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42)

35화

“음식은 포장해 주도록 하지.”

이든이 내려놓은 접시를 도로 들어 올리려고 손을 뻗자, 노아가 포크로 릴까스를 콕! 찍어 낚아 갔다.

“…….”

“…….”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노아는 썰지도 않은 릴까스 덩어리를 와구와구 베어 물었다.

“다, 멍꼬, 가 껌미다.” (다 먹고 갈 겁니다.)

부랴부랴 입 안 가득 채운 릴까스 덕분에 발음이 뭉개졌다.

질 수는 없다는 듯, 이든도 일직선으로 이어진 매끄러운 입술을 어그러트렸다.

눈씨름을 하던 두 남자가 동시에 내 손을 잡으려는 찰나, 잠자코 있던 톰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근데, 땅꼬마. 저 아저씨는 누구야?”

“응?”

톰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드래곤 고기를 보관하고 있는 상자 근처를 알짱거리고 있었다.

‘……누구지?’

눈 아래까지 목도리를 돌돌 말고 온 그는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다가, 이내 슬그머니 상자에 가까이 다가가 섰다.

손에는 의심쩍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방해 공작을 하러 온 자인가?’

나는 단박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나 장사가 잘 되는데 이쯤 안 나와 주면 섭섭할 뻔했어.

딱 봐도 이상한 것을 식재료 보관함에 넣어서 장사를 망치게 할 계획인 것 같았다.

그렇겐 안 되지.

나는 짧은 다리로 그에게 오도도도 달려갔다.

“!”

상대가 눈치채고 뒤를 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정의의 발차기를 이미 날린 뒤였으니.

“아뵤!”

“크억!”

사내가 신음과 함께 맞은 곳을 부여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뒤따라온 이든이 사내를 일으켜 얼굴을 확인했다.

“……너는?”

안면이 있는 자였다.

여기서 또 볼 줄이야.

* * *

잠시 후, 기절한 남자의 몸수색을 마친 리챠드가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사내가 드래곤 고기 보관함에 쏟으려고 했던 것은 소금이었다.

“하마터면 음식을 다 버릴 뻔했습니다.”

주머니 안에 든 소금은 음식 맛을 망쳐 놓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코노미야 백작이 사주한 짓인가?”

이든이 남자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았다.

개수작을 하려 했던 자는 코노미야 저택에서 시비가 붙었던 남자 시종이었다.

절대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코노미야가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꾸몄을 리가 없으니까.

“개인적인 원한일 꼬에요.”

“개인적 원한?”

“아마 지난번 코노미야 백작저에서 릴리앙 일로 망신당했던 걸 복수하러 온 것 같아여.”

복수라는 단어 때문일까.

답지 않게 눈매가 매서워진 리챠드가 당장이라도 사내를 내다 꽂을 기세로 물었다.

“그럼 저자는 어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기회로 써먹어야져.”

나는 싱긋 웃으며 무어라 리챠드에게 속삭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아무튼, 미리 알아차려서 다행임미다.”

만약 그대로 당했더라면 장사를 중간에 접어야 했을 것이다.

아직 요리 대회 시간 종료까지 40분이나 남았다.

남들보다 40분이나 일찍 철수하면 그만큼 매출에 타격이 있을 터.

톰이 발견해 줘서 천운이었다.

“고마워, 톰.”

“뭐 이런 걸 가지고. 근데, 땅꼬마. 코노미야 백작가랑 상대가 되겠어?”

톰이 시니컬하게 물었다.

그에 관한 대답은 노아가 나서서 했다.

“루나네도 많이 팔리고 있으니까, 해볼 만한 승부일 거야.”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거긴 매년 일등 하는 곳이잖아.”

“열심히 하는 애 앞에서 기운 빠지는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뭘 어쨌다고. 하여튼 노아, 넌 너무 쟤를 감싸고 돈다니까?”

톰과 노아는 한참 티격태격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자신감 있게 준비한 레시피였음에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땀이 배어난 손을 꼼지락거리는데, 등 뒤로 이든의 다리가 툭 닿았다.

“건방진 발언이군.”

어느새인가 내 뒤에 선 이든이 톰을 삐딱하게 내려다봤다.

“누가 누구에게 진다는 거지?”

“하,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아까 보니까 그쪽에 줄이 엄청 길던데…….”

톰은 이든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잘도 말대답을 했다.

“가당치도 않지. 내 딸의 아이디어다. 절대 질 수가 없어.”

“그래, 톰. 가격도 루나네가 더 싸서 경쟁력이 있을 거야.”

이든에 이어서 노아까지 나서서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불쌍한 톰.

괜히 두 남자 사이에 껴서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

“코노미야 백쟉 쪽은 음식을 얼마에 파는뎨?”

노아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질문에 답했다.

“작년이랑 똑같아. 20,000 달란.”

20,000 달란?

누가 돈에 미친 자가 아니랄까 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별안간 이든이 내 어깨에 닿아 있는 노아의 손을 잡아챘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생략해라, 꼬맹이.”

“…….”

또 다시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묘하게 얽혀든 것은.

톰은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다급히 시선을 내게 옮겼다.

“야, 땅꼬마. 어쨌든, 너네도 가격을 더 올려야 하는 거 아냐?”

“아냐, 갠챠냐.”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좋지. 가격이 싸다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니까.”

톰이 어깨를 으쓱하며 남은 릴까스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잘 될 거야, 루나.”

노아가 나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마치 그게 주인공 버프로 축복을 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은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거니까.’

해볼 만한 승부였다.

* * *

보육원 식구들이 돌아간 후로도 우리는 릴까스를 열심히 튀겼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후 요리 대회를 마치니, 참가하는 가문들은 중앙 분수대로 오라는 폐하의 명입니다!”

목청 좋은 기사의 외침이 골목길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때마침 광장 중앙의 커다란 시계탑이 울렸다.

댕, 댕, 댕―.

9시가 되었다.

곧, 요리 대회 결과 발표였다.

“다들 고생 많아써요.”

“아가, 아가님께서 제, 제일 고생이 많으셨죠.”

“릴리앙이 잘 해 준 덕분도 있습니다. 돈통이 두둑한 게 벌써부터 결과가 기대되는군요.”

“그 많던 고기들이 다 나갔네요. 소인은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우리는 제법 두둑해진 돈통을 둘러싸고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모두 다 함께 노력해 준 덕분이었다.

“분명 결과가 좋을 꼬예요. 그쵸, 백쟉밈.”

여태껏 아무 말이 없는 이든에게 물었다.

일순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든은 잠시 머뭇거리며 할 말을 고민하는 듯싶더니 입을 열었다.

“늦기 전에 가도록 하지.”

무뚝뚝한 음성이지만 따뜻했다.

왜일까. 나조차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을 뿐.

“녜, 같이 가요.”

쫄래쫄래 중앙 분수대로 가려 하는데, 이든이 내 앞을 막아섰다.

응?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용건을 직접 묻기 위해 입술을 벌리려는데,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어……?”

그가 나를 제 어깨 위로 앉혔다.

……왜?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굳어 있자,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 보폭에 맞추기에는 시간이 빠듯해서 그런 것뿐이다.”

“그렇지만 어깨 다치셨는뎨…….”

“신경 쓰지 마라. 너 하나 얹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숨이 간질간질했다.

이든은 그저 무표정으로 나를 목말 태웠을 뿐인데, 내 기분은 산들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꽃씨처럼 나풀거렸다.

비스듬히 보이는 그의 얼굴 위로 그늘이 져 있었다.

그걸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림자에도 온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상했다.

‘정말이지 이상한 하루야…….’

이든의 어깨 위에 앉은 채로 점점 메인 광장과 가까워졌다.

우리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 배정된 자리로 향했다.

‘오늘 주요 세도가 삼인방을 다 보겠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무리가 양쪽으로 나눠져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한쪽은 배금주의자들로 똘똘 뭉친 ‘돈버르레 공작가’의 세력이.

다른 한쪽은 작위는 낮아도 검 꽤나 쓴다는 이들이 모인 ‘다페 남작가’의 세력이.

‘그런데 리아노 공작가 사람들은 왜 안 보이는 거지?’

이번 대회의 상품이 ‘엘코어’인 만큼 리아노 공작가는 필히 참가할 가문 중 하나였다.

‘리아노 그자는 명예에 목숨을 건 자니까.’

한데 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리품들 중 ‘명예’를 상징하는 엘코어가 걸린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니.

‘그러고 보니 그놈도 안 보이네.’

대신관 모리스.

그도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황제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에덴 제국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모리스 대신관이었다.

‘그래서 늘 황실의 이름으로 개최된 행사에는 필참 하곤 했는데.’

오늘은 어째서 참여하지 않은 거지?

예상 밖의 전개였다.

혹시 놓친 건가 싶어 둘러봤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이 쌓여 가는데, 때마침 다페 남작이 단상에 나와 외쳤다.

“폐하께서 나오신다!”

노쇠한 황제가 걸어 나왔다.

그러자 광장의 사람들이 일제히 경배했다.

“제국의 온 영광이 당신의 발아래 있습니다.”

우리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나를 잡은 이든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떨림은 나의 의지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반드시 엘코어를 백작님의 품에 안겨 주고 말 거야.’

마침내 단상에 선 황제가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올해는 우리 제국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인, 에덴 지역을 차지한 지 30주년이다.”

“에덴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황제가 주름진 손을 펼치자, 황실 기사단의 수장인 다페 남작이 보석함을 들고 나왔다.

“오, 저게 바로 그 전리품인가.”

“그래. 들은 바로는 저걸 손에 넣으면 그 괴물 같은 수인족 놈들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지?”

“쉿, 조용하게. 누가 들을라.”

“뭐 어떤가. 말이 비밀의 예언인 거지, 모르는 제국민들이 없는데.”

나는 주변에서 오고 가는 대화를 엿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육체의 일부를 떼어 마력을 불어넣으면 마도구로 재탄생된다지.’

대개 그런 식으로 사체를 박제하여 ‘마도구’로 만드는 이유는 ‘본체가 가진 힘이 탐나서’이다.

“그리고 30년간 그걸 제대로 발동시킨 마법사도 없다며?”

“이 사람, 진짜 큰일 날 소리 하네! 말조심 좀 하게나.”

딱 저 둘의 대화대로다.

그런 이유로 대신전에서 엘코어를 만들어 냈지만 결국,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30년을 줄곧 실패했으니 황제도 예언이 거짓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우승자를 위한 상품으로 나오게 된 거겠지.’

그에게는 그저 수없이 많은 전리품 중 하나이고 사자의 이빨일 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아마 코노미야 백작은 이번 대회에서 이걸 얻게 되면, 리아노 공작에게 비싼 값에 팔려고 하겠지?’

리아노 공작 쪽에서는 충분히 노리고 있을 만한 상품이었다.

그는 유능한 ‘마법사’들을 배출해 낸 가문이었고, 무엇보다 30년간 실패해 온 마법 실험을 성공시키고 싶어 할 테니까.

여러모로 우리 쪽에서 차지해야지 앞으로가 편할 것이다.

“우승자 선정 방식은 작년과 같다. 오늘 하루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을 판 가문이 차지하게 되지.”

그 인기는 ‘매출’로 평가된다.

가장 많이 팔린 음식이 그만큼 인기 있다는 뜻일 테니까.

이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폐하, 모든 가문의 판매 금액을 다 합산했습니다.”

시종 하나가 황제에게 귓속말을 했다.

황제는 관중들을 한번 스윽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승자를 발표하겠다. 올해의 우승 가문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제발.’

나는 간절히 속으로 빌었다.

‘우리 라이언하트 가문이 일등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순간, 찰나였지만 황제의 시선이 우리 쪽을 향했던 것 같다.

이내 주름진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코노미야 백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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