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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229/417)

230화

황제의 집무실.

그곳에서 더글라스 베네딕트는 정보대신이 죽어라 일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정보를 차분히 읽어보았다.

“흠. 내 딸이 펀딩을 했다고?”

서류에는 최근 엘레인이 다과회에서 펀드를 진행한 내용과 그곳에 참석한 귀부인들의 명단.

그리고 엘레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던 쿠키의 재료와 만든 이의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앞서 신성제국에서 의원들을 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엘레인.

그에 혹시라도 황제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던 정보대신은 입꼬리를 들썩이고 있는 황제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냥. 내 딸이 나를 위해서 펀드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꺼워서 말이다.”

“예…?”

정보대신은 그건 또 뭔 개소리냐는 듯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니, 누가 봐도 아만다 부인과 아일론 자작을 위해서 일을 벌인 건데 갑자기 거기서 황제가 왜 나오는가 싶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그대답지 않게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딱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내 딸은 내가 진행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아닌데. 너님한테 목이 댕강 썰릴까 봐 구해주는 것 같은데.

아. 결과적으로 황제의 이미지를 위해 일을 한 거니, 황제를 생각해서 그들을 도와줬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정보대신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황제가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공사업의 전체적인 진행이 알고 싶군.”

“아, 예. 지도에 표시해놨습니다.”

정보대신은 가지고 있던 지도 수십여 장을 꺼내어 황제에게 건넸다.

제국의 영토가 넓은 만큼 둑을 쌓아야 할 곳 또한 넘쳐났기에 지도의 양 또한 엄청났다.

“흐음. 다들 예상했던 속도로 진행되고 있군.”

“예. 몇몇 곳은 마법사들까지 동원해서 빠르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합니다.”

“빠른 것도 좋지만 부실 공사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 및 감독하고 비가 내린 후에는 공사 현장을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야 한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각 책임자들에게 황명을 전달하겠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엘레인의 말대로 둑을 쌓으면 홍수로 인한 인명 피해도 대폭 감소하겠지.

물론 그 일을 진행하는 데에 많은 자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긴 했었다.

홍수가 그리 자주 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대부분의 지방 귀족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의견도 황제의 싸늘한 시선에 대부분 수그러들었다.

감히 황제 폐하의 의견에 반대할 만큼 커다란 간덩어리를 지닌 지방 귀족은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음…?”

지방 귀족들을 찌그러트렸던 과거를 회상하던 황제는 문득 지도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몇 개의 지도를 쏙쏙 뽑아내더니 돌연 책상 위에 그것을 일렬로 쫙 깔아놓기 시작했다.

“폐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말보다 직접 보는 게 더 빠르겠지. 이리 와서 그대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라.”

황제의 말에 정보대신은 더더욱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황제의 말에 따라 책상 위에 나열된 지도를 상세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며 말하기를.

“폐, 폐하. 설마 이건….”

“그래. 모두 서로 연결할 수 있다.”

정보대신은 입을 떡 벌렸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아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예쁘게 이어지는 하나의 물줄기.

필요한 부분 몇 개를 인위적으로 뚫어 물길을 내기만 하면 제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길이 생길 수 있다!

“이건 엄청나군요. 동부와 서부를 서로 이을 수 있다니요.”

황제는 입꼬리를 쓰윽 말아 올렸다.

제대로 된 도로가 한정되어 있고 여러 가지 장애물이 가득한 육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원하게 뻥 뚫린 물길을 이용하는 게 훨씬 빠른 건 당연했다.

만약 동부와 서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물길이 생긴다면 기존의 무역 체계를 단번에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말이다.

“설마 황녀님께선 이를 예측하고 일을 진행한 걸까요?”

“물론. 내 생각 역시 다르지 않다.”

황제의 말에 정보대신은 손끝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황녀님께서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일을 실행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나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줄이야!

이건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제국의 인재들이 만들어낸 이득을 모두 합쳐도 비교도 되지 않는, 제국의 역사를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허어. 이거 참. 신성제국의 몇몇 놈들이 배가 아파서 뒹굴 만한 일이로군요.”

“그러니까 말이다. 내 딸이 기껏 전쟁의 불씨를 꺼트렸는데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그래서 안 하실 겁니까…?”

“웃기는 소리. 내 딸이 준 선물을 내팽개치라는 소리인가?”

“하하하! 역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정보대신은 지난날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린 듯 통쾌하게 웃어 재꼈다.

스케일도 작아야 저들이 견제를 할 텐데 이렇게나 커지면 저들도 손 쓸 도리가 없다.

애초에 우리 제국에 물길을 내겠다는데 지들이 무슨 명분으로 그걸 막는단 말인가?

저들에겐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일이다! 그러니 유리온실 사업을 함께 하고 싶다!’와 같은 말처럼 인간의 도리를 걸고넘어질 만한 건덕지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 제재를 가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내정간섭으로, 저들이 우리에게 전쟁의 명분을 주게 되는 셈이다.

“정보대신. 내 딸이 보고 싶군.”

“흐흐. 아무렴요. 저 또한 당장 달려가서 황녀님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싶은 심정인데 폐하께서는 오죽하시겠습니까?”

“…뭐라? 뽀뽀를 하고 싶다고?”

“헉!”

너무 기분이 좋아 자기 심정을 그대로 내뱉은 정보대신은 흠칫 몸을 굳혔다.

언제 훈훈하게 웃었냐는 듯 싸늘하게 식어버린 눈빛.

그것을 정통으로 마주한 정보대신은 등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하며,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당장 황녀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시, 십 미터 멀리 떨어져서요!”

황제는 매우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다행이게도, 수십 년간 갈고 닦아온 임기응변이 그의 목숨을 살린 셈이다.

* * *

엘레인은 갑작스런 황제의 부름에 의아함을 느꼈다.

물론 그 내용을 전달한 정보대신만큼은 아니었지만.

“대체 왜 멀리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냥 가까이 와서 얘기하면 되는 일인데.”

아무리 황제가 자기 딸을 부르는 게 숨길 것 없는 일이라고 해도 동네방네 소문을 퍼트리듯 왁왁! 소리를 지른 건 좀 너무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여기까지 온 엘레인은 뜨끈한 뺨을 매만졌다.

“아빠? 나 불렀어요?”

어느새 집무실 앞까지 도착한 엘레인은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꽤나 놀라고 말았다.

“엥? 이게 다 뭐예요?”

엘레인은 멍하니 테이블 위에 있는 쿠키 산을 올려다보았다.

다과회 첫날 눈물을 훔치며 먹었던 쿠키와 매우 비슷해 보이는 과자가 저렇게나 잔뜩 준비돼 있다니.

보통은 달콤한 마카롱을 준비해주는 그였기에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오는 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은 것이다.

“약소하게나마 널 위해 준비한 거다.”

“아하? 고마워요!”

가끔 다른 디저트를 준비해주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평소보다 몇 배는 양이 많긴 하지만….

엘레인은 기쁘게 웃으며 황제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부르셨어요?”

확실히 이 쿠키. 다과회 첫날 먹었던 그 쿠키가 맞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옴뇸뇸 쿠키를 맛보던 엘레인은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황제는 보기만 해도 배부른 엘레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뽀얀 우유 한 컵을 내밀었다.

“앗. 감사해요.”

“무얼. 그리고 널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이것 때문이다.”

황제는 왼쪽 소파 위에 덮어두었던 지도 몇 장을 꺼내어 조금 전 정보대신에게 보여줬듯이 테이블 위에 일렬로 쭉 나열했다.

하지만 엘레인은 느닷없이 황제가 뭘 하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둑 건설이 진행 중인 장소를 표시한 지도네요. 그런데 그게 왜요?”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네가 숨겨놓은 선물을 찾아내었으니까.”

“???”

선물? 무슨 선물?

엘레인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황제는 엘레인이 계속해서 발뺌을 한다고 생각하며 입꼬리를 쓱 말아 올렸다.

“내가 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어, 그러니까 이 지도를 이어붙이면 제국의 동쪽과 서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거 말이죠?”

“그래. 그리고 이곳의 강줄기 또한 연결하면 제국을 관통하는 무역로가 열리지.”

“어?”

엘레인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그제야 그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새파란 길이 앞으로 제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아니, 잠깐만. 근데 난 여기까지 생각한 적 없는데?’

그냥 언제 터질지 모를 재앙을 대비하려고 했을 뿐.

이렇게 제국을 관통하는 길이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다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황새도 잡아들인 셈!

하지만 황제의 생각은 다른지, 피식거리며 멋들어지게 웃었다.

“너무 큰 선물을 받아서 내가 무얼 주어야 될지도 모르겠더군.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네 소원 한 가지를 무엇이든지 간에 들어주고자 한다.”

“네? 뭐든지요?”

“그래. 뭐든지. 신성제국에 놀러 가는 것도… 제대로 된 호위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허락해줄 수 있다.”

“헉!”

이건 황제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파격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딸아이를 끔찍하게 아끼는 황제라지만, 이번만큼은 엘레인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픈 마음이 이겨버린 것이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건 받아놓는 게 좋지!’

엘레인은 기쁜 마음으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비호와 황녀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절호의 찬스니까 말이다.

어쩌면 새로운 재앙이 터졌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으럼. 나중에 얘기해도 될까요?”

“그래.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아버지가 아니니까.”

“응! 고마워요. 우리 아빠가 정말 최고야!”

엘레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황제의 품에 폭 안겼다.

딸아이를 꼭 껴안은 황제의 입꼬리가 자꾸만 슬쩍 올라갔지만, 너른 품에 안긴 엘레인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빠. 새로이 운하를 파내려면 돈이 더 들 텐데 괜찮을까요?”

“나한테 넘치는 게 돈이다.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럼 다행인데…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말이지?”

황제의 품에서 꾸물꾸물 내려온 엘레인은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서쪽 끄트머리를 가리키는 지도로 거기엔 거대한 산들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거 말이에요. 운하를 파려면 필연적으로 여기를 지나가야 하는데 거대한 산을 어떻게 뚫죠?”

황제는 턱을 매만졌다.

우선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속국과 드워프 도시가 있다.

우회하면 가능하긴 하지만 작업 시간이 몇 배나 더 늘어날뿐더러, 길을 낼 수 있는 곳은 산등성이 아래쪽 한 군데뿐이다.

이렇게 됐을 때 그쪽 부근에 위치한 속국과 억지로 연결할 순 있지만, 그보다 위쪽에 위치해 있는 드워프 도시와의 연결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운하가 가져오는 경제적 가치가 크게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즉, 어떻게든 저 거대한 산을 넘어야만 하는 건데….

“흐음. 그거라면 내가 알아서 하마. 마법사를 이용하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면 확실히 가능하겠네요.”

엘레인은 헤실헤실 웃으며 쿠키를 냠! 베어 물었다.

투자 쪽은 트렌디아가 맡고 있고 운하는 황제가 확실하게 맡아주기로 했다.

투자 건 때문에 다과회에 참석할 귀부인들이 모두 땅을 보러 다니고 있어서 한동안 다과회 또한 열리지 않을 예정.

이런저런 일들에서 드디어 해방된 엘레인은 진심으로 행복한 얼굴을 했다.

‘다 끝났네. 의원들 병원 설립 건만 확인하면 되겠어.’

물론 건물 하나 짓는데 시간이 꽤 걸리니 지금 엘레인이 한 말은 그냥 논다는 말과 다름없다.

자! 그럼 앞으로 무얼 하면서 뒹굴까?

엘레인이 상상만 해도 행복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을 무렵.

“그러고 보니 엘레인. 네 앞으로 초대장이 하나 날아왔더군.”

“네? 초대장이요?”

히죽히죽 웃던 것을 멈춘 엘레인은 의아한 얼굴로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보낸 이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헛숨을 들이켰다.

난데없이 등장한 드워프 킹이라는 글자에 엘레인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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