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9)화 (9/120)

008화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도 없다.

—알고 있네. 자네가 폭포로 떨어진 것을.

“허. 왜 모르는 척하는지는 들었어요?”

오늘 작전은 간단했다.

강아가 고의로 마 부장과 부딪혀 서책을 그와 닿게 한 것.

조선 시대에나 읽을 법한 누런 양피지 서책을 덜렁 들고 다니기 이상하니, 일부러 다른 책들까지 껴서 들었다.

아주 섬세하고 완벽한 작전이었다.

—이미 자네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더군.

‘허. 죽었을 거 같다고 신고를 안 해?’

—자네 벗이 신고한 일로 해가 될까 고민하며 노기가 들끓던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뭐라고 하던데요?”

—이사 자리가 어쩌고저쩌고… 크흠.

‘이사? 아…….’

곧 있을 인사 평가 후 이사직 내정자가 마 부장이라는 소문을 언뜻 들은 게 떠올랐다.

‘혹시 자기 진급에 피해가 갈까 봐?’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분노가 다시 스멀스멀 끓어올랐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하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짧게 악을 지른 도희가 식탁에 다릴 꼬고 앉더니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아!”

곧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걸 본 강아는 도희에게 멀찌감치 떨어진 소파로 향했다.

그래봤자 작은 거실이었지만.

“강아야, 내 실종 신고했다고 했지?”

“그렇지 않아도 너 만나고 나서 형사님께 연락드리려고 했어.”

“하지마.”

“하지마?”

“응. 판 좀 키우자.”

도희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벌떡 일어서더니 거실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화나거나 초조할 때 나오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그리고 강아, 너 SNS에 친구가 회사 모임 간 뒤로 실종됐다고 글 좀 올려줘. 너튜브에도 올리면 더 좋고.”

프로그램 개발자인 강아가 운영하는 채널의 구독자 수가 꽤 된다고 들었다.

“또, 또. 똘끼 분출한다. 또.”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강아도 도희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뭐, 저걸 말릴 수도 없고.’

강아의 시선이 까뒤집어진 눈을 하고 거실을 빙빙 돌고 있는 도희에게 향했다.

“하루면 돼. 형사님은 내일 저녁에 만나 뵙고, 내가 아주 자알 말씀드릴게. 오늘 하루 정돈 이해해 주시겠지.”

그들처럼 거짓말할 생각은 없다.

모든 걸 솔직하게 전부 말할 수 없지만, 일부 사실만 말해도 될 터.

“오케이! 소문은 내가 확실히 내줄게.”

“그리고 강아야.”

“응!”

복수극을 좋아하는 강아는 다소 신나 보였다.

“나 카드도 좀 빌려줘.”

“왜 돌아왔니.”

돈에는 냉정한 강아였다.

*     *     *

“도희야. 야, 강도희! 일어나 봐. 와아 미쳤어. 난리야 난리!”

강아는 어제 괜찮다는 도희의 만류에도 기어코 여기서 잠을 청했다.

홀어머니와 사는 그녀가 도희 집에서 자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남친과 헤어져 실컷 울고 싶을 때만 빼고.

“으… 응… 왜…? 무슨 일이야…….”

도희는 아직 일어날 마음이 없다는 듯 누운 채로 등을 돌렸다.

“사고는 네가 쳐놓고 무슨 일이라니. 일어나서 봐봐, 이 기지배야.”

‘흥분도 잘 안 하는 애가 무슨 일이래.’

끄응.

“왜에, 뭔데에.”

잠이 덜 깬 도희 눈에 자신의 셀카 사진이 보였다.

“내가 어제 SNS에 싹 다 올리고 너튜브에 글까지 올렸거든? 좋아요랑 댓글 폭발중이야!”

눈이 반쯤 감긴 도희는 강아 폰을 받아들고 글을 읽어 내려갔다.

[회사 산악회 모임에서 사라진 제 친구를 제발 찾아 주세요. 제 친구는 지난 일요일…….]

역시 일 하나는 확실한 우리 강아, 심금 울리는 실종 글을 아주 잘도 적어 놨다.

“도희야, 근데 별문제 없겠지?”

“으~~~!”

도희가 기지개를 켜고는 말을 이었다.

“상관없어. 거짓말 보탠 건 없으니까.”

어차피 오늘 저녁이면 끝날 쇼였다.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예쁜 애가 사라졌다니까 주목도 더 많이 받네.”

“뭐래, 징그럽게. 너도 예뻐. 이런 말 해줘?”

“야 미쳤냐, 하지마.”

“강아야, 너 진짜 예뻐. 내 맘 알지?”

“으으! 죽어도 자기 안 예쁘단 소린 안 해요.”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 시대라고. 자존감 몰라?”

강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서리를 치는데, 그녀의 벨소리가 울렸다.

“형사님인데?”

“받아 봐.”

강아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몇 번 ‘네네’ 대답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형사님이 너네 회사에 가서 직원들이랑 면담했대. 마지막 목격지가 오악산 회사 모임인데 그 후 행적 파악하신다고.”

“그래서?”

“직원들이 대부분 산 오를 땐 봤는데, 내려올 땐 못 봤다고 대답했대. 그러다가 어떤 직원이 네가 먼저 집에 간다 했다고…….”

‘서 대리 이 개X끼… 어제 마 부장도 강 대리 하산 어쩌고 하더니.’

도희가 콧바람을 불며 눈을 까뒤집는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심호흡해. 강도희.’

“후… 하… 후… 하…….”

흥분한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오악산 다시 가야지.”

도희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강아야.”

‘이거 딱 부탁하는 말투인데…….’

“나 차 좀.”

“아휴.”

“넌 출근해야 하니까 나 혼자 갈게.”

“으. 저 웃는 거봐. 배려해 줘서 아주 참 고오맙다.”

시크하게 차 키를 던지는 강아였다.

“갖고 꺼져.”

“아? 아니다. 올 때가 문제네? 그냥 택시 타고 갈게.”

“그 카드도 내 카드구나.”

“갚을게. 사랑해. 내 맘 알지?”

“영혼 좀.”

이제 도희가 뭘 하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강아였다.

산속에서 말하는 책도 주워 오는데 뭔들.

“내가 이따 너한테 전화할 테니까 그때 받아서 형사님께 말만 해주면 돼. 나 찾았다고.”

“그냥 어제 집에 왔다고 하면 안 돼? 이거나 그거나 뭐가 달라?”

“네가 어제 쓴 글은 뭔데?”

“나야 뭐, 어젠 몰랐다고. 돌아온 걸 오늘 알았다고 하면 되는 거고.”

“…헐! 천잰데?”

정말 상상도 못 했는지, 도희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얘는 참 똑똑한 앤데 한 번씩 이러더라.’

“그대에게 하나 배웠다네. 참으로 고맙네.”

강아 어깨에 손을 올린 도희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그 조선 시대 말투는.”

“도사님 따라 해봤어. 나름 중독성 있네.”

—크흠…….

괜히 도사님에게 미안해지는 강아였다.

‘도사님 왜 이 돌아이를 따라오셨나요.’

당연히 모르셨겠지요.

쟤가 밖에선 멀쩡한 척하고 다니거든요.

—그대 생각대로 될 것 같은가?

도사는 강아의 속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도희에게 물었다.

“그럼요. 안 돼도 되게 만들어야죠.”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저 여인의 속에 시커먼 구렁이가 있다는 걸 누가 알까.

*     *     *

도희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는 우주였다.

강력팀이 실종 사건을 맡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은 강력범죄의 쉬운 타겟이었다.

사실 대부분 별 일 없이 돌아오기에, 연이은 흉악 사건으로 인해 멘탈이 흔들거리는 우주를 위한 서 팀장의 배려기도 했다.

우주는 지금 도희와 마주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도희의 진술에 당황한 그가 사수인 파트너 박 경위에게 도움의 눈짓을 보냈다.

역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박 경위는 우주의 눈짓에 결국 먼저 입을 뗐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을 종합해 보자면 회사 산악회에 갔는데…….”

“네에.”

“회사 상사와 직원 사진을 찍어 주다가 폭포로 떨어졌고?”

“네에. 정확히는 부장님의 사진 요구를 들어드리다가 뒤로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났어요. 아주 위험한 곳으로요. 그리다 갑자기 강풍이 화악!”

도희가 강풍이 다가오는 것을 표현하며 뒤로 넘어가는 몸짓을 보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살짝 MSG친 느낌은 나지만.

“네. 강도희씨가 강풍에 날아(?) 폭포로 떨어졌고, 그 직원들이 사고당한 걸 알면서 사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

“네에.”

“그리고 강도희씨는 눈 떠보니 물가 흙더미에 누워 있었고, 혼자 알아서 내려왔다. 이 말씀이신가요?”

박 경위가 문장을 끊어 말할 때마다 도희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격하게 동조했다.

“네. 정확해요.”

물론 다 말하진 않았다.

이들에게 동굴이니 도사니 하는 말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동굴 흙더미 위에서 눈을 뜬 것도 맞고, 혼자 내려온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니 도희는 당당했다.

“사건 발생 시간이 3일 전, 일요일 맞습니까?”

“네.”

“강도희씨 직장 동료는 강도희씨가 먼저 하산한다며 집에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사람이 서 대리죠? 서무진 대리.”

수첩을 들여다보던 박 경위가 흠칫했다.

“마 부장과 서 대리 눈앞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저를 두고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했고 제가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는 거짓 증언까지 했네요. 이런 경우 법적 처벌이 가능할까요?”

두 형사를 번갈아 바라보는 도희는 풀 죽은 강아지 같았다.

“음… 엄청 넓게 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라고 하기엔 강도희씨가 멀쩡히 살아 계시고.”

박 경위의 눈길이 빠르게 도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친다.

도희는 그런 형사의 눈길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받아쳤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듯한 눈망울로.

“굳이 짚자면 허위 진술로 인한 공무 집행 방해 정도인데 그것도 밝혀내기가…….”

도희도 안다.

아무 죄목도 씌울 수 없다는 걸.

증거가 없다, 증거가.

어찌어찌 도희의 잃어버린 폰을 찾아 사진으로 그곳에 셋이 함께 있던 걸 증명하더라도.

그게 도희가 사고당한 현장을 목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한다.

영화, 드라마에서 증거가 없을 시 지지부진한 재판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게다가 피해 사실이 증명된 경우에나 고소가 가능했다.

도희는 피해 사실 증거조차 없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법적 처벌한단 말인가.

몸에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다.

평소 범죄 수사, 추리 장르 애청자였던 도희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어제 그 판을 벌였던 거였다.

“형사님들. 저 너무 억울해요. 도와주세요…….”

“저희도 당연히 도와드리고 싶죠. 하지만 법이라는 게…….”

“다른 방법이 있어요!”

“예?”

우주와 박 경위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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