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3화 (413/417)

413화

“그래서? 넌 누군데?”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누가 여기에 데려왔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라네즈와 아르닐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리안을 노려보았다.

그에 리안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자. 카론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뭐야. 경이 데려왔어?”

“예. 참고로 그분은 플로스 영지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리안 씨입니다. 황녀님의 직속 시녀인 앨리스 양과 오랫동안 교제를 이어나가고 계신 분이기도 하고. 저희들 중 유일하게 프러포즈 경험자입니다.”

“오호라? 그래서 여기에 데려온 거구나.”

“흐음. 저 사람이 그 시녀한테 프러포즈를 했단 말이지…?”

라네즈와 아르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리안을 뜯어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황자들이 저를 살펴보는 눈빛에 잔뜩 긴장했는지.

리안은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거 영 못 미더운데. 고작 내 눈빛에 쫄고 말이야. 진짜로 프러포즈해 본 거 맞아?”

“내 말이. 근데 프러포즈에 성공했으면 결혼도 한 건가? 엘레인의 직속 시녀가 결혼했다면 그 소식을 우리가 모를 리가 없는데.”

쌍둥이 황자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리안을 노려보았다.

저놈 저거 설마. 프러포즈했다는 거 구라 아니야?

그런 의미가 노골적으로 담긴 눈빛에 리안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그게. 프러포즈는 했지만, 아직 장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해서 결혼은 못 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시녀 백작가의 금지옥엽이었지?”

“흠. 너도 고생이 많네.”

의심으로 가득했던 시선이 급 측은하게 바뀌었다.

토닥토닥.

라네즈가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자, 리안은 괜스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화, 황송합니다.”

“황송할 것까지야….”

“됐고. 아까 손들고 껴들던데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없으면 그쪽은 어떻게 프러포즈했는지 대충 썰 풀어도 좋고.”

라네즈의 말을 끊은 아르닐은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물었다.

조금 전에 그는 분명히 프러포즈를 했다고 말했다.

장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건 어쨌든 앨리스가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거니까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시선을 집중시키자, 리안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좋은 생각이 났다기보다는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엥?”

리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황자들을 힐끔 보며 지적했다.

그 당돌한 모습에 라네즈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고 아르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 설마 오르칼 형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제 아르닐은 자기가 제안한 방법에 하자가 있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앞서 오르칼이 콕 집어서 지적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 심기 불편한 목소리에 리안은 혹여나 오해할까 싶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다, 당연히 1황자 전하의 말씀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제가 보기에 여러분들은 오로지 프러포즈하는 방법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 말은 우리가 프러포즈 대상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야?”

“예.”

리안의 말에 쌍둥이 황자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획기적인 방법으로 프러포즈라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그걸 받았을 때 상대방이 얼마나 기뻐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라면 이렇게 한다.’가 아니라 ‘나라면 그녀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러포즈라는 건 연인과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하는, 서로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오로지 상대방을 위한 것들로 채워나가야 하죠.”

“상대방이 받고 싶어 하는 걸로 준비하라는 거야?”

“예.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어도 되고. 말이어도 됩니다. 말 한마디에 천 골드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카론을 쳐다보았다.

앗. 나 설마 칭찬받은 건가.

유일하게 정상적인 프러포즈 방법을 제시했던 카론이 쑥스럽다는 듯이 목 뒤를 쓸었다.

“흐음. 엘레인이 좋아하는 거라….”

“참고로 저는 앨리스에게 직접 케이크 만들어주었습니다. 앨리스는 튤립을 좋아해서 튤립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줬죠. 반지는 케이크의 초를 모두 불고 난 후에 주었습니다.”

“나름 무난한 것 같긴 한데…. 달리 말하면 너무 평범한 방법이지 않아?”

“중요한 건 그 청혼으로 인해 상대방이 얼마나 기뻐하느냐이니까요.”

라고 프러포즈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리안이 말했다.

이미 성공한 전적이 있어서 태클을 걸 수도 없고 말이야.

아르닐이 침음을 흘리고 있을 때 라네즈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예쁜 드레스를 왕창 사주는 건 어때? 저번에 보니까 엘레인 백화점에서 옷 왕창 사 왔던데. 아예 드레스 샵 하나를 선물로 주면서 프러포즈하는 거지!”

“그 정도는 엘레인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럴 바에는 이미 왕창 산 드레스 샵을 선물하는 것보다 진귀한 보석들이 잔뜩 깔린 주얼리 샵을 선물로 주는 게 더 낫지.”

“엘레인은 보석 싫어하거든? 다른 영애들이랑 다르게 액세서리 별로 안 달고 다니는 거 보면 모르냐?”

“그, 그건 모르는 일이지! 엘레인이 액세서리를 싫어하면 나한테 꽃반지는 주지도 않았을 거라고!”

아르닐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엘레인이 준 꽃반지를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실로 오래간만의 꽃반지 자랑에 라네즈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언제 적 건데 아직도. 어휴…. 아, 물론 엘레인이 준 반지는 나도 방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먼지 한 톨 안 들어가게 진공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상자 안에 모셔두고 있지.”

“뭐 어쩌라고. 안 물어봤거든?”

“자자, 그만.”

라네즈와 아르닐이 또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여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카르넬이 중재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리안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리안 씨. 덕분에 어떻게 프러포즈해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라네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아르닐이 그의 뺨을 손으로 밀었다.

리안은 우스꽝스럽게 구겨진 라네즈의 모습에 작게 웃고는 카르넬과 시선을 마주쳤다.

“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프러포즈할 생각인데?”

라네즈의 질문에 카르넬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건….”

***

황자들과 카론 경. 그리고 리안의 도움을 통해 프러포즈 계획을 세운 카르넬은 며칠 뒤. 플로스 영지에서 돌아온 엘레인과 함께 저녁 외출에 나섰다.

“진짜 난리도 아니었어. 완전 장관이 따로 없었다니까?”

밖으로 나온 엘레인은 카르넬과 함께 손잡고 걸으며 플로스 영지에서 있었던 일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안 그래도 엘레인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던 엘프들이 작정하고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나니 그 추진력이 아주 무시무시했다.

대표적으로 정령신교에 한자리씩 차지한 엘프들이 플로스 영지에 우르르 이전한 것이 그러했고.

하루도 안 돼서 그들이 살 집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러했다.

“그 엘프 왕이라는 사람 대단하네. 어떻게 하루 만에 집을 지었지?”

카르넬은 담백한 쿠키를 엘레인의 입에 물려주며 물었다.

오독오독. 맛있는 쿠키를 단번에 먹어치운 엘레인은 저 또한 공감이 간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대단하지? 그 사람, 정령 능력도 뛰어난데 마법 실력까지 상당하거든. 듣기로는 그 두 가지 능력을 적절하게 섞어서 엘프들이 살 나무집을 단번에 키울 수 있었던 거라더라고.”

“그런 사람이 대주교라니. 든든하네.”

“…광신도 기질이 있는 것만 빼면 참 든든하지.”

호들갑을 떨며 설명하던 엘레인은 문득 플로스 영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허허롭게 웃었다.

신상을 세워야 한다며 10시간 동안이나 붙잡으면서 엘레인을 그렸던 것 하며.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정령 여왕의 숭고한 희생과 위대함을 알려야 한다며 설득하던 엘프들.

그리고 그런 엘프들을 바라보며 말리기는커녕 흐뭇하게 웃고 있던 엘프 왕까지….

예전에 마운틴 마마를 부르짖으며 난리를 쳤던 그란디스 왕국민들과 비슷한 언뜻 광기가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엘레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아. 다름이 아니고. 좋은 가게를 찾아서.”

“좋은 가게? 예전에 같이 갔던 레스토랑이랑은 다른 곳이야?”

“으응. 괜찮은 곳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카르넬은 빙그레 웃으며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마침 도착했네. 들어가 볼까?”

“엥? 불이 꺼져 있는데?”

엘레인은 흠칫. 몸을 굳히며 어둑어둑한 가게를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과 동화되어 완전히 어둠에 집어삼켜진 가게는 누가 봐도 영업이 끝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카르넬은 그리 말하면서 먼저 가게 문을 밀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그의 말대로.

놀랍게도 가게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엘레인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열린 문과 카르넬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테이블 위에 있는 촛불이 확 켜지면서, 엘레인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로막았다.

“세상에….”

멍하니 가게 안을 둘러보던 엘레인은 카르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대체 뭐야?

마치 그렇게 묻는 듯. 떨리는 그녀의 눈빛에 카르넬은 참으로 어여쁘게도 웃었다.

“엘레인 너를 위해 만든 낙원.”

“미쳤어….”

엘레인은 멍하니 읊조렸다.

그리고 다시 외쳤다.

“여긴 정말 미쳤어!”

엘레인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가게 내부를 다시 바라보았다.

촛불로 인해 은은하게 밝혀진 테이블 위에는 카르넬의 말 대로 지상낙원이 펼쳐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맛있는 마카롱들과 각종 맛있는 디저트들.

거기에 귀여운 하트 모양의 케이크까지.

하나같이 엘레인의 취향을 고려해서 만든 낙원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당사자는 감동으로 두 눈을 글썽거렸다.

“날 위해 준비한 거야…?”

“응. 한동안 플로스 영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고생했잖아.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들 위주로 준비해 봤는데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고작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나 완전 감동 먹었잖아!”

여기 이거 보이지?

감동으로 물든 이 초롱초롱한 내 눈동자가!

엘레인은 제 눈을 가리키며 그리 말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발에 뭔가가 걸리는데? 이게 뭐지?”

엘레인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을 스치는 무언가에 움찔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에 카르넬이 씨익 웃더니 돌연, 손뼉을 두어 번 쳤다.

그러자 한 차례 더 밝아지는 내부.

화아악—!

“뭐야. 갑자기 불이…. 응?”

갑자기 바닥에 있는 촛불에 불이 들어오면서 어두운 아래쪽이 훤히 밝혀졌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에 엘레인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바닥에 깔린 새빨간 장미 꽃잎.

향기로운 꽃들을 울타리 삼아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그 끝에 보이는 동그랗게 비어있는 공간까지.

“카르넬 이건….”

“이쪽으로 걸어가 볼까?”

“어? 아, 응.”

엘레인은 얼떨결에 카르넬과 함께 손을 맞잡고 디저트와 꽃들로 둘러싸인 길을 걸었다.

덕분에 걷는 내내 꿈속을 노니는 것 같았다.

향기로운 향기와 달콤한 냄새.

그 향에 취해버릴 것 같은 기분에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자, 어느새 텅 빈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크흠.”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내뱉은 카르넬은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더니 진중한 얼굴로 엘레인을 바라보았다.

“엘레인. 우린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대로 된 청혼을 하고 싶었어.”

“카르넬….”

엘레인은 양손으로 입을 가로막으며 두 눈을 글썽거렸다.

카르넬은 그런 엘레인에게 커플링과 똑같은 색의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내밀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와 평생을 함께해주겠어?”

“으응….”

결과는 누구나 예상했듯이.

엘레인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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