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6/142)

137화

이제 막 도착한 황실 기사단을 향해 모리스 대신관이 외쳤다.

“저 사자를 포획하라! 라이언하트 백작이 폐하와 우리 모두를 속여서 공격하려 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전후 상황을 알 길이 없는 기사단이 무기를 고쳐 쥐었다.

나는 기사 단장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그들 앞을 막아섰다.

“거짓말이에요, 모리스 대신관의 함졍이라고요!”

“예?”

극명히 갈린 의견에 기사 단장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황실 기사단이 도착한 것을 발견한 누군가가 외쳤다.

“폐하와 황태자님께서 쓰러지셨다! 얼른 두 분을 황궁으로 모셔!”

노아가 쓰러졌다고?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아수라장 속에서 황실 시종이 쓰러진 두 남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거기 멀뚱히 서서 뭐 하는가! 얼른 두 분을 모시지 않고!”

“예, 호위를 맡겠습니다.”

기사 단장이 호통을 치는 시종에게로 달려가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대열을 갖춰 사자를 포획하라!”

아무래도 기사단은 사자의 모습인 아빠를 적으로 간주한 것 같았다.

“라이언하트 영애님 저희 쪽으로 오십시오! 위험합니다!”

그가 날붙이를 고쳐 쥐며 내게 손을 뻗었다. 딴에는 나를 구할 생각인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 앞을 막아섰다.

“모듀 무기를 거두세요! 우리 아빠는 아무도 안 해칠 꼬에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라이언하트 백작님이라니요?”

다행히도 기사단은 쉽사리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자칫 무기를 잘못 휘둘렸다가 사자의 다리를 껴안은 나까지 휩쓸릴 위험이 있어서였다.

“부단장님, 어찌 해야합니까?”

“일단은 아기 영애님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

기사단이 고민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자, 모리스가 다짜고짜 말허리를 자르며 재촉했다.

“지금 무엇들 하고 있는가? 당장 저 짐승을 포획해라! 육식 수인이 미쳐 날뛰었다가는 여기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야!”

그가 언성을 높이니, 불쾌한 기운이 더욱 강하게 몸을 짓눌렀다.

푸드덕, ―툭!

수인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아빠 또한 예외 없이 그 정체불명의 힘에 영향을 받았다.

커다란 사자의 몸이 휘청거리자, 그를 붙잡고 있던 나도 덩달아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아빠, 괜챠나요?”

“저 기분 나쁜 것이 이 사달의 원인인 것 같은데, 저게 뭔지 알고 있나?”

아빠가 모리스 대신관의 주변으로 일렁이는 검은 오라를 가리켜 물었다.

“아빠 눈에도 저 연기 같은 게 보여요?”

“보인다. 내 변신이 풀린 것도, 수인들이 괴로워하는 것도 다 저것 때문이니까.”

모리스에게서 시작된 검은 연기가 혼절한 노아와 황제 위로 밀랍처럼 눌어붙고 있었다.

그것은 아빠와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아빠의 말을 듣고 나니 설마 했던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흑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영애님,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기사단의 사과를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대신관님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수인에게 공격당할 뻔했습니다.”

“저들은 어찌하실 겁니까?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처리하심은 어떠실지…… 어? 영애가 깨어난 것 같습니다.”

이명이 차츰 줄어들며 정상적으로 돌아온 청각으로 주변의 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디지.’

어지러운 고개를 들자마자, 쇠창살에 갇혀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

쓰러져 있는 아빠를 불러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나와 함께 센터 안에서 정신을 잃은 이후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 태평하게 저 짐승을 걱정할 때인가?”

모리스 대신관이 조소를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

가까이서 본 모리스의 눈동자는 흰자마저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괴기한 생김새였다.

“댱신, 흑마법에까지 손을 댄 거예요?”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어린애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거슬린단 말이지.”

“어쩔 생각인 거죠? 노아랑 황졔 폐하는 어떻게 하고…….”

“내가 어찌할 것 같나?”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흑마법으로 세뇌시켜서 당신의 꼭두각시로 쓸 생각이겠지.’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왜 모리스가 직접 흑마법에 손을 댄 거지?’

흑마법은 기존 마법과 시동 조건이 다르다.

흑마법은 악한 염원을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시전자의 목숨을 갉아 먹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원래라면 리아노 공작을 제물로 이용해 먹었을 텐데.’

내가 리아노에게 정의구현을 한 탓에 기존 전개가 틀어져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일단 침착하자.’

속으로 조용히 이 상황을 파훼할 방법을 궁리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와중에 초조한 얼굴의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치료센터 개원식에 초대된 이들이었다.

“모리스 대신관님, 영애가 깨어난 걸 보면 사자도 곧 정신을 차릴 겁니다. 더는 지체하면 안 돼요.”

“자네들은 저 사자 수인을 어찌하면 좋을 것 같나?”

질문은 귀족들에게 했지만, 모리스의 시선은 내게 향해 있었다.

겁에 질린 채 매달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내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거였다.

‘비열한 자식.’

흑마법으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놓고서, 그 이유를 수인의 탓으로 돌리다니.

그의 비겁함에 분노가 차올랐다.

“육식 수인을 살려 둘 순 없어요. 어떤 후환이 있을지 몰라요.”

“맞습니다. 폐하께서 비록 침상에 누워 계시지만, 만약 깨어 있으셨다면 저희와 같은 뜻이셨을 겁니다.”

한두 명이 옳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점점 그 의견에 수긍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참으로 교묘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모리스. 당신이 간과하는 게 있는데 그건 당신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설전에는 나도 자신이 있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나는 귀족들 앞으로 나아갔다. 

“수인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에요! 아까 다들 보셨쟈나요. 다들 착하고 순하기만 한뎨.”

“하지만 영애님께서 센터에서 보여 주셨던 건 초식 수인들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라이언하트 백작, ……아니. 저 육식 수인과는 종이 다르다고요.”

귀족들은 작은 우리 안에 갇힌 거대한 덩치의 사자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질적으로 아빠에게 공격받은 것도 없으면서.

그들은 상상 속의 아빠를 떠올리며 덜컥 겁에 질려 있었다.

‘이 방법은 통하지 않네.’

포기할 생각은 없다. 두 번째 방법도 생각해 뒀으니까.

“그럼 수인에게 받은 은혜를 떠올려 보세여.”

“은혜라니요. 저희가 저 짐승들에게 무슨 은혜를 받았다는 겁니까?”

“츄릅츄릅 병의 치료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다람쥐 수인 토리여써요. 여기서 츄릅츄릅 병 치료제를 안 드신 분은 없을 꼬에요. 그쵸?”

“그건 그렇지만…….”

비스에 거주하고 있는 귀족이라면 모두 츄르를 먹었을 것이다.

심지어 모리스 대신관조차도!

그의 언짢은 표정이 그 증거였다.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덧붙였다.

“그리고 얼마 젼, 스트리트 3가의 화재에서 목슘을 던져서 아이를 구한 것도 수인이죠!”

“그 신문 기사에 나왔던 여인이 수인이였다고요?”

“녜. 그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자기 혼자 살려고 도망가기 바빴는뎨, 공작새 수인은 제 깃털 타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들었쬬.”

“……크흠!”

이번에도 내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피헨느의 영웅담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좋았어, 먹혀들겠는데?

“수인은 여러분들 생각만큼 위험한 존재가 아니에여. 그동안 누군가의 악의가 담긴 이간질 때문에 오해가 생겼을 뿐이져.”

나는 쐐기를 박기 위해 아빠가 갇혀 있는 우리로 다가갔다.

마침 쓰러져 있던 아빠가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 있었다.

“아빠. 졍신이 들어요?”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아빠의 뺨을 어루만졌다.

귀족들은 그 모습을 숨을 죽인 채로 지켜봤다.

“……맙소사 그가 깨어났어요.”

“저렇게 만져도 되는 걸까요?”

“쉿. 일단 지켜보자고요.”

그들의 쑥덕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오직 아빠에게만 집중했다.

“아빠. 괜챠나요?”

몽롱함에 잠긴 눈이 여러 차례 느릿하게 깜빡이는가 싶더니, 번뜩 정신을 차린 그가 몸을 일으켰다.

덜컹!

우리가 격렬히 흔들릴 정도로 움직인 이유는 하나였다.

내게 손을 뻗기 위해서.

“뺨에 그 상처는 뭐지?”

“아빠 바보. 아빠부터 걱졍해야죠.”

“다른 곳은 괜찮나?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말해.”

내 상처는 고작해야 넘어지면서 살짝 긁힌 것뿐이다.

연고를 바르면 일주일 내에 사라질 정도의 아주 작은 생채기.

그런데도 아빠는 우리 안에 갇힌 제 상황보다 내 안위부터 걱정했다.

“봐요. 우리 아빠는 나쁜 사쟈가 아니라니까.”

귀족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귀족들의 눈이 미약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애초에 아빠가 댱신들을 공격할 생각이 있었다면 변신하쟈마자 공격하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영애님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아까는 오히려 라이언하트 영애를 지키려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영애가 준비했던 그 이벤트에서 봤던 수인들…… 솔직히 무해해 보이지 않았나요?”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어때 모리스. 당신이 늘 하던 수법대로 똑같이 당하는 기분은?’

당신이 공포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꽁꽁 얼리려고 했다면, 나는 사랑으로 그것을 녹일 테야.

어느 철학자가 그러지 않던가.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고.’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 사랑은 모든 것을 허물고 포용하게 만든다.

그것이 설사 한때는 적이라고 여겼던 자일지라도 말이다.

“어리석긴! 그런 안일함이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모리스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이마 위 시커먼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거져 있었다.

흑마법이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징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말로 해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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