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그렇게 된 것이네. 그러니 날 좀 도와주겠나?
도사의 이야기가 끝나고 몇 분이 지났지만, 도희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도사님의 술법들과 선과 악, 그리고 악의 그릇까지.
그녀가 알던 세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게다가 불과 몇 백 년 전, 이 땅의 이야기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악한 도사가 악한 일들을 저질렀고, 도사님은 그걸 막다 서책에 봉인되셨다?”
—그렇네.
“그리고 그 악의 도사가 다시 환생했을 수도 있다?”
‘환생이라니…….’
도희 본인 입으로 내뱉었지만 낯설기 만한 단어였다.
—그자가 처음부터 악한 자는 아니었네. 각자의 사정이 있지 않은가…….
도희도 큰일을 겪고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한 사람을 본 적 있다.
—본디 인간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태어난다네. 그중 과한 악(惡)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있네.
성선설, 성악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 악함을 배운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나 선함을 배운다.
‘둘 다 아니란 말이네?’
—무위자연(無爲自然). 세상의 이치에 따라 그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 도사 된 자의 도리지만, 그들의 걸음은 정도(正道)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자는 그 악의 흐름을 막고자 하였지.
“그 나쁜 도사님이요?”
—분명 시작은 선(善)이었네. 그 도사는 그들을 해(害)하기보다 그들의 악(惡)을 덜어내기로 하였네.
‘악을 덜어 내? 그게 돼?’
—‘악의 그릇’을 만들어 냈다네.
‘악의 그릇이라…….’
도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과한 자만심을 가진 멍청한 자였지. 악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결국 악은 흘러넘쳤고, 그자는 악에 먹혀 버렸네.
악에 먹힌 그 자는 날뛰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도사는 그걸 막다 서책에 갇혔다.
그 뒤는 이미 들은 이야기였다.
“도사님이 막으셨다면 이번에도 막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 악의 도사가 환생했더라도.”
—틀렸네. 나는 막지 못했네.
“에?”
—도사가 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나?
“아하하… 제가 살아생전 도사님들을 뵌 적이 없어서…….”
‘그럼 다른 도사들도 있다는 말인데.’
“왜 저희는 도사님들의 존재를 모를까요? 유유자적 산속에만 계셔서 그런가?”
‘도사님 시절 사람들도 몰랐나?’
—약조 때문일 걸세.
“무슨 약조요?”
—그자는 악에 잠식된 후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네. 힘을 가진 자가 지키는 세상은 평온하지만, 그가 부수고자 한다면 쉬이 무너지는 게 세상이지.
권력을 쥔 자가 남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여,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옳은 곳에만 써야 하는 거라네.
‘힘을 가진 자가 그 힘을 옳은 곳에 쓴다라…….’
얼마나 이상적이고 좋은 말인가.
지키기 힘든 말이기에 모두가 외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다.
‘물론, 강자가 아닌 약자의 외침이지만.’
—허나 벌어지지 말아야 될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고, 우린 신뢰를 잃었다네. 힘을 가진 것만으로도 배척받는 시절이 오고야만 거지.
“그 악한 도사 한 사람 때문에요?”
—다른 이들에게 그 어리석은 치나 우리나 모두 같을 테지.
‘같다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과한 힘을 가진 이들이 선한지 악한지 어찌 판단할 겐가.
도희가 고갤 끄덕였다.
평범한 이들에겐 힘을 가진 자 모두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나는 그를 어쩌지 못하지만.
그는 나를 어찌 할 수 있는.
—그자를 막은 후,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약조하였네. 모두 자취를 감춘 게지.
“자취를 감췄다면 어딘가에는 있긴 하다는 거네요?”
—그 명맥이 이어져 온 진 알 수 없네. 허나 그대가 모르고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하여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겠나.
‘거참. 모른다는 말씀을 거창하게 하시네.’
—크흠!!
‘책에 기도가 있을 리 없는데 왜 자꾸 기침을…….’
속마음이 읽힌다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대에게 도기(道氣)가 느껴지는 걸 보면 분명 존재한다네. 이 세상 어딘가에.
영문 모를 표정의 도희는 괜히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이 아이가 아니라면 선조(先祖)일 수도…….’
—하여 다시 묻지. 그대가 날 좀 도와주겠나?
도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의 상황이 진짜든 가짜든 그녀가 내릴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죄송해요. 저는 제 인생 살기도 벅차요.”
종일 회사에 박혀서 돈 벌어 먹고살기도 바쁜데, 누가 누굴 돕는단 말인가.
그럴 기운도, 시간도 없다.
—그대가 옳은 일을 한다면, 재물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네.
‘재물이 따라와?’
도희의 귀가 쫑긋 섰다.
—한 해만 도와주게.
‘한 해? 일 년?’
—도와준다면 자네의 청이 무엇이든 하나 들어주겠네.
“어떻게요?”
—재물, 건강, 권력, 무엇이든 그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게.
“원하면 다 이뤄 주시나요?”
—돕겠네. 그대가 그걸 이룰 때까지.
도술 부리는 도사님이 도와준다면야…….
팔짱 끼고 삐딱하게 선 도희의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머릿속엔 이미 돈 걱정 없이 세계 여행 다니는 자신이 그려지고 있었다.
—딱 한 해. 그대는 그저 악을 쫓으면 되네. 물론 그것도 내가 돕겠네.
“도사님 능력이 그리 대단하신데, 제 도움이 왜 필요하신 거예요?”
—이 대단한 재주도 무한은 아닐세.
‘어? 그럼 속마음도 들리다 안 들리다 하나?’
—그건 이 서책에 새겨진 도술이네.
‘아오! 서로 불편하게 그런 도술은 왜 새긴 거야.’
—‘네놈 같이 욕심이 그득한 자 때문에!’
속내를 삼킨 도사가 대답했다.
—그 사악한 놈은 날 이곳에 가둬 도술로써 이용하려 했네. 하여 나는 그자의 마음을 읽어 그자를 막고자 했지.
‘다른 사람이 손대도 읽힌다는 거야?’
헐… 엄청난 거짓말 탐지기라는 거잖아?
이거 완전 대애박, 허.
—그리고 그대가 돕는다면, 도술은 얼마든지 부릴 수 있으니 그 또한 문제없네.
‘내가 도와? 어떻게?’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남의 마음을 읽고 도술까지 부리는 도사님이 있다면, 돈 벌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도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도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서책은 어느새 그녀의 두 손 위에 고이 올려져 있었다.
—‘아깐 그렇게 손대라고 해도 안대더니… 쯔쯧.’
도사는 정말 이 여인을 믿어도 되는 건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그녀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 한들 그녀의 속마음을 훤히 꿰뚫는 도사가 모를 리 없었다.
분명 그렇긴 한데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대는 그저 악을 쫓으면 되네.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겠네.
‘악을 쫓으라고?’
너무 추상적인 말이다.
‘악한 자, 즉 나쁜 놈을 찾으란 말인가?’
—그렇네.
“찾아서는요?”
—악행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막아야지. 내 그 정도 능력은 있네.
“아니요~ 그 말이 아니라 도사님 도술로 어찌어찌 한다고 쳐요. 그리고 나서는요?”
—재차 악행을 저지른다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또 막아야겠지.
노가다 하세요?
“무슨 수로 모든 악행을 막아요?”
—허면 손 놓고 보고만 있을 겐가?
“아니~ 제 말은 나쁜 짓 하는 놈들은 그렇게 살아온 놈들인데, 도사님이 몇 번의 악행을 막는다 한들 바뀌겠어요?”
—그럼 그대에겐 그들을 바꿀 방법이 있다는 겐가?
“에이, 제가 무슨 수로요. 그냥 경찰에 넘기면 되죠.”
—‘경찰’이라 하였는가?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예요. 나쁜 놈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다고 한들 도사님이 얍얍! 하고 때려서 말릴 수도 없고, 휙휙! 하고 도술 부려 용케 말리긴 했어. 근데 나쁜 놈들이 상해라도 입어 봐요. 도사님 바로 감옥…….”
‘아니지…? 내가 가는 거네?’
책이 무슨 수로 감옥을 가?
‘허…….’
엮이게 되면 제대로 코 꿰인단 생각이 든 도희였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겐지…….
“경찰은 포졸이고, 감옥은… 그 도사님 시절엔 나쁜 놈들 벌 받을 때 ‘하옥하라!’ 하지 않았나?”
—옥을 말하는 게구나.
“나쁜 놈이라도 다치게 하거나 피해를 입히면 잡혀가는 세상이라고요. 그런 날엔 도사님이나 나나 응? 아시겠어요?”
도희가 한 손엔 서책을 들고 쳐다보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내 술법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네.
“아니, 도사님 술법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그래요! 세상이!”
—크흠…!
“CCTV는 넘치고 모든 곳에 증거 영상이 찍히는 세상인데 도사님 마음대로 얍얍!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대한민국만큼 곳곳에 카메라가 많은 곳도 드물었다.
자동차 블랙박스는 또 어떻고.
—씨씨티? 증거영상?
“음, 이건 설명보다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어? 근데… 그…….”
‘책은 눈이 없는데 볼 수 있나?’
—걱정말게,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인지할 수 있네.
참으로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그대와 말을 나누어 보니 세상이 많이 달라진 듯 허이.
“네. 그러니까 도사님이 함부로 막 도술 쓰고 행동하시면 안 돼요.”
마치 아이에게 가르쳐 주듯 조곤조곤한 말투였다.
“그리고 항상 저랑 상의하시고요. 어디서부터 가르쳐, 아니 말씀드려야 할지 막막하긴 하지만…….”
어차피 속으로 생각하나, 입으로 꺼내나 같다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 짓는 도희였다.
—그 말은… 날 도와준다는 겐가?
아직 이 상황이 믿기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이고, 1년만 돕는 거라면 크게 손해 볼 건 없었다.
“도사님 여기는 언제 나갈 수 있나요?”
—그대가 원하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네. 그 전에 약속 하나 해줄 수 있겠나?
“음… 가능하다면요.”
—그대는 이제 힘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네. 그 힘을 옳은 곳에만 쓸 수 있겠는가?
애초에 내가 힘을 갖고 있든, 아니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 생각은 없다.
‘옳다’는 의미도 개인적인 차가 컸다.
그 악의 도사도 처음엔 옳은 일이라며 굳게 믿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 행동에 의구심이 든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거나, 고민하면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노력해 볼게요. 만약 제가 자각하지 못한 채 실수 한다면 도사님이 알려주세요.”
—‘이 여인은 나보다 낫구나. 나는 어찌하여 그때…….’
도사가 도희의 생각도 안 들릴 만큼 깊은 상념에 빠져들려는 찰나였다.
“저기… 도사님…? 돈 버는 일에 쓰는 건 괜찮나요? 옳지 않은 일이라 할 수도 없는데… 헤헷.”
—끄응. 어찌하여 여인의 물욕이 저리…….
도사도 알지 못했다.
이미 그에게 드리운 검고 진한 기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