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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142)

20화

사진용 마도구를 손에 든 폴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선 이든을 바라보았다.

“백작님, 너무 굳어 계신 것 같습니다. 살짝 웃어 보셔요.”

“……이렇게?”

이든이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 올렸다.

간신히 올라간 입술이 파르르르 떨렸다.

“지금 눈만 웃고 계십니다. 아가님처럼 활짝 웃어 주셔야지 사진이 더 화목하게 잘 나올 거예요.”

“이렇게 하라는 건가.”

이든이 눈에 힘을 줘 부릅떴다.

……저기요, 사자님.

그건 웃는 표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찢어 죽이겠다는 표정 같은데요.

아까의 일 때문에 그런지 폴은 덜컥 겁을 먹고 굳어 버렸다.

“얼른 안 찍고 뭐 하나? 지금 최선을 다해 웃고 있는데.”

“지…… 지금 표정으로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폴이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사진용 마도구를 작동시켰다.

찰칵.

마도구에서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온 사진을 확인해 본 폴이 진땀을 흘렸다.

“죄, 죄송합니다. 사진이 흔들려서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번거롭게 하는군.”

“……저, 백작님.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조, 조금만 더 화목한 포즈를 취해 주십사…….”

다시 똑같은 표정을 짓는 이든에게 폴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충분히 화목했던 거 아닌가?”

누가 봐도 맹수와 비상식량 같았거든요.

뻔뻔한 이든 탓에 불쌍한 폴은 진땀을 흘렸다.

“오늘 한 인터뷰와 함께 신년제 관련 기사도 실릴 거라서요. 조금만 노력해 주십사……. 아, 정 어려우시면 다른 사진의 포즈를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폴이 냉큼 가방에서 참고할 만한 사진들을 꺼내 보였다.

다정하게 서로 안고 있는 것부터, 머리 위에 하트를 만드는 포즈, 볼에 뽀뽀하는 것 외에도 여러 포즈가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살펴보는 이든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런 포즈는 어떠십니까?”

“남사스럽기 그지없군.”

이든이 포옹하고 있는 사진을 뒤집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요즘 비스에서는 이런 사진도 유행입니다.”

“모양 망가지기 딱 좋겠네. 탈락.”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으며 결사반대를 외치는가 하면,

“이건요?”

“…….”

“이건 마음에 드십니까?”

“건강에 해로울 포즈다. 기각.”

“……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핑계까지 대 가며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이러다가 별것도 아닌 거로 밤을 새울 것 같았다.

‘뭐, 나야 원래 계획했던 거지만.’

오늘 기르신 신문사에 내가 니드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과 화재와 관련된 숨겨진 내막이 있음을 넌지시 알릴 생각이었다.

‘물론 핵심만 쏙 빼먹고서.’

상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솔깃한 정보였으니 어떻게든 우리 쪽과 접촉을 하려 할 것이다.

‘분명 코노미야 쪽에서 미끼를 물 거야.’

그렇게 된다면 기르신과 코노미야 둘 중, 먼저 반응을 보이는 쪽에게 딜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폴. 우리가 지금 놀러 왔어?”

자꾸만 인터뷰 시간이 지체되자, 보다 못한 티푸스가 나섰다.

“죄, 죄송합니다!”

“쯧, 얼른 인터뷰 준비나 해.”

폴이 다급하게 가죽 가방을 정리하다가 통째로 와르르 쏟아 버리고 말았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튀어나온 물건들을 수습하기 바빴다.

“죄송해요! 얼른 치우겠습니다!”

“초짜 티 좀 내지 말라니까.”

티푸스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를 하는 모습이 왠지 애잔했다.

괜스레 폴이 짠하게 느껴져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고사리처럼 작은 손이 폴의 손등 위에 닿았다.

“괜챠나요. 천천히 해여.”

“……고, 고맙습니다, 아기님.”

위로하듯 토닥이니 그가 감동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쩐지 그의 볼이 붉다.

음, 뜻밖의 아군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큼, 크흐으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충 정리가 되자 티푸스는 준비한 질문들을 하나둘 던졌다.

보육원 생활은 어땠는지, 언제부터 천재성이 돋보였는지, 츄릅츄릅병 치료제는 어쩌다 발견했는지 등등.

나는 적당히 준비한 답변들을 내놓았다.

“하면…… 그 화재 사건 말입니다.”

올 것이 왔네.

티푸스가 슬그머니 본론을 꺼내놓았다.

“혹 이상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듣기로는 그때 화재 원인이 코노미야 상단의 폭죽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던데…….”

은근슬쩍 나를 떠보려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흥, 누가 쉽게 원하는 걸 내줄 줄 알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이든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백쟉밈……. 나 졸려요.”

어리광 피우는 아이처럼 눈을 비비며 그의 다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이것은 사전에 그와 약속한 신호였다.

[제가 졸린다고 신호를 보내면 저를 데리고 응접실을 빠져나와 주셔야 해요.]

다행히 이든은 신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선 그가 나를 안아 들었다.

“……화재 관련 자세한 취재는 주말로 미루도록 하지.”

“예? 하지만…….”

티푸스가 다급히 붙잡았지만, 이든과 나는 이미 응접실을 나서고 있었다.

* * *

기르신 신문사의 사람들이 왔다가 간 그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리챠드를 찾아갔다.

“리챠드, 신문 와써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따라 툐리가 늦네여.”

늘 재깍재깍 시간 맞춰 오던 토리가 지각을 하다니.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리챠드가 빙긋 웃으며 내게 새로 사 온 샌드위치를 건넸다.

“제가 오늘은 특별히 신문을 많이 구매해 오라고 요청해서 늦는 모양입니다. 출출하실 테니 드세요.”

“감사함미다, 리챠드.”

“별말씀을요.”

“그런데 신문은 왜 많이 사여?”

한 부면 충분하지 않나?

나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질문했다.

“생각해 보니 아가님과 각하의 가족 초상화 한 점이 없다는 걸 깨달았지 뭡니까.”

“벽에 걸어 두시려구여?”

으레 화목한 귀족가에서는 때마다 가족 초상화를 찍어 벽을 장식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 있었다.

‘그런데 이든이 그런 낯간지러운 걸 허락했을 줄이야.’

막상 또, 표정을 보니 리챠드의 독단적인 결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마저 먹어 치우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어제 자 신문을 집었다.

“이거 읽어듀 돼요?”

“얼마든지요. 방에 가져가셔서 편히 읽으셔도 됩니다. 토리 씨가 도착하면 아가님께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녜. 안뇽히 계세요, 리챠드.”

나는 부른 배를 이끌고 도로 방으로 돌아왔다.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워 어제 날짜의 신문을 펼쳐 들었다.

‘어디 보자, 또 써먹을 에피소드가 뭐가 있으려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테니 정보 수집은 생존에 중요한 요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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