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질투심 폭발하는 두 수사자를 온순하게 만든 것은 대형 고양이용 낚싯대였다.
‘이건 정말 희대의 발명품이야.’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벤 쟝에게 감사를 표하며 낚싯대를 격렬히 흔들었다.
휙휙, 휙휙.
좌우로 낚싯대를 움직일 때마다 다 큰 성인 남정네들의 궁둥이도 함께 씰룩거렸다.
오늘도 라이언하트 가문의 평화는 이 낚싯대가 지킨 것이다.
“실컷 우다다 했으니까, 이제 두 분 싸우지 말구 사이좋게 수인들 돌보시는 거예요.”
“허억, 허억……. 좋은 승부였습니다, 아버지.”
【헉, 허억, 내가 할 말이다. 역시 만만치 않군.】
한껏 땀을 흘리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두 남자는 고분고분해졌다.
나는 냉큼 새끼손가락을 요구했다.
“자, 얼른 약속.”
“알았다. 약속하지.”
【그래, 이 주간은 내 손녀님을 위해서 잠시 휴전이다.】
덩치가 산만 한 두 남자가 내 말대로 순순히 서로에게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아마 리챠드가 봤더라면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었을 장면이라고 장담한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다.
* * *
어느덧 라이언하트 가문의 이름을 내건 동물 치료센터 개원식 날이 밝아 왔다.
2주는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지내며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치료센터는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초대장을 받은 자들 대부분이 참석해 줬다.
비스의 이름난 귀족들은 다 모인 것 같았다.
라이언하트 가문이 처음으로 개최한 사교 행사라는 점도 그렇지만, 참여율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한 것은…….
“오늘 행사에 황제 폐하께서 참석하신다고 들었소.”
“얼마 전 후계자로 이름을 올린 아이도 동행한다지.”
“황실에서 떠도는 말로는 그 아이가 라이언하트 영애에게 푹 빠져 있다던데.”
“게다가 폐하께서 평소에도 영애를 특별히 여기시지 않으셨나?”
“그럼 이제 확실해졌구려.”
그래, 지금 저 귀족들이 쑥덕거리는 것이 큰 이유였다.
황제가 ‘노아’를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선포한 후, 노아의 첫 공식 일정이니까.
“이거 어쩌면 새로운 바람이 불지도 모르겠소.”
무르익는 저마다의 기대 속에서 초대된 손님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라이언하트 영애님, 이리 멋진 행사에 초대해 줘서 고맙습니다.”
여러 귀족 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입장하던 에이코 백작 부인이 나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에이코 백쟉 부인! 먼 길 오시느라 힘드시진 않으셨써요?”
“어머나. 사랑스러우셔라.”
어린 나이지만, 완벽한 귀족식 인사를 소화해 내는 나를 보며 귀부인들은 탄성을 뱉었다.
“어쩜 이리 벌써부터 우아함이 넘치시는지.”
“가히 많은 영애들의 귀감이 될 영애님이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호호.”
모두 기본적으로 사교술을 배운 사람들이니만큼 상대를 칭찬하는 것도 능숙했다.
‘물론 내게 잘 보이려는 속내가 뻔히 보이긴 했다만…….’
그들이 우리 가문에 호의적으로 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아리따우신 귀부인들께서 와쥬시니 꽃이 다 필요 없게써요.”
“어머, 영애님께서도 참.”
까르르 웃는 그녀들 틈에 있다 보니까, 새삼 아빠가 왜 그들을 피해 도망가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슬슬 피곤함이 느껴질 즈음.
“루나.”
나를 찾는 포근함 음성이 귀부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말끔한 정복을 차려입은 노아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를 알아본 귀부인들은 잽싸게 부채를 펼쳐서 입가를 가렸다.
“어머.”
아직 정식으로 황태자 책봉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황제가 직접 선포했으니 다들 누울 자리를 보는 듯했다.
“부인들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라이언하트 영애와 단둘이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히 가능하지요.”
노아는 정중히 양해를 구한 뒤, 내 손을 잡고 귀부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사진용 마도구가 작동하는 소리가 연신 들렸다. 신문 기자들이 노아와 내 모습을 찍고 있는 듯했다.
“괜찮아?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곤란하게 하지 않았어?”
“난 괜챠나. 노아는?”
“나야 늘 괜찮지.”
괜찮기는. 아까 보니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질문 세례를 받던데.
아직 등 뒤에서는 기자들이 은근슬쩍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신경 쓰여?”
“응, 가끔 악질 기쟈 중에서 제멋대로 기사를 내는 사람도 있어서.”
물론 허튼짓을 하는 놈은 아빠가 알아서 처리해 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확 없애 버릴까?”
“응?”
“루나, 네가 원하면 눈앞에서 영영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
순간 살기가 스쳤던 것은 내 착각이라고 믿고 싶다.
‘얘가, 얘가. 언제부터인가 왜 자꾸 흑막의 기운을 뿜는 걸까.’
요즘 복수 때문에 바빠 그에게 소홀했던 것을 속으로 반성했다.
“노아, 그런 나쁜 말은 하지 말랬찌.”
“그렇지만 루나 너를 귀찮게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다 없,”
“쓰읍!”
“…….”
엄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자꾸 못된 거 배워 오면 화낼 꺼야.”
“화낼 거야?”
나름 진지하게 혼내고 있는 중인데, 어째서인지 노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말을 따라 했다.
“응. 진짜야, 진심으로.”
“루나가 진심으로 화내면 무섭겠네.”
“그럼. 엄청 무섭찌.”
……얘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긴 하는 걸까?
대화가 점점 이어질수록 무서워하기는커녕, 아주 작고 귀여운 생물체를 관찰할 때처럼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노아, 나 지금 진지해!”
“응, 나도 진지해.”
“뭐가 진지한뎨?”
아까부터 계속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리는 걸 보면, 하나도 안 진지해 보이는걸!
양 볼을 터질 듯이 부풀리고 그를 뚱하게 바라보았다.
이참에 진짜 나의 무서움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얘가 삐뚤어지지 않지.
마음을 굳히며 눈에 부릅! 힘을 줬는데,
“너한테 어떻게 청혼하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어어?
뜬금없이 돌직구를 맞아 버린 나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버리고 말았다.
노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루나, 그런 표정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거야?”
하지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노아, 너야말로 그런 멘트는 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거야?’
남주인공의 기본 소양이라도 되는 걸까?
가끔 이럴 때마다 노아가 인생 2회차를 사는 중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내 앞에서만 그런 모습 보였으면 좋겠다, 루나.”
나는 내 뺨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는 노아를 보며 처음으로 원작을 의심했다.
……사실 노아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상처남’이 아니라, ‘능글남’인 게 아닐까?
작가가 잘못 적어 놓은 게 분명했다.
* * *
한편, 귀빈석에 앉은 모리스 대신관의 주변으로는 파리가 날렸다.
원래라면 눈도장을 찍으러 오는 귀족들이나, 그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신문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야 했을 그였다.
하지만 모든 주목은 라이언하트 백작과 그의 딸에게로 가 버렸다.
‘하나, 그것도 다 오늘까지다.’
모리스는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을 끝으로 라이언하트 가문을 비스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희열이 느껴졌다.
‘그 불법 약물을 사용했다는 누명을 쓰면 파국에 이르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꼬투리 하나만 잡히면 없는 일을 만들어 내서 죄를 부풀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매수는 던버르레 공작이 있으니 믿고 맡길 만했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 무식한 놈이 멍청한 실수를 하는 거지.’
물론 일이 틀어질 걸 대비해서 최후의 수단을 준비해 놓긴 했다.
그러나 그쪽은 위험부담이 있는 패이기 때문에 가급적 꺼낼 일이 없기를 바랐다.
“잠시 후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때마침 라이언하트 가문의 시종이 행사의 시작을 알려 왔다.
주요 귀빈에 속하는 모리스는 시종이 나눠 주는 가위를 들고서 커팅 리본 앞에 섰다.
그는 옆에 선 다페 남작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일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나?”
“물론입니다. 보름 넘게 굶긴 짐승 놈들로만 보냈습니다. 지시하신 약도 투여했고요.”
다페 남작이 호언장담하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썩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쇼. 커팅식이 끝난 후 사냥의 밤 때 쓰일 수인 놈들을 어찌 관리하고 있는지 선보일 거라 했습니다.”
“기자들은.”
“라이언하트 가문에서 부른 신문사는 믿을 수 없으니까, 저희 쪽에서 따로 부른 기자들로 준비시켜 놨습니다.”
웬일로 다페 남작이 마음에 들게끔 처리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 모리스는 평소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되찾았다.
“커팅에 앞서 라이언하트 영애님께서 나와 대표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콩알만 한 아이가 가운데로 나섰다. 보는 눈이 많아서 왈칵 울어 버릴 만도 한데, 건방진 꼬마는 도리어 똘망똘망하게 눈을 빛냈다.
“이 치료센터를 시작으로 라이언하트 가문은 모두 함께 공생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임미다.”
모리스의 관자놀이로 시퍼런 핏줄이 불끈 솟았다.
‘……건방진 것.’
착각이 아니다. 방금 라이언하트 영애의 시선과 정확히 맞닿았다.
“아마 각오하는 게 좋을 꼬에요.”
지금 하는 말은 그에게 하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그럼 자를게여. 하나, 둘, 셋.”
거침없는 가위질이 커팅 리본을 잘라냈다.
귀족들의 환호와 사진용 마도구가 작동되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진 와중에도, 라이언하트 영애는 모리스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빠드득.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모리스가 입술을 비틀었다.
“이제 커팅식이 끝났으니, 사냥의 밤 행사 때 쓰일 수인들을 보여 주는 게 어떤가?”
사람들은 모리스가 꺼낸 새로운 화두에 금세 흥미를 가졌다. 황제가 공식적으로 라이언하트 가문에 맡긴 첫 번째 업무이니 모두의 귀추가 주목되어 있었다.
“……죠아요. 여러분들에게 저희가 처음이라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보여 드려야겠쬬.”
라이언하트 영애가 침착한 낯으로 무어라 집사에게 속삭였다.
‘네놈들의 삼일천하는 여기서 끝이다, 라이언하트.’
모리스는 다페 남작이 따로 고용한 신문 기자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제 승리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