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24)화 (24/120)

023화 강도희랑 친해?

대부분 타 부서와의 업무는 메신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해결한다.

그렇기에 몇 년을 다닌 회사지만, 다른 층에 갈 일은 크게 없었다.

도희와 도하는 보안팀장의 도움을 받아 회사 내부 곳곳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둘은 그저 구경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순찰(?)같이 느껴졌다.

둘의 등장이 사람들에게 그리 달가운 광경은 아니었다.

개선부가 발송한 전사 메일만으로도 사내에 이미 한 차례 파란이 일었지 않았는가.

어떤 이들은 주인공들이 직접 나타나, 회사 곳곳을 들쑤신다 생각하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여기 휴게실은 엄청 잘 되어 있네요.”

부서마다 비슷한 크기의 공간을 사용하더라도, 그 모습과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신입 사원이 거래처 전화를 잘못 받았는지, 사무실이 떠나가라 고성이 오가는 영업1팀을 지나치던 도희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부서 게시판에 떡하니 붙어 있는 명단.

[주말 등산모임 참석 여부 체크란]

모든 이름 옆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와, 아직도 이러고 있네.’

어쩌다 보니 도희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휴무 날 단체 모임이 옳다, 옳지 않다로 인터넷에 큰 공분이 일었다.

도희가 쉬는 동안, 분명 당분간 사내 사적 단체 모임은 지양하라는 전체 공문이 내려왔다고 했다.

혹시나 또 부서 모임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한 회사에서 취한 조치로 보였다.

그 이야길 듣고 도희는 회사가 이번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싶었더랬다.

그럼 뭐하나.

아무도 지키지 않는 것을.

결국 소귀에 경 읽기였다.

‘언제 바뀌나. 이놈의 악질 사내 문화!’

모임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모이고 싶은 사람끼리만 모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전 부서원이 금쪽같은 휴무 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회사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까.

그것도 불편한 상사를.

‘강제니까 가능하지, 반강제니까!’

회사 업무만이 아니라, 본인한테 잘 보이는 사람한테 인사평가를 더 잘 주는 문화가 문제였다.

일 못 해도 상사한테 잘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상사 인사평가는 반대로 아랫사람이 하던가!

‘…어? 좋은데?’

깊은 생각에 빠진 도희의 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회사 구경이 끝나나 싶었는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이 대리! 얼씬도 하지 말라니까 무슨 낯짝으로 하루 만에 여길 다시 와.”

도하는 엮이고 싶지 않은지, 못 들은 척 발길을 재촉했다.

“저것 봐, 저것 봐. 팀장이 말하는데 말이야. 싸가지 없는 새X.”

첫 마디가 들리는 순간부터.

도희는 부디 저 말이 도하에게 하는 말이 아니길 빌었다.

자리에 멈춰선 도희는 방금 소리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쯔쯔, 끼리끼리지. 끼리끼리.”

‘지금 이건 나보고 하는 말?’

눈을 부라리며 도희를 몇 초간 쳐다본 사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자리에 앉는다.

“강 팀장님?”

“나 불렀나, 강 대리.”

“강 팀장입니다. 저도.”

도하네 팀장이었던 강 팀장은 어이없다는 듯 도희를 쳐다봤다.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물론, 사무실 층이 같아 가끔 보긴 했었다.

예의상 인사만 했지, 말 한마디 나눠 본 적 없는 사이지만.

“하하하, 남의 사원 빼 갈 때부터 알아봤지만 경우가 없는 사람이구만.”

꾸며낸 웃음소리와 싸늘한 그의 말끝엔 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극상을 벌인 대리가 팀장 자리에 올랐다며, 팀장, 부장급 사이에서 자신이 받는 손가락질을 모르고 있는 도희였다.

“빼 간 적 없고 지원받았습니다만?”

“그럼 지원한 이도하 대리 잘못이구만!”

“그렇게 잘잘못을 굳이 따지셔야겠다면, 지원 메일을 뿌린 제 잘못이죠.”

도희가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저를 팀장에 앉힌 저 위에 분들 잘못이고요.”

그리고 가슴에 있던 손은 자릴 옮겨 천장을 가리켰다.

“지금 나랑 말장난하나?”

“말장난하는 건 그쪽 아닌가요? 사장 직권 인사 발령입니다. 불만 있으시면 사장님께 직접 하세요.”

“허, 마 부장이 자넬 데리고 있느라 고생 좀 했겠네.”

“말 못 하세요? 혹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신 스타일이신가? 그리고 마 부장은 절 아주 좋아했습니다만.”

도희가 하얀 이를 들어 내보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표정과는 다른 한없이 청아한 미소였다.

‘예쁘긴 예쁘네.’

순간 강 팀장은 자신의 머릴 후려칠 뻔했다.

남자가 아무리 본능의 동물일지언정, 이 상황에서 저 여자가 예뻐 보이다니.

멍청하게도 화낼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강대… 아니, 강 팀장. 하, 내가 진짜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 회사 생활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뭣 모르는 망아지처럼…….”

예기치 못한 뻔한 잔소리에 도희는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놈의 딸 같아서, 자식 같아서!

‘너희 아들, 딸한테나 그렇게 말하라고!’

도희는 강 팀장의 말을 끊고 제 말을 이었다.

“강 팀장님. 제가 아버지는 없지만 아버지 같아서 한 말씀 드릴게요.”

거침없이 강 팀장에게 걸어간 도희는 그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강 팀장님.”

말을 끝낸 그녀는 해맑게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도하네 강 팀장은 앉은 자리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아무런 대꾸도 못 한 채.

*     *     *

회사 점심시간.

오늘따라 사내 식당을 찾은 이들이 많은지, 식당은 각종 소음들로 소란스러웠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한 테이블이 있었다.

“허얼, 그래서 강도희가 강 팀장한테 뭐라고 했는데?”

“불만 있음 사장님한테 이르세욧!”

“허얼, 대박. 크크크크.”

“뭐야. 자기 빽 있다고 대놓고 티내는 거야?”

“강도희 대리 그런 스타일 아닌데?”

신나게 상황을 옮기던 선미가 진경을 쏘아본다.

“야 너 강도희랑 친해?”

“아니. 뭐, 친한 건 아닌데. 강도희 대리가 그러진 않았을 거 같아서.”

“내가 봤다니까? 강도희가 우리 팀장님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거!”

“근데 사실 도하 대리가 개선부 간 게 강 대리 잘못은 아니잖아? 너희 팀장도 선 넘긴 했지. 먼저 시비 건 거잖아.”

“강도희가 먼저 사장 이야기를 꺼냈다니까? 자기 빽 있다고 유세 떠는 거 아니고 뭐냐고!”

“너희 팀장이 자꾸 발령 건 가지고 시비 거니까, 발령 낸 사장한테 가서 따지라는 거 아냐? 틀린 말 아니잖아.”

“야! 너 자꾸 기분 나쁘게 너희 팀장, 너희 팀장 하는데, 팀장님 앞에서는 목소리 바뀌면서 진짜 웃긴다. 선진경.”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점점 커져 가는 진경과 선미의 목소리 사이로 맞장구치던 여사원 둘이 끼어들었다.

“너희 둘 그만해. 왜 너희 둘이 싸우고 그래.”

“그래, 누가 보면 진경이 강도희랑 친한 줄 알겠다. 그냥 선미 이야기 좀 들어주지. 뭘 또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냐.”

“내버려둬. 강도희랑 친한가 보지.”

“하아…….”

“야 선진경, 너 지금 한숨 쉬었어?”

진경은 이들과 대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원래 친했던 건 아니다.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어울리게 됐는데, 도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는 애들이었다.

남자 이야기와 남 험담을 빼면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 부류들.

‘으… 질린다, 질려.’

“그거 내 이야기에요? 그 강도희가 나인가?”

지나치려다 그녀들 곁으로 다가온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희는 진짜 궁금했다.

앞 이야기는 다 잘라먹고 본인 이름이 거론되는 뒷부분만 살짝 들었기에.

“진경 대리, 식사 맛있게 하세요.”

“강대… 아니, 강 팀장님도 맛있게 드세요.”

갑작스러운 도희의 등장으로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미의 말에 신나게 맞장구치던 두 여자는 민망한 듯 고개를 식판에 박고 애먼 젓가락질만 해댔다.

방금까지 신나게 도희 욕을 하던 선미는 막상 도희가 앞에 나타나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도하만 바라볼 뿐이다.

‘내 얘기 맞나 보네. 도하 대리 팬인가?’

사람들이 도하 대리 ‘팬’라 부르는 이들이 몇 있다 들었다.

‘도하 대리도 회사 생활 참 피곤하겠어.’

“선미씨? 식사 맛있게 해요!”

“…네?”

이 여자도 도희와는 인사만 하던 사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여자가 주도해서 방금 나랑 강 팀장 일을 말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도희 곁에 있던 도하의 시선이 선미에게 향하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도희 팀장님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 진경이 나섰다.

“진짜 내 욕했어요? 괜찮아요. 뭐~ 나랏님 욕도 하는 세상인데.”

도희의 눈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졌다.

‘뒷담화를 한 거 같긴 한데…….’

듣질 못했으니 크게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왜 진경 대리가 사과해요. 내 편 들어주다 같이 욕먹는 거 같던데, 내가 미안해요.”

코를 찡긋한 도희는 그녀들 옆자리에 앉았다.

물론 한 자리 띄어 앉았지만, 같은 테이블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곤 도희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국 한 숟갈을 막 뜨려는데…….

“팀장님, 신경 쓰지 마세요.”

도하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남들이 하는 말 일일이 신경 쓰고 어떻게 사나요.”

도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히 웃어 보였다.

“아 참, 도하씨는 괜찮아요? 강 팀장이랑 싸우고 오늘 출근한 거예요?”

‘어쩐지, 발령일 전에 왔더라니.’

“…어제 발령이 취소됐다고 들었습니다. 상황을 여쭤보니,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네? 강 팀장이 발령 취소라고 하던가요?”

“예. 부서 인원 부족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희 부서 인턴도 여유롭게 받아서 인수인계도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해가 안 간다고 말씀드리니…….”

“풉. 가란다고 진짜 온 거예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만했다.

‘감사부장 말만 발령 연기였지, 이미 타 부서 부장들이랑 인원 보내지 않기로 합의한 모양이네.’

“부당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사과에 물어보니 발령 취소도 아니라고 하고, 팀장님이 보내신 공문 보고 다시 말씀드리니 그냥 가라고 하시고… 인수인계도 다 끝났고 해서…….”

“푸웁, 말끝은 왜 흐려요. 다시 가라고 안 해요.”

도희는 어째서인지, 자꾸 옅은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어차피 발령일까지 할 것도 없고 해서… 놀 바에 팀장님 혼자 계시니 와서 도와나 드리려고…….”

“크크큭, 알았어요. 알았어. 다시 가라고 안 한다니까? 도하씨 안 보낼 거예요.”

도희에 말에 도하는 말없이 빤히 도희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선미의 표정은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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