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뿌린 대로 거두리라! 퉤퉤!
우주가 사람들 앞에서 순진한 척하는 것은 방어 기제의 일환이었다.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그만의 방어 수단.
그래서 우주는 사람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사람 보는 눈엔 일가견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도대체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해, 나름의 관계 이득을 취해 온 우주였다.
직업도 형사이다 보니, 심리전에도 자신 있는 그였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강도희란 여자는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처음엔 도희가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 줄만 알았다.
용의자가 살인범이 아니란 그녀의 말은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기에.
예사롭지 않은 첫 만남과 그 후의 행동으로 인해,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저 똑똑해서 모든 걸 안다?
아니다.
그럼 정말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범죄 심리, 행동 분석 책을 좋아해서?
풉, 전문 프로파일러가 와서 그날의 김현철을 대면해도 절대 살인범이 아니라는 확신은 할 수 없을 거다.
그럼 그녀의 촉이 좋아서?
누가 자신의 촉만으로 살인범에 대해 확신에 찬 판단을 내린단 말인가.
그녀가 변명으로 내놓은 모든 것들은 우주에게 답이 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다른 이유로 알아챘지만 밝히길 꺼려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뭘까.
그녀는 알고, 우주는 모르는 그 무엇이.
“흐음…….”
수심 가득한 표정의 우주 입가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하, 이제 일을 좀 해볼까?’
기존에 있던 부서가 아니기에 모든 뼈대를 새로 꾸려야 했다.
팀원들과의 회의로 구성은 할 거지만, 그들이 오기 전 대강의 가이드라인은 짜야 했다.
—누군가 오고 있네.
“강도희!”
‘헐. 우리 한 부장님 생각보다 능력 있네.’
감사부의 힘이 닿지 않는 사내 부서는 없다더니, 사실이었다.
“네, 부장님. 어인 발걸음이신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허리 숙여 인사하며 그를 맞이하는 도희를 본 한 부장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본인만 바보가 된 듯했다.
“어인 발걸음? 그 사고를 쳐놓고 한가하게 여기서 놀고 있어?”
“놀고 있다니요. 회의 안건 정리했습니다. 보고드릴까요?”
이 여자는 뭐가 이렇게 태평한 건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한 부장이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그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되찾았다.
“너 그런 공문을 내 허락 없이 전사에 발송하면 어쩌자는 거야. 네 상사는 나야. 상사 따로 있어? 왜 그러는 거야 대체.”
“허락해 주실 거예요?”
“뭐?”
“허락 안 해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개선부는 명목상 감사부 소속인지 결제권자에 부장님 이름 없던데요? 한길수 부장님.”
“야, 너 내가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런 말씀 안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 아니고, 강도희 팀장입니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부장 없는 부서가 어디 있냐?”
“여기 있습니다.”
“야!!!”
“아으!!!!”
‘왜 소릴 지르고 난리야.’
일부러 한 부장보다 더 크게 악을 쓴 도희였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안 질러도 다 들려요.”
한 부장의 눈빛이 ‘뭐 이런 게 다 있지?’ 하는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휴… 너 회사가 네 놀이터야? 네 맘대로 휘젓고 다니게? 개인적인 악감정 넣어서 공문 막 뿌리고 그래도 되는 곳이냐고!”
“사심 넣은 적 없습니다. 저는 회사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일한 것뿐이에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사이동 연기시킨 건 부장님 아니셨어요?”
“내, 내가 왜! 무슨 개인적인 감정!”
“그건 부장님이 아시겠죠!”
절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도희였다.
종일 부사장과 다른 부장들에게 시달린 한 부장은 머리가 지끈거려 더 이상 화낼 힘도 없었다.
“앞으로 전체 메일 발송할 땐 나한테 보고해.”
한 부장은 도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휙 돌아 나갔다.
그런 그를 보니 도희도 두통이 밀려왔다.
어찌 저리 감정 소요가 심한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빽하고 소리 지르는 통에 아주 신물이 났다.
그리고 사실 도희는 알고 있었다.
한 부장이 본인 이름으로 불리는 걸 지독히도 싫어한다는 것을.
* * *
아무도 없는 텅 빈 회의실.
도희는 홀로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도사니임.”
‘도사님이 말씀하신 재물들은 언제 따라올까요.’
—네게 물욕이 없어질 때 즈음이면 자연히 따라올게다.
“네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녀의 손이 멈추더니, 시선은 가방에 있는 무언가에게로 향했다.
“그 말씀은 죽을 때까지 안 따라온다는 거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욕이 어떻게 없어지나요. 흥.’
—……쯔쯧, 다 부질없는 것을.
‘저 양반이 진짜 현자 같은 말씀 하시네.’
“인생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이거예요?”
—허허. 그런 말도 아느냐?
“아이고~ 도사님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아무 돈벌이 없이 도시에선 살 수도 없구요. 산에 들어가면 굶어 죽기 딱 좋아요.”
산에 들어가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현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뼈 빠지게 일해야 하루 삼시 세끼 겨우 먹을 거다.
그렇게 자급자족해서 먹는 게 겨우 풀떼기일 건데, 여기서 돈 벌어서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가는 게 낫지!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도사님, 재물이 있어야 악을 쫓는 시간도 생기지요!”
‘재물이 있다면 시간이 남아돌 텐데, 그 시간에 도사님이 말씀하시는 악을 찾아 정의를 행하면 더 쉽지 않을까요?’
도희의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 손은 무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지금 제가 재물이 넉넉하지 못해 이렇게 일하느라 정의도 못 찾고 있답니다. 흑흑.’
—‘끄응…… 말이나 못 하면, 말이나!’
—내 방도를 강구 해보겠네.
‘회사 그만두려면 평생 놀고먹을 돈이 있어야 하는데.’
팀장도 달았고, 연봉도 꽤 높아졌기에 재물이 생긴다 한들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처지였다.
‘아니지…… 한 십억, 아니 백억쯤이면?’
한참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던 도희가 급하게 정신을 되찾았다.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재물보다 급한 일은 차고 넘쳤다.
혼자 일하다 보니, 괜히 서러워 도사님에게 푸념해 본 도희였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혼자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
회사를 위해 이렇게 일한다고 한들 누가 알아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받은 값은 해내야 하기에.
‘할 일은 한다만!’
다 같이 돈 받고 일하는 처지에 그녀를 방해하는 이들이 밉게만 느껴졌다.
본인 이득밖에 모르는 천치들.
‘뿌린 대로 거두리라! 퉤퉤!’
타다다닥! 타닥!
텅 빈 회의실 안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공간을 메워 갔다.
그리고 부디 팀원들이 제날짜에 출근하길 바라는 도희의 마음과 달리, 그녀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출근 첫날을 하얗게 불태운 도희에게 예상치 못한 보상의 시간이 찾아왔다.
“도사님 풀어도 될까요? 진짜 풀어요?”
원래는 흰색이었는지, 누런색이었는지.
본래의 색을 잃은 듯한, 허름한 보자기 천으로 싼 봇짐 앞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도희가 앉아 있다.
—풀어 보거라. 뭐 그리 대단한 일 한다고 두 번이나 묻는 게냐.
설레는 도희의 마음과는 달리 도사는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낮에 도사에게 한 도희의 푸념이 먹혀들었는지.
도사는 그녀의 사기 충전을 위해 계룡산 봇짐 푸는 것을 허락했다.
도희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요물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희는 색이 바랜 허름한 보자기 천이 혹여나 뜯어질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매듭을 풀어냈다.
묶여 있던 매듭이 풀리며 천 속의 물건들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
부채 하나와 서책 네 권.
그 옆에 술병 두 병과 두 개의 술잔.
그리고 도희가 고대하고 기대하던, 고급스러운 문양의 나무 보석함 하나.
물건들은 보자기의 도술로 아주 작게 변한 상태였다.
당시 동굴 안에 있던 고가구인 삼 층 책장과 궤짝까지 꾸역꾸역 담았다가 크기는 작아져도 무게는 그대로 느껴지단 말을 듣고 다시 돌려놓은 도희였다.
‘하, 다시 생각해도 아까운데 다른 방법 없나?’
—쯔쯧… 그것들이 네 것이더냐?
“아니 뭐, 도사님께 내 거고 내께 도사…….”
—오호?
“자, 도사님 이 중에 요물이 뭔가요?”
도사님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모두 요물인 건 아니었다.
—말 돌리는 게냐?
“이건가?
‘저번에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가 있다고 하신 거 같은데.’
“이게 바람 일으키는 부채예요?”
도희의 손에 들린 접선이 활짝 펼쳐졌다.
이어 그녀는 손목을 위에서 아래로 살며시 움직였다.
휘이이잉―
살짝 부쳤을 뿐인데, 에어컨도 울고 갈 서늘한 바람이 도희의 얼굴을 스쳐 갔다.
‘전기세는 굳겠네.’
에어컨은 필요 없겠다 생각한 도희였다.
“보석함엔 뭐가…….”
—직접 열어 보거라.
보자기 위에 있는 작은 보석함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는 순간, 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실제 크기로 변한 보석함의 크기가 생각보단 작았다.
“아 떨려. 뭐가 들어 있는지 먼저 말해 주면 안 돼요?”
내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당첨되는 복권을 긁는 기분이었다.
—……일단 열어 보거라.
“혹시 도사님도 모르세요?”
도희의 가느다래진 눈매가 서책을 향했다.
—계룡산 거처를 만든 지 꽤 되는지라…….
도사가 소싯적에 만든 거처였기에, 살아생전 방문 안 한 지도 꽤나 되었단다.
그러고도 오백 년이 흘렀으니, 흐릿한 기억 한 톨 남지 않고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상한 게 들어 있진 않겠죠?”
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거라든가…….
보면 재수 없어지는 거라든가…….
혹시 다른 사람이 열어 보는 걸 방지하기 위한 무언가 장치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예끼! 이놈이! 날 뭘로 보는 게냐!
“뭘로 보긴 뭘로 봐요.”
도술 부리는 도사님이죠.
—끄응…….
이게 뭐라고, 심장이 터질 듯 콩닥콩닥 뛰었다.
딸칵—
잠겨 있던 보석함의 문이 열리자…….
“에게게……?”
흔해 보이는 옥팔찌와 옥반지.
그리고 반달 모양의 나무빗 하나.
“어! 도사님 이 반지 혹시……?!”
‘공간 이동 반지가 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것은 아닐세. 어허! 이것들이 여기 있었구만.
“이게 뭔데요, 도사님?”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