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0화 (339/417)

340화

황제의 낯선 행동에 엘레인이 충격받고 있을 무렵.

정작 황제는 다른 쪽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소문에 대해 알아본 결과.

실제로 신성제국에서 황태자가 엘레인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은밀하게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엘레인을 위해서라고, 당장 신성제국 황태자와의 만남을 중지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정작 그에 대해 말을 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들 멍하니 있지 말고 얼른 식사나 하자꾸나. 엘레인 너는 그것으로 충분하겠느냐? 하루 종일 굶었다고 들었는데 양을 더 추가할까?”

“…아.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해요.”

다행히 딱딱한 분위기는 황태후로 인해서 조금 풀어졌다.

엘레인은 멍하니 고개를 저으며 황제를 의식했다.

황제의 차가운 외면에 상당히 많은 충격을 받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화가 나서 시선을 피하는 건 아닌 듯했다.

황제는 화가 나면 당당히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혼쭐을 내주면 내주었지 소심하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는 무언가 곤란한 일이 있어서 자꾸만 눈을 피한다는 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로 그러는 걸까?

때가 되면 어련히 말씀해주실 것으로 생각되지만, 엘레인은 그가 자꾸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꾸만 시선이 느껴져서 쳐다보면 세상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던 황제가 고개를 휙! 하고 돌리는 상황이 자꾸만 반복됐기 때문이다.

‘진짜 뭐지? 설마 나랑 관련된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저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데….’

엘레인은 아리송한 얼굴로 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에 흠칫한 황제는 괜히 엘레인의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때. 입에 맞나?”

“네? 아, 네. 맛있어요.”

“그래. 그렇군….”

‘엥? 그게 끝이야?’

무언가 어색한 대화를 끝마친 엘레인은 이상한 눈으로 황제를 보았다.

이번에야말로 뭔가 중요한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어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어버리니.

엘레인으로서는 자꾸만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꼭 엘레인이 아니더라도 황제가 평소 그답지 않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불안해할 테지만 말이다.

‘황태후도 뭔가 알 수 없는 표정만 계속 짓고 있고….’

엘레인은 고개를 돌려 황태후의 얼굴을 힐끔 살피었다.

심지어 옆에 앉은 오르칼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쌍둥이 황자들도 엘레인과 마찬가지로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동지라도 있으니 다행인 건가.’

엘레인은 씁쓸한 입안을 더욱 쌉쌀한 샐러드로 채우며 속으로 안도했다.

물론 그것은 엘레인만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야아. 진짜 제대로 싸웠나 본데? 분위기 장난 아니야.’

‘그러게. 찬바람이 쌩쌩 부네.’

라네즈는 아르닐과 눈으로 대화를 나누며 괜히 황제와 엘레인의 눈치를 봤다.

엘레인과 황제가 대차게 싸웠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서로 대화가 단절된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며 내심 안도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들의 착각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서로 눈치를 보느라 시끌벅적해야 할 밥상 위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특히나 가장 시끄러운 라네즈와 아르닐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오늘따라 분위기가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다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접시 위를 깨작거리기만 하고 있을 때….

결국, 이 이상한 분위기를 참다못한 라네즈가 테이블을 쾅! 하고 세게 내리쳤다.

“아, 답답해 진짜. 그냥 시원하게 사과해요!”

정적을 깨트린 라네즈가 황제를 똑바로 보며 일침을 날렸다.

그 느닷없는 외침에 가장 곁에 있던 아르닐은 경악했다.

“형 왜 그래? 미쳤어? 내가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아르닐은 차마 황제와 엘레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라네즈를 닦달했다.

그러는 반면 황제와 황태후. 그리고 오르칼과 엘레인은 의아한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쟤가 뭐라는 거야?’

‘사과? 뭔 사과를 하라는 거지?’

엘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제와 라네즈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던 와중.

뒤늦게 라네즈의 말을 이해한 황제는 퍽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라네즈 저 녀석. 설마 알고 말하는 건가?’

그는 끼기긱.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돌려 황태후를 바라보았다.

설마 어머니가 미리 귀띔한 건가 싶어서 바라본 것이지만, 황태후 역시 라네즈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매우 당황해하고 있었다.

결국, 저 눈치 없는 녀석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저런 말을 꺼냈다는 건데….

라네즈나 되는 사람이 눈치챌 정도면 엘레인도 이미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황제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시간을 더 끄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황제는 테이블 아래에 있는 주먹을 꽉 쥐며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단단히 결심하기라도 했는지.

이번에는 엘레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게 닫힌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믿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

“미안하다.”

“!?”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던 아르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저걸 진짜 사과하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제가 내뱉은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처럼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 엘레인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황제가 갑자기 저에게 사과하는 것도 그렇고.

도무지 그들의 행동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래서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그래도 대충 ‘나’와 관련되어 있는 일임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일까.

엘레인은 빠르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엘레인이 의외로 담담하게 쳐다보자 황태후가 황제를 바라보며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잘했어. 그대로 시원하게 말하는 거다!’

황제는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엘레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두 눈을 부릅뜨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미안함과는 별개로 내 결심은 변함이 없다. 난 아직 너를 결혼시킬 생각이 없어.”

“넹?”

“결혼…?”

이어지는 황제의 말에 엘레인은 물론이고 라네즈와 아르닐마저 벙쪘다.

그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목이 타서 물을 마시고 있던 아르닐은 입안에 있던 물을 주르륵 흘리기까지 했다.

“아니, 잠깐만요. 갑자기 결혼 이야기가 왜 나와요?”

“음? 알고 말한 거 아니었나?”

“아니아니아니. 전 그냥 아버지랑 엘레인이 서로 싸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근데 그게 결혼 이야기가 엮여 있는 건 줄은 상상도 못 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엘레인과 싸운 적이 없다.”

“그럼 우리한테 결혼 이야기를 숨긴 건 말이 되고요?”

라네즈의 답답하다는 외침에 황제는 침음을 흘렸다.

다 알고 한 충고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서로의 오해가 겹치고 겹쳐서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또 한 사람.

엘레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라네즈는 엘레인과 황제가 서로 싸우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황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엘레인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난 아직 남친도 없는데….

왜 벌써 시집보낼 걱정을 하고 있단 말인가!?

“엘레인! 너 정말로 결혼하는 거야?”

“…아니! 나 남자 친구도 없거든? 근데 결혼은 무슨 결혼?”

“응? 그게 정말이야?”

엘레인의 외침에 황제와 황태후. 그리고 오르칼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남자 친구가 없다니?

그럼 카르넬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건가?

“그럼 그 편지의 내용은 거짓인 게냐?”

“네? 무슨 편지요?”

황태후가 꺼낸 이야기에 엘레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황제가 품에서 돌루스가 보낸 편지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건네받은 엘레인은 곧바로 편지를 읽어 보았고.

내용을 모두 읽어본 뒤로는 자신과 카르넬을 엮는 듯한 글들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이게 뭐야…?’

편지에는 두 사람 사이가 잘 어울린다는 내용은 기본이고.

앞으로 신성제국과 베네딕트 제국이 진정한 화합을 할 것 같다는 둥.

남들이 보면 오해할 만한 이야기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설마 돌루스 이 사람. 카르넬이 나한테 고백한 걸 알고 이런 말을 적었을 리는 없을 테고.’

시간도 늦은 밤이었고 이야기도 카르넬의 방에서 했으니 그가 고백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즉, 엘레인과 카르넬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고 대충 그럴듯한 루머를 퍼트렸다는 말이 되는데….

엘레인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테이블 위로 편지를 툭. 내려놓았다.

“아빠. 이거 딱 봐도 함정이잖아요.”

엘레인은 확신했다.

하필이면 우리가 주신교의 대주교를 의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다니.

딱 봐도 베네딕트 제국과 신성제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한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엘레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뭐, 황제와 황태후 역시 돌루스의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머리로 알고 있지만….

“하지만 편지에 적힌 내용이 진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만약 이게 진짜라고 해도 그게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나이 들면 결혼하게 될 텐데.”

“뭐? 엘레인 너 진짜 결혼하려고?”

라네즈가 화들짝 놀라서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글썽글썽한 그의 두 눈과 마주친 엘레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아니, 당장 그럴 생각은 나도 없거든?”

엘레인은 그리 말하면서도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그냥 말만 했을 뿐인데 저런 반응이라니.

나중에 황자들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그리고 그 진심으로 어처구니없어하는 엘레인의 모습에.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들은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근데 만약 엘레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건 그 편지를 보낸 놈의 계략이라는 건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한 거죠?”

라네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아르닐이 뒤이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글쎄. 아마 신성제국과 우리 베네딕트 제국의 시선을 돌리려는 게 아닐까?”

“두 제국의 시선을 돌려서 그놈에게 좋을 게 뭔데? 아니, 애초에 저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기에 이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놓은 거야?”

아르닐은 답답하다는 듯이 제 가슴을 쳤다.

저 모습을 보니, 아직 쌍둥이 황자들은 발신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엘프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정확한 증거가 발견될 때까지 황제는 입을 다물고 있을 요량인 듯한데.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엘레인은 숨김없이 그들에게 정보를 공유했다.

“최근에 엘프 실종 사건이 일어난 건 알고 있지?”

“당연하지. 엘레인 네가 범인을 잡았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뭐? 설마 저 편지를 보낸 놈이 그 범인인 거야?”

“아직은 의심 단계지. 하지만 지금 하는 짓을 보면 심증은 확실한 것 같네.”

엘레인은 그리 말하며 신성제국에서 카르넬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의심하고 있는 범인이 누구인지 싹 털어놓았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라네즈와 아르닐은 크게 분노했으며 당장 주신교단에 쳐들어가서 깽판 치고 싶은 얼굴을 했다.

“미리 말하지만 명확한 증거를 잡아내기 전까지 절대로 먼저 건드려선 안 돼. 주신교를 믿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이상 말이야.”

“…알았어. 안 그럴게.”

엘레인이 일부러 엄하게 말하자 라네즈와 아르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주신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서대륙 전체에 고루 퍼져있으니까.

섣불리 건드렸다가 역풍을 맞는다는 것쯤은 그들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놈이 이런 편지를 보낸 건 증거 인멸할 시간을 벌려고 그런 거라 이거지?”

“응. 아무래도 신성제국과 우리 베네딕트 제국은 서로 경쟁 관계니까. 이런 소문이 퍼지면 서로 견제하느라 바빠질 거라고 예상했던 거겠지.”

엘레인의 말대로 확실히 시선을 돌리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 이상하군. 늦든 빠르든 결국에는 들킬 일일 텐데. 그러면 오히려 이런 편지를 보낸 자신이 의심받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황제의 말에 다들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결국, 이 방법을 써서 주신교 대주교는 큰 의심을 받게 될 텐데.

그는 과연 이런 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만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인간이 그리도 어리숙한 짓을 한다고?

“뭔가 이상한데. 알고 보니 들켜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엘레인의 질문에 라네즈가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가령 이보다 더 큰 걸 터트린다든가?”

“…세상에 혼란을 줄 정도로 큰 사건을 터트려서 그것에 묻어간다는 건가.”

오르칼이 설명을 덧붙이자 다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나름 일리 있는 추리였기에 각자 생각이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폐하!”

정보대신이 다급한 얼굴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노크도 없이 감히 황실 가족 전용 식당에 쳐들어오다니.

그 천인공노할 짓에 황제가 경을 치려고 했으나….

“큰일 났습니다! 고대 정령의 봉인 구역이 여럿 파괴되었습니다!”

“뭐라고?”

그 충격적인 소식에 모두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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