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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19/142)

19화

나는 투지를 불태우는 눈으로 이든을 올려다봤다.

“일단 백쟉밈의 수족 중에서 말솜씨가 좋고 수다쟁이인 자를 물색해 주세요.”

“적합한 자가 있긴 하다만. 이유가 뭐지?”

“로얄 클럽에도 나름 그들만의 규칙이 있자냐요. 첫 번째 규칙이 몬지는 당연히 아시고 계실 테구.”

“소속 멤버들은 반드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 있는 귀족일 것.”

지독히도 권력주의자들다운 자격 요건이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츄르 사업 건으로 던버르레 공작가에서 서신을 낸 걸 보면, 충분히 우리의 입지가 증명된 셈이니까.

“츄릅츄릅병 덕분에 첫 번째는 걱정할 필요가 없눈 거 같아요. 문졔는 따로 있죠.”

그곳은 오직 추천제로 가입할 수 있었다.

이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침묵했다.

“…….”

“혹쉬 백쟉밈의 사람 중에서 추천받을 만한 사이는 없겠쬬?”

“있을 리가.”

혹여나 하는 기대감으로 물어봤으나, 역시나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물어본 질문이기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뭐, 괜찮아.

추천을 받을 자가 없으면, 추천해 줄 자를 만들어 내면 되니까.

“그래서 수다쟁이를 물색해 달라고 부탁드린 거에여.”

“무슨 소문을 퍼트리면 되지?”

우리 백작님은 한마디만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셔서 좋다니까.

나는 은밀한 비밀을 얘기하는 사람처럼 작게 속삭였다.

“츄릅츄릅병의 치료제를 만든 사람이 고작 네 살짜리 아가라는 소문이여.”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

나는 지금 그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든의 명령을 받잡고 사교계에서 스파이로 활동 중인 공작새 수인, 피헨느.

그녀 정도의 말솜씨라면 믿고 맡길 만했다.

한 나흘이면 되려나?

“기왕이면 제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함께 말해도 죠아요. 사람들은 소재가 자극적일수록 더 열씨미 떠들어 댈 테니까여.”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겠군.”

우리는 낚싯대를 던졌으니,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 * *

나흘이 걸릴 거란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든이 피헨느에게 명령을 내린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은 날.

리챠드가 내 방 문을 노크했다.

“아가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뭐, 벌써?

이제 막 저녁을 먹고 부른 배를 통통 두들기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어디서 온 손님이에여?”

“기르신 신문사에서 아기님께 단독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체크메이트!

내 계획대로 월척이 걸렸다.

신문은 제국의 모든 눈이 주시하고 있는 매체이다.

그중 기르신 신문은 로얄 클럽에 속한 대부분의 고위 귀족들이 읽는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다.

다시 말해 황족부터 시작해서 고위 귀족, 제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귀족들까지 나에 대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 번 나온다고 해서 엄청난 영향력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어찌 됐건 명성을 떨칠 수 있으니 좋은 기회였다.

“츄르 사업에 대한 인터뷰여?”

“그것을 포함해서 보육원 화재 사건도 함께 다루고 싶다고 합니다만…….”

리챠드가 말을 하다 말고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부분에 관해 아가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뇨, 갠챠나요.”

괜찮다 못해 오히려 환영하는 바였다.

거기까지 언급해야 우리를 로얄 클럽에 추천해 줄 만한 자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곧바로 이든이 떠올랐다.

우리의 계획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다는 소식을 얼른 전해 주고 싶었다.

“백쟉밈도 알고 계셔요?”

“이미 방 앞에 와 계십니다.”

리챠드가 문 옆으로 비켜서자, 그제야 그 옆으로 빼꼼 튀어나온 옷자락이 보였다.

나는 후다닥 이든이 서 있는 복도로 달려 나갔다.

“안뇽하세요, 백쟉밈.”

“얘기는 전해 들었다. 나도 함께 인터뷰하고 싶다더군.”

“백쟉밈두요?”

그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동그래진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그가 뒷목을 매만지며 입술을 뻥긋거렸다.

“……간에 사진을 찍는다면서.”

“녜?”

앞부분에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서 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정작 이든은 별안간 복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대답은 리챠드에게서 돌아왔다.

“부녀지간이라는 말이 영 부끄러우셨나 봅니다.”

난 또 뭐라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부끄러움 포인트였다.

나는 앞장서 걷는 이든의 뒤를 후다닥 쫓아갔다.

나름 내 보폭을 배려해 준 건지, 금방 그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르신 신문사의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을 향해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 건 그냥 인터뷰가 아니에오. 귀족들의 세력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검미다.”

“누구와 누구의.”

“코노미야 백쟉과 기르신 남쟉 사이요.”

“그 둘은 던버르레 공작가의 추종 세력들이 아니던가.”

이든이 눈썹을 찌푸렸다.

머지않아 그는 스스로 답을 알아차렸다.

“돈 문제로군.”

“정답임미다. 기르신 남쟉은 코노미야 백쟉을 밀어내고 싶어 해여.”

던버르레 공작가는 돈에 미친 자들이 추종하는 가문이다.

그를 따르는 가신들 중, 가장 욕심이 많은 ‘코노미야 백작’과 야망이 큰 ‘기르신 남작’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자들의 마음을 얻는 건 팬케이크 뒤집는 것처럼 쉬운 법이지.’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기르신 남작이 부관인 코노미야 백작의 자리를 노리는 건가.”

다시 생각해도 이든의 정보망은 꽤 쓸 만한 것 같았다.

“정답임미다.”

“어떤 걸 빌미로?”

물론 내막까지 자세히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지만…….

그런 점은 내가 보완해 줄 수 있으니 문제 되지 않았다.

“보육원 화재 사건으로요. 그때 불이 난 이유가 폭죽 때문이고든요!”

“폭죽이라면 최근 코노미야 백작이 운영하는 상단이 유통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리챠드가 예리하게 치고 들어왔다.

“한 개만 터져서 다행이지, 만약 여러 개가 한꺼번에 터졌더라면 큰일 났을 꼬에요.”

“건수를 잡았으니 시비를 걸겠군.”

“녜. 마쟈요.”

원작에서 언급되길,

‘기르신 남작’은 보육원 화재 사고의 책임을 ‘코노미야 상단의 불량품’으로 몰고 가려 한다.

실제로 원인이 코노미야 상단에서 판매하는 폭죽에 있긴 하지만.

‘코노미야 백작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는 일이지.’

애초에 대신전에서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걸 기르신 쪽에서도 미리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인권’을 운운하며 위선을 떠는 기르신 남작이 코노미야 백작 입장에서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네 계획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쬬. 백쟉밈은 저만 믿으시면 됩미다.”

으흥흥, 사악한 웃음과 함께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흠칫거리며 나를 경계해 봐도 이미 늦었다.

“백쟉밈도 준비되셨죠?”

“……어?”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는 그의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딜 도망가시려고.

* * *

겨울의 해는 짧다.

어느덧 드리운 밤의 그림자를 벽난로의 작은 불씨들이 밀어냈다.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리챠드가 응접실로 들어서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나를 품 안에 안은 이든이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삐걱거리는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뒤늦게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이언하트 백작님. 저희 단독 인터뷰에 응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뭐, 함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테지만요.

중절모를 쓴 중년 사내의 태도는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라이언하트 저택의 집사, 리챠드 시고르자브죵입니다.”

상대가 예의 없음에도 리챠드는 생글생글 웃는 낯을 유지했다.

간만에 집사다운 모습이었다.

“기르신 신문사의 티푸스 기자입니다.”

“저, 저는 사진술사 폴입니다!”

오만한 중절모 사내와 그 옆에 잔뜩 긴장한 청년이 차례대로 인사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나는 이든의 품속에서 고개를 내밀고서 손을 흔들었다.

“안뇽하세요. 루나 라이언하트임미다.”

마지막으로 이든의 차례였는데, 그는 인사를 생략하고 곧장 상석에 가서 앉았다.

“츄르 사업과 보육원 화재 관련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다짜고짜 날아든 질문에 티푸스는 크흠,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아시다시피 츄르 사업으로 따님께서 여러모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친딸이 아니라고 하던데…….”

중간에 말을 멈춘 티푸스가 위아래로 나를 훑어봤다.

뭐야, 이 예의 말아먹은 눈빛은?

마치 사람을 견적 내는 것 같은, 아주 불쾌한 시선이었다.

“닮지 않은 걸 보니 헛소문은 아니었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다행?”

되묻는 이든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티푸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하, 입양한 자식인데도 애틋하게 여기시는 모양입니다.”

“…….”

“뭐, 그림은 더 좋게 나올 것 같습니다. 부성애를 강조하면 화제가 더 되겠네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락 말락 하는 티푸스가 불편했다.

아마 이든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 때문에 저리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작위를 가졌다지만, ‘이방인 출신’이라는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니 은연중에 깔보는 거겠지.

저 노총각 아저씨가 진짜…….

참다 참다 내가 한마디를 하려고 한 순간, 이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늘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인터뷰를 하고 다닌 건가?”

“예?”

“한마디만 더 개소리를 지껄였다간 세 치 혀를 뽑아 버려 주지.”

살벌한 경고에 응접실은 찬물을 뿌린 듯이 조용해졌다.

‘화가 난 걸까?’

나를 품 안에 안은 그의 팔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슬며시 그를 올려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떠한 온기도 없이 살기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결례를 범했군요.”

티푸스가 뒤늦게 사색이 된 얼굴로 주절주절 사과를 늘어놓았다.

그제야 이든을 둘러싼 무시무시한 ―이를테면, 그의 검에 죽어 나간 시체만 모아도 티르산의 높이는 될 것이다, 같은― 소문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사죄의 의미로 인터뷰 사례금을 두둑이 챙겨 드릴 터이니, 부디 인터뷰는 무르지 마시고…….”

“돈은 필요 없다. 단, 다른 조건을 걸지.”

“무엇입니까.”

혹여나 목숨값을 구할까 두려웠던 티푸스는 손끝을 발발 떨며 물었다.

나는 이든이 애먼 소리를 하기 전에 그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자연스럽게 이든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아까 제가 말했던 거 기억나시죠?”

소곤소곤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하니, 이든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화를 식히는 듯, 잠시 크게 숨을 내뱉은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와 내 딸의 사진을 1면에 싣도록.”

“아!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 사진술사 폴이 두 분의 초상을 잘 찍어 드릴 겁니다.”

다시 안색이 밝아진 티푸스가 폴의 옆구리를 툭, 쳤다.

“마, 맡겨만 주세요. 제가 처음으로 맡은 기사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앳된 얼굴의 폴이 사진용 마도구를 후다닥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사진 촬영 준비를 마친 폴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두 분,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 주세요!”

다정한 포즈?

별로 어렵지 않은 주문이라 생각하며, 이든의 가슴팍에 토실토실한 볼을 기대었다.

“!”

그러자 이든이 나를 안은 채로 제자리에서 껑충! 뛰었다.

뭐야. 갑자기 왜……?

덩달아 놀란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녜?”

“잠……깐만.”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뒷걸음질 치는데, 그 삐걱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러니까 마치, ‘양말을 신어서 고장 나 버린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그 바보스러운 걸음걸이가 왠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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