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7)화 (7/120)

006화 대체 무슨 일이야?

—끄응. 어찌하여 여인의 물욕이 저리…….

속으로 생각한 걸 내뱉고만 도사였다.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인데!”

재물이 언제 생길 줄 알고 기다리나!

나쁜 일도 아니고! 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하고!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그리고 물욕에 남녀가 어디 있어요. 그런 구시대적 발언 동의 못합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재물이 알아서 생기기 전까지 공짜로 일하라는 말이야?

회사 다니랴, 먹으러 다니랴, 놀러 다니랴

일분일초가 귀한데!

그 와중에 무급으로 정의의 사도 일까지?

도희가 자신의 삶을 위해 이게 정말 옳은 일일까 고민에 빠지기 직전!

—그대가 옳은 일을 한다면 재물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전 확실한 게 좋아요. 그 재물이 언제 따라올 줄 알고 기다리나요.”

퉁명스러운 도희의 표정은 오히려 고집 있어 보였다.

말로 상대하면 이 여인을 이길 수 없다.

이 여인은 어떤 논리를 대서라도 본인의 승리를 거머쥔다는 걸 깨달은 도사였다.

그 논리가 딱히 틀리지도 않으니 더 문제였다.

남에게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이 희생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묻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게 뻔했다.

—‘만만치 않은 여인이다. 다른 패는 천천히 까야겠구나.’

“쩝, 뭐 도사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설마 속이기야 하시겠어요?”

‘거짓말이면 그냥 확 팔아버…….’

“아, 방금 생각한 건 잊어주세요.”

도희에게 생각을 숨기는 능력이란 없었다.

해맑게 방긋하는 도희의 표정과 속마음의 괴리를 ‘천지 차이’라 함이 알맞았다.

“…안 그럴게요. 헤에.”

—거짓은 고하지 않았네. 걱정 말게.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나요?”

—나가고 싶다 하지 않았나. 그만 나감세.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나 확인도 해보고 싶으이.

“저도 바라던 바예요.”

갑시다!

*     *     *

지상낙원이 따로 있을까.

선선하게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과 침대의 푹신함은 도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이 곳이 천국이라며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겠지만…….

그녀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로한 상태로 침대에 뻗어 있다.

지금이 대낮인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 기운이 왜 이렇게 없지…….’

몸이 축축 늘어져 말 한마디 내뱉을 기운도 없었다.

누우면 바로 잠들 줄 알았는데 또 잠은 오지 않는다.

지금 물어보면 말이 길어질 걸 알기에, 자고 일어나서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하, 눈감으면 생각나는데 어떻게 자냐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도희는 침대 머리맡 협탁에 놓인 양피지 서책을 지그시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동굴에서 나오기 전.

도희는 도사의 말에 따라 일단 서책을 펼쳤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종이에 어떤 한자가 써지기 시작했다.

글자에 손을 올려보라기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니, 돌연 책에서 요사스러운 푸른빛이 환하게 일었다.

그대로 물줄기 방향으로 걸어가라는 도사.

첫걸음에 폭포 물줄기를 뚫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두 번째엔 산 중턱쯤이었나.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주변 풍경이 바뀌더니, 어느새 산 밑 주차장이었다.

주차장부터는 집까지는 길을 몰라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 타고 오는 내내 수만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그동안 도희의 사고 회로는 그녀가 살던 현실 세계와 비현실적인 도사의 세계를 수없이 오갔다.

그렇게 그녀는 꿈인지, 생시인지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일단 동굴에서 나오려고 돕기로 하긴 했는데… 도사님 능력이 이 정도일 줄은…….’

“도사님.”

—말(言)에는 힘(力)이 있네. 나는 그 힘을 자(字)에 담았을 뿐이지.

속마음을 읽힌다니.

뭔가 껄끄럽긴 하지만 편하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아는 이가 생겼다.

‘허… 독인지, 약인지.’

두고 볼 일이다.

‘어?’

“제가 궁금해 하는 걸 알면서도 가만 계셨던 거예요?”

—그대의 기운이 쇠해 편히 쉬라 그냥 두었네. 내일도 있지 않은가.

‘눈치는 있는 도사님이셨네.’

아무리 도사가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도 대화할 땐 최대한 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도희였다.

시도 때도 없이 그녀의 생각에 대답하는 도사라니.

‘으, 상상만 해도 피곤해.’

—주의하겠네.

‘앗…….’

“기분 나쁘신 건 아니시죠…? 저도 제 생각을 어찌할 순 없어서…….”

—걱정 말게나. 내 그리 속 좁은 치는 아니니.

“역시 도사는 도사님이시네요.”

어깨를 으쓱한 도희가 찡긋 웃어 보였다.

“근데 도사님 제가 돕는다는 게 서책에 손만 대면 되는 거였나요?”

—보다시피 나는 기운을 받아들일 그릇이 없네. 하여 그대의 손을 통해 들어오는 기운을 빌려 술법을 행할 뿐이지.

직접 겪었으니 믿는 거지, 도희도 말만 들었다면 믿지 못할 일이었다.

‘이 말은 즉, 책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건데…….’

이 엄청난 물건(?)을 두고 다닐 수는 없었다.

—다른 물음은 없는가.

“도사님은 왜 악을 쫓으시는 거예요?”

악을 쫓는다고 악의 도사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질문이 끝나고 한동안 애매한 침묵이 흘렀다.

—후에… 때가 되면 말해 주겠네.

‘뭐야, 다 대답해 줄 것처럼 말하더니.’

“그럼 도사님은 어떤 도술을 쓸 수 있으세요?”

힘없이 풀려 있던 도희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뭐 제가 알아야 옳은 일을 할 때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하니까…….”

—목소리는 왜 기어들어가는 게냐. 쯧.

—‘또 돈 벌 궁리하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들려.’

도사는 못이기는 척 도희의 질문에 답했다.

—아까 쓴 술법은 축지법(縮地法)이라 하지.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의 수를 이렇다 말할 순 없네.

‘엥?’

—일일이 나열하기에 그 수가 많고, 본 좌가 술법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사이기도 하네. 에헴.

‘축지법…….’

들어는 봤다.

그래 들어만 봤다.

‘정확히 뭐지? 빨리 걷는 거?’

“헐!”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다가 이상함을 느낀 도희의 입에서 짧고 굵은 탄식음이 흘러나왔다.

“내 폰! 내 가바앙!!!”

이제야 본인이 폭포에서 떨어졌다는 것과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떠올린 그녀였다.

‘빨리도 생각해냈다. 아오!’

“허…허… 미쳤나봐… 으아아아!”

넋 나간 헛웃음과 함께 짧고 굵은 괴성이 오가더니 어디론가 헐레벌떡 달려간다.

도사를 만난 후 현실 감각이 아주 많이 떨어진 도희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급하게 노트북을 켰다.

‘엥?’

눈을 비비적거린 도희가 노트북 캘린더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분명 일요일 모임이었는데…… 왜 오늘이 수요일이야?’

“도사님 저 그 동굴에서 얼마나…….”

—그대의 기운이 많이 쇠해 있길래 편히 쉬게 그대로 두었네. 사흘 정도 되었나?

‘무려 3일이나 지났다고?’

—그대가 기운 회복을 하지 못하였다면 그곳에서 나올 수도 없었네.

“으아!!!”

다들 난리 났겠네!

“아이고오오!!”

월요일 약속된 미팅은 누가 나갔지?

‘하, 미치겠다.’

3일이나 지났다면 실종신고 되어 있는 거 아냐?

‘끄응, 잠자기는 글렀네…….’

휴대폰 개통이 급선무였다.

‘헐. 그러고 보니 지갑도 없네?’

지갑과 휴대전화가 없으면 무방비 상태가 되는 현대인의 비애.

별다른 방법이 없던 도희는 핑크색 돼지 저금통 배를 가른 후, 동사무소부터 가려 외출 준비를 마쳤다.

“꿀꿀아, 언니가 금방 밥 줄게 미안해.”

현관으로 걸어가는 도희의 눈길이 노트북으로 향했다.

‘1분이면 되겠지.’

도희는 노트북 검색창에 ‘축지법’을 쓰고 그에 대해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궁금한 건 죽어도 못 참는 그녀였다.

축지법.

말은 들어봤지만, 그저 빨리 걷는 이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지…….

‘한자 그대로 진짜 땅을 접어 걷는 법이었다니. 허!’

몸으로 직접 겪었으니 부정할 수도 없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띵동—

‘누가 벨을 저렇게…….’

“강도희이!!”

띵동, 띵동—

‘아! 이강아!’

택시비가 없던 도희는 기사님 폰을 빌려 친구 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당장 달려온다던 그녀의 말을 깜빡 잊고 있었다.

*     *     *

“내가 너 실종 신고까지 했어. 이것아! 몇 날 며칠을 걱정하던 친구한테 ‘일단 택시비나 보내줘어?’ 택시비이~?”

강아가 무단결근에 집도 비운 채 도대체 어디를 갔다 왔냐며 소리치며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악! 아파, 기지배야! 무단결근 아니야. 하, 나 진짜 죽다 살아왔어. 이야기꽃을 피우면 책 하나 써진다니까?”

억울한 도희가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랗게 뜨고 반박했다.

“호오, 죽다 살아와? 그래. 오늘은 내가 죽도록 때릴 거니까 어디 한번 또 살아봐!”

도희는 강아의 매서운 손길을 피하기 위해 거실을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악! 진짜 아파! 악! 나 진짜 회사 모임 갔다가 사고 당했다고!”

“어디서 외박하고 와서 구라를 쳐! 내가 너희 회사 다 갔다 왔거든!”

“그럼 알 거 아냐! 나 폭포에서 떨어졌다고 말 안 해? 악! 아프다고 이것아!”

“뭐라고? 어디서 떨어져?”

도희에게 내려쳐지던 강아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하, 이걸 내가 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폭포 낭떠러지로 떨어졌어. 뭐, 보다시피 기적적으로 살았고.”

어쩌다 보니 대충 둘러대는 도희였다.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그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게나.

‘하, 말한다고 믿어줄까요.’

직접 겪은 도희조차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상태였다.

자고 일어나면 ‘사실은 다 꿈이었어’ 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뭔 말이야. 네 폰 며칠 동안 꺼져 있고 집에도 없길래 내가 오늘 너희 회사 찾아갔는데, 자기들도 너 연락 안 된대. 며칠째 무단결근이라던데?”

“뭐? 회사에서 내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고?”

이건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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