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42)

98화

명백한 노림수였고 함정이었다.

아빠가 꽃가루에 약하다는 걸 알고 악의적으로 준비한 폭죽이었다.

왜? 누가?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앞세워서 이런 짓을 꾸밀 자는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모리스 대신관.

그자가 결국 냄새를 맡아 버린 것이다.

“백작님!”

놀란 노아가 와서 아빠를 붙잡은 덕분에 넘어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자세를 고친 아빠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이 와중에도 아빠는 나를 바닥에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서 양팔로 내 뒷머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에여!”

맹세코 태어나서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악을 써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얼굴로 열이 몰려 눈이며 코끝이며 뜨거워졌다.

“축하 선물을 드렸는데 표정들이 왜 그러십니까?”

악마가 인간의 몸으로 현신했다면 내 눈앞의 이 남자이리라 생각했다. 악에 충만한 눈은 소름 끼치도록 끔찍했다.

‘어떻게 남의 고통을 보고 웃을 수 있지?’

질끈 깨문 입술 위로 따끔한 감각이 퍼졌다.

여린 살이 터져 버리기라도 한 걸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오로지 지금 당장 눈앞의 저 악마를 없애 버리고, 아빠를 맑은 공기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톡.

입술 위로 닿는 손가락이 실타래처럼 엉킨 내 생각을 끊어 냈다. 그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확연히 창백해진 낯의 이든이 있었다.

그가 꼭 깨물 내 입술을 재차 톡, 쳤다.

“그럼 못 써. 상처 날라.”

우리 사자님은, ……우리 아빠는 정말. 눈물겹도록 다정했다. 속이 매스껍고, 눈앞이 어지럽고, 모든 감각이 붕괴되는 괴로운 경험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 딸아이가 걱정할까 봐서 억지로 미소 짓는 것을 보면.

그 어떤 누구도 우리 아빠를 감히 악당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지금 이때만큼, 그는 아버지였다.

“……내 따님께선 정말…… 눈물이 많아, 쓸데없이.”

차가운 손가락이 내 눈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그제야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해, 우리 아빠.

그는 내게 자신 때문에 울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나쁜 딸이었다.

다정한 속삭임에도 기어코 눈물을 쏟아 내고 말았다.

“아빠…….”

입에 올리자마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터져 나와 버렸다.

후드득. 열 오른 두 뺨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초여름의 소나기 같은 내 눈물을 본 노아가 폭주해 버렸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요즘 들어 부쩍 소문으로 달아올라 있는 황궁이 한바탕 또 뒤집혔다.

리아노 공작가의 양아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황궁을 보호하듯 곳곳에 둘러싸인 마법 탐지석이 일제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경보를 울렸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마법 잠재력을 숨길 수 없게 됐다.

황궁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과 앞으로 손에 넣을 힘을.

[이 정도의 마력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 아닙니까?]

[맞습니다. 가히 에덴 제국의 건국을 도운 초대 대마법사에 견줄 정도입니다! 어서 빨리 리아노 공작가의 영식을 대마법사로 임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6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소만.]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1년이 다르게……. 아니,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겁니다. 빨리 관리를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짧은 시간 내 방출된 노아의 엄청난 마력은 제국의 마법사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몹시 놀란 상태였다.

“언제부터 그런 힘을 숨기고 있어써?”

나는 노아의 치료 마법 덕분에 편히 꿈나라로 간 이든에게서 시선을 옮겨 노아를 바라봤다.

내빈실 끝자락에 이방인처럼 선 노아는 잔뜩 긴장한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루나 네가, 내가 마법사인 걸 싫어하는 거 같아서…….”

괴로운 사실을 확인받기라도 하듯, 보라색 눈동자가 찌푸려졌다.

“그래도 나한테 만큼은 미리 말해 줘써야지.”

“……속여서 미안해.”

아니. 나는 노아가 나에게까지 거짓말해서 화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만 내가 이렇게까지 괴로운 건.’

안절부절못하는 노아를 보니 아까 상황이 떠올랐다.

* * *

폭주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노아의 손끝에서 보랏빛 마나가 폭발하듯 뻗어나가 순식간에 황궁 구석구석을 덮었다.

세계가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것 같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 속에서 누구도 꼼짝할 수 없었다. 오직 노아에게서 허락을 받은 자만이 그의 마나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모든 존재의 움직임이 억제됐다.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피터 사제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괴로운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컥, 커어억! 컥!]

딱딱하게 굳어 버린 폐부 속으로 공기를 집어놓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노아는 허락하지 않았다. 피터 사제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루나가 울잖아. 응? 너 때문에. 너 같은 쓰레기 때문에 아까운 눈물을 쏟는다고…….]

노아는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피터에게로 다가갔다. 드문드문 완성되지 않고 빈 문장들에는 처음으로 살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원작의 장면을 떠올랐다.

<노아는 미쳐 버렸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비극이 늘 온순했던 노아의 눈빛을 바꿔 놨고, 가까스로 잡고 있던 ‘선’이 허물어졌다.

어쩌면 노아의 영혼은 더 오래전부터 진창에 처박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첫사랑의 숨이 끊어졌을 때.

이미 그때부터 그는 지옥을 견뎌 왔다. 어떻게든 소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냥 소녀가 너무, 너무, 견디기 힘들 만큼 보고 싶었다.

그 생각은 소년을 삼켰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린 한 영혼은 조용히 결심했다.

아, 그냥 이 세상을 끝내 버리고 소녀의 곁으로 가겠노라고.>

피폐 소설 속 주인공 노아가 파멸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온 구절이었다.

원작과 시기도, 상황도 달랐지만 확실했다.

노아는 지금 절벽 끝에 있다. 까딱 잘못하면 황궁은 물론이고 제국 전체를 날려 버릴 기세였다.

‘마나가 불안정해.’

마법에 ‘마’자도 모르는 비마법사였지만 지금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마나의 형태가 이상했다. 마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눈이 멀 것같이 아름다웠지만, 전에 없던 공포를 동반했다.

노아를 진정시켜야만 한다.

안 그러면 죽는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이 모든 세계가.

그 사실을 인지하자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노아, 멈쵸……!]

막 피터의 목으로 뻗어 가던 무시무시한 보랏빛 마나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

[노아. 나 아퍼. 노아의 마나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드러.]

노아는 여전히 뒤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 못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보라색 마나는 이제 아예 보이지도 않을 만큼 옅어졌다. 그 증거로 피터 사제가 그간의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주어 목소리를 뱉었다.

[우리 돌아가쟈. 엄마 아빠 놀이 또 해야지.]

[…….]

[청혼도, 꽃반지도 아직 못 해 줬쟈나 제대로. 다시 하러 가자 우리. 응?]

영원히 뒤돌아보지 않을 것 같았던, 위태롭고 외로운 등이 천천히 돌아섰다.

[응, 그럴게 루나.]

마침내 돌아선 그는 언제나 그랬듯 햇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시 나의 노아였다.

* * *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망가트릴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노아는 그것을 꼭꼭 숨겼다.

‘단지 내가 그걸 숨기기 바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영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지름길을 두고 빙 돌아가는 바보 같은 짓이기도 했다.

노아에게 그런 일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내 바보 같은 고집이 미웠다.

그냥 노아에게 미안했다.

빌런들로부터 노아를 지켜낼 힘이 없는 내 무능함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루나, 많이 화났어?”

“…….”

고작 한다는 말이 저런 말이었다.

차라리 ‘너 때문에 내가 귀찮게 됐잖아!’라고 화를 냈으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울상을 짓자, 노아는 마치 심장이 떨어져 나간 사람처럼 표정이 무너졌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다시는 함부로 마법 안 쓸게. 네 허락이 없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그럴게.”

“바보야……. 누가 너한테 나쁜 짓 하려고 할 때는 써야지.”

진짜 나의 노아는 너무나도 바보다.

내가 대꾸해 준 것 하나만으로도 금방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환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다.

“화 풀렸어?”

“지금 그게 중요해?”

“응, 나한텐 이게 제일 중요해.”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따뜻함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겼다는 ‘해와 바람 이야기’처럼 나는 노아의 다정함에 꽁꽁 싸매고 있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노아는 내게 태양이었다.

“네가 위험해졌쟈나!”

이제 리아노 공작은 물론이고, 온갖 탐욕으로 가득 찬 어른들이 너를 어떻게 구워삶을까 호시탐탐 노릴 텐데.

그런데 어떻게. 너는 내 걱정만 할 수 있어.

노아는 내가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쏟아 낸 감정을 가만히 들었다.

듣는 내내 어떤 추임새도, 끄덕이는 몸짓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침묵마저 내 목소리와 감정들로 채워 넣으려는 사람처럼 아주 집중해서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음절까지 모조리 내뱉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제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네가 우는데 어떡해.”

나는 네가 울 것 같은 표정만 지어도 미치겠단 말이야.

―그 말이 나를 또다시 울렸다.

나의 노아는 정말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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