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3)화 (3/120)

002화 고고한 자태의 미남자

매사 상황 판단이 빠른 마 부장이다.

허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 정리하기까진 수 초가 소요되었다.

아득해지던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마 부장은 도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저벅, 저벅.

그의 발이 도희가 떨어진 땅 끝 지점에 다다랐다.

그의 귓가에는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가 소름 끼치게 때려 박혔다.

그리고 마 부장의 고개가 하염없이 아래로 꺾였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오금이 저리는 천 길 낭떠러지였다.

마 부장은 본인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평소 그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강도희 대리가 폭포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도희의 고함만 들어도 그녀가 얼마나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지 짐작케 했다.

‘살았을까?’

아니, 죽었을 거다.

‘내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사고라니.’

곧 인사평가 발표였고 이번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차 부장과 몇 년의 눈치 싸움 끝에 먼저 승진하는 중대한 날이 코앞인데 사고라니.

‘만약 죽어서 발견된다면…….’

승진이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징계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승진하면 무려 이사였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명함인가!

직원이 아닌 회사 임원 자리 하나 꿰차는 것이다.

꽉 다물린 마 부장의 입 안에서 작게 이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렇게 중대한 시기에…….’

마 부장은 혹여 자신의 발목을 잡을 작은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강도희는 혼자 떨어진 거 아닌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선 이 상황이 일반 실족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마 부장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출발했고 자신과 서 대리, 둘만 남아 있었다.

마 부장은 단호한 말투로 서 대리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우린 아무것도 못 봤네.”

마 부장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내던진 한 마디는 태풍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네? 부장님……?”

방금 자신이 두 눈으로 목격한 상황을 믿을 수 없던 서 대리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자주 뜻 모를 말을 하곤 못 알아듣는다며 핀잔을 주던 마 부장이었지만, 지금 말은 더더욱 무슨 말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서 대리 정신 차리고 내 말 듣게!”

마 부장은 서 대리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우린 지금 아무것도 못 봤다고! 나도 당황스럽네. 하지만 이 사고의 책임을 자네가 질 건 아니지?”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무엇을 책임진단 말인가?

서 대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찰에 신고하는 일뿐이었다.

사고당한 도희를 찾는 건 그의 몫이 아니었다.

당장 내려가서 폭포 근처를 뒤져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무슨 수로 저길 내려간단 말인가.

서 대리는 연이어 몰아치는 정신없는 상황에 그저 벙쪄 있었다.

“저… 부, 부장님 빨리 신고부터 해야 도희씨를 찾지 않을까요?”

힘겹게 내뱉은 서 대리의 한 마디는 당연한 말이었다.

“강도희 대리는 우리 눈앞에서 폭포 아래로 떨어졌어. 자네와 난 그 상황을 모두 지켜봤고! 근데 지금 신고를 한다면 우린 가만히 서서 구경만 했다고 말할 건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장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아까 서 대리는 하필 바람에 날린 모래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보진 못했다.

하지만 정황상 강 대리 혼자 발을 헛디뎌 떨어진 듯했다.

언뜻 보기에 무언가에 밀리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딱히 누가 민 것도 아니었다.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거칠게 불던 바람 탓이었던 거 같기도…….

“바람에 밀려 발을 헛디딘 건 아닐까요… 그땐 저희도 바람 때문에 도와줄 방법이 없…….”

“그럼 자네가 가서 바람에 밀려 떨어졌다고 신고해. 우리 셋 중 강 대리만 바람에 밀려 떨어졌다고.”

이건 좀 뭔가 이상하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데 괜한 구설수가 생길 만도 했다.

“괜한 오해는 사지 말아야지. 서 대리.”

남겨진 남자 둘, 여자 하나.

그리고 사라진 여자.

도희 혼자 사고를 당한 게 사실일지언정, 성인 여자가 바람에 밀려 폭포로 떨어졌다는 걸 믿어줄까?

“강 대리는 여기서 우리와 함께 쉬다가 볼일이 있다며 먼저 산을 내려갔고, 혼자 실족사한 거라고! 내 말 알아듣겠나?”

이미 멋대로 도희가 죽었을 거라 판단하는 부장이었다.

서 대리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녈 찾기 위해 신고를 한 본인이 불이익을 당할 확률.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가 신고 안 한 자신을 원망할 확률.

아무리 계산해도 전자의 확률이 훨씬 더 큰 판이었다.

마 부장의 의도는 명확했다.

자신이 책임질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명백한 방임이자 회피였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도희의 골든타임을 앗아가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마 부장의 의도를 서 대리도 모르진 않았다.

사외 모임이라 할지언정 회사 부서원들 간의 모임이었다.

일개 사원인 서 대리가 책임을 질 일은 없겠지만 부장은 달랐다.

부장이 주최한 행사에서 대리가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만약 사망했다면…….

아무리 불가피한 사고였다 해도 회사는 마 부장을 부정적 시선으로 볼 것이 자명했다.

본인이 책임질 상황은 절대 만들지 않는 마 부장이다.

‘책임자라고 만들어 놓은 지위인데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니.’

“하아…….”

서 대리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서 대리는 평소 마 부장의 쓰레기 같은 인성을 겪을 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의 생사를 논할 때도 본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이기적일 줄이야.

“서 대리,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서 대리인 거 알지?”

그동안 마 부장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마 부장 라인만 탄다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 탄탄대로나 마찬가지.

순간, 서 대리는 몹쓸 생각이 들었다.

‘나만 눈을 감는다면…….’

강 대리는 혼자 사고를 당했다.

명백한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모두가 본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강 대리가 먼저 쉰다며 혼자 산을 내려갔다.

믿을 법한 거짓말.

만약 누군가 마지막에 남은 마 부장과 서 대리, 강 대리를 봤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늘 강 대리를 봤다면 먼저 쉰다며 내려갔단 말을 누가 믿지 않으리.

그 후 알고 보니 강 대리는 혼자 산을 내려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반은 사실, 반은 거짓.

앞뒤 상황을 바꾸고, 거짓말을 살짝 섞었지만 꽤 그럴 듯했다.

오늘이 일요일이었으니, 내일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은 이틀 후였다.

딱 이틀.

이틀 후에 회사에서 강 대리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며 신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도희씨 미안.’

아주 작은 확률.

서 대리는 도희가 살아 있을 아주 작은 확률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가 알았으랴.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진 도희가 멀쩡히 살아 있을 거라고.

그 작고 작은 확률은 점점 몸집을 키워 다른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     *     *

며칠 후.

고고한 자태의 미남자가 넋이 나간 상태로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다.

도희의 실종 소식을 전해들은 도하였다.

하얗게 질린 그의 안색을 본 주변 여사원들은 그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아…….’

금방이라도 눈물 쏟을 듯한 도하가 제 얼굴을 감쌌다.

‘강도희…….’

며칠째 그녀가 보이지 않아 도하도 걱정되던 참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녀의 친구가 회사에 찾아와 그녀를 찾았다.

집에도 없고, 연락도 안 된다며.

여러 사람을 붙잡고 물어본 그녀는 도희가 며칠째 결근인 걸 확인한 뒤, 실종 신고를 한다며 돌아갔다.

‘실종이라니…….’

친하진 않지만, 그와 이름이 비슷해 항상 신경이 쓰이던 여사원이다.

아니, 친하지 않다는 표현도 다소 무리가 있다.

‘그녀가 나를 알까.’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층에서 근무하기에 오며 가며 인사만 하는 사이.

항상 고운 미소로 인사해 주지만, 그녀는 도하의 이름조차 모를 수도 있다.

도하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우연한 기회였다.

입사 초.

사람들이 가득 찬 만원 엘리베이터.

서로 눈치를 보자,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며 거짓말을 자처해 내리던 그녀.

사람들과 닿는 게 싫었던 도하도 따라 내려 다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우연히 보게 된 사원증에 적혀 있었던 이름, 강도희.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앞 카페에서 아이가 뒤따라 들어오자 문을 가만히 잡고 있던 그녀를 본 후부터였나.

잘 모르는 그에게조차 허리 숙여 반듯하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면 괜스레 심장이 떨려왔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이상형을 빼닮은 그녀가.

‘실종이라니…….’

실종 소식을 들은 후부터 도하는 머릿속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강도희란 세 글자는 그를 온통 헤집어 놓고 있었다.

‘강도희…….’

남에게 다가가는 방법 따윈 모르는 도하에게 도희는 울렁거림의 대상이었다.

도하는 그녀에게 제대로 말 한번 걸어보지 못했다.

아니, 차마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에게 도하와 같은 벽을 본 순간부터.

투명한 듯 보이지만, 절대 깨지지 않는 단단한 벽.

그대들은 절대 넘을 수 없다 선언하는 벽이.

도하에겐 분명히 보였다.

누구보다 높고 더 단단한 벽을 가진 도하였으니까.

여자라면 이제 지겨운 도하였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먼저 다가왔지만, 그의 차가운 성격을 알고 나선 끝내 돌아섰다.

도하는 자신의 외모만 보고 다가오는 그녀들에게 신물이 났다.

그녀들은 항상 도하에게 많은 걸 바랐고, 아무리 맞춰 주려 노력해도 부족하단 대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떠나간 그녀들은 다신 도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마다 도하의 벽은 더 단단해졌다.

도희는 그가 처음으로 먼저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자, 여자였다.

다가가 볼 걸 그랬다.

대차게 거절당하더라도.

그녀가 다신 그를 쳐다보지 않을지라도.

어차피 지금과 다를 게 무엇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텅 비어 버린 속 쓰림과 허무함만 밀려왔다.

머리가 빙빙 돌고 자꾸 헛구역질이 났다.

‘도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고개를 든 도하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순간 도하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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