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정원 뒤편.
그곳 벤치에 홀로 앉은 카르넬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건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그는 마른세수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말이 엘레인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을.
하물며 누가 봐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선택지를 반대하고 나섰으니.
엘레인 입장에선 당혹스럽고 또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아무리 그것이 엘레인을 위한 일이었다고 해도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답해야 했었다.
아니면 최소한 장소를 옮긴 후 납득이 가게 제대로 설명하든가.
‘아니. 그래도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어쨌든 카르넬은 엘레인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아.”
카르넬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거듭하던 와중.
갑자기 그의 머리 위로 새카만 그림자가 졌다.
“오르칼 형님…?”
카르넬은 놀란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곁으로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오르칼 베네딕트.
그는 미려한 눈썹을 한 차례 들썩이더니 삐뚜름하게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흠. 나는 형님인가? 듣기 나쁘진 않군.”
나름 신선하다는 듯.
썩 나빠 보이지 않는 얼굴에 카르넬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별건 아니고. 이상한 소문을 들었거든.”
“이상한 소문이라 함은…?”
“엘레인이랑 싸웠다던데. 사실인가 싶어서.”
오르칼은 그리 말하면서 씨익 웃었다.
사실이면 당장이라도 목에 칼날을 박아 넣을 것 같은 차가운 미소에 카르넬은 난감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그게.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어서 조금 싸웠습니다.”
“그래? 엘레인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었을 텐데. 그건 벌써 잊은 모양이지?”
“예? 엘레인이…. 울었습니까?”
“실제로 울었다는 말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는 거다.”
오르칼의 차가운 눈동자가 카르넬을 짙게 응시했다.
시선으로 난도질할 수 있으면 이미 넝마가 되었을 터.
하지만 카르넬은 그런 그의 말에 깊이 안도하며 날카로운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엘레인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엘레인을 위해서?”
오르칼은 매끈한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 털썩 앉으며 자연스럽게 다리를 꼬았다.
“뭐, 나도 무조건적으로 엘레인의 의견에만 따라 달라는 게 아니다. 그러면 인형이랑 별다를 게 없지 않나.”
“그렇습니까….”
카르넬은 말끝을 흐리며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사소한 의견 충돌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는 뜻인가.
조금 전 그의 행동이 단순히 떠보는 행동이었음을 깨달은 카르넬은 의외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뭘 보는 거지?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멍하니 쳐다보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 똑바로 설명이나 해 봐. 엘레인과 무엇 때문에 싸운 거지?”
이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데도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당연히 카르넬이 반대한 이유를 제대로 알기 위함이다.
오르칼이 얼른 설명하라는 듯 턱 끝을 까딱거리자, 잠시 머뭇거리던 카르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티파티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자면….”
카르넬은 어째서 황제의 방 아래쪽에서 티파티를 열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레인이 무슨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해서와 카르넬이 그 의견을 반대한 것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렇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들은 오르칼은 팔짱을 낀 채 침음을 흘렸다.
“엘레인이 꽤 충격을 받았겠군.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반대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예.”
실제로 엘레인은 그의 의견을 듣고 난 후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왜? 다 큰 성인인데 우리끼리 결혼할 수도 있지. 꼭 아빠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
하지만 카르넬은….
-그래도 역시 안 돼. 나는 네가 가족들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어.
라는 말로 받아쳤다.
엘레인이 ‘굳이? 아니, 내가 괜찮다니까?’라면서 말해도 카르넬이 절대로 의견을 굽히지 않으니 결국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자초지종을 들은 오르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카르넬을 응시했다.
“그래서 반대한 이유가, 엘레인이 모두의 축복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예.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인데. 소중한 가족을 제외하고 결혼식을 올리면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골이 생길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분명 엘레인은 후회를 하겠죠. 저는 엘레인 얼굴을 그늘지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흐음. 하나뿐인 가족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군.”
오르칼의 말에 어째서인지 카르넬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저쪽도 그리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오르칼은 가족 이야기는 더 언급하지 않고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쨌든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너. 쉽지 않은 길을 가려 하는군.”
쉬운 길.
그러니까 설득을 포기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엘레인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다.
엘레인의 행복을 위해 그와의 교제를 허락했다고 해도 그가 진짜 좋은 남편감인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최소한 엘레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진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대충 이해했다. 그래도 거기선 네 의견을 좀 더 피력해야 했다. 엘레인에게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그래도 그 아이 나름 수용했을 테니까.”
“그건….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습니다.”
“장소?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침소 바로 아래쪽에서 티파티를 열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마 거기서 자세한 설명을 했더라면 필시 그분 귀에 들렸을 겁니다.”
“흠. 그렇군. 확실히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면 아버지 입장에선 저를 우롱하고 기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겠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황제는 소드 마스터이니 청각 또한 일반인에 비해 훨씬 좋으니까 말이다.
‘그럼 해명을 해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쌍둥이 황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서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며 중간에 황태후가 중재했다고 했다.
말이 중재인 것이지. 사실 한동안 접근 금지령을 받은 거랑 다름이 없다.
그 탓에 이런 외진 곳에 앉아, 혼자 궁상을 떨고 있던 걸 테지.
“흐음…. 내가 계책을 알려줄까?”
엘레인을 생각하는 마음과 황제를 배려하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가족사를 건드려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이 정도 도움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카르넬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형님. 이 일은 제가 스스로 해 보겠습니다.”
“호오? 네가 직접?”
오르칼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래도 나름 강단이 있는 것일까.
정치적 수완은 넘쳐나도 남자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로써 그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겠다.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는 건가?”
“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이 가장 제 진심을 전달하는 데에 좋을 것 같아서요.”
“뭐, 그렇긴 하지.”
오르칼은 먼 과거.
황제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럼 열심히 해 봐. 응원하지.”
“감사합니다.”
오르칼은 그 말만 남기고 쿨하게 떠나버렸다.
그렇게 혼자 남은 카르넬은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했다.
엘레인과 황제. 양측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
모든 사건의 발단. 베네딕트 황제와 결판을 내기로.
***
결정을 내린 이후.
곧바로 황제의 방을 찾은 카르넬은 그의 방문에 노크했다.
“장인어른. 저 카르넬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마음을 굳게 먹고 찾아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하려는 모양.
과연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지만, 카르넬은 두 눈을 꾹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러면 문 앞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카르넬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장인어른의 눈에 제가 차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간의 소문과 다르다고 이야기해도 쉬이 믿을 수 없겠지요. 이건 전적으로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살아온 방식 때문에 장인어른께 혼란을 야기한 것이니까요.”
엘레인을 만나기 전.
카르넬은 신성제국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물론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불법을 저지르는 귀족들을 갈아서 여러 이득을 얻은 적은 많았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좋은 말로 해도 그리 선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결국, 정치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맞기 때문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마 황제에겐 그 부분이 가장 우려스럽겠지.
신성제국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남자가.
엘레인과 부득불 결혼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걸어온 발자취를 조금만 살펴보면 뻔히 나오는 답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에게 그 어떠한 말을 해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이지만. 막무가내로 저를 믿어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단 한 번의 기회라도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카르넬은 진심을 가득 담아서 그리 말했다.
“…….”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는 것은 조용한 침묵뿐.
보통 사람이라면 의지가 꺾일 정도로 철저한 무관심이었지만, 카르넬은 굳게 닫힌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특히 저 때문에 엘레인과 황제의 사이가 멀어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최소한…. 제가 왜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 그 이유를 장인어른께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꼭꼭 숨겨놓아서 결국에 곪아 터져버린 것들.
그래서 크나큰 흉터가 되어버린 과거.
그렇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
하지만 황제의 의심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다면야.
이런 이야기쯤은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카르넬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장인어른도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겠지만, 어머니와 첫째 형을 일찍 잃은 후로 아버지는 저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심해졌습니다. 첫째 형이 죽은 후. 어머니가 저에게 죽은 형을 겹쳐보기 시작할 때에도 가만히 계시던 사람이 뒤늦게 저를 챙기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그래서 저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독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아이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아련하게 과거를 떠올리는 얼굴로 제게 매달릴 때면 그는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더랬다.
신성제국의 성황.
나의 증오스러운 아버지.
그런 그를 떨쳐낼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 저는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완벽한 성황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성황이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어쩌면. 그저 아버지와 ‘다르게’. 아버지와는 ‘닮지 않은’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현 성황은 우유부단한 데다가 능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으니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성황이 되어서 ‘현 성황은 전대 성황과 달리 무척 뛰어나더라….’ 혹은 ‘그 아버지에게 어찌 그런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죠?’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걸지도.
그래서 그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몰아세웠다.
신성제국을 위해서 일하며 나 자신을 갈고닦았다.
가끔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삶의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저는 바뀐 제 삶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아버지와 만날 일도 줄어들었으니까. 또, 제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엘레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저는 그게 나름 괜찮은 삶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카르넬은 잠시 숨을 골랐다.
안쪽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지만, 기척은 느껴졌다.
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입술을 떼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신성제국을 위한다고 해놓고 정작 세상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것들은 전부 이권을 얻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었고. 제게 웃어주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속셈이 있을 것이라 단정 지었습니다. 정치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머리까지 굳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엘레인을 만나고서 그러한 고정 관념이 단번에 깨졌습니다.”
카르넬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카르넬은 달콤한 미소를 매단 채 굳게 닫힌 방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 덕분에 저는 순수한 호의를 알았고. 따스한 시선의 의미를 알았으며. 사랑을 알았습니다.”
마치 세상이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겉껍질을 깨부수고 그제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병아리처럼.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매우 기분이 좋았다.
“장인어른. 저는 엘레인을 만나고 난 후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신념. 관념. 가치관. 사고방식 등.
엘레인에 의해 모든 것들이 새롭게 채워졌다.
“그런 제가…. 어찌 거짓된 마음으로 엘레인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카르넬의 떨리는 눈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응시했다.
“저는 진심으로 엘레인을 사랑하고 있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부디 제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카르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로써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전달했다.
결국, 방문 너머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달했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카르넬은 한숨을 삼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장인어른. 엘레인이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니…. 얼른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빨리 완쾌해서 엘레인과 화해하길 바랍니다.
뒷말을 삼킨 그는 닫힌 문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또 오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안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지라.
결국, 그 어떠한 대답도 얻어내지 못한 카르넬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
한편.
방안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었던 황제는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류를 팔락거리며 넘겼다.
정보대신은 수십 번이 넘게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이대로 보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하는 말에 정보대신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오해임이 밝혀졌잖습니까. 듣자 하니 폐하와 황녀님의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중간에서 조율하고자 하다가 도리어 황녀님과 싸웠다고 하던데. 몇 마디 말씀이라도 해주시는 편이….”
“시끄럽다.”
촤락!
황제는 정보대신의 가슴팍에 서류 더미를 팍 넘기는 것으로 그의 말을 끊어냈다.
그렇게 정보대신의 입을 막은 황제는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았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황제는 입매를 단단히 굳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보대신의 말대로 이번엔 황제가 오해한 게 맞았다.
카르넬은 진심으로 엘레인을 좋아하고 있는 듯했고.
그의 오해를 부추겼던 정보들은 모두 카르넬에게 당한 전적이 있거나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
혹은 들리는 소문을 미리 접하고 이미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새겨진 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글라스 또한 소문에 휩쓸린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었지만.
하여튼 카르넬의 직속 시종과 가까이 지내는 다른 시종과 직속 호위 성기사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든 것이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중 누구의 말이 맞느냐고 한다면….
당연히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도 엘레인을 두 번이나 구해준 카르넬의 진심을 믿는 게 더 알맞겠지.
“후.”
황제는 손을 뻗어 눈두덩이를 덮었다.
무엇이 엘레인을 위하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황제는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