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142)

26화

코노미야 백작은 내 화술에 완전히 말려들었다.

그는 결국 내게 하녀를 붙여 주었고, 나는 하녀의 안내를 받아 백작가의 검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노미야 백작가의 건방진 도련님과 마주하게 됐다.

멀뚱멀뚱.

기다란 목검을 든 남자아이의 시선이 삐딱하게 기울었다.

나를 한참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날 불러낸 게, 저거야?”

“저거라는 말은 실례입니다, 도련님. 이분은 라이언하트 백작가에서 오신 아기 영애님이십니다.”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하녀가 엄격한 말투로 그에게 지적했다.

“지금은 예절 수업 시간이 아니라, 검술 수업 시간이야.”

“각하께서 식사에 초대하신 손님들입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의 보고는 제가 맡을 예정이고요.”

아이의 입술이 질끈 깨물렸다.

그는 깊게 숨을 내쉬더니 하얗게 질린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무례를 범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영애.”

검을 등 뒤로 가린 그가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예를 표했다.

‘다섯 살짜리치고 제법인걸?’

나는 치마 양 끝을 살짝 들어 올리는 귀족식 인사 대신, 천진난만하게 손을 붕붕 흔들었다.

“안뇽, 나는 루나 라이언하트야.”

“몬크…… 몬크 코노미야입니다.”

당연지사 그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몬크 코노미야 영식.

장차 코노미야 백작의 후계를 이을 이 아이는 비유하자면 활화산 같은 존재였다.

‘당장에라도 터질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활화산.’

몬크는 늘 속안에 뜨거운 용암을 품고 살았다.

그리고 난, 오늘 이 활화산을 코노미야 상담의 폭죽처럼 퍼엉! 하고 터트릴 생각이었다.

“저는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오빠랑 놀고 시포서.”

몬크가 곧바로 발끈했다.

“내가 왜 너의 오ㅃ…….”

“도련님.”

묵직한 부름에 몬크는 잠시 멈칫했다. 그는 매의 시선으로 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하녀를 힐끔 보더니 주먹을 쥐었다.

“제가 왜 영애……님의 오라비라는 겁니까.”

“백쟉님이 나 딸 하고 싶대써.”

“…….”

동그랗게 말린 주먹이 떨렸다.

그 모습마저도 하녀가 기록에 남기고 있었다.

1분 1초도 느슨해지지 않는 감시에 오히려 내 속이 답답했다.

나는 잠자코 참고 있는 바보 같은 몬크를 대신해 하녀의 앞으로 오도도 걸어가서 말했다.

“나 오빠랑 단둘이 놀꼬야!”

“안 됩니다, 영애님. 각하께서 혹여나 두 분께서 다치실까 염려하여 제게 지켜보라 명하셨습니다.”

거짓말.

‘그냥 아들이 제 통제 밖으로 벗어나는 게 싫은 거면서.’

몬크는 평생을 제 아비의 감시와 통제 아래에 살았다는 설정의 캐릭터였다.

‘으휴, 불쌍한 놈. 그러니까 속이 화 덩어리일 수밖에 없지.’

나는 꼼짝 않는 하녀를 보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꼭꼭 숨어라 할 꼰데.”

“방해되지 않게 지켜보겠습니다.”

“아빠에게 이를 꼬야.”

“그래도 각하의 명을 어길 순 없습니다.”

오호.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고 하녀를 째려봤다.

“그럼 신문사 아조씨한테 갈래. 하녀가 그러라구 했따구 백쟉님한테 일러야지.”

“여, 영애님.”

처음으로 하녀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나 몽쿠 오빠랑 단둘이 놀 꼬야.”

결국, 하녀를 물리고서 몬크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양팔을 번쩍 들어 만세 하며, 수련장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악당을 무찔렀따!”

몬크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정면으로 마주친 다갈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너 뭐야.”

“왜 이제는 영애님이라구 안 불러 죠?”

“내 말에 대답이나 해.”

다섯 살 주제에, 겁나 까칠하네.

나는 잔뜩 날이 선 그를 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 마음 넓은 누님께서 딱 한 번만 봐준다. 넌 앞으로 써먹을 일이 많을 테니까.’

대답에 앞서 몬크의 옷자락을 슬쩍 쥐었다. 그러자 그가 움찔 몸을 떤다.

“오빠랑 놀구 시포서.”

다시 몬크의 몸이 크게 떨렸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대로 굳은 그를 잡아당겼다.

“나 집 구경시켜 죠.”

“그런 거라면 나보다는 하녀들을 불러오…….”

“시로. 하녀들 말구. 오빠한테 받을 꼬야.”

“왜 하필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는 계속해서 하녀가 나간 쪽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가만있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초조한 듯 보였다.

“그야 오빠가 여기 두 번째 짱이자냐! 백쟉님의 아들이니까.”

“내가……?”

재차 확인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우응! 오빠는 누가 뭐래도 백쟉님의 아들이야!”

토리의 도토리를 닮은 갈색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음, 반응을 보니 85% 넘어왔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곧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가?”

“왜 나를 각하의 친아들인 것처럼 대하는 거냐고. 나는 입양된 양자인데. 가짜일 뿐이야.”

몬크는 종잇장처럼 구겨진 표정으로 기어코 제 상처를 뱉어 냈다.

돈 많은 백작가의 영식이지만, 하녀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입양아.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들을 사람으로 대하기보다는 ‘도구’로 여기는 아비라는 인간.

‘어린애가 삐뚤어지기에 딱 좋은 조건이야.’

미래는 빤했다.

20년 후, 작위를 물려받은 몬크가 어떻게 될지는.

‘지 애비랑 똑같은 놈이 되지.’

아니 그보다 더한 놈이.

원작에 나오길, 상처 속에서 자란 몬크는 보육원 출신인 주인공 노아를 핍박한다.

주변 귀족들에게 선동질까지 하니, 그야말로 최악 중에 최악으로 자라난다.

‘그러니까 이건, 일석사조다.’

1.노아에게 빚진 은혜를 갚는 일이자

2.한 영혼이 재활용이 불가한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는 일이며,

3.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빌드업!

4.게다가 내 충실한 심복까지 만들어 놓을 기회란 말씀.

이런 좋은 기회를 지나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 어린애잖아.’

몬크는 잘못이 없다.

그가 다섯 살인 지금 시점은 아직 쓰레기로 타락하기 전이다.

몹쓸 괴물 아비가 앞으로 괴물로 만들어 낼, 아직은 평범한 아들.

아직 괴물이 되지 않았으니, 내가 바로잡아 줘야지.

시궁창 속에 살든가.

스스로 시궁창이 되든가.

어떤 삶이 되든, 아이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아이가 엇나가기 전에 부모의 탈을 쓴 악마에게서 그를 구해 주고자 한다.

“나두, 입양됐는걸.”

“…….”

“진짜 딸, 가짜 딸 그런 건 없써. 나는 그냥 루나일 뿐이고, 그냥 아빠 딸일 뿐이야.”

작은 등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빠도 그냥 몽쿠 오빠고 그냥 백쟉님 아들일 뿐이야.”

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을 말.

평생 그 말 하나를 해 준 이가 없어 엇나가게 될 이의 등을 작게 두들겨 줬다.

“우리 잘못 업써.”

“흐…….”

화산이 터져 나왔다.

속안 깊숙이 꾹꾹 눌러 담겨 있던 용암은 뜨거운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렀다.

아이는 저보다 더 작은 아기의 품을 빌려 모든 것을 쏟아 냈다.

“몬크, 나는 그냥 몬크야. 내 잘못은 없어.”

“마쟈. 아이에게 잘못은 업써.”

내가 해 준 것은 고작 그 외로운 등을 이따금씩 토닥여 주는 것뿐.

그는 한참을 엉엉 울었다.

* * *

끝내 모든 것을 쏟아 낸 몬크가 눈물 자국을 지우며 물었다.

“어딜 구경하고 싶은지 말해.”

“우응?”

“네 말대로 나는 백작가에서 두 번째 짱이니까.”

눈이 마주치자 그가 덧붙였다.

“차, 착각하지 마. 그냥 난 이 집의 차기 가주로서 손님에게 소개하는 거뿐이야. 따, 딱히 널 위해선 아니고.”

횡설수설하던 그가 뒤돌아섰다.

‘좋아, 98%.’

마무리 굳히기 작전만 남았다.

“요리사님 보고 시포! 아까 미트볼이 짱 맛있었꼬든.”

“따라와.”

눈가와 코끝이 빨개진 몬크가 앞서 걸었다.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 많은 사용인들을 지나쳤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은 여전했지만, 그는 일부러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극복하는 거야.’

앞서 걷던 몬크가 멈춰 섰다.

“여기야, 부엌.”

그의 등 뒤로 굳게 닫힌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여기에 있구나. 이번 에피소드에서 내 또 다른 조커 카드가 돼 줄 이가.’

나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안에도 구경하고 시포.”

* * *

코노미야 백작저의 주방 안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쁜 인영들 틈에서 남자 하인이 씩씩거리며 어둑한 화구 쪽으로 향했다.

“릴리앙!”

하인의 손에는 본모습을 잃고 찌그러진 프라이팬이 들려 있었다.

그는 불 꺼진 화구 앞에 있는 덩치 큰 여인에게 다짜고짜 프라이팬을 집어 던졌다.

“이게 대체 몇 개째야! 내가 이번에도 또 프라이팬을 망가트리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잖아!”

“…….”

여인은 말없이 제 몸에 맞고 떨어진 프라이팬을 주워 들었다.

“뭐, 뭐야. 그, 그걸로 날 때리기라도 하려고?”

사내가 뒷걸음질치며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공손하게 프라이팬을 내밀었다.

그는 얼떨결에 도로 건네받은 프라이팬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뚫린 입이니까 말이라도 좀 해 보지 그래? 어?”

슬며시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까만 눈동자 위로 시퍼런 빛이 스쳤다.

자기도 모르게 순간 흠칫했던 하인이 언성을 더 높였다.

“너, 너! 내가 눈깔 그렇게 뜨지 말라 해, 했잖아!”

“죄, 죄, 죄송합니다.”

굵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구석에 처박히다시피 있었던 여인이 슬며시 조명 아래로 걸어 나왔다.

햇볕에 그을린 새카만 피부,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졌지만 눈동자만큼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한 고릴라 수인, 릴리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는 도자기 그릇을 해 처먹고, 그제는 화구를 부숴 놓고. 어우! 속 터져.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식충이 같은 놈!”

“죄, 죄송…….”

릴리앙은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각하께서는 대체 왜 저딴 걸 부엌으로 들이신 거야!”

점점 릴리앙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모든 시선이 적이었다.

늘 실수투성이에 사고만 치는 자신을 좋아해 줄 이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수인족 노예로 팔려 온 몸이니, 더더욱 적대적일 수밖에.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여자 하녀가 끼어들었다.

“네가 부엌에서 힘쓸 일이 많다고 힘 좀 쓰는 수인족 노예 하나 들여 달라고 청했잖아.”

“그러니까 하필 왜 저 무식하게 힘만 센 고릴라 수인이냐고.”

“비실대는 것보단 낫지.”

“낫긴 뭐가 나아,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부숴 먹는 것밖에 없는데.”

“하기야,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니까. 네가 그냥 참아.”

하녀가 코웃음 치며 후식 과일을 챙겨 문 쪽으로 향했다.

“참긴 뭘 참아!”

아직 화가 덜 풀린 남자 하인이 씩씩거리며 릴리앙을 쏘아보았다.

“차라리 생겨 먹은 거라도 예쁘면 몰라. 저거, 인간화한 모습 봐. 저건 써먹을 때가 하나도 없다니까?”

릴리앙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맞아.’

정말 자신은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인 것 같았으니까.

귀족가에 팔려 가는 다른 수인 노예처럼 예쁘장하지도 않고, 그렇다 해서 일을 잘 하지도, 말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가장 구석진 곳, 그림자가 음습한 곳으로 뒷걸음질쳤다.

“이, 이런 나를 피, 필요로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야…….”

그녀가 혼자서 중얼거리던 찰나,

쾅! 하고 부엌문이 열렸다. 뒤이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앞으로 사내가 고꾸라져 넘어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였다.

“무, 무, 무슨 일…….”

화들짝 놀란 릴리앙이 고개를 들었다.

중요 부위를 잡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남자 하인 위로 조그마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기?’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짧은 다리로 발차기 자세를 유지한 채로 입을 열었다.

“아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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