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깊어진 밤, 라이언하트의 집무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이든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비스 곳곳에 붙여 둔 세작이 올린 보고서였다.
<주요 귀족 세력 파악 완료>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보고서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불면증도 불면증이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건 따로 있었다.
[아빠가 안아 쥬세요.]
[아빠가 해 주는 건 다 죠아요.]
[고마슴미다, 아빠!]
고 조그마한 것이 재잘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얗고 말간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이름 모를 생소한 기분이 자꾸만 몰려왔다.
‘뭐야, 대체?’
그는 인상을 구겼다.
이내 밀려드는 잡생각을 막기 위해 일부러 보고서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에덴 제국의 귀족 세력은 세 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던버르레 공작가와 리아노 공작가, 그리고 다페 남작가. 각 세 가문은 수도 비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복수에 대한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세 가문은 모두 수도 중앙의 대신전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신전이라…….
이든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곳이 조금 난관이겠군.’
주말마다 평민에게도 개방되는 일반 신전과 달리, 대신전은 출입 절차부터가 까다롭다.
이방인 출신인 그가 대신전의 정식 출입권을 얻으려면 사교계에서 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여러모로 귀찮아지겠어.’
솔직히 말해 사교계에 발을 들이기 싫었다.
그곳은 온갖 탐욕에 물든 인간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까.
특히나 여인들이 그랬다.
‘어떻게든 환심을 사고자 개수작들을 부리겠지.’
수도 비스에 오기 전, 지방의 귀족 여인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던 일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이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곳, 비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릇 인간이란 더 가진 자일수록 더 큰 욕망을 갖고 있는 법이니까.
‘아주 가관들이겠어.’
콧대 높은 귀족가 여인들이 타조 깃털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음 같아서는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치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건 드물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좀 전의 그것뿐이었지.”
이든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깡충깡충 뛸 때마다 대롱대롱 흔들리던 양 갈래 머리를 한 아이.
‘붉은 리본이 제법 어울리더군.’
그는 당시의 촉감을 상상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꽤 부드러웠다.
움직임이 제법 흥미롭기도 했고.
이내 이든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허공에 주먹질을 시작했다.
휙, 휙휙.
그 모습은 마치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본능에 이끌려서 냥냥 펀치를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마터면 본능적으로 굴 뻔했지만, 잘 참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만져 봐야겠…….’
아, 젠장.
이든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느 틈에 또 내 머릿속을 장악해 버린 거지?”
초대한 적도 없는데, 자꾸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말입니까?”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이든은 리챠드가 집무실에 들어온 사실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
이든이 급히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언제 왔지?”
“방금요.”
“노크하고 들어오라 했을 텐데.”
보고서가 거꾸로 들려 있었다.
저런, 꽤나 당황하셨군.
“늘 그렇듯 세 번, 정중히 했습니다만.”
리챠드는 올라갈 듯 말 듯, 씰룩거리는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 종일 피하신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피하긴 뭘 피한다고.”
“오전의 아빠 수업 이후로 각하께서 아가님을 묘하게 피하시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제가 오해한 겁니까?”
“명백한 착각이다.”
“아하, 전 또 각하께서 부끄러움을 타셔서 그러신 줄 알았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든의 손에 들린 보고서가 콰직, 구겨졌다.
“시끄럽다, 리챠드.”
“그럼 각하께서 아무렇지도 않으시니, 곧장 다음 아빠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번 아빠 수업 영상의 제목은, 아가님의 굿밤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 주는 스윗한 아빠—로 지어 봤습니다만. 마음에 드십니까?”
리챠드가 녹화용 마도구를 손수 이든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 * *
“여기가 이든 라이언하튜의 침실인 곤가?”
리챠드가 안내해 준 방에 홀로 남겨진 나는 침대 아래에 쪼그려 앉아 방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진쨔 넓다.”
한창 두리번거리는 내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드니 이든이 서 있었다.
기척도 못 느꼈는데, 언제 왔데.
주인 허락도 없이 구경하다 들킨 것 같아서 괜히 찔리는 마음에 대뜸 먼저 말을 붙였다.
“오셔써요?”
“…….”
“…….”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는 말없이 마도구를 책상 위에 고정시켰다.
역시 화가 난 걸까.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 감사함미다, 백쟉밈.”
멈칫.
잠시 주춤거린 그가 입을 열었다.
“뭘.”
“여관을 빌려주셨다묜서요.”
간밤의 일은 솔직히 감동이었다.
이든은 나와 리챠드를 먼저 저택에 돌려보내고서, 입양 결정 통보를 위해 홀로 수녀님을 찾아갔다.
이후 그의 행보는 내 예상을 깨트려 놨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든은 근처 여관을 통째로 빌려 아무 조건 없이 수녀님께 빌려줬다.
“앞으로 쓸데없는 일로 징징거리며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이니 착각하지 마라.”
그가 쌀쌀맞은 대답을 내놓았다.
‘태도를 보니까 확실히 나를 위해서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됐건, 그 덕분에 화재로 망가진 건물이 복구될 때까지 노아와 보육원 식구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감사함미다.”
“…….”
마도구 설치를 끝낸 이든이 자신의 침대를 가리켰다.
“누워.”
“너무 높은……. 스스로 척척척 어린이가 되겠슴미다.”
습관적으로 그에게 팔을 벌리려던 나는 요상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서 말을 정정했다.
한 번만 더 안아 달라고 했다가는 큰일 낼 표정이네.
어쩔 수 없이 혼자 힘으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읏챠.”
시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한참 낑낑거린 끝에 침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됐따!”
뿌듯한 마음에 휙, 돌아봤다.
그는 침대 맞은편 책상에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언제부터 보고 있었데.
괜히 민망해져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백쟉밈은 코코 안 하세요?”
“먼저 자도 되니 신경 쓰지 말고 누워 있어.”
해야 할 일이 많나 보네.
책상 위에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녜. 조용히 이쓸게요.”
나는 얌전히 침대에 누웠다.
달칵.
그가 마도구를 작동시켰다.
킹사이즈 침대에 나 홀로 덩그러니 누워 있으려니 영 민망했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맹수와 같은 잠자리를 써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일까.
천장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말똥말똥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힐끔 이든을 훔쳐봤다.
그는 그 자리 그대로 그림처럼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정말 열심이네.’
복수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했던가.
그 표현이 찰떡이라 생각했다.
‘트라우마가 생긴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린다더니, 저러다가 오늘 밤도 샐 모양인가 봐.’
눈 밑의 그늘이 평탄치 않은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저러다 몸 상할라.’
그 후로도 한참 그에 관한 걱정 비스무레한 것을 하다가 그렇게 잠에 든 것 같다.
* * *
이든이 눈의 피로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을 땐, 어느덧 시곗바늘은 새벽 세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두 시간쯤 잘 수 있겠군.’
그만큼이라도 자면 다행이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불면증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는 도무지가 적응되질 않았다.
‘수면제를 더 늘려야 하나.’
그는 비스듬히 걸치고 있던 금테 안경을 벗고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상기해 낸 이든은 보고 있던 서류를 대충 정리하고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근새근.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들었네.’
조용히 일어나 침대로 다가갔다.
아이는 인형처럼 잠들어 있었다.
뽈록 나온 올챙이배가 일정한 속도로 오르내렸다.
“…….”
물끄러미 그 모습을 관찰하던 이든은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길게 빠진 손가락이 콕,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의 말랑말랑한 볼살 위로 안착했다.
“썩 나쁘지 않은 감촉이군.”
이윽고 그가 손을 옮겼다.
‘마음에 들었나.’
그가 아침에 묶어 준 대로 아이의 양 갈래 머리는 붉은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손이 하루 내내 아른거렸던 하얀 머리칼에 닿았다.
‘역시 부드러워.’
기억대로였다.
그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아마 인간화 변신이 풀려 있었더라면, 그의 꼬리가 미친 듯이 흔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차 싶었다.
“크흠…….”
지켜보는 이가 없는데도 괜히 헛기침을 한 그는 다급히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덜컥거리는 소리만 날 뿐. 문은 열릴 생각이 없었다.
“?”
다시 힘주어 문고리를 잡아당겨 봐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덜컥, 덜컥, 덜컥.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든이 리챠드를 호출하기 위해 설렁줄을 당기려 했다.
한데, 침대맡 설렁줄 옆에 익숙한 필체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러실 줄 알고 미리 잠가 두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열어 드릴 테니, 밤새 꼭 함께 계셔야 합니다.
―ps. 마법 장치로 잠겼으니 혹여나 힘으로 열 생각은 마세요,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