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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50/142)

50화

상점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에 다 스쳤다.

아직 해독초를 못 드셔서 몸 상태도 안 좋으실 텐데, 크게 다쳤으면 어떡해. 다페 남작, 이 문지방에 엄지발가락 찧을 놈! 치사하게 아픈 사람을 건들고 난리야.

나는 울상이 된 얼굴로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아빠아아!”

빗자루질을 하던 피헨느가 놀라서 빗자루를 떨어트렸다.

“아가님……?”

“우리 아빠는요? 많이 다쳤어요? 무사하죠?”

“아가님, 진정하세요.”

“우리 백쟉밈 아프면 안 되는뎨.”

눈앞이 뿌옜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각하께서는 저쪽에 계십니다.”

피헨느가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때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이든이 나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다행이다.

이든의 혈색이 아까보다 훨씬 좋았다. 게다가 어딘가 다치거나 부러지지도 않은 것 같았다.

멀쩡한 모습을 보니 그제야 밀려오는 안도와 함께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흐어어엉, 아빠밈!”

그대로 쪼르르 달려가 그의 다리를 와락 안았다.

이든은 선 채로 굳어 버렸다.

뒤따라 들어온 리챠드가 양손의 짐을 내려놓았다.

“역시 멀쩡하실 줄 알았습니다.”

“설명해, 리챠드.”

“……예?”

“죽고 싶지 않으면. 내 딸을 왜 울린 건지 설명하는 게 좋을 거다.”

호박색 눈동자에 살기가 넘쳤다.

이든은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를 피헨느의 품에 안겨 주고서 리챠드에게 다가갔다.

“변명의 여지는 없는 건가?”

“각하, 잠깐만요. 지금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리챠드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 비명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이든도 총알처럼 그를 추격했다.

“아가니임!”

“거기 서, 리챠드!”

“아가님 살려 주십시오!”

우당탕탕 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모습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 * *

잠시 후,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내게 이든이 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돼서 울었던 거라고?”

훌쩍.

훌쩍 훌쩍.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녜. 다페 남쟉이랑 한바탕 붙기라도 한 쥴 알고 놀랬써요.”

해독초를 사러 가기 전 그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지라 덜컥 겁을 먹었었다.

그 상태로 만약 싸웠더라면 치명상은 면치 못했을 테니까.

“저 혼자 때리고 부수고 난리 치다가 황제의 호출을 받고 갔다.”

“진쨔 진쨔 다행이에요. 아무 일도 없써서.”

이든이 아직도 훌쩍거리는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줬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리챠드가 눈두덩이 위로 날달걀을 굴리며 구시렁거렸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크흠.”

민망해진 이든이 헛기침하며, 해독초 뿌리를 30분 정도 우린 찬물을 호록 들이켰다.

“……시끄럽다, 리챠드.”

“딱 한마디 했습니다만.”

리챠드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든이 나를 바라보며 말문을 돌렸다.

“사 오기로 한 선물은?”

“아, 맞따.”

“……설마 까먹은 건가?”

이든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게…….”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이든은 그럴 리가 없다는 눈으로 리챠드가 들고 온 짐을 쳐다봤다.

“약속 도장까지 찍었는데.”

“…….”

윽.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시면 제가 미안해지잖아요.

이든이 나를 향해 뻗은 새끼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짝바짝 입이 말랐다.

어떤 변명을 해도 시무룩한 어깨가 도로 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무어라 말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똑똑.

피헨느가 테이블 위를 손으로 두들기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각하, 기르신 신문사의 사진술사가 뵙기를 청했습니다.”

나이스 타이밍, 피헨느.

다행히 구슬펐던 황금빛 눈동자가 내게서 거둬졌다.

“기르신 신문사가 무슨 일로?”

피헨느가 빗자루를 들어 올렸다.

“아마도 상점이 이렇게 된 것이 신문사의 먹잇감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 갔다.

하긴, 남의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소식도 없지.

“어찌할까?”

“괜히 돌려보냈다가 악의적인 기사를 쓸지도 모르니까 일단 얘기해 보는 게 어때여?”

내 의견을 들은 이든은 사진술사의 취재 요청을 허락했다.

조금 뒤, 사진용 마도구를 들고서 쭈뼛쭈뼛 상점 안으로 들어온 이는 우리와 구면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폴!”

나는 그를 곧장 알아봤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알은체하자, 사진술사 폴의 얼굴에 꽃이 폈다.

“아가님, 저를 기억해 주고 계시는군요!”

“당연히 기억하져.”

어찌 잊겠어.

당신이 쓴 기사 덕분에 코노미야 백작을 협박해 로얄 클럽 추천서도 얻고, 소중한 릴리앙도 만났는데.

“역시 다정하십니다!”

감격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폴 앞을 이든이 막아섰다.

으응?

“그만. 세 발짝 물러서라.”

“세, 세 발짝이요?”

“앞으로 내 딸과 불필요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건, 나를 향한 결투 신청인 것으로 간주하지.”

이든이 당장에라도 사람 하나 묻을 것처럼 몰아붙였다.

“물러섰습니다! 다섯 발자국!”

도망치듯 후다닥 떨어진 폴이 오들오들 떨었다.

“적당하군.”

그제야 이든의 미간이 원래 모양대로 반듯하게 펴졌다.

……어째 사자님께서 부쩍 유별나지신 것 같다.

특히나 내가 관련된 일에.

“용건은 요약해서 간단히.”

“오늘 다페 남작님이 이곳에서 부린 횡포에 관해 취재하러 왔습니다.”

……뭐를 취재하러 왔다고?

순간 나는 내 청각에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다.

귀족들과 황실이 모두 챙겨 보는 신문에 귀족을 저격한 기사를 취재하러 왔다니?

그것도 세도가 삼인방 중 하나인 몬조거 다페 남작에 관한 저격을!

“그거 실릴 수 있긴 한 거에여?”

“사실 아직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쓰일 날을 기대하며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더 이써요?”

“네. 신문에 비리 고발 코너를 만드는 게 제 오랜 꿈이거든요!”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짧은 정적이 흐르자 폴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기획 코너 제목도 미리 지어 두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습니까, ……라고. 물론 터무니없게 들리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아뇨, 폴. 폴의 꿈을 비웃은 건 아니에여.”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지.

원작에 고작 한 줄 나올까 말까 하는 엑스트라가 그런 큰 꿈을 갖고 있을 줄이야.

본능이 내게 외쳤다.

폴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윗선에서 그런 코너를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을 텐데, 괜챠나요?”

“그래도 계속 두들겨 봐야죠. 혹시 모르잖아요. 언젠가 정의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올지.”

그의 미소가 오늘따라 유독 화사해 보였다.

“자료는 많이 모아써요?”

“주변 도움을 받아 조금씩요. 지난주에는 검투장에 잠복 취재를 다녀왔어요.”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세계관에서 고발할 거리가 있는 검투장은 그 자식의 검투장뿐일 텐데?’

불현듯 뇌리에 다페 남작의 얼굴이 스쳤다.

“혹쉬, 잠복 취재 했다는 곳이 다페 남쟉의 D―검튜장……?”

“엇! 어찌 아셨습니까?”

폴이 토끼처럼 화들짝 놀라며 필기구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곳에 관해 뭐 좀 알고 계신가요?”

잘 알다마다. 그곳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원작을 통해 읽었으니까.

나는 슬쩍 이든에게 시선을 줬다.

‘이거 아무래도 기회인 것 같죠?’

눈빛만으로도 내 마음을 읽은 듯,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겠다는 의미였다.

“폴이 조사한 내용을 자세히 듣고 시포여.”

“……D―검투장의 비리에 대해서 말입니까?”

폴이 잠시 주춤거렸다.

아무래도 귀족에 관한 일이니 눈치를 보는 듯했다.

“우리도 그 검투장에 관해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다페 남작가와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니 발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든이 직접 나서서 비밀을 보장하자 비로소 폴이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실은…… 그곳에서 인권 유린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제보를 듣고 간 겁니다.”

웨인투르 후크 얘기다!

나는 누구에 관한 제보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입장권은 어또케 구했어요? 요즘 구하기 쉽지 않쟈나요.”

“어릴 적부터 오래 알고 지냈던 동생이 그곳의 직원이라서요.”

“진쨔요?”

“네. 거기서 일한 지 오래된 애라서 입장권 한두 장쯤은 몰래 빼돌려 줄 수 있거든요.”

이게 웬 횡재야?

이든과 또 한 번 시선이 얽혔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검투장에 갇혀 있는 캥거루 수인, 웨인투르를 구하려면 검투장 입장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지.’

검투장 내기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 가면서 입장권은 암거래로 까다롭게 판매되고 있었다.

‘하필이면 판매 루트가 다페 남작들의 최측근이니…….’

아빠님께서는 구하기 힘드실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자기 우리 앞에 치트 키가 뿅! 하고 나타난 것이다.

검투장의 입장권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가, 다페 남작의 비리를 뒷조사하고 있는 든든한 아군이!

“검투장 표를 또 구할 수 있나?”

이든이 진중하게 물었다.

조금 누그러진 태도에 폴은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두어 장 구해다 드리는 건 어렵지 않긴 한데……, 실례되지 않는다면 감히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내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폴의 꿈을 이뤄 줄려고여.”

“……제 꿈을요?”

“녜. 정의로운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쬬? 도와쥬께요. 그 꿈 이룰 수 있게.”

“아가님께서도 귀족가의 일원이신데 어찌…….”

그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내 말이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당연하지. 우린 보통의 귀족들과는 다르니까.

밥그릇 지키겠답시고 서로의 더럽고 추악한 걸 눈감아 주는 짓 따위, 절대 안 할 거거든.

“깨끗한 언론을 만드는 게 폴의 오랜 꿈인 것처럼 저한테도 반드시 이룰 꿈이 있꼬든요.”

“아가님의 꿈은 무엇인데요?”

나는 여느 때보다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뚝배기 브레이커요.”

“……예?”

“나쁜 놈들은 다 뽀샤 버릴 거예요. 아뵤오!”

허공에 힘차게 발차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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