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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58/142)

58화

“선택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기르신 남쟉 댱신이야.”

나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지금 영애께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모양인데…….”

“아니. 파악을 못 하뉸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 설마 우리가 기르신 신문사 하나에만 올인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곤가?”

“설마.”

그 설마를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서서히 표정을 굳히는 기르신 남작을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혹쉬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리는 건뎨, 비스에 신문사는 여기 말고도 세 군데는 더 있답미다.”

“지금 영애께서는 다른 신문사에서도 똑같은 기사로 신문을 찍어 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던버르레 공작 밑에 있더니, 눈치는 빠르시네.

내 표정을 읽은 기르신 남작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내, 무엇이 우스운지 가감 없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뭐지?

그의 꿍꿍이를 알기 위해 미묘한 안면 근육의 변화를 눈여겨보았다.

“참으로 착각이 크시군요. 설마 하니 그들이 영애의 부친이 짠 계략대로 행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표정을 보아 알 수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기르신 남작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내 말을 안 믿겠댜?”

“지금 라이언하트가가 노리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페 남작가의 몰락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갑니까?”

그가 보란 듯이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거야 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장단이라도 맞춰 주지.”

“후회할 텐뎨.”

“영애도 아이는 아이군요. 참으로 순진하십니다.”

누가? 내가?

순진한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기르신 남작 인생의 최대 실수가 있다면, 지금 그가 나를 그저 ‘만만한 어린애’쯤으로 여긴다는 거였다.

“잠깐의 이득에 눈이 멀어 배신을 선택할 어리석은 귀족은 없을 겁니다.”

기르신 남작은 자신들이 그간 쌓아 놓았던 견고한 관계를 확신했다.

‘언제까지고 그 세계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보란 듯이 그들의 얄팍하기 그지없는 관계를 비웃어 줄 생각이었다.

“착각은 아조씨가 하고 있는뎨.”

“뭐?”

“난 다른 신문사에서 배신할 거라고 말한 적은 없써. 대외적으로 배신하는 사람은 기르신 남쟉, 당신이야.”

“그게 무슨…….”

가느다랗게 좁혀진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다른 곳에서 인쇄되고 있는 신문은 모두 기르신 신문사의 이름이 찍혀서 나오고 있꼬든.”

기르신 남작의 두 눈동자가 찢어질 것처럼 확장됐다.

그는 내 말을 금방 이해했다.

“다시 설명해 죠? 내일 아침 에덴의 귀족들 사이에서 배신자로 찍히는 건, 기르신 남작가라는 뜻이야.”

“……거짓말.”

“그렇다고 믿고 싶은 거겠찌.”

저런. 그 표정 혼자 보기 아깝네.

이제 이 상황의 주도권을 잡은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양팔을 꼰 채로 턱을 삐딱하게 치켜들었다.

“아무리 당신이 던버르레 공쟉을 뒷배로 두고 있다고 해됴, 눈 돌아가 버린 다페 냠쟉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기랄.”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기르신 남작의 입가에 균열이 생겼다. 그가 주섬주섬 자물쇠의 열쇠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라이언하트가의 전령은 엄청엄청엄청 발이 빨라서, 새벽종이 울리기 전에 다페 남쟉의 머리맡에 신문이 도착해 있을 톈데.”

댕― 댕― 댕―.

때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새벽을 알리는 첫 종이 울려 퍼졌다. 기르신 남작은 새파랗게 질린 낯으로 그대로 굳었다.

“더 늦기 전에 얼른 선택해. 이대로 다페 남쟉한테 슥쇽샥 당할 꼰지, 아니면 순순히 나를 따라올 꼰지.”

결국에 기르신 남작은 물러섰다.

이든의 우려와 달리, 유혈사태 하나 없이 기르신 신문사를 접수하는 순간이었다.

타다다다다닥.

우리는 다시 멈췄던 인쇄 기계를 작동시켰다.

* * *

그날 이른 새벽, 비스 전역에 기르신 신문이 무료로 배포됐다.

한 신문사가 비스 거주민에게 무상으로 신문을 뿌린 것은 에덴 제국 건국 이래, 유례없는 일이었다.

새벽녘 구름을 가르고 아침의 태양이 떠올랐다. 창틀 위로 쌓이는 장엄한 햇빛과 함께 다페 남작의 비리와 만행이 온 천하에 알려졌다.

라이언하트 저택에도 시간 맞춰 신문이 도착했다.

나는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기사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기르신 신문

제국력 1537년 4월 2일

✒ [단독] D―검투장, ‘승부 조작’ 비리 포착…… 피해 금액, 수십 억대 예상.

✒ 검투사 식사에 몰래 ‘설사약’ 투약하는 식으로 승부 조작……, 때론 직접적인 ‘구타’도

(▲사진1. D―검투장 내에서 발견된 설사약)

✒ [칼럼] 검투사 인권 침해, 이대로 괜찮은가?

(▲사진2. 검투장 대기실 내부의 비위생적인 환경 및 열악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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