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으악! 그렇게 막 갖다가 박아버리면 어떡해? 사람들 있는 곳까지 날아갔잖아!”
“그, 그치만 놈을 해치우려면 그만큼은 돼야 할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식하게 멀리 날려버리면 어떡해? 할 거면 제대로 힘 조절을 했어야지!”
“미안….”
라네즈는 바로 쭈굴거리며 잔뜩 화가 난 동생에게 사과했다.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점이 되어 사라질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아르닐은 왁왁! 소리를 지르던 것을 멈추고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사과 대상이 틀렸다는 말을 덧붙이려던 그때.
“천만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군요.”
벤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모비 그란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렇게 멀리 있는데 그런 게 확인 가능합니까?”
“대마법사쯤 되면 마법으로 불가능한 건 거의 없으니까요. 레톤 영지의 성벽이 많이 무너지긴 했지만,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나 건물이 거의 없어서 제때 피한 모양입니다.”
“으으. 다행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죄 없는 사람들을 다치게 할 뻔한 라네즈가 긴장이 풀린 듯 흐느적거렸다.
거대한 길이를 자랑하던 검은 이미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
아르닐은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안도의 숨을 내뱉는 쌍둥이 형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휴. 누가 바보 형 아니랄까 봐.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그만두라고. 만약 진짜로 사람이 죽어 나갔으면 우리 엘레인 얼굴은 어떻게 보려고 그랬어?”
“아, 알겠어. 네 말대로 검을 키우는 건 그만둘게.”
아르닐의 잔소리에 라네즈는 우울한 얼굴로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한 번 큰 실수를 하고 나서인지 평소 라네즈답지 않게 고분고분. 말도 참 잘 들었다.
그러나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이 오히려 못 미더웠던 것일까?
아르닐이 의심의 눈초리로 라네즈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뗀 황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맷집이 상당히 강한 놈이군.”
느닷없는 말이었으나,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멀쩡한 얼굴로 이쪽으로 날아온 검은 용은 저를 날린 라네즈를 향해 크게 포효했다.
“우아악! 얌마! 이게 무슨 짓이야!”
“조심하십시오. 저놈, 평범한 괴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날아오는 꼬리를 간신히 피한 라네즈가 비명을 지르자 곁에 있던 벤서가 경고해주었다.
하긴 아무리 뭉툭한 몽둥이 모양으로 만들었다지만, 무려 검기를 뽑아낸 검이었다.
그걸로 아주 강하게 내리쳤었는데도 저렇게 멀쩡한 걸 보면 확실히 범상치 않은 놈인 것 같다.
“그나저나 저 녀석,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요…?”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간 모비 그란테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그래도 화가 나 죽겠는데 라네즈가 요리조리 잘도 공격을 피해 다니니 더욱 열이 뻗친 걸까?
과연 괴물이 제 성질에 못 이겨서 아무 곳에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쿠쿵— 콰아앙—!
“크윽. 엄청난 힘이로구나.”
“통나무 정도는 쉽게 파괴할 수 있는 힘인 건가.”
녀석이 난동을 피우자 딜런의 명령으로 세운 목책은 물론이고 국경 지대의 숲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고작 몸부림치듯 몇 번 펄떡거렸을 뿐인데도 이 정도 결과물이라니.
허리가 꺾이어 박살이 난 나무 잔해와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던 위블렌과 벤서는 가벼운 윈드 마법을 사용해 보이지 않는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자 왜인지 모르게 비웃고 있는 듯한 괴물의 거대한 낯짝이 아래쪽을 굽어보고 있는 게 보였다.
“건방진 놈. 고개가 빳빳하군.”
그때였다.
황제의 검에 서슬 퍼런 검강이 맺힌 것은.
그 난리통에서도 같은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고고히 서 있던 황제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주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크륵?
나긋나긋하면서도 깔끔한 동작.
그저 사선으로 허공을 베었을 뿐인데 하늘 위에 떠 있던 구름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괴물의 몸통도 마찬가지였다.
-케에에엑!
반으로 잘린 녀석의 하체가 이미 초토화된 지면 아래로 추락했다.
그 모습에 다들 감탄하며 환호하려던 그때.
지면에 처박히려던 절단된 몸이 공중에 우뚝 멈추더니 다시금 녀석의 상체로 날아가 붙어버렸다.
“흠. 역시 통하지 않는 건가.”
황제는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광경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괴물의 믿을 수 없는 재생력에 기가 질려버렸다.
“미친. 저게 뭐야. 아무리 물이라지만 재생력이 너무 넘사벽인 거 아니야?”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저런 놈을 대체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라네즈의 공격도 그렇고 소드 마스터의 공격마저 아예 안 통하면 말이 달라진다.
라네즈와 아르닐이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식으로 쳐다보자, 수복을 끝낸 괴물의 꼬리가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황제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카강—!
“제법 몸을 강화시킬 줄도 알고.”
고작 썩은 물이 응집되어 있을 뿐인데 검과 물이 아니라 쇠붙이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리 힘이 상당히 강했는지 우뚝 서 있던 황제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자 아르닐이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가볍게 검으로 꼬리를 쳐낸 황제가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나 괜찮다는 그의 말과 다르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곤란하게 됐군. 아무리 살펴봐도 놈을 파괴할 수 있는 핵이 보이지 않아.”
“그럼 저놈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거예요?”
아르닐의 물음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검을 맞대는 짧은 순간 동안 놈의 몸을 살폈는데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글쎄. 하지만 이것만은 알 것 같더군. 저 녀석. 정령인 것 같다.”
“정령? 저런 괴물같이 생긴 놈이요?”
황제는 검에 묻은 썩은 물을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에게선 엘레인의 곁에 붙어 다니는 물의 정령 운디네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운디네와 다르게 저 괴물은 불순한 기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어쨌든 정령 특유의 기운은 이쪽이 더 강했다.
“정령을 상대해 본 적은 없는데…. 보통, 정령은 어떻게 소멸시키지?”
황제는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자꾸만 날아오는 꼬리를 가볍게 쳐내거나 수십 갈래로 쪼개기도 하면서.
그렇게 놈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와중.
발톱을 내리찍던 괴물의 몸에 뜨거운 화염구가 작렬하며 녀석이 몸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흐음? 불은 통하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불덩어리를 날린 장본인인 벤서가 척척 걸어오며 오른손 위로 새로운 불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썩은 물로 이루어진 괴물의 비늘이 그에 반응하듯 파르르 떨리며 새로이 만들어진 불덩어리를 잔뜩 경계했다.
“아무래도 놈을 이루고 있는 근원은 저 검은 물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저것만 없애버린다면 녀석의 존재도 함께 소멸되겠지요.”
벤서는 씨익 웃으며 머리 위와 왼쪽 손 위에도 커다란 불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총 세 개의 불덩어리를 소환해낸 벤서는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여기서부터는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흐음. 부탁하지.”
황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아쉽게도 제 손으로 녀석을 없앨 순 없지만, 그의 말대로 물을 모두 증발시켜서 놈이 소멸되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나도 돕겠네.”
“스승님, 저도요!”
벤서가 불덩어리를 들고 괴물에게 조준하고 있던 와중. 위블렌과 아르닐이 함께 다가왔다.
비록 위블렌은 물 속성 마법을 즐겨 쓴다지만, 불 원소 마법을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 천재 마법사 아르닐까지 더해지면 저 거대한 몸뚱이를 충분히 증발시키기에 충분할 터.
벤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으로 떨어져서 공간을 확보한 아르닐과 위블렌의 머리 위에도 커다란 화염 덩어리들이 생성되었다.
이왕이면 맞는 면적이 넓으면 좋으니 모두 동그란 구체를 형성한 세 명의 마법사.
그들은 따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적절한 곳에서 괴물을 압박하며 소환해낸 불덩어리들을 날려 보냈다.
-키에에엑!
괴물의 몸이 바짝 말려 들어간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상당한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괴물의 몸이 밟힌 지렁이처럼 이리저리 비틀렸다.
“오! 성공인가?”
“확실히 아까보다 몸이 확 줄어들긴 했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순간 아르닐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땅으로 추락했다.
“3황자 저하!”
화들짝 놀란 벤서와 위블렌이 달려왔다.
아마 그들이 아르닐의 몸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극심한 갈증을 느끼며 온몸이 축축 처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갑자기 몸이 왜 이러지? 아직 마나는 충분한데.”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오고 있어. 설마 저 녀석이 저지른 짓인가?”
비틀거리며 지면 위에 안착한 마탑주들은 당혹스런 얼굴로 하늘 위를 쳐다보았다.
한데 고개를 들어 올린 그들을 반긴 건 더욱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줄어든 몸이 회복되고 있어?”
“이건… 그렇군. 아무래도 저놈은 공기 중에 있는 수분도 모두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말 된다.
위블렌은 믿기 어려워하는 벤서를 바라보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입이 바싹 마르고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보면 이미 저놈은 우리들의 몸에 있는 수분을 어느 정도 빼앗아 간 것이 틀림없다.
“지금 3황자 저하의 몸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완전히 탈수 상태에 빠졌어.”
“이런….”
아르닐이 갑자기 기절한 건 괴물에게 가장 많은 수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위블렌은 바짝 말라 갈라진 그의 입술 위로 깨끗한 물을 떨어트리며 아르닐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괴물은 그들을 기다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캬아아악!
“쯧.”
결국, 다시 황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괴물을 상대하며 아르닐의 상태를 계속해서 살폈다.
“아이는. 괜찮은 건가?”
“예. 갑자기 많은 양의 수분을 빼앗겨서 기절했을 뿐. 곧 회복될 겁니다.”
“그건 놈이 가진 힘인 건가? 그런데 왜 지금은 내 몸의 수분을 빼앗지 않는 거지?”
“그 힘에도 한계가 있는 거겠지요.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건 몸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만 주위의 수분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불을 이용해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로군.”
불로 증발시키는 것보다 녀석이 주변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게 더욱 빠를 것이다.
황제는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괴물이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해냈다.
다행히 아르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끄윽. 스승님…?”
“후. 정신이 드십니까?”
“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아르닐의 질문에 위블렌은 조금 전 벤서와 황제에게 이야기했던 것들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모두 들은 아르닐은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듯이 괴물을 쳐다보며 몸을 일으켰다.
벤서가 기력 회복에 좋은 약물도 흘려 넣어주었기에 몸은 아무런 무리 없이 잘 움직여주었다.
“아니, 검도 안 돼. 마법으로도 안 돼. 그럼 대체 어떻게 저놈을 처리하라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막막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아르닐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놈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황제는 그런 아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위블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블렌. 자네라면 방법을 알고 있겠지?”
황제의 말에 아르닐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러고 보니 위블렌은 정령에 대해 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탓에 엘레인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기까지 했으니 분명 무슨 방법을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위블렌의 입에서 나온 건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전에 시도했던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네? 그럼 저놈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거예요?”
위블렌은 침묵했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 방법 또한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확답을 드릴 수 없다.
위블렌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자 아르닐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저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정령이기에 우리가 손도 못 쓰는 거예요?”
“그냥 정령이 아닙니다. 무려 고대의 정령입니다.”
“고대의 정령…? 그냥 정령이랑 다른 거예요?”
“예. 고대의 정령은 하나같이 모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저 정령은 최상급 정령 수준인 것 같습니다. 정령사와 계약을 맺은 정령이면 정령사를 해치우면 될 일이지만, 저렇게 자연계에서 날뛰는 악한 정령은 오로지 ‘정화’의 힘으로만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정화? 그건 물의 정령들의 지니고 있는 힘이 아닌가.”
황제가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묻자 위블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후.
그들은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엘레인을 데려오라는 건가?”
“절대 안 돼요! 이렇게 위험한 곳에 엘레인을 어떻게 데려오라는 거예요?”
위블렌의 말뜻을 알아차린 황제와 아르닐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라네즈와 황실 기사들까지 살벌한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니 온몸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곧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캬아악!
하필이면 살기에 반응한 또 다른 존재.
고대의 정령이 크게 포효하며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슨 놈의 힘이….”
“모두 방어 태세를 갖추어라!”
눈치 빠른 파르망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로 무수히 많은 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저건 점이 아니었다.
끝이 뾰족한 것이 무언가를 꿰뚫기에 최적화된 모양의 작살들.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그것들은 지면을 딛고 서 있는 인간들을 향해 겨눠졌다.
“쉴드!”
슈슈슈슉—!
위블렌이 두꺼운 쉴드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수많은 작살들이 지면 위로 쏟아졌다.
하나하나 가진 무게가 상당한지 내리꽂는 족족 땅거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무차별 폭격이 지난 후.
회피 또는 방패를 세우는 것으로 몸을 온전히 지킨 기사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크륵?
“미친….”
그 엄청난 공격을 쏟아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생성된 작살들이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하지만 방금 공격으로 이미 상당한 힘을 소진한 상태.
이번에야말로 많은 생명이 사그라질 것이라 여기며 후들후들 떨리는 손을 움직여 방패를 든 순간.
-무우!
상황에 맞지 않는 깜찍한 목소리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있던 후작가 기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바로 정수리 위까지 다가온 검은 작살이 파르르 떨리며 멈춰 있는 모습을.
게다가.
“휴우.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후두둑. 힘없이 비가 되어 떨어지는 작살을 뒤로하며.
방긋 웃고 있는 한 명의 구세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