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8)화 (8/120)

007화 너도 독심술 쓰니?

“어! 그래서 내가 눈 뒤집혀서 바로 실종 신고까지 했잖아.”

강아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 나 진짜 어이없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해? 야, 일단 한 캔 줘봐.”

상황 이해가 되지 않는 도희의 고개가 연신 갸웃거려졌다.

‘부서 모임 중에 사고를 당했는데 연락이 안 돼?’

이내 도희는 강아가 던진 맥주 캔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떨어질 때 분명 마 부장, 서 대리가 봤는데…….’

가까운 거리라 할 순 없지만, 충분히 눈으로 식별 가능한 거리였다.

그들과 마주 보고 있었고, 도희가 반대편으로 사라졌다면 낭떠러지 말고 어디겠는가?

‘혹시 신고하고 직원들에겐 알리지 않았나?’

“강아야 112 전화해서 일요일 오악산 사고신고 들어온 거 있나 물어봐 줄래?”

도희의 심각한 표정과 분위기를 느낀 강아가 군말 없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서 대리… 저번에 노트북에 전화번호부 백업해 둔 거 같은데.’

찾. 았. 다.

“2주 동안 오악산 사고 신고는 아예 없다는데?”

“그럼 이 사람한테 전화해서 강도희 대리 친구인데, 도희가 토요일 모임에서 서 대리님이랑 같이 있다고 한 후부터 연락이 안 된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 주라.”

도희는 손발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이게 말이 돼? 하… 어이없네?’

까마득한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

당연히 위험한 상황인 줄 알 텐데 왜 신고를 안 했을까.

‘죽었으면 어쩌려고!’

서 대리랑 통화를 마친 강아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도희를 바라본다.

“도희 네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집에 가서 쉰다 했대. 본인도 너한테 연락 취하고 있는데 안 된다고…….”

“내가?”

허, 미친놈이 개소리도 작작 해야지.

“하아…….”

도희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식탁에 다리를 꼬아 앉은 그녀는 턱을 괸 채 눈을 감았다.

강아는 안다.

강도희는 지금 터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소리치며 욕하는 도희보다 가만히 생각하는 도희가 더 위험하다는 것을.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 ‘친절한 도희씨’지만 화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대체 무슨 일이야?”

맑고 투명하던 강아의 안색이 점점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도희가 무언가 결심한 듯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강아.”

“왜……? 뭐야, 말해 봐.”

도희 앞에 마주 앉은 강아가 도희 어깨에 손을 올리며 채근했다.

“잠시만.”

도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들끓는 매서운 눈빛으로 누런 책 한 권을 한참 쳐다봤다.

‘얜 뭐 하는 거야. 책은 왜 노려봐.’

“말해도 된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놀라지 말고. 아니면 청심환이라도 하나 사 올까?”

“대체 뭔 일인데? 너 괜찮아?”

“들어봐.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

강아의 귀로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연거푸 들려왔다.

도희가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강아의 입은 점점 벌어지더니, 끝내 꾹 다물린 채 열리지 않았다.

‘얘가 술 취했나?’

맥주 반 캔 마시고 취할 강도희는 아니었다.

“그래. 안 믿기지? 있어 봐.”

도희가 식탁 위 올려져 있던 빛바랜 누런 책을 강아에게 내민다.

“손대봐. 놀라지 말고.”

도희가 방금 말한 ‘말하는 책’이 이 책이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슴없는 강아의 손길이 서책에 닿았다.

—크흠…….

“도사님 아무 말씀이나 해보세요.”

도희가 도사를 재촉했다.

—그럴 필요 없네. 자네 벗은 이미 자네를 믿네.

‘아 맞다. 이 도사님 속마음 읽지!’

“헐. 강아야, 미…….”

“상관없어. 네가 말했잖아. 독심술 같은 걸 한다고. 듣고 만진 건데 뭘.”

‘너도 독심술 쓰니?’

강아는 항상 이렇다.

평소엔 과하게 냉철하고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또 정은 많고 의리는 넘쳐서 도희 일이라면 지옥까지 따라올 친구였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의리파라니.

‘묘한 조합이지.’

어쨌든 도희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강아는 가족이 없는 도희에게 둘도 없는 친구,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럼 회사에선 왜 네가 무단결근이라는 거야? 부장이 봤다며?”

“내 말이 그 말이야. 내 말이!”

‘참, 얘는 이걸 다 믿어주네.’

도희는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차분하게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강아의 모습은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다 컸네, 이강아.’

하지만 도희의 생각과는 다르게 강아는 겨우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희가 거짓말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 도희가 콩 심은 곳에 팥이 난다 해도 믿을 판이었다.

물론, 지금 들은 이야기들은 천지개벽 수준을 넘어섰지만 안 믿겨도 어쩌겠나.

‘아까 들은 웬 할아버지 목소리는 뭐냐고!’

—크흠!

‘혹시… 듣고 계신…….’

—그렇네.

강아가 잡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도리질했다.

“강도희, 근데 그 자식들이 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랬다는 게 중요한 거지.”

강아의 희번득이는 눈빛에 도희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함을 느꼈다.

“그래. 당연히 자기들도 뭔가 사정이 있다고 하겠지. 근데 그래서 뭐? 그게 면죄부가 될 순 없어.”

도희도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마 부장 인성이야 바닥인 건 알았지만, 서 대리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발 벗고 나서서 찾지 않는다고 쳐도!

‘어떻게 신고도 안 해?’

“야, 만약 네가 살아서 그 물 위에서 돌부리라도 잡고 버티고 있어. 근데 아무도 널 구하러 오지 않아. 신고했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 근데 안 했어. 그래서 네가 죽었어봐. 그거 살인이랑 마찬가지야.”

“강아야.”

“응.”

“물어봐야겠어.”

“뭘?”

“왜 그랬는지.”

“방금 전화해서 물어봤잖아.”

“직접 만나서.”

“그 사람들한테 찾아간다고?”

“어.”

“하! 가서 왜 신고 안 했냐고 물어보면 잘도 말해 주겠다.”

“다 방법이 있어.”

이제 곧 퇴근 시간이었다.

도희에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옅은 악의(惡意)를 느낀 도사가 끼어들었다.

—악은 멀리 있지 않네.

그들, 그리고 도희에게 하는 말이었다.

갑자기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놀란 강아가 작게 움찔했다.

—구할 수 있는 이를 외면하는 것도 악이라 할 수 있지.

“걱정 마세요.”

도희가 서책을 보며 한쪽 눈을 찡끗했다.

“도사님, 이 악은 소녀가 처리하겠사옵니다.”

소녀라기엔 좀 많이 큰 소녀였다.

“어떡하게?”

이내 도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지력(知力)을 써야지.”

절대 당하고는 못사는 도희였다.

*     *     *

퇴근 시각.

도희의 회사 앞.

숏컷 스타일의 키 큰 여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작은 얼굴, 무쌍이지만 적당히 큰 눈에 오뚝한 콧날이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불편한 표정과 고집스럽게 다물린 그녀의 입술 때문에 다가오진 못했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강아였다.

그녀의 왼손엔 가방, 오른손엔 책 세 권이 쥐여 있었다.

멀지 않은 길거리엔 딱 봐도 수상쩍은 검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도희가 서 있다.

모자, 선글라스, 검은 마스크까지 낀 채로.

‘저게 더 수상한 줄도 모르고.’

“강도희, 이거 진짜 맞아?”

강아가 작게 속삭였다.

—맞다고 하는구나, 크흠.

도사는 졸지에 둘 사이 전화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도사도 속내를 들을 수 없단다.

최대한의 거리로 떨어져 있는 도희는 들킬까 불안한지, 고개가 바닥을 향해 있었다.

‘아니, 얘는 무선 이어폰 끼고 전화로 하면 될 것을…….’

—그 전화라는 것을 아직 개… 통(?) 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아… 그… 도사님 전부 전하지 않으셔도 돼요…….”

—끄응…….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는 도희의 협박에 마지못해 합류한 도사였다.

이윽고 회사 입구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야, 근데 오늘 1층으로 나오는 거 맞아? 차 가져왔으면 지하로 가는 거 아냐?”

—음주해서 면허 취소라는구나.

뜻은 몰라도, 들은 대로 전달하는 성실한 도사였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저자라고 하네! 저기 살집이 많은 사내!

운동과는 담쌓고 사는 듯한 중년 남성이 막 입구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도사의 전음을 들은 강아가 빠른 걸음으로 남성에게 다가갔다.

터억!

타탁탁!

걸어 나오던 마 부장과 부딪친 강아의 손에서 책들이 ‘우두두’ 떨어졌다.

“꺄악!”

남자 얼굴에 가득 찬 심술보와 주름들이 그의 성격을 어렴풋이 나타내고 있었다.

“앞은 보고 다녀야지?”

“죄송합니다.”

강아의 허리가 연신 숙여졌다.

“저 근데 혹시… 마 부장님이신가요?”

한껏 구겨졌던 남자의 주름이 하나둘씩 펴진다.

“…누구신지……?”

“저 강도희 대리 친구입니다.”

그 순간, 강아는 마 부장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포착했다.

“아,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강 대리 연락이 안 된다던데.”

‘초면에 왜 계속 반말이야. 으…… 맘에 안 들어.’

“혹시 도희가 사라지기 전에 같이 계시지 않았나요?”

강아는 도희가 시킨 대로 말하는 중이었다.

“난 못 봤네. 서 대리 말로는 강 대리가 먼저 하산한다 했다던데.”

‘헐, 표정 하나 안 변하네.’

“혹시 사고를 당하건 아니겠지요? 내려오다 폭포로 떨어지거나……?”

“무슨! 강 대리가 사고라도 당했길 바라나?”

“아니요. 이렇게 연락이 안 될 애가 아닌…….”

“어디 여행이라도 떠났나 보지! 전날에도 무슨 일인지 술을 잔뜩 먹은 것 같더만.”

‘와, 뻔뻔한 것 봐. 배우 해도 되겠어, 이 아저씨.’

“그럼 선약이 있어서 이만.”

그렇게 획 돌아선 마 부장은 뒤도 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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