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42)

3화

“그게 무엇이지?” 

이든의 질문에 아이는 들고 있던 회중시계의 뚜껑을 닫았다.

“약속하신 시간 끝나써요.”

“무엇이냐고 물었다.”

음습한 목소리로 재차 물어도 아이는 울음보를 터트리지 않았다.

그 대신 말간 얼굴로 이든의 안주머니에 도로 회중시계를 넣어 주며 물었다.

“어때요. 이제 저를 살려 쥬실 이유가 생기신 거 같아요?”

“내 질문에 대답부터…….”

그때. 예고도 없이 불쑥, 작은 손이 다시 침입해 왔다.

“!”

나뭇잎만 한 손의 크기만큼 아주 적은 온기였다. 하지만 이든의 모든 움직임을 멈춰 놓기에 충분했다.

툭.

코트 안, 주머니 속으로 회중시계가 묵직하게 떨어졌다.

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며 굳어 버렸다.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이름 모를 낯선 위험이 본능적으로 아이를 경계하게끔 만들었다.

“다시는 허락 없이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땅콩.”

그가 제법 쌀쌀하게 손을 쳐냈다.

보통의 아이라면 빼액 울어 버릴 텐데, 이상도 하지.

아이는 도리어 봄꽃같이 웃었다.

“땅콩 아닌뎨.”

이든이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도 이든을 바라봤다.

반달로 접히는 푸른 눈동자가 따뜻했다.

“제 이름은 루나임미다.”

“……물어본 적 없다.”

“성은 따로 없써요. 그러니까 그냥 루나라고 부르시면 돼요.”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참으로 성가신 인간이로구나.

그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딱히 아이의 말을 끊지 않았다.

“보통 이럴 땐 자기소개를 해 쥬지 않나요?”

“…….”

“뭐, 괜챠나요. 백쟉밈이 누구신지는 이미 알고 이쓰니까. 저는 예지몽을 꾸는 아가자냐요.”

“어련할까.”

이든이 콧방귀를 뀌든 말든, 아이는 해맑게 말을 이었다.

“라이언하튜. 이든 라이언하튜 백쟉밈, 맞쬬?”

아이가 웃었다. 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이 미소가 만개한 하얗고 말간 얼굴 위로 흩어졌다.

이든은 홀린 듯이 그림 같은 순간을 눈에 담았다.

“……누가 멋대로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지.”

“치. 다 안 된뎨.”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토라진 모습도 그리 보기 싫지는 않았다.

정말이지 이상한 아이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곧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마차 창 너머로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리챠드가 보였다.

똑똑.

짧은 노크 후, 마차 문이 열렸다.

“각하.”

“본론만 말해.”

“근처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습니다. 아마 저 아이를 찾는 듯한데…….”

리챠드가 도중에 말을 멈추고 아이를 힐끔 바라봤다. 덩달아 이든의 시선도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입맛이 없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묘비명에 새겨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한데 말입니다, 각하.”

리챠드가 불쑥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표정이 어찌 그러십니까?”

“뭐?”

“어찌 그리 답지 않게 웃고 계시는지.”

내가 언제.

―라고 물으려던 이든은 저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잽싸게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다.”

“전 지극히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만.”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살벌한 목소리는 끝맺어지지 않은 채로 허공에 흩어졌다. 그 대신 리챠드의 손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맡겨졌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어라.

리챠드의 눈이 드물게 커졌다.

‘정말 이대로 돌려보내실 생각이신 건가.’

평소 그였다면 뒤탈 없게끔 조용히 처리했거나 겁박을 했을 터였다.

한데 이리도 순순히 보내다니.

무수한 질문이 주렁주렁 맺힌 눈빛에도 이든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 대신 덧붙인 말은,

“밤 쥐를 붙여 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으니.”

오히려 아이에 관한 리챠드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하게 만들었다.

“안뇽히 계세요, 하튜 백쟉밈.”

야무지게 인사를 하고 나서는 아이에게서 풍겨 오는 풀 향기가 점점 멀어졌다.

이든은 한참 동안 그 작은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루나.’

저도 모르게 속으로 이름을 따라 읊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었다.

* * *

나는 리챠드를 따라 프리마 숲을 가로질러 보육원에 도착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아가님.”

리챠드는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어딘가에서 밤새 잠복하리라 예상했다.

‘일단 급한 위기는 넘겼네.’

세계관 최강 악당, 이든과의 독대로 바짝 긴장했던 탓일까.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루나!”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평소 껌딱지처럼 나를 쫄쫄 쫓아다니는 노아였다.

“어디 다친 거야?”

그가 헐레벌떡 달려와 물었다.

“다친 곳 없써.”

“어디 봐.”

“괜찮댜니까.”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짐짓 심각해진 표정을 보니 다시금 내게 닥친 상황이 실감 났다.

노아 딜러인.

‘그래, 네가 있었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의 소꿉친구이며, 내 목숨이 위험해지는 이유이기도 한 그.

내가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단지 하나였다.

‘노아의 첫사랑이라서.’

뇌리에 소설 속 한 구절이 선명히 떠올랐다.

<세계는 그가 불행하길 원했다.

그렇기에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죽어야만 했다.>

뜨거웠던 머릿속이 차게 식었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도.

그리고 죽기 전 읽었던 소설 속에 빙의했다는 사실에도…….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빠르게 의연해진 건, 어쩌면 생사의 기로 앞에 선 자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루나, 미안해. 소꿉놀이 준비 도와주지 못해서.”

“오늘은 수녀밈 따라서 신전에 다녀오는 날이였쟈나.”

“그래도.”

“안 다치고 무사히 왔으니 됐찌.”

“프리마 숲은 혼자 다니기 위험해서 그렇지. 혹시라도 길들여지지 않은 수인족들과 마주쳤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

노아는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옷자락을 쥐었다.

“어쨌든 앞으로 소꿉놀이 준비는 나랑 같이 해. 알았지?”

“응.”

“약속.”

우리는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내일 같이 새해 소원 빌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우응. 다 같이 햅삐 뉴이어 하기로 했찌.”

에덴 제국은 매해 마지막 날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자정, 가족들과 불꽃놀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전통이 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게 내 사망 무대가 될 줄은 몰랐지.’

주인공 노아가 6살이 되는 해, 그가 지내던 보육원에 큰 화재가 발생한다.

생존자는 노아, 단 한 명.

즉, 나는 물론 우리 보육원 식구들이 모두 죽는다는 말이다.

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는 아니다.

‘모두 그 남자의 소행이지.’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루나, 걱정하지 마. 오늘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내가 앞으로 지켜 줄게.”

“응, 우린 아무 일 없을 꼬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니까.

두려운 마음을 애써 밀어내며 계획을 정리했다.

‘화재의 원인은 불꽃놀이 폭죽의 결함이야. 그러니 일단 폭죽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어디 가, 루나?”

“따라와, 뇨아.”

그를 데리고 계단으로 향했다.

보육원의 막내인 나는 종종 심부름을 해 본 덕에 보육원 비품이 지하 창고에 보관된다는 걸 알았다.

노아와 함께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다.

수녀님은 다른 아이들의 잠자리를 준비해 주기 위해 위층에 계셨다.

창고 문은 따로 잠겨 있지 않았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폭죽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여기따.”

나는 곧장 폭죽의 개수를 셌다.

‘총 다섯 개.’

보육원의 재정이 넉넉지 않아 값비싼 폭죽을 이것밖에 구입하지 못한 듯했다.

‘다행이야.’

빨대처럼 기다랗게 생긴 전통 폭죽은 어린애의 힘으로도 쉽게 부러질 만큼 가늘고 얇았다.

“갑자기 폭죽은 왜?”

뚝.

노아의 질문에 다짜고짜 폭죽 끝을 양손으로 쥐고 부러트렸다.

“루나!”

진심으로 놀란 그의 두 눈이 토끼처럼 커다래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두 번째 폭죽을 부러트렸다.

뚝.

이어서 나머지 폭죽도 부러트리려는데, 노아가 내 손을 붙잡아 말렸다.

“루나, 이거로 장난치면 안 돼. 이미 부러진 것들은…….”

노아는 바닥에 떨어진 망가진 폭죽을 주우며 말을 이었다.

“수녀님께는 내가 실수로 부러트렸다고 할게. 그러니까 그거 얼른 이리 줘.”

바보같이 착한 노아. 왜 자기가 대신 혼난다는 거야.

나는 손에 쥔 폭죽을 등 뒤로 숨기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시러.”

내 완강함에 결국 노아가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이유라도 말해 줘. 그래야지 수녀님이 물으실 때 네 편을 들어 주지.”

“오늘 큰불이 날 꼬야.”

“혹시 또 톰이 너한테 이상한 말로 겁준 거야?”

노아의 눈썹이 보기 드물게 구겨졌다. 톰은 노아와 달리 여자애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일삼는 보육원의 악동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이게 불량품이라서 불이 나는 고야.”

뚝.

나는 세 번째 폭죽을 마저 부러트리고서 네 번째 폭죽을 집었다.

동시에 노아는 마지막 남은 다섯 번째 폭죽을 무사히 사수했다.

“불량품인 건 어떻게 안 건데?”

“누가 알려 줘써.”

“누가?”

“비밀.”

“……그러기야?”

어깨를 으쓱하며 침묵을 지켰다. 지금은 말을 아껴야 할 때이기에 굳이 계획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루나, 이건 싸구려 폭죽이 아니라 코노미야 상단 거라서 마법으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나보다 한 뼘이 더 큰 노아는 마지막 폭죽을 내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로 올려놓았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하나는 남겨 둘 생각이었으니까.

“진짜 말 안 해 줄 거야?”

“모를?”

“너한테 이게 불량품이라고 거짓말한 사람.”

“응.”

“나 조금 서운해지려고 해.”

그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뇨아가 먼저 내 말 안 믿어 줬짜나.”

“…….”

조금 아차 싶었던 걸까.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미안.”

“이제 내 말 믿어 줄 꼬야?”

그가 대답 대신, 선반에 올려 두었던 마지막 폭죽을 도로 꺼내 내게 건넸다.

“그건 괜차냐.”

내 거절에 노아의 보랏빛 동공이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흔들렸다.

그런 표정 지으니 괜히 미안해지지만, 어쩔 수 없어.

‘화재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까.’

그래야지 이든에게 내 말이 모두 진실이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

‘단, 원작과 달리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만들 거야.’

폭죽을 한 개만 남겨 놓고 모두 부러트린 것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함이었다.

“대신 부탁이 하나 이써.”

“뭔데?”

다시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만약에 펑! 하고 불이 나서 누군가 다치면 뇨아가 치료해 죠야 뎨.”

“내가 무슨 수로?”

“손을 이로케 딱 잡구서, 아프지 않게 해 달라구 소원을 빌어 봐.”

나는 소설에서 봤던 구절을 떠올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노아가 스무 살이 되던 날. 이런 식으로 힘을 각성했었지, 아마?’

생각을 되짚어가며 그에게 시범을 보이는데,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있지, 루나.”

“응?”

무심결에 올려다본 노아의 뺨이 붉었다.

‘잠깐만, 이거…….’

그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

누가 봐도 첫사랑 모먼트였다.

독자의 입장이었을 때는 참 좋아했던 장면이었는데.

정해진 운명을 알고 있으니 마냥 설렐 수가 없었다. 내게는 ‘주인공의 첫사랑’이라는 꼬리표가 사망 플래그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어쩌지?’

당황스러워할 즈음, 타이밍 좋게 창고 구석 쪽에서 무언가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토로로로록.

작고 동그란 물체들이 내 발 앞으로 굴러왔다.

“……도토리?”

특이한 모양이었다.

나는 도토리가 굴러온 곳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 끝에는 다람쥐 한 마리가 양 뺨을 감싸 쥐고서 입을 떡 벌린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온 거지?”

노아가 아쉬운 표정을 지우며 다람쥐를 경계했다.

“창문이 열려 있썻나 봐.”

“물러서, 내가 잡을게.”

그는 수납장에 놓인 물맷돌을 슬쩍 꺼내 들었다.

수인족과의 오랜 전쟁 역사 때문에 에덴 제국에서는 동물들에 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한 탓이었다.

때려잡으려는 걸까?

그가 물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

휙휙 돌아가는 돌덩이를 본 다람쥐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발견했다.

‘어?’

도토리의 옆면에 새겨진 귀족 가문의 인장.

그것은 분명 눈에 익은 것이었다.

‘저건…….’

수십 번도 더 봤던 것이기에 금방 다람쥐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든이 보낸 밤 쥐야!’

나는 곧바로 노아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려, 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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