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142)

25화

나는 코노미야 백작저에 오기 전, 이든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

[이번에 코노미야 백작과 만나서 로얄 클럽 추천서 말고도 또 딜해야 하는 게 이써여.]

[그게 뭐지?]

[우리, 얼마 뒤에 열리는 신년제 요리 대회에 참가해야 해여.]

[인간들의 헛짓거리에 내가 왜 동참해야 하지? 설마 그것도 예지몽인가?]

[정답임미다! 백쟉밈께 꼭 필요한 걸 얻게 되실 겁미다.]

[내게 필요한 거?]

[직접 보면 아실 꼬에요. 으흥흥.]

이든 역시 기억이 났나 보다.

미묘하게 달라진 그의 표정을 본 코노미야 백작이 관심을 보였다.

“라이언하트가도 이번 대회에 참여할 생각인가?”

“무엇 하러.”

“내 듣기로 폐하께서 ‘엘코어’를 상으로 거셨다고 들었는데. 자네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구먼.”

“!”

이든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엘코어’는 이든에게 있어 유품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그걸 왜…….”

“왜냐니, 이 사람아. 수인족과 대전쟁 끝에 에덴 대륙을 쟁취한 지 벌써 30주년이 아닌가. 폐하께서도 이를 기리시는 거겠지.”

파리하게 떨리는 입술을 보며 코노미야가 코웃음을 쳤다.

“이제야 자네도 욕심이 생긴 모양이로군. 별거 아닌 목걸이 같아 보여도 꽤 의미 있는 걸세. 무려 수인족들의 우두머리 이빨로 만든 거거든.”

“우두머리의 이빨…….”

“그만한 전리품이면 장식용으로도 가치도 있고, 폐하께서 직접 치하하시는 것이니 명예롭기도 하지.”

이든의 안색이 빠르게 굳어 갔다.

에덴 제국에서는 최상급 전리품으로 분류되는 엘코어.

수인족 우두머리 사자의 이빨을 뽑아 목걸이의 형태로 가공한 것이었다.

제 아비의 피로 만들어진 전리품이 인간들의 손에서 놀아나는 꼴은 그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겠지.

이 소설은 정말이지 잔인했다.

‘어린 이든에게는 제 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겨우 제 목숨 하나 부지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엘코어’ 회수는 큰 의미일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일 테고.

‘실제로 이든의 복수 계획 중에서 엘코어를 회수하는 것도 있었지.’

나는 그걸 앞당겨 줄 생각이다.

‘이번 에피소드로 당신이 짜 놓은 복수의 판도를 뒤엎을 거야.’

이든이 계획했던 복수 시간보다 훨씬 앞당기고, 더 강렬히 사교계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이번 일이 성공하게 되면 내 생존 확률도 급격히 오를지도 모른다.

이론상 세계관 최강자인 이든에게 점수를 얻게 되는 것이니까.

“엘코어는 우리 꼬에요.”

이든을 대신해서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코노미야 백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로 옮겨졌다.

“당돌한 아이로구나.”

“진짜인뎨.”

코노미야가 콧방귀를 꼈다.

그는 내 포부를 그저 어린아이의 헛소리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럴 줄 알았다.

매년 그 대회의 우승은 코노미야 백작가에서 차지했으니까.

‘물론 다 저 속 시커먼 할배가 뒤에서 손을 쓴 거지만.’

황실배 신년제 요리 대회에서 사용되는 재료는 모두 ‘코노미야 상단’에서 보급되는 것이다.

본인이 질 좋은 재료를 독점해 버리니, 당연지사 승리는 정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요리사가 날고 기어도 질 나쁜 재료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플랜 A를 실행하기 위해 해맑은 얼굴을 장착했다.

“아, 마따! 여기는 폭죽 없써요?”

“무어라?”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평온했던 코노미야의 낯이 살짝 일그러졌다.

“코노미야 폭죽은 아무 때나 퍼엉! 해서 위험하다구.”

“감히 누가 그러더냐?”

“신문사 아조씨가 그랬써요.”

이 질문만을 기다린 나는 냉큼 대답했다.

곧장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코노미야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등 위로 핏줄이 불끈 솟았다.

“기르신 신문사 놈들이?”

“녜. 그래서 보육원에 불이 난 거 아니냐구 물어봐써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

“다음에 알려 주기로 해찌요.”

“…….”

코노미야가 하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소파에 느슨히 기댔다.

‘자, 이제 딜을 하려고 하겠지?’

표정을 보니 거의 다 넘어왔다.

이제 곧 그가 내 입을 막기 위해 거래를 하려 들 것이다.

나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후음, 언제든지 불러도 좋다고 하셨는뎨. 언제가 좋으려나…….”

나는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공손한 협박에 턱수염을 쓰다듬던 손이 멈추었다.

‘어떤 제안을 할지, 한번 봐 볼까?’

코노미야가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딸랑.

곧이어 그의 보좌관이 금괴를 들고 등장했다.

‘돈?’

헛웃음도 안 나왔다.

‘꼭 자기 같은 생각만 하네.’

돈이면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배금주의다운 회유법이었다.

흥, 돈이라면 우리도 많다고.

번쩍이는 황금을 보고도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직접 금괴를 내밀었다.

“더 필요하면 말하거라.”

“뇌물이에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그저 신문에 나온 귀여운 유명 인사와 친하게 지내고 싶을 뿐.”

코노미야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내게는 아들밖에 없어서 말이야. 딸아이가 갖고 싶었거든.”

이 능구렁이 같은 할배.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면서 뒤로는 입 막으시겠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호락호락한 아기는 아니라서 말이야.

나는 방긋 웃으며 금을 밀어냈다.

“원래 뇌물로 입을 막으려면 상대방에게 없는 걸 쥬는 거랬어여.”

“네가 어려서 이 황금 더미의 가치를 아직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불쑥.

튀어나온 커다란 손이 나와 코노미야 사이를 갈라놓았다.

길게 뻗어진 탄탄한 팔뚝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이든이 나를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까 뭐라 했지.”

“녜?”

이든이 내 정수리에 손을 척! 올려놓고서,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아.빠.가 한 말, 기억하나?”

……아빠?

너무나도 어색한 호칭에 흠칫 몸이 떨렸다.

그 말을 한 당사자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 참, 이럴 때 보면 은근 허술하다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든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정신 차리세요, 백작님!

뒤늦게 가출했던 영혼이 돌아온 이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아빠 돈 많다.”

여전히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다만, 어쨌든 코노미야에게 지기 싫어서 덩달아 목에 빳빳이 힘을 줬다.

“마쟈, 우리 아빠 짱 부자임미다. 콩알 유지할 돈은 이따구 해써요.”

“그래. 이런 금괴 없이도 콩알쯤은 어렵지 않지.”

이든이 만족스럽다는 듯 내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우리는 기세등등한 자세로 나란히 코노미야를 바라봤다.

“……화목한 부녀로군.”

코노미야가 금괴를 내민 손을 거뒀다.

돈으로는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럼 무엇으로 거래를 하자는 거지?”

“이번 요리 대회에서 재료를 코노미야 상단에게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선택하길 원한다.”

이든이 미리 작전 회의 때 내가 말한 대로 대답했다.

“그건 곤란하네. 자네에게만 특혜를 줄 순 없는 노릇이니.”

“그롬 모두에게 똑같이 하면 되쟈냐요. 착한 사람은 친구랑 나누는 거래써요.”

“하하, 재밌구나.”

어른의 대화에 끼어든 내게 코노미야는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이것 역시 예상했지.’

황실배 요리 대회의 재료 공급을 포기한다면, 그의 가문이 우승할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에 코노미야가 절대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황실에서 우승자에게 거는 상금과 상품은 명예로울뿐더러, 늘 값비싼 것들이었으니까.

미리 짐작했던 전개였기에 동요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그럼 이건 오때요?”

“일단 말해 보거라.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 보고 결정하겠다.”

“백쟉밈이 나가시는 모임 같은 게 있다던뎨.”

“…….”

멈칫.

코노미야의 눈매가 일순 날카로워졌다.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름이 모였더라……. 로얄 클럽이었나?”

“어디서 주워들은 건지는 몰라도, 아무나 감히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이든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나설 때가 아니었다.

나는 이든의 주먹 위에 손을 얹어 그를 진정시켰다.

“알고 있써요. 추천제라면서요?”

“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백쟉밈도 아무나에요?”

내 돌직구에 코노미야의 흰 눈썹이 평정을 잃고 치켜떠졌다.

“무어라?”

“전 코노미야 백쟉밈이 어어어어엄청 위대한 분이셔서, 백쟉밈이 추천서를 써 주시면 로얄 클럽에도 충분히 가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뎨…….”

말하는 도중 순수한 척,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코노미야 백쟉밈이 추천을 해 주셔도 가입 못 하는 거면, 백쟉밈도 아무나이셨녜.”

어때. 자존심 상하지?

아니나 다를까, 코노미야의 콧수염이 거친 숨을 뱉을 때마다 푸드덕거리며 흩날렸다.

역시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직빵이라니까.

“누가 그러더냐.”

“아니여써요?”

“내 추천서 한 장이면 제국의 누구든 그날로 당장 로얄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정말여? 기르신 남쟉밈은 그런 거 못 해 주시던뎨.”

“지금 나를 그따위 남작과 비교하는 것이냐?”

코노미야의 언성이 높아졌다.

좋았어, 이제 내 손바닥 안이다.

나는 신난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뛰었다.

“와아! 그럼 코노미야 백쟉밈이 로얄 클럽 추천서를 써 주시면 되게따.”

“…….”

뒤늦게 자신이 휘말렸음을 깨달은 코노미야가 소파 손잡이를 콱, 쥐었다.

내 속내를 가늠해 보려는 듯, 뱀 같은 눈동자가 빠르게 나를 위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뭐, 그래 봤자 이미 늦었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여. 막 나쁜 제안을 아닐걸요?”

솔직히 추천서 하나 써 주는 것쯤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딱히 금전적으로 손해가 생기는 것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가 망설이는 것은 그저, 근본 모를 이방인을 직접 들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일 터.

하지만 겨우 종이 한 장으로 제 약점을 지울 수 있으니, 이 값싼 거래를 제 발로 찰 수 있겠어?

‘뭐, 그건 차차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하고……. 굳이 이곳까지 온 내 두 번째 목표도 슬슬 이뤄 볼까?’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코노미야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백쟉님, 오빠는 어디에 이써요? 아들이 이따구 했쟈나요.”

또 다시 예상치 못한 화제 전환에 당황할 법도 한데 잠시 멈칫할 뿐, 차분한 어조는 변함없었다.

“그 아이는 지금 수업을 받고 있지.”

“같이 놀고 시퍼요.”

“쓸모 있는 차기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게 많다.”

암묵적인 거절이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네.’

코노미야는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예습을 하고 왔거든.’

아직까지도 내 머리통에서 손을 뗄 줄 모르는 이든을 보며 으흥흥, 웃음을 흘렸다.

여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말했다.

“치. 그럼 밥 다 먹었으니까, 신문사 아조씨 보러 가야게따.”

코노미야 백작님, 이제 어떡하실래요?

제가 공갈과 협박에는 도가 튼 아기인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