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1화 (400/417)

401화

*경! 아르닐 ♥ 사프란 !축*

드디어 바라고 또 바랐던 새로운 커플이 탄생했다.

원래 서로 좋아하던 사이라서 그런지 라네즈와 베일리 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어찌나 빠른지 트렌디아의 첫 패션쇼의 공식 커플로 떠오를 정도였다.

“이것 봐봐. 하필이면 이번 패션쇼의 주제가 혼례복이라서 둘이 진짜 결혼식이라도 올린 것 같아.”

“확실히 그래 보이네…. 아주 잘 어울려.”

엘레인과 카르넬은 패션쇼 팸플릿의 메인을 장식한 사진을 사이에 두고 감탄사를 흘렸다.

사프란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아르닐은 새까만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서로 부끄러워하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지라 더욱 커플…. 아니, 부부처럼 보였다.

“후. 이렇게 잘 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되게 감격스럽네.”

엘레인은 새삼 벅차오름을 느끼며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눈가를 슥 쓸었다.

워낙에 어려운 커플이었던지라 그 감동이 배가 되어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카르넬 너도 고생 많았어. 우리 오빠들 도와주느라 많이 힘들었지?”

“나보단 네가 더 많이 고생했지. 내가 한 거라곤 옆에서 조금 조언해준 것밖에 없는걸.”

“그 덕분에 이렇게 오빠들의 사랑을 찾아줄 수 있었던 거잖아. 그리고 봐봐. 네 말대로 하고 나니까 진짜로 우리가 뭘 하러 가든 크게 신경 쓰지도 않잖아.”

카르넬은 지난번에 이렇게 말했었다.

자꾸 방해하는 쌍둥이 황자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공감대를 얻자고.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놀랍게도 엘레인과 카르넬이 함께 외출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카르넬만 보면 으르렁거리던 라네즈는 지금에 와서 반갑게 인사를.

아르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하기까지 한다!

“아르닐 오빠가 골절에 좋다는 약을 줄 때는 얼마나 놀랐는데. 진짜 장족의 발전이 따로 없다니까?”

“사실 그땐 나도 많이 놀랐어. 사람이 그렇게 바뀔 줄은 몰랐거든.”

엘레인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카르넬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대우가 달라지니. 조금 얼떨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공감대 형성도 도움이 됐겠지만. 어쩌면 사랑을 하면서 뾰족한 게 조금 둥글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어? 왠지 그럴듯한데?”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쟤가 연애를 해서 그런가. 사람이 달라졌네?

뭐, 이런 말 말이다.

특히 아르닐 같은 경우에는 사프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둥글어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여튼, 이러나저러나 긍정적인 변화이기에 엘레인의 입꼬리가 절로 치솟았다.

“어쨌든 이제는 마음껏 데이트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서 좋다.”

“네 호위 기사를 떼어놓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말이야.”

“아하하. 카론은 워낙 직업 정신이 뛰어나서 말이지.”

카론의 직업이 호위 기사다.

아무리 캐시와 이어졌다고 해도.

또 카르넬을 뒤에서 지켜보기로 했다고 해도 그는 호위 기사로서 엘레인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제랄 경이 있어서 다행이야. 싫은 티는 내지만, 그래도 대련 요청을 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는 걸 보면 제랄 경과의 대련에서 나름 얻을 게 있다는 뜻 아닐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엘레인과 카르넬은 서로를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모든 공략의 끝.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외출할 수 있다!’

물론 그게 전부라면 이렇게까지 기쁘진 않았을 것이다.

나갈 때마다 싫은 소리가 듣기 싫다면 몰래 외출하면 되는 일이니까.

후폭풍이 조금 무섭긴 해도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인정은 달랐다.

그런 건 꼼수로 받는 게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말이 공략이지. 사실 가족들에게 카르넬과의 사이를 인정받은 것과 다름없어.’

비록 그 가족들에 ‘황제’는 빠져 있지만, 무려 황태후와 세 황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기에 엘레인은 헤죽헤죽. 행복한 웃음을 흘렸다.

“엘레인. 우리 잠시 분수대에 앉아서 쉬었다 갈까?”

“오, 좋지. 안 그래도 정수리가 뜨거워지던 참이었는데 분수대 앞이면 엄청 시원하겠다.”

때마침 들려오는 제안에 엘레인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분수대 앞에 도착한 카르넬은 어제처럼 손수건을 깔아주었다.

어쩐지 익숙한 분홍색 사자 자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엘레인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카르넬을 휙 쳐다보았다.

“잠깐만. 전에 썼던 손수건 아직 내가 갖고 있는데…. 설마 같은 걸 여러 개씩 가지고 다니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여분으로 여러 개씩 가지고 다니는 편이야.”

“엥? 무슨 일?”

“으음. 예를 들어 손에 상처가 난 상황에 급하게 지혈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옴마야!”

촤아악—!

순식간에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엘레인은 놀란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면서 차가운 물을 냅다 들이부은 사람과 멍하니 아이컨텍을 하고 있는데.

문득, 그런 그녀의 앞으로 새하얀 손수건이 스윽 내밀어졌다.

“뭐… 이런 일에도 사용할 수 있겠지?”

“으으. 보통은 이런 일이 없지 않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생겨버렸잖아?”

“에휴.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네.”

엘레인은 작게 푸념하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려고 했다.

하지만 기껏 뻗은 손을 농락하듯.

손수건을 쥔 새하얀 손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뭐야…. 그거 나 닦으라고 준 거 아니었어?”

“생각해 보니 내가 닦아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거울이 없어서 불편하잖아.”

카르넬은 그리 말하면서 엘레인의 곁으로 훅 다가왔다.

갑자기 가까워진 그의 얼굴에 흠칫 몸을 떨자.

손수건을 쥔 손이 엘레인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괜찮아? 많이 놀라지 않았어?”

“어, 아. 응. 조금 놀라기는 했는데….”

엘레인은 버벅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인지 모르게 열이 올라서 한 행동이었지만, 부드럽게 턱을 잡아 올리는 손짓 때문에 아쉽게도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려던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엘레인의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행동을 많이 놀라서 그러는 것이라 해석한 카르넬은 선뜩하게 빛나는 눈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하는데 계속 바라보고만 있을 겁니까?”

“네? 아, 죄, 죄송합니다! 친구랑 장난치다가 실수로! 정말 죄송합니다!”

서늘한 카르넬의 시선에 화들짝 놀란 세례범은 팔꿈치를 친 친구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얼마나 죄송한지 허리를 거의 반으로 접을 기세에 엘레인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이 날씨에 이 정도는 금방 마르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흐윽. 천사님! 분명 복 받으실 거예요!”

엘레인이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카르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살짝 옅어졌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남자들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거듭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에이. 이 정도야 금방 말라.”

“하지만 옷이….”

겨우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엘레인은 붉어진 얼굴로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카르넬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하필이면 새하얀 옷을 입고 와서 새하얀 속살이 그대로 비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디네 부탁해.”

-무우!

생각해 보니 햇볕에 마를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카르넬이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던 엘레인은 순식간에 말라버린 옷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그 사람들…. 다시 잡아 올까?”

“다시 잡아 와서 뭐 하려고?”

“그야….”

“아니. 괜찮아. 안 들어도 돼. 그리고 안 잡아 와도 돼.”

엘레인은 서둘러 카르넬의 입을 막았다.

낮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는 순간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다.

이렇게 또 예지력이 상승하는 건가.

엘레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그의 입술에서 손을 떼어냈다.

‘…근데 되게 말랑하네. 입술이니까 당연한 건가.’

자동 반사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손끝에 남아 있는 온기와 감각이 선명했다.

괜스레 뺨을 붉히며 손끝을 매만지고 있자 옆에 있던 카르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호위 기사들을 멀리 떨어트려 놓은 만큼 주위 경계를 잘 해야 했는데. 전부 내 불찰이야.”

“무슨 예언가도 아니고. 갑자기 날아오는 물을 무슨 수로 막아? 이건 카론이 옆에 있었어도 막지 못했을걸?”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니 기운이 나네.”

카르넬은 부드럽게 웃으며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열감이 느껴지는 시선에 엘레인은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나저나 배 안 고파? 슬슬 점심 먹을 시간인데. 우리 밥 먹으러 갈까?”

“그래. 내가 따로 예약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

“엇. 예약은 또 언제 한 거야?”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 봤거든. 평이 아주 좋은 레스토랑이 있어서 미리 예약해 놨어. 마침 예약한 시간이니까 거기로 가자.”

카르넬은 싱긋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고생 하나 하지 않은 듯 새하얗고 섬세해 보이지만, 막상 잡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단단한 손.

그런 그의 손을 천천히 맞잡은 엘레인은 카르넬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야.”

“레스토랑 이름이 ‘맛있는 하루?’. 뭔가 있어 보이네.”

“티본 스테이크가 그렇게 맛있는 곳이래. 자, 얼른 들어가자.”

엘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레스토랑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2층의 전망 좋은 곳에 도착한 엘레인은 감탄사를 흘렸다.

“이런 식당이 있었구나.”

“마음에 들어?”

“응. 분위기부터 대박이야.”

엘레인은 둥그렇게 뜬 눈으로 레스토랑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카르넬은 그런 그녀를 귀엽게 바라보며 의자를 잡아끌었다.

“자. 여기에 앉아.”

“아. 고마워.”

“식사는 뭐로 할래?”

“으음. 티본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했으니까 그걸로 먹을래.”

“그렇게 하자.”

메뉴판을 옆으로 치운 카르넬은 곧바로 사람을 불렀다.

예약한 손님에게는 사람 한 명이 전담으로 붙는지, 아까 자리를 안내해줬던 매니저가 재빨리 주문을 받고 물러났다.

그리고 전담 마크하고 있는 만큼 주문한 음식도 매우 빠르게 나왔다.

“어때?”

“움! 완전 맛있어!”

“맛있다니 다행이다.”

카르넬은 살짝 긴장했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답답했었는지 목 끝까지 채웠던 단추를 두어 개 풀었는데….

마침 다음 스테이크 조각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던 엘레인은 눈앞의 광경을 보자마자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저, 전망도 좋고. 밤에 오면 또 다른 느낌이겠는걸?”

하마터면 슬며시 드러난 새하얀 쇄골을 빤히. 아주 노골적으로 쳐다볼 뻔한 엘레인은 황급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지껄이자. 카르넬이 엘레인의 속도 모르고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는 저녁에 한번 와볼까?”

“나야 좋지! 와아. 너무 기대된다.”

제국어 책을 읽어도 이처럼 딱딱하지 않을 것이다.

엘레인은 누가 봐도 어색한 톤으로 말을 하고는 이미 스테이크 조각이 박힌 포크로 아스파라거스를 쿡! 찍었다.

‘나 참.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애먼 곳으로 시선이 가는 거야?’

아까 입술 어쩌고 했던 것도 그렇고….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을 것들에 자꾸만 눈이 가고 또 과민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카르넬 입술. 되게 말랑했었지.’

그때의 그 감촉을 떠올린 엘레인은 힐끔 시선을 들어 그의 붉은 입술을 바라보았다.

도톰한 그의 입술은 여전히 말랑해 보였다.

어찌나 탐스러운지 한 번만 더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같이 입술을 맞대었을 때에도 말캉할지 궁금하기도….

‘…아니, 잠깐만. 이게 또 무슨 변태 같은 발상이야?’

엘레인은 제가 한 생각에 경악했다.

아무리 의식의 흐름으로 한 생각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 변태 같았다!

“엘레인?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머리를 때리면 괜찮을까 싶어서 이마를 콩콩 때리던 엘레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카르넬의 꿀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그의 입술로 시선이 가는 걸 느끼고 진짜 어지간히 미친 건가 싶었다.

‘…꿀 같은 목소리는 또 뭐야? 나 진짜 미쳐버린 건가?’

두근두근.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엘레인의 눈에 혼란스러움이 가득 들어찼다.

아무리 카르넬이 잘생겼고 또 좋아하는 연인 사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반응은 좀 심하다고 느껴졌다.

카르넬의 산뜻한 미소나 다정한 말투. 그리고 온화한 눈동자를 넘어서 그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다니….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한번 의식하니까 얼굴에 더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엘레인…?”

“아, 응. 왜?”

“얼굴이 많이 붉은데. 혹시 어디 아파?”

“아, 아니야. 아프긴. 그냥 점심밥이 너무 맛있어서. 감격해서 그래.”

“그래?”

누가 봐도 어설픈 변명이었지만, 카르넬은 그렇군 하면서 속아 넘어가 줬다.

그러면서 테이블 위로 감기약을 슬쩍 꺼내놓는 것이.

조금이라도 아픈 티가 보이면 바로 약을 먹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진짜. 왜 저렇게 다정해서는….’

엘레인은 괜히 손끝이 간질간질해져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생각해 보면 카르넬은 배려심이 넘쳤다.

앉기 전에 손수건을 깔아주지 않나.

거울이 없다면서 손수 얼굴을 닦아주지를 않나.

아까도 앉기 편하라고 의자를 미리 빼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잘생긴 사람이 다정하기까지 하니, 엘레인이 자꾸만 그를 의식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이는 것도 그런 게 더 잘 보여서 그런 거겠지.

엘레인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넣었다.

…나는 절대 변태가 아니라는 생각을 되뇌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