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1화 (370/417)

371화

“와아아아!”

엘레인은 마을 입구에 우르르 몰려있는 엘프들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영웅으로서 초대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대충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환호로 맞아줄 줄이야.

왜인지 모를 벅차오르는 감정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문득 환호하는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엘레인은 갑자기 모든 행동을 멈춘 엘프들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수많은 엘프들이 양측으로 갈라지며 엘프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십시오, 황녀님. 저희 엘프 마을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야말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엘레인은 저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나타난 엘프 왕을 보며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직접 마중 나올 줄은 몰랐고. 지난번의 만남 이후.

여전히 미심쩍은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이미 알고 있었지. 게다가 마치 날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대했고 말이야.’

무언가 수상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엘레인은 엘프 왕과 조심스레 악수를 나누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엘프 왕의 얼굴은 시종일관 인자함을 그려냈고 맞잡은 그의 손은 너무나도 따스했다.

자칫 잘못하면 뾰족하게 솟아올랐던 경계심이 사르르 사라져버릴 만큼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벌써요?”

대체 이 엘프는 나에 대해 무엇을.

또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대충 그런 생각을 하던 엘레인은 갑자기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와놓고 이렇게 빨리 돌아가다니?

무언가 다른 속내가 있는 건 아니었어?

“아무래도 높은 사람이 머물러 있으면 편하게 축제를 즐기기 어려울 테니까요. 저는 세계수 다음으로 가장 큰 나무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머무시는 중 편한 시간대에 들려주십시오.”

엘프 왕은 싱그럽게 웃으며 중앙 광장 쪽에 있는 가장 큰 나무를 가리켰다.

엘프들은 속이 텅 비어 있는 특이한 나무 안에다가 집을 짓고 사는데.

저 커다란 나무 역시 그 특이한 나무에 속했다.

‘안쪽에 원형 계단이 있었지, 아마.’

엘프 왕이 사는 곳이라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전생에 이엘로의 안내를 받아 입구까지만 구경한 적이 있었다.

입구부터 뻥 뚫린 천장까지 책들이 가득해서 ‘이거 그냥 엄청 큰 도서관 아니야?’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 이만.”

“아, 네. 나중에 꼭 찾아갈게요.”

엘레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멀어지는 엘프 왕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세계수 근처 다음으로 불가침의 영역으로 알려진 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직접 초대하다니.

원래 사람이 착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이것 역시 영웅을 대우하는 것에 포함된 것인지 조금 헷갈렸다.

‘그래도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순 있게 됐네.’

그럼 그때 가서 날 원래 알고 있었던 거냐고.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면 되겠지.

엘레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우르르 모여드는 엘프들을 향해 미소 지어주었다.

지금은 이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

우선은 여기에 집중해야 할 때다.

***

“우와아. 황녀님! 하늘에서 꽃비가 막 떨어져요!”

엘프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을에 입장한 베일리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누군가 뒤를 따라다니면서 바구니에 든 꽃을 뿌려대는 것도 아닌데 엘프 마을에는 계속해서 꽃비가 내렸다.

“으음. 알고 보면 그리 아름다운 장면은 아닌데 말이야.”

엘레인은 열심히 추억 보관 장치. 즉, 사진기를 들고 찰칵찰칵. 하늘을 찍어대는 베일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베일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엘레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엘프와 계약한 실프들이 열심히 꽃잎을 그러모아 뿌리고. 또 그러모아서 뿌리고 있는 그런 장면을 말이다.

“꺄아. 정말이지 너무 예뻐!”

“…그래. 언니가 좋다면 된 거지 뭐.”

엘레인은 정령들의 눈물겨운 노동 현장을 애써 무시하며 엘프 마을을 살폈다.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과 그 아래에서 행복한 얼굴로 축제를 즐기는 미남 미녀들.

그리고 향긋한 풀내음과 꽃내음이 함께 나는 공간 여기저기에선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괜히 함께 웃고 싶어지는 그런 분위기에 입꼬리를 들썩이고 있던 그때.

엘레인은 문득 제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니, 이고!”

그러자 한 아이가 달콤한 과일 꼬치를 들이밀고 있는 게 보였다.

“앗. 고마워. 잘 먹을게.”

“헤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아이는 부끄럽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깜찍한 말총머리가 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퍽 귀여워서.

엘레인의 입가에 기어코 미소가 피어났다.

“그나저나 신기하군요.”

“음? 뭐가?”

문득 들려오는 카론의 목소리에 엘레인은 달콤한 딸기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의문을 표했다.

“엘프들 말입니다. 그들의 시선에서 ‘혐오’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 그래?”

엘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신경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엘프들에게 인간 혐오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 감추려 애를 써도 드러나게 되는 것인데.

이상하게 오늘 마을에서 보아온 엘프들은 그런 낌새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이건 모두 황녀님 덕분입니다.”

그때 이엘로가 곁으로 다가와 뜬금없이 칭찬을 날렸다.

“네? 제가요? 아무리 제가 세계수를 찾아왔다고 해도 엘프의 ‘인간들’을 혐오하는 감정을 깔끔하게 지울 수는 없을 텐데요?”

“예. 아무래도 세계수 하나로만 말하자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들은 황녀님을 비롯한 베네딕트 제국의 인간들이 우리 엘프들을 도와 고대의 정령들을 열심히 처리해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그 말은 혹시?”

“예. 지금 저희 엘프들에게 베네딕트 제국은 은인의 나라입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혐오의 감정을 내비칠 리가 없지요.”

물론 모든 베네딕트 제국민들이 엘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지만, 엘프들은 감정을 구분하는 데에 아주 민감하니.

엘프들을 싫어하는 자들과는 처음부터 엮이지 않을 생각이다.

뭐, 그래도 엮이겠다면 쓴맛을 보여줄 테지만.

어쨌든 이렇게 고대의 정령과 세계수 사건으로 인해 꼭 나쁜 인간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그들은 무작정 인간을 혐오하는 것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런 와중에 ‘영웅’이라고 칭송받아도 마땅한 엘레인과 그 일행들이 친히 방문해주었는데.

어찌 혐오라는 감정을 내비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오랫동안 세습되어, 단번에 끊어내기 힘든 감정이라곤 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

“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엘레인은 그들의 변화를 진심으로 달가워했다.

이제 만나자마자 인간들의 면전에다 대고 ‘윽, 역겨워!’ 또는 ‘우웩! 토 나와!’라고 하는 일은 없어지는 건가.

정말이지.

듣기만 해도 너무 아름다운 세상이다.

“후후. 궁금증이 풀렸으면 저쪽으로 가 볼까요?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답니다.”

“저야 좋죠.”

엘레인을 비롯한 카론과 앨리스는 바로 이엘로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계속 꽃비가 내리는 하늘과 어여쁜 나무집. 엘프들이 키우는 동물 등을 찍던 베일리가 문득 엘레인을 불렀다.

“황녀님!”

“응?”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는 엘레인이 제대로 찍혔다.

그리고 베일리는 직감할 수 있었다.

방금 그 구도.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황녀님의 포즈까지 모두 합치면 엄청난 대작이 탄생할 거란 걸!

“뭐야. 사진 찍은 거야?”

“네! 분명 엄청나게 잘 나왔을 거예요. 아주 직감이 팍하고 꽂혔다구요!”

베일리는 호언장담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는 지이잉— 소리를 내며 나온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나온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되게 잘 찍었네.”

“그치그치? 내가 대작이 될 거라고 했잖아.”

“흐음. 황제 폐하께 보여주면 아주 좋아하시겠군요.”

“아빠한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차례대로 앨리스와 베일리. 그리고 카론과 엘레인이 사진을 보며 평가했다.

하지만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이엘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이 보고 있는 사진이라는 것의 뒷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게 뭐기에 다들 그리 기뻐하시는 건가요?”

“아. 이엘로 씨는 아직 모르겠구나. 이건 추억 보관 장치 또는 사진기라고 불리는 건데, 내가 원하는 순간을 그대로 기록해서 남길 수 있는 혁신적인 아티팩트예요.”

“원하는 때를 기록해서 남긴다고요?”

이엘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다고.

베일리는 씨익 웃으며 조금 전에 건진 인생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세상에. 이건 황녀님이시잖아요?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이리도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죠?”

“흐흐흐. 이게 바로 사진기의 위엄이죠!”

베일리는 마치 자기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 제 어깨를 으쓱였다.

엘레인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며 연신 감탄하고 있는 이엘로에게 넌지시 말했다.

“괜찮으면 저희랑 같이 사진 찍으실래요? 추억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예? 정말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자자. 이쪽으로 다들 모여 볼래?”

나무 벤치 한가운데에 앉은 엘레인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 그녀의 부름에 따라 앨리스와 베일리는 각각 엘레인의 왼쪽과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고.

이엘로와 카론은 엘레인의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서 있으면 잘 안 찍혀요. 허리를 좀 더 숙여 보세요.”

“이, 이렇게요?”

“네. 딱 좋아요!”

딱딱하게 서 있던 이엘로와 카론이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자 사진 찍기 딱 좋은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에 만족한 베일리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셋 둘 하나 하면 찍습니다!”

“셋!”

“둘!”

“하나!”

치—즈—!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기가 사진을 뱉어냈다.

그러나 사진에 그림이 나타날 때까지 이엘로는 어쩐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조금 전 플래시가 터질 때 깜짝 놀라서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사진에 그림이 모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푸하핫! 이엘로 씨 눈을 양쪽 다 감아버렸네요!”

“아, 아앗. 다, 다시 찍으면 안 될까요?”

“푸흠. 저는 괜찮게 잘 나온 것 같은데요.”

“화, 황녀님까지…!”

엘레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두 눈을 감고 맹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이엘로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워낙 예뻐서 그런가. 일부러 이렇게 찍은 것 같네.’

뭐랄까.

청초한 여인이 일부러 엽기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달까.

눈이 덜 감기고 흰자가 보였다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시 찍어야 할 정도로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찍고 싶어 하니까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엘레인은 그렇게 생각을 마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막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어…? 언제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었지?”

엘레인은 당혹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잠깐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주위에는 어느새 모여든 엘프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수군수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눈은 정확히 베일리가 쥐고 있는 사진기와 사진에 고정한 채였다.

“저. 혹시 그 사진기라는 거. 저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때 용기 있는 엘프 한 명이 양 볼을 붉히며 수줍게 물어왔다.

베일리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죠. 제가 찍어드릴까요?”

“핫! 감사합니다! 그럼 저 영웅님과 같이 찍어도 될까요?”

“네?”

엘레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수줍은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저랑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을 끝으로.

“나도!”

“나도 영웅님이랑 사진이란 걸 찍을래!”

“밀지 마! 내가 먼저 찍을 거란 말이야!”

환한 얼굴로 엘레인 일행을 맞이한 엘프들은.

영웅님과 먼저 사진을 찍겠다며 난장판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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