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5)화 (5/120)

004화 부유한 형사 도련님

서부 경찰서 안은 오늘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야 이 자식아! 너 몇 살이냐니까? 어린놈의 자식이 어디…….”

“하, 나 이 꼰대. 여기서 나이가 뭔 상관인데요? 나이 많으면 길 한복판에 주차 멋대로 해도 된다는 법 있냐고!”

“몇 번 말해, 잠깐 빵 사러 간 거였다고!”

“그러니까 왜 차를 우회전 차선에 세우고 빵을 사러 가냐고 이 양반아!”

“이 어린놈의 자식이 어디 어른한테 삿대질이야! 너 일루와 시끼야.”

쾅! 쾅!

볼에 큰 흉터가 인상적인 우람한 덩치의 남성이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두 분 다 여기가 경찰서인 거 잊으셨나. 폭력 행사하시는 분은 각오하십시오.”

남성의 오른쪽 볼에 길고 선명한 상처는 칼자국으로 보였고, 웬만한 성인 남성의 두 배인 그의 팔뚝과 주먹은 다른 이들이 겁을 먹기에 충분했다.

“형사님! 불법 주차한 것도 저 사람이고 제 차 발로 찬 것도 저 사람입니다. 저 합의 못 합니다. 그냥 저 인간 감빵 넣어주세요!”

“허! 감빵은 아무나 가는 줄 아나.”

“너 같은 인간은 범죄자지. 아무나가 아니고.”

“뭐? 범죄자? 말 다 했냐 이 &^*!”

탁! 탁!

“어~허!”

우람한 덩치의 형사, 서 경위가 다시 서류철로 책상을 내려치자 멱살을 잡으려던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지 순경이 입을 열었다.

“이 형사님 저 사람들 뭡니까? 강력범죄 같진 않은데…….”

강력팀에 부임한 지 일주일 된 막내 지 순경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 서 경위가 딴 팀꺼 도와주는 거야. 가끔 제어 안 되는 진상들 오면 일부러 서 경위 붙이잖냐.”

“크으, 역시 서 형사님은 강력 2팀의 마동식이시군요.”

“마동식?”

“왜 마동식 앞에선 분노조절장애도 꼼짝 못 한다잖아요.”

“마동식은 배우잖냐. 서 경위님은…….”

“지금 내 욕하냐?”

어느새 사건을 마무리하고 온 서 경위가 두 사람 뒤에 서 있었다.

“에? 저 사람들 벌써 갔어요?”

“합의한다네.”

“합의하라고 협박하신 거 아니시죠?”

“어~허!”

서 경위가 지 순경의 목을 감싸 안았다.

“억… 항복… 저도 합… 의… 하겠습…….”

지 순경이 항복의 표시로 서 경위의 팔뚝에 탭을 쳤다.

“막내 그만 괴롭히시고 커피나 드시죠.”

모여 있던 그들에게 미소가 예쁜 한 남성이 다가왔다.

‘예쁜 미소’라는 단어가 이 남자보다 어울리는 남자가 또 있을까.

그의 양손에는 브랜드 커피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크으, 역시 우리 돈 많은 도련님. 내가 믹스커피 타 먹다 질린 거 어떻게 알고.”

“그럴 줄 알고 좋아하시는 거 종류별로 사 왔습니다.”

“우 경위 땡큐.”

이 경위와 서 경위가 고심하며 고르더니, 취향대로 커피를 한 잔씩 가져갔다.

“막내는?”

“저는 아아.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우주가 지 순경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우 형사님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십니다.”

지 순경이 우주에게 엄지를 내보였다.

“내가 원래 볼 게 얼굴밖에 없어.”

“크으, 역시 드높은 자존감.”

막내 지 순경이 재차 양 엄지를 흔들어 내보이니, 그의 머리를 흩트리며 웃어 보이는 우주였다.

쌍꺼풀 없는 큰 눈이 만들어 낸 부드러운 곡선의 눈매, 높고 곧은 콧등, 깊게 팬 보조개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팀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커피를 마시던 이 경위가 회의실을 향해 턱짓했다.

“팀장님 커피 드리고 오겠습니다.”

우주가 회의실로 향하자 막내가 말했다.

“우 형사님 혹시 어디 대기업 사장 아들인 거 아니에요?”

“그럼 얘가 경영 수업받고 있지. 여기서 우리랑 구르고 있겠냐?”

“아니, 다들 우 형사님보고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하시니까.”

“우리도 쟤네 집 뭐하는지는 몰라. 그게 중요하냐? 우리한테 돈 잘 쓰는 게 중요하지.”

“그러고 보면 맨날 우 형사님만 돈 쓰는 거 같습니다. 비싼 거 먹을 때도 그렇고.”

“야, 우리가 우 경위 덕분에 가끔 소고기 먹지. 우리 식비 나오는 걸로는 국밥이 다야, 이 쨔샤.”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20대 후반 여성 실종 사건이다. 실종 추정 시간은 2일에서 3일 전. 우 경위랑 지 순경이 일단 신고자 만나보고, 서 경위랑 이 경위는 실종자 회사로. 자 출발!”

*     *     *

“우 형사님 실종도 강력으로 분류됩니까?”

“요즘 여성 실종이 살인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잦아서 그래. 멀쩡한 직장 다니는 젊은 여성이 가출할 일은 없잖아.”

“살인요……?”

“성인 여성 실종 사건은 강력 범죄로 연관되기 쉬우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

“그래.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서 안으로 짧은 숏컷 머리의 여성 한 명이 들어선다.

“친구 실종 신고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아,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친구… 제발 찾아주세요…….”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한 것과 달리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

—뭐……? 뭐라?!

점잖던 도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난데없는 난관에 봉착한 도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서책의 남아 있던 기운을 모두 끌어모아 도술로 겨우 여기까지 오게 한 여인이다.

여인에게서 분명 강한 선의(善意)는 느껴지는데, 그녀의 대답이 요상하다.

도사는 살아생전 이런 황당한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는 죽어 혼만 남았고, 그 후 몇 백 년이나 더 흐른 상태인 거 같지만…….

본성과 언행이 이리 다른 여인이라니.

—정의를 행하는데 이유가 필요하단 말이냐?

도희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자칭 ‘도사’라는 책이 말을 하고, 뜬금없이 정의를 행하자니…….

대충 들어도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정의를 행해?

어떻게……?

‘아니, 것보다 내가 왜?’

도희는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했다.

돈이 넘치진 않지만 책임질 가족도 없기에, 회사 다니며 혼자 먹고살기 충분했다.

정의로운 일?

좋지, 좋은 일이다.

대단한 일이고.

‘근데 나한테 득 될 게 뭐 있다고.’

도희가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시간은 금이고, 본인 외에 다른 일엔 절대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직감적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휩쓸리는 순간, 그녀의 인생이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크흠. 자네 도사를 아는 것 같네만. 도사란 무엇인가?

“음… 깊은 산, 심산유곡에서 도 닦는 사람들?”

의문 서린 표정의 도희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우린 기본적으로 도(道)를 따르며 여러 술법을 연마하네.

‘술법?’

—무릇 도사란, 도술을 연마해 그 술법으로 자신이 신선이 되고자 한 자들이지.

“신선… 이요?”

‘허, 갈수록 가관이네.’

떨떠름한 듯 떨리는 도희의 목소리와 속내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쉬이 말해 불로불사(不老不死)를 말하는 것이네.

“에? 그게 가능…….”

‘할 수도 있겠네.’

지금 그녀도 웬 서책에 갇혔다는 도사의 혼이랑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술법은 또 뭐야.’

—도사는 술법을 행해 여러 도술을 부릴 수 있네.

‘도술?’

언젠가 보았던 도사 관련 영화가 떠올랐다.

바람도 부리고 분신술도 쓰고, 막 부적도 쓰고 요상한 재주를 부렸던 거 같은데.

‘잠깐, 바람……?’

폭포로 떨어지기 전 도희를 뒤덮기 위해 휘몰아치던 돌풍이 떠올랐다.

—……크흠.

도사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설마.’

—내 사과가 늦었소. 놀랐다면 미안하오.

“예에? 절 일부러 떨어지게 하신 거예요? 진짜 그 도술을 써서?!”

도희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니, 뭔 놈의 정의를 논하던 양반이 사람을 위험에 빠트려?’

—그대의 도기(道氣)를 느낀 순간 내 마음이 급하여…….

‘도기? 나한테?’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도사가 말했다.

—그대를 여기로 오게 할 방법이 그거 밖에 없었으이… 일절 위험하지도 않았고…….

“위험하지 않았다구요??”

‘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난 뒈질 뻔했는데!’

—내 진정 사과하오. 이 못난 자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도사의 목소리는 사뭇 정중했다.

‘됐고!’

“그럼 저를 여기로 오게 하셨으니 내보낼 수도 있으시죠? 전 이만 집에 가고 싶은데.”

속내를 감출 생각이 없다는 듯 도희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녀는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짜증을 겨우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도사님도 사정이 있어서 저를 여기로 오게 하셨겠죠. 그쵸? 다 이해합니다. 아니, 이해 못 해도 할게요.”

억지 미소를 짓는 그녀, 부탁하듯 읊조리는 도희의 눈가가 부르르 떨린다.

“잊으라면 다 잊을게요. 저 말고 더 정의롭고 의기 넘치는 분을 찾아 도사님 뜻을 이루세요!”

‘정의는 얼어 죽을!’

뒷말은 속으로 아주 작게 생각했다.

아주 작게.

—한 번만 날 도와줄 수는 없소……?

“네. 못 도와드릴 거 같아요.”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어찌 그리 매정하단 말이오…….

“도사님께 죄송하지만, 제가 남 도울 입장이 아니에요.”

도희가 서책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동굴 입구로 향했다.

—제발, 제발 날 좀 도와주게나. 이렇게 부탁하겠네…….

절절한 도사의 외침에도 동굴 입구 물웅덩이 앞에 선 도희는 팔짱 끼고 눈까지 감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아아아, 난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그대가 내 청을 들어준다면 나도 그대의 청을 하나 들어주겠네. 뭐든 말하게!

“제 소원은 여기서 나가는 거예요.”

—물론! 그대가 원한다면 언제든 나갈 수 있네.

‘이 양반이 말장난하나, 아오.’

도희는 그럼 내보내달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튀어 올라왔다.

—‘허! 말버릇이 고약하군. 참으로 요상한 여인일세.’

도희가 도사의 속내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우선 나가기 전에 내 이야기 한 번만 들어줄 수 없겠는가?

싸늘하다.

이 도사가 여타 도사들과 다른 ‘별종’이자 ‘이단아’라는 걸 사실을 알 길 없는 도희였다.

물론, 그가 진정 도사다운 도사였다면 이미 등선(登仙) 했겠지만.

—듣고 그대가 판단하게.

“…하아.”

—내 마지막 간절한 청일세.

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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