소를 꾸준히 먹었네.”
“혹시 절인 채소를 먹은 건 아닌지요?”
“그, 그렇긴 한데….”
“절인 채소를 먹어 봤자 별다른 효능을 보지 못합니다. 채소를 절이면 거기에 있는 영양소가 상당수 파괴돼서 아드님에게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그럴 수가.
커다란 충격을 먹은 라프탄 백작은 허망한 얼굴로 식탁을 짚으며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그, 그럼 팔다리가 심하게 붓고 아파하는 건?”
“그건 각기병이라고, 고기를 못 먹어서 생기는 병입니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고기 같은 건 안 먹였을 것 같은데, 제 말이 맞지요?”
“그렇긴 하지만 대신 흰쌀죽을 줬는데….”
“안타깝지만 흰쌀죽에는 각기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영양소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이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고기를 어떻게 준단 말인가!”
아이의 몸을 망치는 데에 자기 자신이 일조했다는 것에 커다란 분노가 치민 것일까?
식탁을 쾅! 내리치며 외치는 백작의 모습에 엘레인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럼 블루베리를 대신 줬으면 됐을 텐데요.”
“으응? 그걸로 대체할 수 있냐?”
“그럼요. 블루베리를 먹으면 각기병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에도 좋고 심장에도 좋고 뼈에도 좋고, 그냥 다 좋아요. 특히 로열 블루베리를 먹으면 그 효과가 배나 된다구요.”
“과연…. 크기가 두 배이니 맛과 영양도 두 배라는 건가.”
비고르와 의원들은 엘레인의 박식한 두뇌에 감탄하며 새로운 지식에 열광했다.
카론 또한 ‘역시 황녀님이시다. 영지가 발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따위를 생각하며 엘레인의 깨알 광고에 깊이 감복했다.
그리고 카르넬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너 정말 박학다식하구나.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그렇고 의학에까지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어.”
카르넬은 엘레인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고작 열세 살 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와 드넓은 견해. 그리고 뛰어난 판단력까지.
보통 또래 귀족들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그 모습은 카르넬에게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반면, 엘레인은 자꾸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카르넬을 의아하게 바라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침대 밖으로 못 나오는 상태라면 지금은 훨씬 더 위독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린가? 거기서 더 나빠진다고?”
“사람이 햇볕을 쬐지 않으면 뼈도 약해지고 심장도 많이 안 좋아져요. 하물며 영주님 아들은 신전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겠죠.”
“그게 정말인가?”
엘레인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라프탄 백작이 비고르를 바라보며 확답을 요구했다.
그리고 천천히 끄덕여지는 그의 고개에, 심지어 20년간 연구한 자료까지 확실하게 있다는 말에, 백작은 더욱 절망했다.
“그럴 수가. 아이가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
스르륵. 다리에 힘이 빠져 제자리에 주저앉은 라프탄 백작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지금껏 믿어왔던 정의신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처참히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