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2)화 (2/120)

001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3개월 전.]

마지못해 끌려온 회사 주말 산악 모임.

분명 출발 전까진 너무나도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부장님 오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우르르르쾅! 콰앙!

서 대리의 말이 무색하게 온 산을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눈앞에 번쩍거림을 느낀 도희는 억지로 고갤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니.’

속이 울렁거려 땅만 보고 걸었는데, 간만에 올려다 본 하늘은 잠시나마 그녀의 술기운을 앗아갔다.

‘우산도 없는데. 하, 집에 가고 싶다.’

머리 위 구름을 보니, 당장 비가 내릴 거 같진 않았다.

“날씨가 좋을 수밖에. 내 전용 기상캐스터가 있네. 이름은 시리라고 하지.”

‘천둥 치는데요?’

도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켰다.

마 부장의 말 뒤로 꺄르륵 지어 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여기가 산이건, 회사이건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연장 근무지. 휴무니까 특근이라고. 특근.’

게다가 무급이다.

다시 생각해도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언제부터 내가 회사 주말 모임 따라다녔다고…….’

이번 모임도 역시나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도희씨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와 주라. 내일 이사님 오실 수도 있어서 마 부장님이 부서원이 전원 참여해야 부서 분위기도 좋아 보인다고… 응? 도희씨 이번만 와 주면 다신 부탁 안 할게.

아오.

서 대리 말에 못 이겨 오겠다고 한 어제의 나, 반성하자.

평소라면 적당히 분위기 맞춰 같이 웃고 떠들 테지만, 지금은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상태였다.

‘적당히 마실 걸…….’

바람난 전 남친 놈 문자만 안 왔어도 3차까진 안 갔을 거다.

‘으, 징글징글한 자식.’

번호를 바꾸리라 다짐한 도희는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털어냈다.

“물 좀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

“앗!”

저 멀리 물을 주고받다 손길이 스친 남녀의 눈빛이 요상하다.

‘……좋을 때네.’

잠시 뒤, 산 중턱에 올라서니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날씨 참 요란스럽네.

내 마음처럼.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구만. 자네들 바람이 엉덩이가 있다면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던 마 부장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시작이네.’

“음~”

“글쎄요. 바엉이? 부엉이? 바덩이?”

“정답은 풍뎅이네. 풍뎅이. 허허허허.”

“하하… 꺄하하, 부장님 너무 웃겨요.”

“부장님 공부하시죠? 부장님 말솜씨는 제가 따라가기 벅찹니다. 하하.”

사진 찍기 좋아하는 마 부장 탓에 그의 무리는 꼴찌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마 부장 무리를 앞질러 훨훨 날아가고 싶지만.

전날의 과음으로 몸과 정신의 괴리가 아득한 날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도희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언제나 활기 넘치는 도희였다.

아마 사적 모임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도희가 억지로 온 탓에 기분이 좋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한 모양이다.

부서원들은 도희가 얼마나 오기 싫었으면, 저렇게 어두운 모습일까 싶어 조심하던 차였다.

그들에게 그녀가 전날의 숙취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슬슬 도희도 자신의 눈치를 보는 팀원들이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도희씨 어디 아파?”

때마침 말을 거는 서 대리.

도희는 고개를 도리질한 후 힘껏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 과음을 해서 속이 좀 안 좋네? 그래도 산속 맑은 공기 마시니까 괜찮아지고 있어. 잘. 온. 거. 같아. 하하.”

저도 모르게 거짓말할 땐 힘이 들어갔다.

“아이고~ 우리 미녀 분께서 힘들다면 쉬어 가야지. 쉬엄쉬엄 갑시다. 강 대리 같은 인재의 체력을 축내려고 온 산이 아니지 않나. 허허.”

‘웬일이래.’

산행 내내 사람 좋은 웃음 짓고 있는 걸 보니, 오늘은 일 년 중 몇 안 되는 마 부장의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평소에도 하해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 마마라는 별명은 얻지 않으셨을 텐데…….

마 부장… 마귀… 새… 끼…….

“아핫, 아니에요. 전 괜찮습니다. 계속 오르시지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힘주어 웃어 보이는데 신경을 긁는 한마디가 들려온다.

“강 대리 어제 뜨거운 밤 보냈나 봐? 기운이 없어 보여.”

‘그럼 그렇지.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어떤 뜨거운 밤이요?”

도희 입가에 머물던 사무용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이, 강 대리 알면서 왜 이러나.”

“부장님, 또…….”

“에헤이~ 농담이네. 농담.”

가늘어진 도희의 눈매를 본 마 부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시 앞서 걸어 나갔다.

열 받지만 그녀가 부서 최고 실세인 마 부장을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아오… 참자, 참아!’

도희는 초록 잎만 봐도 전날 마시던 소주병이 떠올라, 고갤 땅으로 꺾은 채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를 일깨워 줬다.

‘산 공기 마시니까 좋긴 좋네.’

활기가 솟는 것이 왜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지 알 것도 같았다.

도희의 컨디션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     *     *

솨아아아아아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와아~”

주변을 가득 채우는 물소리에 고개를 든 도희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찔한 높이의 깎아지른 기암절벽의 절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절벽의 끝은 어찌나 높은지, 고개는 끝도 없이 꺾여 위로 향했다.

그리고 절벽의 끝 우측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데,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웅장한 풍경이었다.

도희는 고갤 돌려 주위를 살폈다.

도희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모두 이미 인증샷 찍기에 심취해 있었다.

사진 찍느라 꼴찌로 도착한 마 부장 무리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 바빴고, 심지어 명당자리는 줄까지 서야 했다.

솨아아아아아—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도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디딘 땅의 끝 지점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서 있던 땅도 아찔한 절벽 위였다.

눈앞에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끝도 모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으. 머리야.’

절경이고 뭐고 감탄도 몇 초 뿐.

급 피곤해진 도희는 비어 있는 나무 의자 중 가까운 곳을 찾았다.

털썩 쓰러지듯 의자 나무 바닥에 손을 짚고 비스듬히 앉는 그녀.

앉은 건지, 누운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멍하니 있는 그녀였다.

세차게 흐르는 폭포수 소리는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크으, 이런 곳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

이 와중에 소주 생각이라니.

‘미친 거지, 미쳤어.’

아침에 일어나면서 당분간 또 입에 술을 대면 개라고 다짐했는데…….

월— 월…….

저녁에 해장은 뭐로 하지?

‘당분간 술은 절대 안 마셔야지. 하, 진짜로!’

저녁 뒤풀이도 컨디션 핑계 삼아 빠져야겠다고 생각하는 도희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긴 도희는 남들 눈엔 신비한 분위기의 도도한 미녀처럼 보였다.

그녀가 저녁 메뉴나 고민하며 금주를 다짐하는 중이라고 예상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하나둘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희도 이제 슬 내려가도 되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서 대리, 이 사진은 다리가 잘렸네. 다리 나오게 다시 찍어 주겠나?”

“서 대리! 다리가 너무 짧게 나왔는데?”

“절벽이 너무 조금 찍혔구만. 풍경이 안 살잖아. 풍경이.”

“어허~ 서 대리!”

까다로운 마 부장 탓에 쩔쩔매는 서 대리.

도희는 고군분투하는 서 대리를 보자니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이 빨리 올라가야 도희도 내려갈 수… 크음.

사심 반, 도와주고 싶은 마음 반이라고 하자.

“부장님 제가 두 분 사진 찍어드릴게요. 서 대리도 사진 한 장 못 남겼지? 가 봐, 내가 찍어 줄게.”

“어? 어! 도희씨 땡큐!”

서 대리는 얼마나 고마운지 눈을 반짝거리며 인사하더니, 쫄래쫄래 마 부장 옆으로 가서 포즈를 취한다.

‘다리 길게~ 전신 샷으로~ 배경이 위로 많이 나오게.’

사진 꽤나 찍는 도희에게 이 정도 미션은 껌이었다.

마 부장은 도희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강 대리는 못하는 게 뭐야? 강 대리 저쪽 배경으로도 한 장 찍어 주겠나?”

“아이, 그럼요~ 부장님.”

“뒤에 저 나무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가 가리킨 손끝에는 저 높은 절벽 끝에 다다르기 직전, 절벽 돌 사이를 뚫고 자란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렇게 마 부장은 포즈를 취하고, 도희는 절벽 나무까지 담기 위해 한 발짝씩 뒷걸음질 치고 있는데…….

부스스스슷—

그 순간, 갑자기 예기치 못한 돌풍이 불어왔다.

나무들이 어찌나 세차게 흔들리는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산 전체를 뒤덮었다.

사방에서 불어온 돌풍이 도희의 윤기 나는 긴 생머리를 흩날렸다.

“아우, 뭔 바람이 이렇게 불어. 푸흐.”

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이 도희의 눈을 가렸고, 도희는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내저었다.

휘이이이이잉—

연이어 집도 날아갈 만큼의 엄청난 강풍이 도희를 향해 휘몰아쳤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강풍은 도희를 노렸다는 듯 그녀에게로 쏟아지더니,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도희를 삼킨 강풍은 그녀의 몸을 높이 붕 뜨게 하더니, 단숨에 그녀를 폭포로 밀어 넣었다.

“어?? 어? 살려주어어어어!”

“강 대리이이이이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도희는 마 부장 눈에서 차츰 멀어져 갔다.

그렇게 작고 연약한 도희의 육체는 너무도 쉬이 날아갔다.

마치 바람 앞에 촛불처럼.

저 아래 폭포 바닥으로.

끝없이 또 끝없이.

이내 폭포를 뒤덮던 날카로운 비명이 그쳤다.

도희가 종일 억지로 붙잡고 있던 정신도 아득하게 꺼져 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과하게 새파란 하늘과 예기치 못한 강풍에 분분히 흩어져 뿌려지는 나뭇잎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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