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42)

70화

내가 ‘봉인된 마도구에 관한 연구 논문’을 찾은 건, 일전에 참여했던 요리 대회에서 우연히 들었던 대화가 떠올라서였다.

[오, 저게 바로 그 전리품인가.]

[그래. 들은 바로는 저걸 손에 넣으면 그 괴물 같은 수인족 놈들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지?]

[쉿, 조용하게. 누가 들을라.]

[뭐 어떤가. 말이 비밀의 예언인 거지, 모르는 제국민들이 없는데.]

그때 분명 그렇게 말했어.

‘엘코어에 관련된 비밀 예언이 있다고.’

물론 당시의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그 말을 믿지 않았다.

30년간 줄곧 실패한 역사가 있었으니, 예언에 오역이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때 내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내게 엘코어가 갖는 의미는 ‘이든에게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열쇠’였을 뿐이니까.

물론 지금은 다르다.

내가 직접 엘코어 속 엘베른을 만나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노아가 봤다던 ‘대신전 벽화 속 성녀 얘기’가 신경 쓰였다.

“엘코어에 관해서 알고 싶은 게 생겼써요.”

“설마 해서 여쭙는 겁니다만, 아가님께서도 세간에 떠도는 그 소문을 믿으시는 겁니까?”

리챠드의 질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그 말, 오해를 산 건가?

괜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다급히 양손을 흔들어 가며 설명을 덧붙였다.

“맹세코 다른 욕심이 있어서 할부지의 힘을 이용하려는 건 아니에여! 정말!”

“할……부지요?”

리챠드가 요상한 호칭을 콕 짚어 지적했다.

아차차. 말실수.

뒤늦게 양손으로 입을 합! 하고 가려 봤으나 이미 리챠드에게 의심을 잔뜩 사 버리고 말았다.

“이거 어째, 아가님께서 엘베른 님과 만나신 적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단순한 제 착각입니까?”

그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실은…….”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그게 실은…… 엘베른 밈을 만난 적 이써요.”

“…….”

꽤나 충격적인 얘기였나?

리챠드라면 곧바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그가 답지 않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설명을 이어 갔다.

“예전에 제가 백쟉밈의 온실에 갔다가 쓰러졌던 날 기억해여?”

“기억하다마다요. 그날 저택에 불렀던 의사 수만 해도 열 손가락은 넘으니까요.”

“……그렇게 많이 불렀어요?”

“단언컨대 제 평생 만날 의사를 한 번에 다 만난 날일 겁니다.”

새삼스럽게 마음이 간지러웠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흔적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란.

우연히 길을 걷다 좋아하는 꽃향기를 맡았을 때처럼 설렜다.

“무튼, 그날 처음 엘베른 밈을 만나써요. 이 엘코어를 통해서.”

목에 걸린 엘코어에 리챠드의 동글동글 까만 눈동자가 닿았다.

“각하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 *

“알고 있었다.”

이든이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건조하게 대답했다.

“알고 계셨다고요?”

“…….”

“근데 왜 제게 말씀 안 하셨습니까?”

아무리 리챠드가 펄쩍 뛰며 되물어도 그저 묵묵히 다문 입술을 떼지 않았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리챠드를 따라 집무실로 온 나는 괜스레 두 남자 사이에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기르신 남작에게 보낸 전서구는 돌아왔나? 슬슬 답장이 올 때가 됐는데.”

“대답 안 해 주실 겁니까?”

“순순히 신문사를 포기하겠다던가? 기왕이면 재산 포기 각서는 친필로 쓰고 지장까지 찍혀 있었으면 하는군.”

“계속 피하신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리챠드. 업무 시간 외 잡담을 계속한다면 봉급 루팡죄로 감봉에 처하겠다.”

“각하!”

이든이 자꾸 딴소리만 하자 리챠드의 언성이 높아졌다.

엄마야.

깜짝 놀란 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

“…….”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된 걸까?

정적이 흐르는 집무실 안은 숨 막혔다.

리챠드가 들고 온 서류철에서 못 보던 종이를 꺼내 이든 앞에 내려놓았다.

언뜻 보기에 기르신 남작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말씀하셨던 기르신 남작의 친필 각서입니다. 앞으로 20년간, 라이언하트가가 다페 남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대신 기르신 신문사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 안 그런가?”

이든이 내 쪽으로 종이를 넘겨주었다.

『재산 포기 각서』

 ⦁각서인 성명 : 도느 기르신

 ⦁피상속인 성명 : 루나 라이언하트

― 상기 본인 ‘도느 기르신’은 제국력 1537년 4월 18일부로 ‘기르신 신문사에 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앞으로 신문사에 관한 모든 권한을 ‘루나 라이언하트 백작 영애’에게 위임할 것을 각서합니다.

또한 이에 대해 어떤 이의 제기도 하지 않음을 맹세합니다.

제국력 1537년 4월 18일

각서인 : 도느 기르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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