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마따따비 나뭇가지.
일반인들 눈에는 평범한 나뭇가지로 보일 테지만, 이건 고양잇과 동물에게는 캣닢 버금가는 마약이었다.
‘몸의 긴장감을 나른하게 풀어 줘서 어떤 까칠한 고양이도 함락시킬 수 있는 마성의 나뭇가지!’
이것의 가장 장점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몸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천연 마취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
세상에, 이런 행운이 따라 줄 줄이야.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빨래하는 하녀들 사이로 총총총 걸어갔다.
“져기요. 이거 혹쉬 버리시는 거예요?”
“어멋! 깜짝이야.”
옹기종기 앉아 있던 하녀들이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놀란 눈이 되었다.
그녀들은 내 복식을 보고서 급히 허리를 숙였다.
“어, 어쩐 일이십니까, 영애님.”
“이 나뭇가지 필요 없으시면 졔가 가져도 될까여?”
“빨랫방망이로 쓰긴 영 내구성이 별로라서 버리려고 했던 거긴 한데, 어찌…….”
“괜챠냐요. 마침 필요했던 거거든요!”
당황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하녀들을 향해 싱긋 웃어 줬다.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조금 전까지 이든이 앉아 있던 곳에 리챠드가 서 있었다.
“아가님, 여기 계셨군요. 각하께서 걱정하시고 계십니다.”
* * *
리챠드의 품에 달랑달랑 안겨서 내빈실이 있는 서쪽 궁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황궁 입구에서보다 백합 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식은땀을 흘리던 이든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아빠는여?”
“2층에 계십니다. 보시다시피 서쪽 궁 전체가 이런 식이라, 먼저 가서 쉬고 계십니다.”
“빨리 가는 게 좋게써요.”
긴 회랑을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하는 리챠드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이든이 황실 연회에 오기 전 틈틈이 내성을 쌓으면 충분히 버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양의 백합은 적신호였다.
‘더 늦으면 백합 중독증에 빠지겠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데, 그건 뭡니까?”
블랙베리색 눈동자가 내가 꼭 쥐고 있는 나뭇가지에 향해 있었다.
아직 물기 젖은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아빠를 고통 속에서 구원해 쥴 비장의 마따따비요.”
리챠드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아직 이든이 누워 있는 내빈실까지는 더 걸어가야 하는데, 무슨 일이지?
“으으음.” 하며 낮게 신음을 흘리는 리챠드를 올려다보았다.
“리챠드?”
“아가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어어? 리챠드가 뱅그르르 돌아서서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디 가여?”
“그것, 말입니다. 꽤 마음에 드신 것 같습니다만, 놓고 가심이 어떠실지.”
“이 나뭇가지요?”
“예. 그 나뭇가지요.”
마따따비 나뭇가지를 가리켜 말한 리챠드가 빠른 속도로 서궁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인적이 드문, 서궁 뒤쪽 내빈실과 이어진 뒤뜰에 도달한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버리시려고요?”
“네,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인데 어디서 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그 물건이 수인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물품이거든요.”
서궁 내빈실의 창문은 모두 꼭꼭 닫혀 있었지만, 리챠드는 그럼에도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속삭였다.
“이걸 접하면 꿈을 꾸는 것처럼 졍신이 몽롱해져서요?”
“알고…… 계셨습니까? 하면 어찌.”
리챠드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당연하다.
원산지가 동대륙인 ‘마따따비’는 에덴 제국민들에게 생소한 나무이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그것이 수인족에게 특히, 고양잇과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
그 정보가 널리 알려지는 것은 다음 에피소드인 ‘사냥의 밤’ 때를 기점으로 해서이다.
우연히 동양의 무기상과 접점이 생긴 모리스 대신관은 마따따비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로 쏜 마따따비 화살에 이든이 당한다.
‘평소의 이든이라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 화살은…….’
이든이 사자 수인인 이상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경을 나른하게 만들고, 방심하게 만들고, 빈틈을 보이게 만드는 마따따비 나무.
그 이름에 ‘마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수인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것도 모두 인간이 그것을 ‘악하게’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야, 생각을 달리한다면?
“독도 어떻게 쓰이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대써요.”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으신 겁니까?”
“효과를 희석해서 마취 알약 대신 쓸 치료제로 만들 꼬에요.”
“……치료제요?”
“녜. 치료제요.”
눈동자 속 잔잔한 수면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지금 얼른 가서 만들어야 해여.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아빠는 후각 마취 알약의 부작용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걸여.”
“…….”
침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리챠드는 여전히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불필요한 질문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필요하신 재료는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역시 리챠드는 최고의 집사님이라니까.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드는 그에게 백합 중독증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을 불러 주었다.
“팔팔 끓인 물이랑, 식초랑, 그리고 말린 코끼리 똥이요.”
“예. 팔팔 끓인 물이랑, 식초랑, 말린 코끼리…… 예?”
수첩에 잘 받아 적던 리챠드가 고개를 들었다. 벌어진 입술과 살짝 찌푸려진 미간을 보아하니, 충격을 받은 듯했다.
“구하기 어렵지는 않아여. 남부 아일랜드에서 황실에 코끼리를 선물한 적 있다고 들었꼬든요. 담당 황궁인을 찾아가면 얻을 수 있써요. 똥을 달라고 부탁하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하겠찌만요.”
“부끄러움 때문에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아, 역시 좀 더러워서 그런가여?”
“……더럽다니. 어떻게 그렇게 냉정한 평가를.”
리챠드가 눈썹을 끌어내리며 입술에 힘을 빡 주었다.
“제가 그 단어에 좀 민감한지라.”
“똥이여?”
“크흑. 아가님께서 그리 콕 짚어 주시니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제 상처가 떠오릅니다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련 당한 여자 주인공처럼 입을 틀어막은 리챠드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었다.
“말도 마십시오. 각하께서 글쎄 제게 어찌나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하시는지…….”
“아빠랑 무슨 일 있어써요?”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던지며 마따따비의 껍질을 뜯었다.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 거쳐야 할 작업 중 하나였다.
오돌토돌한 나무껍질이 뜯어내는 걸 본 리챠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어. 그렇게 함부로 껍질을 까시면 안 됩니다!”
“녜?”
하지만 이미 잡아 버렸는걸.
리챠드가 잽싸게 품 안에 새 손수건을 꺼내 내 손에 쥐어진 마따따비를 도로 가져갔다.
“특히나 껍질을 깐 부분을 맨손으로 잡는 건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여?”
“무릇 후각은 좋아하는 냄새랑 섞일 때 더 강렬하게 자극되는 법이거든요.”
“지금은 괜챦지 않을까요? 아빠는 후각 마취 알약을 먹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상황은 급하니까여.”
“으음. 물론 후각 마취 알약의 효능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은 그렇지요.”
리챠드가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약효 지속 시간이 얼마 남았는뎨요?”
“3분 정도 남았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써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리챠드는 쏜살같이 달려서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마따따비 나뭇가지 껍질을 열심히 손톱으로 뜯어냈다.
잘 떼어지지 않는 부분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멩이로 긁어냈다.
보육원에서 지냈을 때 소꿉놀이를 하면서 자주 해 봤던 것이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아가님! 가져왔습니다.”
내가 막 나무껍질을 다 깠을 즘, 리챠드가 돌아왔다.
팔팔 끓는 물이랑 식초, 그리고 말린 코끼리 똥 조금. 모든 준비물을 들고 돌아온 시간은 막 3분이 넘어갈 시간쯤이었다.
나는 서궁 내빈실의 창문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껍질을 깐 마따따비를 잡아들었다.
“빨리 만들어 보께여.”
“좋습니다. 혹시 몰라 제가 장갑도 가져왔으니, 맨손으로 만지지 마시고 이걸 끼시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리챠드의 말을 중간에 끊어 놓았다.
이윽고, 하늘에서 뚝.
커다란 그림자가 사뿐히 우리 앞에 착지했다.
“……아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빈실에 누워서 끙끙거리고 있거나, 마취 알약을 한 알 더 복용하고 있어야 할 우리 사자님께서 왜.
어째서 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각하!”
리챠드가 숨을 들이켜며 경악했다.
이든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했다.
“몹싀 챠믈 수 엄는 냄새여따.” (몹시 참을 수 없는 냄새였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읊조렸다.
답지 않게 뭉개지는 발음은 방금 전까지 내가 들고 있던 마따따비를 입에 물고 있어서였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가 착지한 곳을 올려다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펄럭거리는 자줏빛 커튼이 보였다.
아, 맙소사.
어떤 방법으로 나타난 건지 눈에 훤했다.
“혹쉬 지금 2층에서 뛰어내린 거에여?”
“이 뎡됴는 사댜한톄 식은 숲 먹기지.” (이 정도는 사자한테 식은 수프 먹기지.)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어쩐지 금빛 동공이 탁 풀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따따비의 위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칭찬하는 거 아니고든요?”
“그럼 걱뎡인 건가? 그뚁됴 나쁘디 않다.” (걱정인 건가? 그쪽도 나쁘지 않다.)
마치 아나운서가 발음 연습을 할 때처럼 기다란 나뭇가지를 입에 문 그가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답답한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느릿한 걸음이 내게로 향했다.
그가 잠시 마따따비 나무를 입에서 떼며 말했다.
“다정한 내 따님께 상을 드려야겠군. 무엇이 좋을까. 응?”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낮고 건조한 평소의 어투와 달리 달콤하고 달콤하고, 또 달콤했다.
무엇보다 저 미소.
저렇게까지 야시시하게 눈꼬리를 접는 모습은 처음 봤다. 물론 내게는 그저 술에 취해 귀가한 아빠의 모습으로 비쳤지만, 뭇 여인들을 혼절시키고도 남을 만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벌써 마따따비에 취하신 겁니다.”
리챠드가 친히 내게 이든의 상태를 설명해 줬다.
“황좌를 드릴까? 그게 싫으면 대륙을 발아래 꿇려 줄 수도 있고.”
“…….”
“말만 해. 내 따님께는 못 드릴 것이 없으니.”
집요한 물음 역시 평소의 화법에서 몹시 동떨어진 것이었다.
‘술에 잔뜩 취하면 이런 모습이려나.’
할 말을 잊고 이든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고 있는 내게 리챠드가 재차 알려 주었다.
“몹시 많이 취하신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성의 끈이 싹뚝 잘려 버린 우리 사자님께서 대형 사고를 치시기 전에 빨리 희석해서 치료제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정말로 서슴없이 뱉은 반역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