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선물은 잘 도착했으려나?”
엘레인은 신성제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마차가 떠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을 적극 사용하면 지금쯤 신성제국에 도착해야 옳았다.
“근데 잘 도착해도 문제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낸 게 과연 잘한 짓인지 의문이 들었다.
신성제국과 베네딕트 제국은 동맹 관계에 있지만, 나름 경쟁 국가이므로 서로 견제하기 바빴다.
앞서 카르넬과의 거래를 통해 유리 온실 사업과 인쇄기 도입은 순조로웠으나 그 이외의 것들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완공을 마친 운하와 그란디스 왕국의 완벽한 계획도시 수립이 그러했고.
거기에 더불어 은연중에 배척하던 의료 기술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더욱 일취월장하였다.
하물며 영웅 엘레인이 있는 베네딕트 제국과 드워프들 간의 관계는 오늘날에 이르러 세상에 둘도 없는 친우와 같은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그동안 베네딕트 제국이 이룩한 것들은 신성제국이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즉, 신성제국 입장에선 베네딕트 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했지, 절대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엘프들과 접촉했다는 사실도 귀에 들어갔겠지.’
이쯤 되면 신성제국은 단순한 견제를 넘어서 베네딕트 제국의 성장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베네딕트 제국의 황녀가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냈으니. 베네딕트 제국을 경계해야 할 황태자에게 온갖 비난이 날아와 꽂힐지도 모른다.
“너무 경솔했어. 차라리 비밀스럽게 보냈어야 했는데….”
아니. 만약 그랬다가 들키게 되면 더욱 의견이 분분해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적국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오명이 씌워진다거나….
“잠깐. 이건 너무 나갔나?”
엘레인은 생각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에 미간을 짚었다.
황태자와 비즈니스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건 모두에게 알려진 일이니, 앞서 말한 것처럼 큰일 날 오해를 받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위의 시선이 고깝지 않을 것은 분명했기에 엘레인은 성급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겠어.”
기나긴 고민 끝에 그리 결정을 내린 엘레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뾰족한 귀를 지닌 엘프가 엘레인과 눈을 마주치고 짧게 목례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출발하면 되나요?”
“아직 이엘로 님께서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황제와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입니다.”
“아, 그렇군요.”
엘레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앞의 엘프. 레무스를 바라보았다.
이곳을 찾아온 엘프들은 한동안 황궁에 머물며 그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정보를 취득했는데 눈앞의 엘프가 특히 열정적으로 정보를 수집했었다.
‘처음에는 인간들이 주는 정보 따윌 어떻게 믿냐며 제일 반대했던 엘프였는데 말이야.’
참고로 레무스는 회귀 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 엘프였다.
다른 엘프들 역시 인간을 매우 혐오했는데 레무스는 특히 더 혐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일하게 엘프들이 인정한 엘레인조차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으니 그의 인간 혐오가 얼마나 대단한지 단번에 알 수 있으리라.
그런 그가 이엘로의 말 한마디에 고집을 꺾고 인간이 준 정보를 하나둘씩 읽어 보더니, 지금은 가장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뭐, 그만큼 정보대신이 준 정보들이 아주 알차다는 거니까.’
참고로 황제는 엘프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그냥 제공해주지는 않았다.
그들도 황제에게 엘프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했고, 고대 정령이 봉인된 정확한 위치와 봉인 시 유지되는 기간.
추가로 각 봉인된 정령들의 특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이렇듯 베네딕트 제국과 엘프들이 서로 교류하는 건 좋은 일이다.
회귀 전 그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로 좋은 관계를 구축했을지도 모르지.
‘문제는 그 일이 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건데….’
엘레인은 골치 아프다는 듯 끙 소리를 내었다.
처음에는 그냥 엘프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기만 하면 알아서 정령들을 잘 처리하고 다시 엘프의 숲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엘프들이 황궁에 묵는 동안 엘레인의 이런 1차적인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생각보다 엘프들이 인간들에게 갖는 혐오의 강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운하를 팠다고 기겁하고 그 과정에서 산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고 욕했고, 유리 온실을 통해 자연을 혹사시킨다며 혐오했었지.’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자연을 혹사시킨다는 건 대체 뭔 말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엘프들은 자연의 이치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무언가를 발견하면 바로 인간을 까고 봤다.
‘대부분 내가 한 일들이라서 더 미안했지.’
그 탓에, 괜히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욕을 들어먹는 상황이 연출됐다.
뭐, 그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엘프들은 인간들을 여전히 혐오했다.
황제가 제국 내부를 편하게 다녀도 된다고 허락했어도 ‘너희들이 살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라고 빈정거릴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내가 3재앙을 소멸시켰다고는 하지만, 엘프들 입장에선 확인이 필수고 제국과 아스터 왕국 내에는 봉인된 다른 고대 정령들도 몇 마리 있다고 하니까 말이야.’
아무리 강인한 엘레인이라고 해도 고대 정령이 봉인된 장소의 위치를 모두 알아낼 순 없다.
때문에 엘프들의 도움은 필수불가결이고 엘프들은 그러한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즉, 고대 정령들을 모두 재봉인할 때까지 엘프들과의 협력은 피할 수 없다는 건데….
‘인간들을 혐오하는 엘프이니 언제가 됐든 인간들과의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어.’
엘레인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하게 변했다.
그렇게 되면 눈곱만큼이지만, 애써 올려놓았던 호감도가 단번에 바닥을 찍을 것이고 엘프들과의 관계는 그대로 파탄.
결국,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면서 회귀 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인 엘프의 대습격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당장의 평화는 해변가에 세워진 모래성과도 같다.
파도가 치면 언제든 쓸려나갈 그런 것 말이다.
회귀 전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땐 난리도 아니었지.’
엘레인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회귀 전에는 3재앙도 건재해서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다.
여차저차해서 그 지옥도를 이겨내긴 했지만, 재앙이 할퀴고 간 흔적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10년이 흘러도 그 여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엘프들과의 전쟁까지 벌어지다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는지 대충 예상이 갈 거다.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리고 특히 주신교단 사람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었지….’
참고로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한창 전쟁 중일 때 엘레인은 거대한 수해를 막다가 죽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지금 엘레인이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 엘프들의 인간 혐오증을 치료해야지! 아니면 최소한 완화시키거나 말이야.’
일명 ‘다 같이 친하게 지내요’ 프로젝트가 되시겠다.
회귀 전 정확히 무슨 이유로 전쟁이 발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 말살을 외치며 무기를 빼어 든 엘프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으면 죽기 살기로 인간과의 화합을 도모해야 했다.
“그러려면 역시 인간들의 좋은 점을 어필하는 게 좋을 텐데….”
엘레인은 어떻게 해야 단기간에 엘프들의 인간 혐오증을 고칠 수 있을지 깊이 고심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 실마리를 찾아냈을 무렵.
“황녀님.”
“아. 이엘로. 이야기는 잘 끝냈어요?”
“예. 황제가 황녀님의 안위를 무척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
이엘로는 뒤늦게 도착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죄송스런 낯으로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낯선 이방인인 엘프들과 엘레인이 가까이에 붙어 있는 게 좀 불안한 듯했지만, 엘레인만큼 엘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황제의 걱정을 받다니. 나도 참 불효녀라니까.’
엘레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엘로에게 환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럼 출발할까요?”
“네.”
이엘로가 마주 웃으며 그리 답했다.
***
이엘로는 3재앙을 물리쳐준 보답으로 플로스 영주성의 창고 결계를 보수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결계를 보수하는 날.
황궁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플로스 영지에 도착한 엘프들은 주변 광경을 눈에 담는 순간 떡하니 입을 벌렸다.
“이, 이곳이 바로 플로스 영지입니까?”
“네. 제가 다스리는 영지에요.”
“세상에.”
이엘로는 평소의 차가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넋을 놓았다.
마치 천국을 처음 목도한 사람처럼.
옆에 있던 엘프들 또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럴 수가. 사방에서 달콤한 향기가 진동을 하는군요.”
“아아. 엘프의 숲만큼 생명력과 활기가 넘쳐나는 곳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인간들이 사는 공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요?”
엘프들은 하나같이 플로스 영지에 홀린 듯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엘로와 레무스조차도 감탄 섞인 얼굴을 하고 있으니, 엘프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느끼고 있는지 알 만했다.
‘후후훗. 역시 내 예상대로야.’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엘프들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엘레인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곳 플로스 영지는 엘프 왕의 축복을 받은 장소.
거기에 더해 엘레인의 수경 재배를 시작으로 공물을 노리는 정령들이 플로스 영지로 대거 유입되니, 정령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엘프 숲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엘프들이 환장하는 달콤한 과일과 디저트가 널려 있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
아무리 인간들을 혐오한다지만, 플로스 영지 자체를 싫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플로스 영지를 이런 모습으로 일구는 데에 큰 일조를 한 영지민들을 쉬이 혐오할 순 없을 테지.
‘이렇게 좋아하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인간들의 좋은 면모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엘레인은 생각만으로도 흡족한 상황을 그리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엘프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이면 확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하면 더 좋을 터.
“자자. 다들 우선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여러분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놓으라고 전달해 놨거든요.”
“황녀님….”
과연, 이엘로가 가장 먼저 감동의 물결이 요동치는 눈으로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별이 쏟아지는 듯 반짝이는 시선을 보내는 엘프들을 이끌며.
엘레인은 플로스 영주성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그래. 식사는 다 준비되어 있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집사는 말끝을 흐리며 사용인들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이동하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빛내며 말하기를.
“설마 엘프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성에서 지낼 거니까 신경 써야 할 거야. 내가 보내준 주의할 점들은 모두 숙지하고 있는 거겠지?”
“예. 엘프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이고 그들이 싫어하는 행위나 말은 삼가도록 단단히 주의를 시켰습니다.”
엘프들은 마땅한 이유 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마땅한 이유가 있어도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 또한 혐오 대상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운하와 산에 구멍을 뚫어놓은 일들을 나열할 수 있겠지.
그리고 싫어하는 말은 단연코 한 가지다.
“절대 ‘귀쟁이’라는 말은 꺼내지 마. 귀가 크다거나 얼굴이 예쁘다는 말도 금지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드워프들이 가끔 엘프들을 귀쟁이라며 놀리곤 했단다.
그래서 귀가 크다거나 귀쟁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쳐도 얼굴이 예쁘다는 말은 왜 싫어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지만 말이야.’
이상하게 칭찬임에도 불구한 말을 들으면 엘프들은 무진장 화를 낸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열심히 올려 두었던 호감도가 바로 바닥을 칠 정도로 그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나름 콤플렉스인가? 예를 들어 마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거나.’
그러면 자존심이 좀 상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쁘다는 말 한마디 했다고 붕어가 될 정도로 얼굴만 두들겨 팼던 건 좀 심했어.’
참고로 그건 회귀 전 이엘로가 한 짓이다.
엘레인은 괜스레 오한이 드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엘프들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