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12)화 (12/120)

011화 아주 영악하단 말이야.

도희의 말을 듣는 강아의 속은 까맣게 타다 못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이게 바로 주객전도였다.

당사자는 저리 밝은데 객이 걱정투성이다.

“어차피 마 부장이랑 틀어지면 회사 못 다녀. 이직 알아봐야지.”

그가 자신의 눈 밖에 난 이들을 얼마나 지독히 괴롭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도희였다.

“큭크으…….”

‘진작 그랬어야 했는데!’

얼굴을 맞고 떨어진 사직서 봉투를 본 그의 표정을 떠올리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씻겨 내려갔다.

“아우, 속 시원해.”

“너 모아 둔 돈은 있어?”

“푸웁. 내가 설마 굶어 죽겠냐. 걱정마! 일단 놀 거야. 아주 신나게.”

“혹시 돈 필요…….”

“야 너한테 돈 빌려달라고 안 해.”

“아니. 나도 없으니까 생각지도 말라고.”

“아오.”

강아를 외면한 도희의 눈길은 서책을 향했다.

“도사님, 혹시 ‘금 나와라 뚝딱’ 같은 도술은 없어요?”

강아 속에 천불이 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는 그저 근심 걱정 없는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쯔쯧, 그놈의 물욕을 어이할꼬.

“아이고, 도사님 또 모르는 소리 하시네. 제가 물욕이 넘치면 이러고 있겠어요? 도사님 서책 갖다 팔았…….”

강아의 손에 의해 도희의 입이 급히 막아졌다.

—암. 아주 고맙네. 팔아먹지 않아 줘서.

빈정대며 말하였지만, 도사는 도희를 만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봐서 악한 이에게 서책이 넘어갔으면 어쩔 뻔했는가.

도기(道氣)와 선기(善氣) 넘치던 이 여인도 까고 보니 묘하게 영악하지 않은가.

그 행동의 방향이 악(惡)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야, 입 막는다고 도사님이 모르겠냐. 너도 이제 적응해. 우리의 막말을 도사님이 적응하시겠지!”

—‘끄응… 동굴에서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나.’

차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한 건 아닐지.

도사는 느낄 수 없는 두통이 느껴지는 듯, 홀로 걱정을 삼켰다.

—‘내 죄지. 내 죄야…….’

*     *     *

언뜻 봐도 훤칠한 미남이 서부 경찰서 강력 2팀 강력범죄 전담팀으로 들어섰다.

“여~ 우 경위, 인터뷰 잘 봤어.”

우주가 자리에 앉자 박 경위가 의자를 끌며 다가온다.

“우 경위 스타 됐던데? 쯔읏, 나도 인터뷰할 걸 그랬네.”

“보셨어요?”

“우리 마누라도 우 경위 팬 됐어. 잘생긴 형사님이 마음까지 예쁘다고.”

박 경위가 은근 질투 난다는 듯 우주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닙니다. 부탁받고 한 일인데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우주는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우 경위가 아니면 그런 말 못 해. ‘여러분, 이 일은 범죄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또 뭐랬더라?”

—법의 사각지대의 위치한 그들의 만행을 처벌하지 못함이, 대한민국 형사로써 죄스러울 뿐입니다.

이 경위의 노트북에서 영상 속의 우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따악!

박 경위의 중지와 엄지가 부딪히며 명쾌한 소리가 났다.

“크으~ 저거지! 이 경위, 우리도 우 경위 좀 본받자고.”

“박 경위님 저는 포기요. 우 경위는 천성이 순수하고 착한 겁니다. 본받는다고 될 게 아닙니다.”

영상을 보던 이 경위는 우주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형사 생활하는 너랑 나는 천성이 안 순수하고 안 착하냐?”

“에이 박 경위님, 그 말씀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박 경위님과 이 경위에게 배울 게 더 많습니다. 부탁받아서 말 몇 마디한 거랑 범인 잡는 거랑 어떻게 비교합니까.”

우주는 연신 쑥스러워했다.

“우 경위 같은 사람이 어떻게 형사가 됐나 몰라.”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우 경위, 그 아가씨 말이 사실이었기에망정이지, 거짓말이었으면 우 경위도 같이 명예훼손으로 엮이는 거야.”

박 경위는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빛으로 우주를 쳐다봤다.

‘저렇게 착해서… 이 바닥에서 어찌 살아남으려고…….’

“다음부터 조심해. 증거 없는 사건은 까다로운 거 알지?”

“넵. 박 경위님 말씀 감사합니다!”

남녀노소 설렐만한 눈웃음으로 답하는 우주였다.

물론, 여긴 씨알도 안 먹힐 강력팀이었지만.

사실 박 경위의 조언은 우주에게 필요 없었다.

그들이 받아들인 인터뷰 내용과 우주가 말한 내용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여러분, 강도희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일은 범죄나 다름없습니다.’

우주는 사실이 아닐 경우를 대비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도희씨의 말이 사실이라면’을 강조한 우주의 말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유효한 것이다.

그것은 그녀를 믿는 인간적인 형사에게서 나올 법한 최선의 대답들이었다.

우주의 말은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로운 경찰다웠다.

만약 그녀가 말한 것들이 ‘거짓’이라 판명난다 해도 우주가 크게 피해 볼 일은 없었다.

그는 피해자인 척하는 가녀린 여성에게 속은 것뿐이니.

게다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까지 생각해서 특정인을 지목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그녀의 말만 듣고 진행되는 인터뷰였기에 우주도 한 발 뺄 준비를 했던 거다.

그리고 정황상 그녀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오악산 주차장 보안 카메라를 통해, 그녀가 일요일 날 올라간 뒤로 당일 내려오지 않은 걸 확인했다.

산을 빠져나오는 것은 주차장을 지나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등산모임이 있던 당일, 그녀가 주차장에서 나가는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으니 그녀의 말은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산 밑 주차장에서 택시를 잡은 것도 확인되었다.

택시 블랙박스를 확인하니 강도희, 그녀가 확실했다.

다만 모든 것이 사실이더라도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너무 멀쩡하단 말이지.’

겉보기에 그녀는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천운이 따라 다친 곳 하나 없다고 치자.

그런데 그녀의 태연자약한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려요!’

도희와의 첫 만남(?)을 되새기는 우주의 입가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났다.

그녀는 그가 최근 만난 사람 중 가장 당찬 여성이었다.

게다가.

‘예쁜데 똑똑하기까지…….’

어딜 가든 순진하다 평가받는 우주였다.

주변인 모두 너무나 순수한 우주가 형사 일을 어찌하나 걱정하곤 한다.

강력팀 팀장마저 우주가 멘탈이 약할 거라 지레짐작하며 걱정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착하거나 약해 보이는 사람에겐 경계심을 풀고 쉬이 약점을 드러낸다.

우주는 이점을 이용해 세상 편히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감 좋다는 형사들까지 속여먹는 우주였지만, 도희라는 아가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아주 영악하단 말이야.’

우주도 홀로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는 산에서 내려온 당일 경찰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날 내려와서 처음 한 행동이 인터넷에 글 올리기라…….’

마땅한 처벌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화제라도 끌어야 했겠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여론은 그녀의 편이다.

그녀 외에도 그녀 상사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오더니, 연이어 댓글로 악행 폭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한바탕한 모양인데.’

회사 사람들도 전적으로 나서 그녀의 편이 되어 주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의도한 거지?’

중요한 건 모든 게 그녀의 뜻대로 되었다는 것.

우주에게 세상은 지루하고 시시했다.

도희는 색 잃은 우주의 세상에 나타난 무지갯빛 광채였다.

‘큭, 재밌네.’

나직이 웃는 우주의 눈빛에 불꽃이 일었다.

*     *     *

한가로이 젓가락질하던 도희와 강아의 손길이 동시에 멈춘다.

“요물(妖物)이라고요?”

—그것들을 그렇게 불렀지.

“그럼 다른 물건에도 도술을 걸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네. 내가 살아 있을 적엔 가능했지.

“지금은요? 제 기운을 빌려서 도술 쓰실 수 있잖아요?”

—일시적인 건 쉬우나 물건에 도술을 새기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지금 자네 기운으로? 턱도 없네.

“그럼 기운 넘치는 사람이 있다면요?”

—수십 년 동안 심산유곡에서 정순한 정기(精氣)만 모아온 사람이라면 가능은 하나 난 그럴 생각이 없네.

“왜요!”

순간 도희의 입에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신기한 능력이 담긴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었다.

‘못 한다가 아니라 그럴 생각이 없다고?’

도희의 머릿속은 물음표가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차차 말할 생각이었네만. 자네에게 청이 하나 있네.

“청이요?”

—부탁 말일세.

도희도 몰라서 되물은 게 아니었다.

‘거참 부탁도 많은 도사님이셔. 전생에 나한테 뭐 맡겨두셨나.’

—이놈이!

‘놈 아니라니까.’

도사님이 욕을 못 해 다행이라 생각하는 도희였다.

—끄응. 어쨌든 그것들을 찾아야 하네.

“도사님 물건인데 어디 있는지 몰라요?”

—그렇네. 내가 만들어 내고 사용하긴 했지만 이젠 내 것이 아닌 물건들이지.

“지금 시대에는 남의 것 막 가져오고 그럼 큰일 나요. 철컹철컹. 옥에 갇힌다구요.”

도희가 식탁에 올려진 양피지 서책을 보며 주먹을 쥔 채 양 손목을 모아 보였다.

—절도죄가 무거운 것은 나도 알고 있네. 허나 그 물건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기필코 회수해야 하네.

‘하이고. 도사라는 양반이 훔치기라도 할 기세네.’

—값을 치르고 가져오는 것이 불가하다면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함이야.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해서도 안 될 물건들이네.

하긴… 세상에 말하는 서책 한 권도 난리 날 판인데 이런 ‘요물’들이 더 있다니.

—이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이.

도희는 이제 말하는 초롱불이 있다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 있었다.

—이 서책엔 나의 혼과 기가 담겨 한데 묶인 술법이 새겨져 있네.

‘다른 것들은 다르다는 건가?’

—그 물건들엔 술법으로 새겨진 도술만 담겨 있네.

“뭐가 달라요? 혼이 없는 거?”

—물건을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든 새겨진 도술을 쓸 수 있다는 말일세.

“네? 마음대로요?!”

입이 쩍 벌어진 도희와 애매한 표정의 강아가 서로를 마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