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제가 죽이지 않았어요!
“가족이 없어?”
“예. 혼자 산다고 합니다.”
“친인척은?”
“……아무도 없답니다.”
“빚은? 돈 들어갈 때 없어?”
“깨끗합니다. 금전적으로 문제될 만한 부분은 없는 거 같습니다.”
“허, 참.”
“회사 평판도 좋은 편입니다. 입사 이래 인사고과도 잘 받아서 조기 진급한 케이스입니다.”
“지금 강도희 칭찬하자고 날 찾아왔나?”
“아, 아닙니다.”
“그럼 뭐 어쩌자고.”
“…….”
“꼬투리 잡을 것도 없어. 엮을 가족도, 친척도 없어. 그래서 뭐?”
부사장 못지않게 한 부장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준비가 되질 않은 자신을 부른 건 다름 아닌 부사장이었다.
“연애 관계가 복잡한 거 같긴 하다는데, 회사에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어서…….”
“복잡하다면 복잡하다지. 복잡한 거 같긴 하다는 뭔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나가.”
부사장 손짓에 허릴 숙여 인사한 한 부장은 다급히 부사장실을 빠져나갔다.
“하아.”
이재의 손이 자신의 미간에 닿았다.
그리고 잔뜩 주름진 미간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이야기가 됐을까.’
황이재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도희가 아니었다.
그에게 도희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무혁.’
문제는 그녀를 내세워 뒤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무혁과 전 상무였다.
‘이무혁이 일개 사원에게 패를 다 까진 않았을 텐데…….’
나름 팀장이란 직함까지 달게 된 도희였지만, 부사장에겐 그저 일개 사원에 불과했다.
‘강도희는 그 꿍꿍이에 동참하기로 한 건가.’
하긴, 미친년에게 꽃 하나 더 달아주면 좋다고 날뛰겠지.
자기가 총알받이인 줄도 모르고.
‘네년이 꽃을 몇 개나 달고 오든, 그저 쓰다 버려질 패일 뿐.’
눈에 뻔히 보이는 계획이었다.
‘아마도 개선부로 회사를 뒤엎어보려는 개수작이겠지.’
이재가 보기에 그들이 하려는 짓은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들의 치기에 불과했다.
그들은 뭐든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밟혀 본 적 없으니, 겁도 없는 거겠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이었다.
만약 변수가 있다면…….
‘강도희.’
그가 보기에 무혁도 강도희를 길들여서 팀장 자리에 앉혀 놓은 것 같진 않았다.
‘이무혁, 그놈도 급하긴 했지.’
무혁이 사장으로 부임한 지 반년.
반년 만에 사고 스캔들로 회사 이름을 뉴스에 도배시킬 순 없던 피치 못할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도희 실종 사건을 처음 키운 건 부사장 황이재였다.
도희 친구인 강아가 글을 올린 첫날.
황이재는 관련 이슈를 비서실에서 보고 받고, 뒤에서 몰래 일을 키우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저 사태의 흐름을 지켜보다 이용하려 했다.
사원 입 하나 못 막아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드냐며.
사장 놈을 내치진 못해도 흠이라도 내려 했다.
마 부장 새끼만 엮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줘도 못 먹는 모자란 놈.’
말 많고 탈 많은 마 부장을 그 자리까지 올리느라, 얼마나 많은 신경을 쏟았는가.
‘그 덜떨어진 놈이 사고만 안 쳤어도.’
마 부장도 이사 자리에 올라 부사장 힘의 큰 축이 됐을 것이다.
일단 사건을 키워 놨는데 마 부장이 엮여 있어 그도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 누구도 내칠 준비가 되어 있는 부사장이지만, 마 부장은 너무 다 된 밥상이었다.
밥숟갈로 그저 떠먹기만 하면 되는.
부사장이 급히 사건을 덮으려 했을 땐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 후 판을 키운 건 이무혁 사장이었다.
마 부장이 엮여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언론은 물론, 이 일을 조사하라고 감사부에 압박까지 넣었다.
‘강도희 사건뿐 아니라 지난 사건을 다 들춰 엮을 생각이었겠지.’
헌데 과거 감사부가 처리한 일들이었다.
제 손으로 자기 무덤 파는 일을 감사부가 하겠는가.
그리고 감사부는 부사장 손안에 있는 곳이었다.
무혁이 아무리 지난 사건까지 파헤치려 해도, 감사부장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무리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마 부장을 급히 내치지 않았다면 더 큰 손해를 봤을지도.
‘줄줄이 소시지처럼 다 엮어서 도려내졌겠지.’
주먹 쥔 이재의 손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무혁 손에.’
무혁은 뜻대로 되지 않자 개선부를 만들었다.
버젓이 감사부 소속으로 넣어서.
그것도 사건의 원흉인 강도희를 팀장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부 소속이면 개선 ‘팀’이어야 옳다.
이름을 왜 개선 ‘부’로 했겠는가.
‘그 속내야 뻔하지.’
별거 아닌 듯 시작하지만,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해 그들의 힘을 구축하려는 수작이었다.
탁!
주먹으로 세차게 책상을 내려친 무혁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지금 강도희 뭐 하고 있는지 알아봐.”
도희에겐 아주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 * *
“꺄아아아아.”
양발을 차례로 내디뎠을 뿐인데, 생각의 속도보다 움직이는 발의 속도가 몇 배는 빨랐다.
힘을 들이지 않고 앞으로 쑥쑥 달려 나가니, 마치 엄청 빠른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희는 엄청난 속도로 도망자가 사라진 외진 골목에 들어섰다.
“와아, 미쳤어! 속도 뭐야!”
흥분한 도희 눈앞에 꽉 막힌 벽이 보인다.
‘막다른 길?!’
분명 남자가 여기로 들어오는 걸 봤는데.
‘도사님.’
—근처에서 진한 악의는 느껴지지 않네. 직접 찾아봄세.
‘어떻게요?’
—손을 대보거라. 도와줄 터이니.
그렇게 도희의 손이 또다시 서책에 닿자.
퍼엉!
도희가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잿빛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도심에선 보기 힘든 사람 몸통 크기의 ‘매’였다.
“아악!”
‘어? 뭐지? 뭐가 좀 이상한데.’
급격히 낮아진 시선에 당황한 도희였다.
—양팔을 힘껏 위아래로 퍼덕거려 보거라!
‘팔을 퍼덕이라구요?’
도희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어?’
근데 웬걸, 그녀의 손은 보이지 않고 양쪽으로 웬 새 날개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팔을 휘저으니 눈에 보이는 날개가 움직였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꽤나 다부진 새 몸뚱이와 버킷백이 보인다.
“이거 내 가방인데!”
—내 종종 매로 둔갑하여 사람을 찾곤 하였지.
“매!?”
‘나 지금 새로 변한 거야?’
그 부리부리하게 생긴 무서운 새?
언젠가 보았던 매사냥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매의 시력은 조류 중 최고일세! 어서 날아 그자를 찾게!
“날, 날아요? 내가?”
‘말은 왜 할 수 있는 건데!’
—새가 왜 새겠나? 시간 없네! 어서!
“아휴…….”
일단 급한 도희는 도사의 말을 따라 양팔을 위아래로 힘껏 휘젓기 시작했다.
몸통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는 펼쳐진 양 날개가 힘차게 퍼덕였다.
곧이어 다리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힘찬 날갯짓과 함께 도희, 아니 매는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 어! 난다, 날아! 내가 날아요!”
어설픈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사람 몸통만 한 ‘매’한 마리.
그 매에게서 흘러나오는 다소 격양된 여성의 목소리.
매의 굵은 목에 걸린 가방은 몸통까지 늘어져 있었다.
실로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더 높이 날아오르거라.
단숨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도희는 난생처음 하늘을 나는 기분에 도취되어 혼이 쏙 빠졌다.
꺄아아아아—
매에게서 웬 까마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발아래 깔린 세상은 너무도 작아 보였다.
‘이 많은 건물 중 내 건물 하나 없네.’
도희가 더 높이 오르자, 찬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으, 추워.’
경치 구경도 잠시,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 이놈의 저질 체력.’
—쯔쯧.
‘……운동할게요.’
—아래나 보거라.
“어?!”
‘도사님 저기!’
그때 도희의 눈에 한 남성이 포착됐다.
도희가 날아오른 막다른 골목 끝 집, 안쪽 담벼락에 기대어 가만히 서 있는 남자.
도망자와 같은 검은 후드.
꽤 먼 거리였음에도 어찌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정수리 가마까지 보인다.
‘얼굴이 안 보여.’
도희가 숨어 있는 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천천히 하강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어라 크게 소리치더니, 다시 담장을 넘어 도망간다.
‘욕한 거 같은데.’
사람 몸통만 한 매가 자길 향해 쏘아 내려오는데 어느 누가 놀라지 않겠냐만.
‘도사님 저 남자 맞죠?’
볼에 있는 흉터가 사진으로 본 남자와 같았다.
—동일인 같네만…… 이상하구나.
‘뭐가 또 이상해요.’
—일단 잡고 보자꾸나.
곧이어 인적 없는 골목, 매의 다리가 땅에 닿았다.
퍼엉!
그리고 바로 검은 머릴 높게 올려 묶은 어여쁜 여인이 나타났다.
도희는 숨돌릴 틈도 없이 도망자가 뛰어간 방향으로 냅다 달렸다.
우람한 덩치의 사내가 앞서 달리고 있었다.
‘검은 후드!’
“야!!!”
시선을 끌기 위해 냅다 소리부터 지른 도희, 갑작스레 튀어나온 음성에 놀란 도망자가 뒤를 돌아본다.
‘작은 눈, 볼에 흉터!’
방금 사진으로 본 그 자가 확실했다.
“거기 서봐, 이 자식아!!!”
살인범이 서란다고 서겠냐만은…….
‘어? 섰네?’
멈춰선 남자는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빼 들었다.
‘칼? 미친놈 아냐 저거!’
“김현철! 무기 버리고 손 올려!”
어느새 도희의 반대편에서 용의자를 막고 있는 우주가 소리쳤다.
남자는 우주를 보고 멈춰선 듯했다.
도희와 우주 형사 사이에 끼게 된 용의자.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무기 버려!”
“내가 왜! 내가 순순히 잡힐 거 같아?”
그는 도희와 우주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도희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비켜어!!!”
도희와 용의자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어, 어? 아저씨 잠깐만요.”
너무도 순식간에 일이었다.
“말로 해요. 우리… 말로!”
“김현처얼!!!”
용의자는 우주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도희에게 달려들었다.
한 손엔 칼을 쥔 채로.
“도희씨!!!”
우주의 처절한 외침만이 골목 가득 메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