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1화 (411/417)

411화

“에휴….”

찻잔에서 입술을 뗀 엘레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카르넬과 싸운 지도 벌써 며칠째다.

마지막에 가서 의지가 약해진 카르넬에게 실망한 뒤로 고집스럽게 그를 피하고는 있지만,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지.’

처음엔 그저 완고하기만 한 그의 태도에 서운함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곱씹을수록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분명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

카르넬은 이대로 엘레인과 황제의 사이가 멀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황제와의 화해를 넌지시 이야기한 것이겠지.

“하이고.”

한숨이 더욱 늘어간다.

‘카르넬 네 마음은 잘 알겠지만, 애초에 황제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걸.’

오늘도 찾아갔는데 대화 한번 섞어보질 못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했는지 요 며칠 간은 돌아가라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더라.

“이러다 한숨으로 빚어진 인간이 될지도.”

엘레인은 답답한 숨을 내뱉으며 다 식어버린 찻물을 원샷했다.

하필이면 오늘 티타임 메뉴가 애플티와 마카롱이라서 카르넬과 황제 생각이 더 나는 것 같다.

푸념과 함께 비어버린 찻잔을 내려놓은 엘레인은 잠시 후, 두 주먹을 야무지게 말아 쥐었다.

“좋아. 오늘 목표는 카르넬이랑 화해하기다.”

내가 무슨 아르닐도 아니고. 이대로 계속 회피하기만 해선 답이 없다.

최소한 카르넬에게 네 뜻은 잘 알겠다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래도 우리 다시 한번 같이 헤쳐 나가보자고.

요 며칠간 고민하고 또 다짐한 것들을 그에게 전해야 했다.

“그럼 바로 출발을… 응?”

당장 카르넬을 찾아 이동하려던 엘레인은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것이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은 혹시… 라네즈?

“엘레이이인!”

“역시나.”

저 멀리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라네즈의 목소리에 엘레인은 피식 웃었다.

한동안 우울해할 때. 데이트도 잠시 미뤄두고 열심히 위로해주었던 라네즈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다.

그런 그를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를 다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등 뒤에서 목소리가 훌쩍 튀어나왔다.

“엘레인! 그 소식 들었어?”

“깜짝이야. 아르닐 오빠?”

“으아악! 내가 먼저 알려주려고 했는데에!”

어느새 코앞에 도착한 라네즈가 아깝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엘레인은 기고만장해진 아르닐의 높은 콧대와 라네즈의 좁혀진 미간을 번갈아 보면서 의문을 표했다.

“뭔데? 무슨 소식이기에 둘 다 이렇게 호들갑이야?”

“아, 그러니까 말이지. 이번에 새로운 교단이 하나 개설됐다던데 그게 정령 신앙을 기반으로 한 정령신교라고 하더라고.”

“뭐? 정령신교? 아스터 왕국에선 그런 거 만든다는 이야기 없었는데?”

정령 신앙은 아스터 왕국에서 나온 신앙이다.

그러니 그것을 기반으로 둔 새로운 교단을 만든다면 아스터 국왕인 엘레인과도 필시 이야기가 돼야 했는데….

왜 난 들은 이야기가 없지?

“아스터 왕국에서 만든 건 아닌 것 같아. 거기 대주교가 엘프 왕이랬거든.”

“뭐? 아니, 그 사람이 왜 대주교를….”

“흐음. 슬슬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나.”

흠칫.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엘레인은 어깨를 떨었다.

방에서 절대안정을 취하고 있어야 할 사람의 목소리가 왜 등 뒤에서 들리지?

당혹스러운 건 엘레인뿐만이 아닌지 라네즈와 아르닐도 입을 떡 벌렸다.

“아버지?”

“그렇게 움직여도 되는 거예요?”

“그래.”

“아니, 대체 언제부터…?”

“좀 됐다.”

아. 몸이 회복된 지는 꽤 되었구나.

엘레인은 내심 안도하면서 황제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에 엘레인의 두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잠깐만. 그럼 그동안 투명인간 취급한 게 아니라 단순히 방에 없어서 조용했던 건가?

그냥 나 혼자서 문 앞에서 원맨쇼 한 거라고?

“으…….”

“엘레인? 어디 아픈 건가?”

“네? 아, 아뇨. 하나도 안 아파요.”

수치사할 것 같은 기분에 부르르 몸을 떨고 있던 엘레인은 갑자기 훅 다가오는 황제의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랐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그런지 그의 걱정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황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 낀 라네즈는….

“아, 진짜!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 이보다는 덜 어색하겠다!”

오랜만에 두 부녀가 만났는데 뻘쭘하게 서 있기만 한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라네즈가 빽 소리쳤다.

“…라네즈 형. 그거 이 상황에서 쓰는 말 맞아?”

“아니면 뭐 어때? 대충 뜻만 전달되면 됐지.”

아르닐의 한심하다는 눈빛이 날아들었지만, 라네즈는 당당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엘레인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던 몸을 살짝 풀고는 힐끔 황제를 바라보았다.

“몸이 다 나으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리 심각한 건 아니었다.”

“?”

아니, 마나를 운용하려고 할 때마다 피를 토하는 게 안 심각한 거면. 진짜 심각한 건 대체 얼마나 고어틱한 거야?

엘레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대답에 나름 면역이 있던 터라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

엘레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황제를 쳐다보았다.

고맙다니….

마치 의견 충돌로 싸우기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입술을 벙긋거리고 있으니.

황제의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보다 정령신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데. 따로 궁금한 게 있나?”

쑥스러운 것인지 황제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에 뒤늦게 제정신을 차린 엘레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신교에 대해서 알고 있으세요?”

“그래. 정령신교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나이니, 모를 수가 없지.”

“네에? 아버지가요?”

“아니, 갑자기 왜 정령신교를 만드신 건데요?”

예상치 못한 내용에 엘레인을 비롯한 쌍둥이 황자들이 경악했다.

황제는 그런 그들을 한번 쭉 둘러보고는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신성제국 황태자를 성황으로 올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지.”

“엑! 그것 때문에 종교를 새로 만들었다고요?”

“새로 만든 게 아니다. 원래 있던 걸 체계화시켰을 뿐. 거기에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이지.”

라네즈의 외침에 황제는 별것 아닌 투로 이야기했다.

누가 보면 새로운 교단을 신설하는 것이 진짜 쉬운 일인 줄로 착각할 법한. 그런 여상한 말투였다.

“…그나저나 카르넬 그 녀석. 하마터면 성황이 되지 못할 뻔했을 정도로 위기였던 거예요? 아버지가 도움을 줄 정도로?”

“뒤늦게 끼어든 성황 후보를 밀어주는 선대주교들이 있어서 말이다. 태양신교와 풍요신교는 당연히 황태자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한 표가 문제였지.”

“주신교의 빈자리가 문제였군요.”

“그래. 그 자리를 정령신교가 대신하면서 다음 대의 성황은 황태자로 확정됐다.”

한마디로 투표 조작을 했다는 말을 참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에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라네즈가 감탄사를 내뱉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오. 잘됐네요. 그런데 아버지가 웬일로 그 녀석을 도와줬대요?”

어? 그러게?

둘이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대?

엘레인의 의문 어린 시선이 황제에게 닿았는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녀석과는 화해했다. 오해도 풀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그, 그 말은 설마. 결혼을 허락해주는 거예요?”

“오올—?”

엘레인이 희망에 가득 찬 눈을 반짝거리며 외치자, 라네즈와 아르닐이 뒤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쓸데없이 커다란 목소리에 황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쌍둥이 황자들을 노려보았다.

‘적당히 해라. 아까 말은 안 했지만, 난 아직 그날 느꼈던 배신감을 잊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시선에 쌍둥이 황자들은 재빨리 입을 닫았다.

그렇게 얄미운 아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황제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엘레인을 바라보며 못 말린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래. 허락해주마.”

“아빠!”

엘레인은 비명과 같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황제의 품에 꼭 안겼다.

따스한 온기.

간만에 딸내미를 꽉 안아준 황제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보는 사람들이 다 흡족할 정도로 훈훈한 그 광경에.

라네즈와 아르닐은 코를 쓱 문지르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

방안에 콕 박힌 카르넬은 멍하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간 몇 번이고 엘레인과 화해하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이상하게 털끝 하나 마주칠 수 없었다.

단순히 우연이 아님을 잘 알기에 카르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엘레인의 상처가 그만큼 컸다는 걸 뜻하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문제인데 신성제국으로 간 황제가 여태 깜깜무소식이어서 카르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해만이라도 풀어야 하는데…. 음?”

타다다닷!

카르넬은 복도에서 들려오는 달음박질 소리에 문 쪽을 쳐다보았다.

황궁에서 마음껏 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텐데. 뭐지?

카르넬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문득 발소리가 문 앞에서 뚝 끊기더니 굳게 닫힌 문이 벌컥 열렸다.

“카르넬!”

“엘레인?”

“대박! 완전 대박이야! 아빠가 네 문제 다 해결해줬대!”

“어…?”

엘레인은 카르넬의 손을 잡고 방방 뛰면서 활짝 웃었다.

반면, 급작스런 상황 변화에 놀란 카르넬이 얼빠진 얼굴로 가만히 서 있자, 엘레인의 움직임도 덩달아 멈췄다.

“뭐야. 아직 못 들었구나? 이번에 아빠가 교단 하나 만들어내서 투표권을 얻어냈는데 3:2로 다음 대 성황은 너로 확정됐대!”

“오…. 와, 정말? 장인어른께서 날 위해 그런 일을 해주셨단 말이야?”

“응! 진짜 대박이지?”

카르넬은 싸웠던 것도 잊었는지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엘레인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런 그와 문득 눈을 똑바로 마주친 엘레인은 카르넬의 손을 꼭 그러쥐며 말했다.

“그리고 아빠가 너랑 결혼하는 거 허락해줬어!”

“뭐? 그게 정말이야?”

“응! 진짜 잘 된 거 있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카르넬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하는 걸 허락해줬다는 건 그 과정에서 엘레인과 황제가 서로 화해했다는 걸 뜻하니까.

“정말 잘 됐다. 우리도. 너랑 장인어른도.”

“응. 이제 진짜 행복할 일만 남았어….”

엘레인과 카르넬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고난 끝에 찾아온 행복을 마음껏 만끽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그래서 더욱 값진 결과.

해피엔딩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 보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과 함께.

서로를 꼭 끌어안은 두 사람은 그 어떤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

모든 갈등이 해결되면서 황궁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아니, 아주 잠깐의 평화가 왔다가 갔을 뿐.

지금 황궁은 정령신교가 생긴 여파로 때아닌 일복이 터졌다.

“폐하. 푸른 마탑주와 적색 마탑주가 자기네들 마탑에도 신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폐하! 드워프 왕이 공물로 황금으로 된 정령 여왕 조각상을 진상했…!”

“엘프들이 황녀님이 살고 계신 황궁을 보고 싶다며 성지순례를…!”

그냥 아주 난리가 났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치는 일들에 황궁이 잠시 마비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일에 간접적으로 진득하게 엮이게 되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엘레인은 신전 건축 건으로 플로스 영지에 잠시 소환됐다.

“아무래도 황녀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영지니까요. 여기에 우리 교단의 본단을 세우고 싶습니다.”

정령신교의 대주교이자 엘프 왕 리벨루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집무실 내부가 환해졌다.

덕분에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찡그린 엘레인은 영 떨떠름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야 상관은 없는데…. 진짜 왜 대주교가 되셨어요?”

왕으로서 할 일도 많을 텐데 왜 대주교가 되었느냐?

그런 의미가 내포된 물음에 리벨루스는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정령 여왕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니까요. 기회가 왔을 때 냉큼 잡았을 뿐입니다.”

“…네? 이거 정령들을 위한 신교 아니었어요? 여기서 갑자기 정령 여왕이 왜 나와요?”

“아아. 여태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군요? 하지만 교단은 ‘신’을 모시는 단체입니다. 당연히 ‘신격’을 지닌 자를 주체로 모셔야죠. 하하하.”

“하하하는 무슨! 지금 웃을 때에요? 아이고 두야…!”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모시는 교단이 생겨났을 때의 심정이란…!

엘레인이 수치스러움에 시뻘게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자 정령신교의 주교 이엘로와 이단심문관 레무스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 진짜. 기분이 더 울적해졌어!

…뭐, 이렇듯. 엘레인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창피함을 느끼고 있을 때.

카르넬은 오르칼과 황궁의 으슥한 곳에서 비밀리에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대단하군. 설마 네가 진짜 아버지를 설득할 줄은 몰랐다.”

“그렇습니까.”

오르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략 90퍼센트 확률로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보다 짠 점수에 카르넬이 어색하게 뺨을 긁적이자, 오르칼이 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다음 대의 성황으로 확정되었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묻는 말인데…. 너는 어떤 군주가 될 거지?”

진지한 질문에 카르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르칼도 카르넬과 같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될 인물이다.

그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면 소중한 여동생과 평생 함께할 동반자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미리 가늠하기 위함일까.

잠시 매끈한 턱을 매만지던 카르넬은 결심한 듯 오르칼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저는…. 모두를 위한 군주가 되고 싶습니다.”

“모두를 위한 군주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거지?”

“엘레인에게서 많이 배운 게 있어서 말입니다. 이제 곧 수인들의 약탈로 몸살을 앓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들이 매번 침입을 시도하는 곳에 플로스 영지를 모델로 한 마을을 짓고 수인들과 진지하게 교류를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오호라. 난폭한 북부의 수인들을 교화시킬 셈인가?”

“교화시킨다기보다는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거죠.”

카르넬은 그리 말하면서 씩 웃어주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군주이지 않습니까?

마치 그렇게 묻는 듯한 그의 미소에 오르칼은 요것 봐라? 하는 얼굴로 카르넬을 쳐다보았다.

“…흠. 오랜 골칫덩이를 포용하는 자세라. 뭐, 모두를 위한 군주가 되기 위한 첫발치고는 나쁘지 않군.”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너….”

“예.”

오르칼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엘레인한테 프러포즈는 했나?”

“네?”

카르넬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엘레인이 프러포즈 비스무리한 걸 하긴 했지만, 카르넬은 아직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카르넬이 진땀을 삐질 흘리고 있자, 오르칼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좋은 군주는 되겠는데 좋은 남편감은 아직이로군.”

“…….”

“참고로 미리 말해두겠는데. 너 그거 제대로 안 하면 평생 간다.”

덧붙이는 그의 말에 카르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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