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142)

86화

“안녕하세요, 아빠. 저는 스텔라예요.”

맑고 청아한 음성이 훑고 지나간 공간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

이든의 시선이 스텔라에게로 닿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머무는 것치고는 드물게 긴 시간이었다.

<그녀는 세계가 불행하길 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모든 세계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애썼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그 대목이 생각나는 걸까.

스텔라 리리카이는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당연한 캐릭터였다.

그걸 알아서 그런지, 이든이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어쩐지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스텔라?”

“네. 루나……한테 말씀 못 들으셨어요?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기로 했는데.”

그녀가 나를 힐끔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게 저택 구경을 시켜 주실 수 있나요?”

“토리 무크를 붙여 주지.”

“아니요. 저는 아빠가 직접 함께 가 주셨으면 하는뎨.”

묘하게 달라진 발음을 들으니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스텔라가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이건 내 예상 밖의 일인데…….’

심지어 그녀는 나를 질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든에게 은근히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내 말투를 흉내 내는 것도 그렇고.

마치 내게서 아빠의 관심을 뺏어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구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런데, 스텔라.

미안한데 말이야…….

네가 아무리 이 세계의 여자 주인공이라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든과 내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단 한 덩이의 고구마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쌓은 신뢰인 줄 알아?’

그걸 무너트리려고 하다니.

암만 한창 여기저기 질투할 나이라 그러는 거라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스텔라. 너 왜 일부러 우리 아빠한톄 아빠라고 불러?”

“이, 일부러라니, 내가 언졔.”

내가 직설적으로 콕 짚어 얘기하자 스텔라는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굳이 아빠라고 부를 필요는 없쟈나. 공쟉밈이라고 부르면 되는 건뎨.”

“그건…… 잘 몰라서 그랬어. 나는 귀족들을 부르는 호칭 그런 거 잘 모른단 말이야.”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의 끝이 차츰 흐려졌다.

으음, 울릴 생각은 없는데.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급히 덧붙였다.

“울지는 말구, 뜍. 앞으로 그렇게 부르면 된댜는 거지.”

“알았어, 그럴게. 미안해, 루나.”

나랑 똑같이 생긴 얼굴로 울먹거려서 그런가. 보고 있다 보니까 마음이 약해졌다.

석연치 않아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으니, 머리 위로 단호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루나 라이언하트.”

이든이 품속의 내게로 시선을 고정하며 입술을 벌렸다.

“오직 그 이름을 가진 자만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다.”

그가 내 동글동글한 이마에 짧게 입술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모리스 대신관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투입시킨 벤 쟝과 여러 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벤쟝 할부지. 작전은 오또케 되고 있어요? -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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