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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247/417)

248화

드워프 도시에서 돌아온 엘레인은 가족의 다수결에 따라 한동안 황궁에 머물렀다.

워낙 큰일을 겪기도 했고 그런 엘레인을 플로스 영지로 보내면 또 일만 해댈 게 자명했기에.

드워프 도시에서 누리지 못한 일주일간의 휴가를 황궁에서 마저 누리라며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물론 제대로 쉴 틈도 없이 고생만 잔뜩 하고 돌아온 엘레인은 그들의 의견을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엘레인은 자신의 선택을 곧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꼬맹아! 수도에 끝내주는 고기 요리 전문점이 생겼는데 나랑 같이 갈래?”

“무슨 소리야. 엘레인은 나랑 같이 호수로 소풍 가야 되거든?”

“그럼, 내일 해. 오늘은 나랑 같이 고기 먹으러 가야 된다고.”

“싫어. 소풍은 오늘처럼 맑은 날에 가야 하는 거라고. 만약 내일 갔다가 비 오면 바보형이 책임질 거야?”

“아니, 그걸 왜 내가 책임져야 되는데? 그리고 나도 오늘이 아니면 스페셜 정식 못 먹거든?”

“스페셜 정식이 먹고 싶으면 황궁 요리사한테 부탁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형은 저리 좀 빠져.”

“이씨. 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냐!?”

“형이야말로 그 말 감당할 수 있겠어?”

파직. 파지직.

라네즈와 아르닐 사이에서 푸른빛 스파크가 튀는 듯하다.

엘레인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싸우는 쌍둥이 형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도 두 사람의 우애는 참으로 끈끈하구나.

그렇게 쓸데없는 감상을 하며 하품을 쩍 하고 있던 와중.

문득 문가에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 오르칼 오빠?”

“이런. 이른 아침부터 고생이 많구나.”

문가에 기대선 오르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저 조곤조곤하게 말을 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열심히 싸우던 라네즈와 아르닐의 입이 딱 다물렸다.

오르칼은 그 침묵이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엘레인. 괜찮으면 나에게 시간 좀 내주겠니?”

“큰형까지 이러기야!? 꼬맹이는 오늘 나랑….”

잔뜩 흥분한 채 쏘아붙이려던 라네즈는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서늘한 오르칼의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분노가 저절로 조절되었기 때문이다.

라네즈가 핼쑥한 얼굴로 깨갱하고 꼬리를 말자, 나른한 눈매를 곱게 접은 오르칼이 나름 선처해주겠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뭐, 시간이 남아돈다면 너희들도 따라와도 된다. 이번만큼은 특별히 허락해주지.”

“…….”

“…?”

파격적인 그의 제안에 라네즈와 아르닐은 서로를 바라보며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말하기를.

“뭐지. 해가 서쪽에서 뜬 건 아닌 것 같은데.”

“내 말이.”

창밖에 뜬 해의 위치를 확인한 쌍둥이 황자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첫째 형님을 바라보았다.

해가 서쪽에서 뜬 게 아니라면 저 인간이 저런 말을 하는 데엔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남 좋은 일을 시켜주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첫째 형님의 속마음에 불손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쌍둥이 형제.

오르칼은 그런 두 녀석에게 싱긋 웃어주며 칼같이 말했다.

“싫어? 싫음 말고.”

“아, 아니! 누가 안 간대?”

“맞아! 이제 막 따라간다고 말하려고 했어!”

“흐음. 뭐, 그런 거로 하지.”

라네즈와 아르닐은 혹여나 자기들을 떼 놓고 갈까 봐 재빨리 대답했다.

아무리 형님의 시커먼 속을 몰라 불안하다고 해도 엘레인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마다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쌍둥이 형제가 영 떨떠름한 얼굴로 동행에 찬성하고 있을 무렵.

오르칼의 시선이 이번에는 엘레인에게로 향했다.

“넌 어때?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야.”

“으음.”

오르칼의 물음에 엘레인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마음만 같아선 그냥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싶었으나….

잔뜩 기대 어린 시선을 마주한 순간부터 엘레인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괜찮지. 그래서 뭐 할 거야?”

엘레인의 물음에 오르칼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캉스 하러.”

* * *

오르칼을 따라 걸어간 엘레인은 황궁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바다?”

마치 귓가에 두둥—! 하고 웅장한 효과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태양 아래에 반짝이는 모래알과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거대한 파라솔.

그리고 그 아래에 놓인 선배드까지.

드넓은 바다 대신 넓은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황금빛 모래가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인지 오르칼이 안내한 곳은 작은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널 위해 준비한 피서지야.”

엘레인이 놀라서 묻자 오르칼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엘레인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날 위해서 이렇게 커다란 수영장을 만들었다고?”

“그럼.”

“설마 이거 진짜 해변의 모래야?”

“물론이지.”

오르칼의 여상스러운 대답에 엘레인은 입을 떡 벌렸다.

하루 만에 수영장을 파낸 것도 놀랄 만한 일이지만, 해변의 모래를 직접 공수해온 건 더욱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베네딕트 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 동쪽에 잇는 자유 도시 부근의 해변이니까.

마차로 이동하면 족히 두 달은 걸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하루 만에 구한 것일 테니 텔레포트를 익힌 유능한 마법사들을 열심히 갈아 넣었다는 말이 된다.

‘이건 뭐. 발이 푹푹 잠기는 걸 보니 최소 높이 5센티 정도는 되겠네.’

엘레인은 잘게 부수어진 조개껍데기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는 모래밭을 멍하니 바라봤다.

심지어 모래밭이 대충 40평 남짓한 걸 보면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을 닦달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무, 물론이지. 마치 진짜 바다에 온 것 같아.”

“다행이다.”

오르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엘레인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오르칼이 엘레인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간 많이 고생했잖아.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해서 우울해하기도 했고. 그래서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몰라.”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엘레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표정에 그렇게 티가 났나 싶으면서도 이런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챙겨주는 오르칼의 모습에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해변으로 이동하는 시간조차 줄여주고 싶었어. 비록 진짜 바다는 아니지만, 마음껏 즐겨줘.”

“오르칼 오빠….”

따스한 물결이 넘쳐흐른다.

결국, 범람하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엘레인은 오르칼의 커다란 손을 꽉 잡았다.

“정말 고마워! 역시 오르칼 오빠밖에 없어!”

“뭐엇!? 꼬맹아, 우리는!?”

“말도 안 돼. 우리의 엘레인이 음흉한 큰형님께 넘어가 버리다니….”

그때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라네즈와 아르닐이 울먹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오르칼이 특별히 따라와도 된다고 허락해준 건지.

그건 그에게 엘레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장의 한 수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나도 이런 거 준비할 수 있는데.”

“하룻밤 만에? 퍽이나 잘하겠군.”

“으익. 분하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서 물놀이나 해라. 엘레인과 나는 저기서 구경하고 있을 테니까.”

오르칼이 파라솔 아래, 선배드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아르닐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그러려고 우릴 데려온 거야?”

“그럼 무슨 이유로 너흴 데려온 줄 알았지?”

“으으. 얄미워 죽겠어!”

아르닐은 씩씩거리면서도 휘적휘적 몸을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몸을 푸는 그의 모습에 라네즈가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너 뭐하냐?”

“찬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운동해야 하는 거 몰라? 그냥 들어가면 심장에 안 좋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저런 말을 듣고도 들어간다고?”

“흥. 우리가 신나게 놀고 있으면 엘레인도 들어오겠지. 형은 엘레인이랑 물놀이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당연히 하고 싶지!”

라네즈가 대번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준비 운동을 했다.

오르칼의 손에 끌려 선배드에 앉은 엘레인은 신나게 웃통을 까고 놀기 시작하는 두 황자를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자. 선크림.”

“앗. 고마워.”

오르칼에게 선크림을 건네받은 엘레인은 팔다리와 얼굴에 꼼꼼히 발랐다.

그 덕분인지 온몸에서 상큼한 딸기향이 물씬 풍겼다.

“왠지 걸어 다니는 딸기가 된 것 같아….”

“살갗이 타는 것보단 나으니까. 입 심심하면 시원한 디저트 좀 먹을래?”

“설마 아이스크림!?”

“아쉽게도 아이스크림은 아니야.”

그리 말한 오르칼은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러자 저 멀리서 두 명의 시종이 낑낑대며 커다란 수레 하나를 끌고 왔다.

“이건… 수박이네?”

“맞아. 이걸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이야.”

“수박화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서쪽 끝에 속국이 하나 있는데 그곳의 왕실에선 여름의 더위를 날리기 위해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곤 한다고 해.”

서쪽 끝의 속국이라면 아마 그란디스 왕국을 말하는 걸 거다.

커다란 산 하나를 넘어가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는데 회귀 전에도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왠지 기대된다.”

“달콤하니까 네 입맛에 딱 맞을 거야.”

오르칼은 빙긋 웃으며 수박이 가득 담긴 수레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막 수박을 고르려던 순간.

멀리서 우렁찬 외침이 튀어나왔다.

“우와! 수박이다!”

첨벙! 소리와 함께 수영장에서 뛰쳐나온 라네즈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수레 앞으로 달려왔다.

쌍둥이 형의 급발진에 놀란 아르닐 또한 비치볼을 꼭 껴안은 채, 공중에 둥둥 떠서 뒤따라왔다.

“바보형, 단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과일은 좋아하는 편이야.”

라네즈는 별거 가지고 다 태클을 건다는 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콧등을 슥슥 문질렀다.

그에 아르닐이 입을 다물자 이번엔 오르칼이 태클을 걸었다.

“라네즈. 수박은 엄연히 채소다.”

“엥, 어째서?”

“쉽게 말해서 가지에 열매가 열리면 과일. 줄기와 줄기에 열리면 채소로 구분된다. 기본적인 상식이지.”

“그, 그런 거였어?”

라네즈는 꽤 당황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달콤한 건 전부 과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뜻하지 않게 여동생 앞에서 망신을 당한 라네즈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엘레인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오르칼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그거 나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빠는 작물에 대해서 되게 잘 알고 있네?”

“그야 우리 엘레인이 가지는 주요 관심사니까. 이 정도는 일찍이 공부해놨지.”

그러고 보니 플로스 영지의 공원에 핀 반딧불이 꽃도 적색 마탑주와 함께 개발한 품종이라고 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엘레인은 여동생의 칭찬이 기껍다는 듯 양 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오르칼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동생의 주요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작물에 관한 공부를 한 것도 모자라 새로운 꽃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다니.

새삼 그의 재능과 노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진 것이다.

“그럼, 어떤 수박이 맛 좋은 수박인지도 알겠네?”

“그야 물론이지.”

아르닐의 도발에 오르칼은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우선 밑동이 흰 부분은 맛이 없다. 왜냐하면, 덜 익었거든. 반대로 밑동이 오렌지색인 부분은 잘 익어서 아주 달지.”

“흐음. 딱히 흰색이라던가 오렌지색이 있는 수박은 없는데?”

마법으로 모든 수박을 동동 띄워본 아르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록색과 연두색의 향연만이 있을 뿐.

오르칼이 말한 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 걸 확인해 보면 된다. 긁힌 모양이 큰 걸 찾으면 되지.”

“참고로 꼭지가 파릇파릇한 녹색이면 덜 익은 거야. 보통 사람들은 마른 꼭지가 달려 있으면 상한 건 줄 아는데 오히려 그게 잘 익은 수박이라고 볼 수 있어.”

“거참. 잘 익은 수박 하나 고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어?”

오르칼의 설명에 엘레인까지 가세하자 수박을 내려놓은 아르닐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수박을 찾기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아르닐의 발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건 라네즈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답답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귀찮게 굳이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 있어?”

“그럼 어떻게 하는데?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그리 말한 라네즈는 자신만만하게 수박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손바닥을 펼쳐서 수박의 매끈한 몸통을 찰싹 때리는 게 아닌가?

“오, 오빠? 뭐 하는 거야?”

“바보형…. 설마 고문이라도 하는 거야?”

“고문은 무슨. 어디 보자…. 읏차. 내가 보기엔 이게 맛있는 수박인 것 같아.”

찰싹. 찰싹. 수박을 때리던 라네즈가 상대적으로 청명하고 맑은소리가 나는 수박을 집어 들었다.

모두가 불신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그때.

라네즈가 손날로 수박을 반으로 쩍 가르자 정말로 달콤한 향기가 그득한 붉은 빛 과육이 네 사람을 반겼다.

“보기만 해선 알 수 없지. 하나씩 먹어보자.”

“자르는 건 나에게 맡겨.”

아르닐은 반으로 쪼개진 수박을 동동 띄워서 바람의 칼날로 수박을 예쁘게 썰었다.

그렇게 수박 한 조각씩을 나눠 받은 네 사람은 동시에 영롱한 과육을 크게 베어 물었다.

“오! 진짜 달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오오…. 바보 형 오늘따라 달라 보이네.”

“후훗. 내가 이 정도야.”

라네즈가 어깨산을 들썩거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남동생에게 관대하지 않은 오르칼마저도 놀란 눈을 하고 있으니 괜히 더 우쭐거리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잘 익은 수박을 얻었으니 이제 바로 화채를 만들면 되겠군.”

“화채? 그게 뭔데?”

“그런 게 있다. 아르닐, 너는 수박을 좀 더 잘게 깍둑썰기로 만들어라.”

“그 정도야 가뿐하지.”

주문을 받은 아르닐은 가볍게 수박을 조각냈다.

그리고는 시종이 세팅해 놓은 네 개의 그릇에 먹기 좋게 담자, 그 위로 오르칼이 우유와 연유. 마지막으로 플로스 영지산 로열 블루베리를 골고루 뿌렸다.

“자. 이걸로 완성이다.”

“뭐야. 조리법은 엄청 간단하네?”

“간단하지만 고급 디저트 부럽지 않지. 자. 다들 먹어보도록.”

“잘 먹겠습니다!”

화채 그릇과 스푼을 하나씩 건네받은 엘레인과 쌍둥이 형제는 내용물을 잘 섞은 뒤 한입 크게 떠서 먹었다.

그리고 수박화채를 입에 넣자마자 두 눈을 번쩍 뜨는 세 사람.

“우와아! 이거 엄청 맛있다!”

“그러게? 연유 조금만 뿌려달라고 하길 잘했다.”

“흐음. 뭐, 상당히 준수한 맛이네.”

차례대로 맛 평가를 한 엘레인과 라네즈, 아르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우니 더위가 한결 가시는 듯했다.

왠지 여름이 되면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맛이랄까?

“있잖아, 오르칼 오빠. 서부엔 이런 맛있는 게 널려 있는 거야?”

“그건 아닐 거야. 수박을 재배하는 곳도 한정돼 있는 데다가 다른 달콤한 디저트들은 거의 맛보지 못하는 실정이거든.”

“엥? 어째서?”

“그란디스 왕국에는 작물을 재배할 순 있어도 설탕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덕분에 설탕 한 포대의 값이 금 한 덩이의 값과 같지.”

“엄청 비싸네….”

“어쩔 수 없지. 그나마 근접해 있는 도시라고 해 봤자 드워프 도시뿐이고 베네딕트 제국은 거대한 산맥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으니까.”

오르칼의 말에 엘레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아쉬운 사람이 웃돈을 더 주고 물건을 사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그 문제도 이제 조만간이겠네.”

“맞아. 우리 엘레인 덕분에 거대한 운하가 생길 테니까 말이야.”

황제가 말하길 그란디스 왕국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 하나를 조만간 날려버릴 예정이란다.

운하를 만들어 서쪽까지 연결하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우리에겐 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인력이 충분히 있으니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만큼 마법사들이 고생하겠지만….”

오르칼은 수박화채를 맛있게 냠. 먹으며 말했다.

“한 일주일 정도만 죽어라 굴리면 깔끔하게 산을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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