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0)화 (10/120)

009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우주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사실이라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제가 도와드릴게요.”

듣지도 않고 약속부터 하는 우주였다.

—쯔쯧, 포졸이 이리 쉽게 속아서야…….

‘도사님 속인 게 아니에요. 전 사실만 말한걸요?’

도희의 속마음이 들리는 게 아주 다행이라 생각하는 도사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자신도 탈탈 털렸…….

도사는 좋은 게 좋은 거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힘이 닿는 한 무엇이든 도와드릴게요!”

성인에게 보기 힘든 맑고 초롱한 눈동자였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의 교본과도 같은 말과 행동이었다.

그가 도와준다고 했기 때문인지.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 때문인지.

도희는 입가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무엇보다 얼굴도 준수한 것이 도희의 계획에 더할 나위 없이 딱이었다.

‘워, 콧대 봐. 조회 수 좀 나오겠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도희는 인터뷰까지 속전속결로 진행시켰다.

미리 강아를 통해서 기자들과 인터뷰 일정을 잡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아가 올린 글을 보고 많은 기자에게 연락이 왔고, 도희는 형사들이 인터뷰를 거절하더라도 홀로 기자들을 만날 생각이었다.

정의감 넘치는 형사가 흔쾌히 도와준 덕분에 일이 더 순조로웠다.

‘정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일이 예상보단 커지는 거 같지만, 이제 뒤로 무를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끝나.’

인터뷰는 내일 뿌려질 예정이라고 한다.

회사 모임에서 사고를 당한 뒤 혼자 살아서 돌아온 여사원.

그리고 간접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형사의 인터뷰.

그들이 기사를 보곤 어떤 표정을 지을지.

‘화X그룹 사원, 회사 모임 중 사고로 실종. 상사가 의도적 사건 은폐.’

얼마나 자극적인 기사인가.

회사 모임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회사가 거론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대기업이기에 그 파장이 더 클 듯한데…….

‘마 부장이 눈 하나 깜짝할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모든 준비는 끝났다.

*     *     *

기자들이 돌아간 뒤, 도희는 홀로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다.

아침에 휴대전화를 개통했더니, 수십 통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형사들이 회사에 다녀가고 나서, 그녀가 실종됐다는 말이 사내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이런 소문은 또 어찌나 빠른지.

물론 SNS를 보고 먼저 알고 있던 사람들도 꽤 있었단다.

‘거기다 형사들까지 찾아오니 기름 묻은 심지에 불붙인 격이었을 테지.’

강아가 올린 도희 실종 글의 ‘좋아요’ 수도 끝도 없이 늘고 있었다.

‘하, 내 얼굴 다 팔렸겠네.’

얼굴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껄끄럽기도 했지만 나쁜 일로는 아니니 다행이긴 한데…….

‘어? 아닌가. 실종은 안 좋은…….’

아, 몰라.

‘저녁에 강아가 날 찾았다는 글을 올린다니 상관없겠지.’

메시지를 확인한 후 친한 이들에겐 무사하니 걱정 말라는 답장을 보냈다.

내일까진 소문내지 말아달란 말과 함께.

도희는 알았다.

자신이 태풍의 중심에 있다는 걸.

태풍이 지나갈 때 가장 잔잔한 곳은 태풍의 눈이라 하지 않는가.

아직은 평화롭지만, 곧 태풍에 휩싸일 거라는 것도.

폭풍전야란 바로 오늘 같은 날이 아닐까.

‘부디 빨리 지나가길…….’

—많이 여유롭구나.

아, 몰아칠 태풍이 한 개가 더 있네.

이 도사님도 계셨지.

‘여유롭지 않아요. 여유로운 척하는 거지.’

도희가 입을 삐죽 내밀며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댄다.

—민심이란 무서운 법이지.

‘민심이요?’

—네가 지금 하는 행동들이 민심을 잡기 위한 행동 아닌가.

그렇긴 하네.

여론을 이용하는 거니까.

—대중은 약한 자의 편에 서고 싶어 하지.

‘모두가 그렇진 않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제 편에 서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도희의 목적은 그저 주목을 받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주목만 받는다면 발언권이 주어진다.

바로 지금처럼.

—그들이 네 편에 선다면 더 좋은 것 아니더냐.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과연 세상이 돌아갈까?

도희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다.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도 없다.

무작정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것보다, 모든 상황에 대비해 원하는 상황을 손수 만드는 것이 도희 스타일이었다.

—고달픈 삶을 살아왔나 보구나.

순간 묘한 감정에 휩싸여 울컥한 도희의 고개가 슬며시 뒤로 젖혀졌다.

그녀의 습관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삼키기 위한.

—내 너를 울리노라 한 말은 아니었다.

평소 저런 말을 들었다면 그녀는 살짝 발끈했을 거다.

나의 삶을 고달픈 삶으로 치부하지 말라며.

허나 도사님이기에 대뜸 반박하기도 껄끄러웠다.

당연하다.

도사는 도희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으니까.

미주알고주알, 남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내지 않는 도희였다.

남들 보기엔, 할 말 다 하고 사는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차고 쿨해 보이지만 그녀도 남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모두 외롭다.

홀로 세상을 살아낸 도희는 오죽했을까.

그녀가 사람보다 돈을 믿는 이유기도 했다.

돈은 배신 따윈 모르며, 그녀가 원하는 걸 모두 이루어 줄 수 있으니까.

‘근데 뭐, 이제 좀 덜 외로울 거 같기도…….’

툭 치고 들어오는 도사의 말은 지금껏 들어온 타인의 수천 번의 위로보다 더 깊게 와 닿았다.

‘도사님이 속마음 듣는 게 장점도 있었네.’

완벽한 내 편이 생긴 기분도 들었다.

‘뛰어봤자 도사님 손바닥 안이라는 게 흠이지만.’

불현듯 새로운 물음이 떠올랐다.

‘도사님은 사람이 아니니까 죽지도 않나?’

—죽을 육체는 없지만, 혼이 사라질 수는 있네. 언젠가 나도 먼 길을 떠나야겠지.

‘도사님을 귀신이라고 볼 순 없으니까 퇴마술에 당하고 그러시진 않겠죠?’

—이놈이!

‘아니, 축지법도 있는데 퇴마법도 있을까 봐 그러죠!’

—하이고, 네가 나의 등선을 바라고 등을 떠미는구나. 내 몰랐네, 몰랐어.

‘도사님 걱정돼서 그래요. 걱정!’

그리고 놈이 아니고 년이에요 전.

—끄응…….

여인에게는 욕해 본 적이 없는 도사였다.

*     *     *

다음 날.

상사만 좋아도 회사 다니기 편하다.

회사 스트레스의 반 이상, 아니 대부분은 상사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라고 한다.

직장 상사 욕 한 번 해보지 않은 직장인이 있을까.

마 부장은 욕먹는 상사 중에서도 탑 중 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업무적으로 타박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일적인 부분을 배제하고도 마 부장의 표정만 봐도, 그날 그의 주식들이 상승인지 하락인지 알 수 있었다.

본인 주식 계좌가 마이너스인 날에는 쓰레기통이 꽉 찬 사원을 붙들고 왜 쓰레기통을 더럽게 쓰냐며 달달 볶은 일까지 있었다.

마치 사원들이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도희는 부서에서 유일하게 마 부장에게 할 말 다 하는 사원이었다.

쓰레기통 때문에 김 사원이 혼나고 있을 때에는…….

‘아이고~ 우리 부장님 오늘 기분 안 좋으신가 보네. 달달한 커피라도 한 잔 드세요.’라며 돌려 까는 건지, 진짜 위하는 건지 애매한 태도로 마 부장을 말리곤 했다.

물론, 직접 커피 타준다는 말은 절대 안 하는 도희였다.

그런 도희를 마 부장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니다 싶으면 주저 없이 앞에서 들이박고 해결하려는 도희의 화끈한 업무 스타일 덕에, 마 부장은 도희를 꽤나 예뻐했다.

자신한텐 직접 들이박을 일이 없는 대리가 모두가 고전하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데 어찌 미워하겠나.

실무주의인 마 부장에겐 최고의 사원이었다.

원래도 회사에서 발휘되는 도희의 존재감이 작진 않지만, 오늘에 비할 순 없었다.

*     *     *

출근이 한참 지난 시각.

단아한 검은 정장 차림의 도희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바지 밑단으로 보이는 그녀의 검은 하이힐은 여느 때보다 높고 뾰족했다.

찰랑이는 긴 흑발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어? 도희씨?”

도희가 스치고 지나가는 사내 모든 공간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실종됐다던 강도희 대리가 출근을 했다.

그것도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그렇지 않아도 모두 아침에 뜬 도희 기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희씨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대리님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으세요?”

“뉴스는 뭐야? 도희씨 얼굴 나오던데? 대체 무슨 일이래.”

많은 이들이 도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뉴스에 나온 말 그대로예요.”

가볍게 말했지만, 그녀가 말한 내용은 심히 무거웠다.

“보여드릴게요.”

말을 마친 도희는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죽이자, 또각이는 그녀의 구두소리만 울려 퍼졌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희를 본 마 부장은 입을 벌린 채 서서히 일어섰다.

이내 멈춰선 도희를 가만히 바라본다.

도희를 보는 마 부장의 눈빛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아왔단 안도감도 아니었다.

그 눈빛은 적개심이었다.

그녀가 나타나 곤란해질 자신에 대한 보호 본능.

그 눈빛을 본 도희는 마음속에 티끌만큼 남아 있던 기대감마저 송두리째 허물어졌다.

‘진짜 내가 돌아오질 않길 바랐나 보네.’

—못된 작자구나. 심성이 심히 뒤틀렸어.

마 부장의 속내를 들은 도사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도희의 시선은 서 대리를 찾았다.

‘저기 있네.’

도도하게 팔짱을 낀 도희가 물끄러미 서 대리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너도 공범이구나?’

서 대리는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한지, 1초도 가만히 도희를 바라보지 못했다.

온몸으로 불안함을 표현하고 있는 서 대리를 보니 헛웃음이 났다.

‘티가 저리 나는데 어떻게 버티려고.’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던 분노가 다시금 치솟았다.

‘후… 흥분하지 말자.’

심호흡한 도희가 입을 열었다.

“마 부장님도 기사 보셨어요?”

하얀 이를 드러낸 도희의 표정은 아주 온화했다.

“강 대리, 내가 설마 자네 말 좀 안 들어줬다고 이러는 건가.”

“……!”

이건 또 무슨 잡소리인가.

“새삼스럽네요. 부장님이 언제 남 말을 들으셨다고.”

여유로운 표정의 도희와는 달리 마 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부서와 경쟁 PT 발표할 땐 천군만마 같던 도희의 말빨이 자길 저격할지는 몰랐던 듯.

“마 부장님. 정말 제가 폭포 아래로 떨어진 걸 모르셨나요?”

“아무리 감정이 상했어도 거짓말은 그만해 강 대리. 이렇게 멀쩡한데 폭포에서 떨어졌다는 거짓말을 누가 믿나?”

“부장님은 아시잖아요.”

“내가 그걸 어찌 알어!”

“부장님이 절 폭포로 떠미셨으니까요.”

“……!!!”

모여 있던 모두가 똑똑히 도희의 말을 들었고, 사무실엔 개미 숨소리도 들릴 만큼의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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