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오해입니다
“반갑습니다! 박두산입니다!”
선한 인상의 사내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며 우렁찬 소리를 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입구가 꽉 들어차 보일 정도의 우람한 덩치를 가진 사내는 몸을 반쯤 접으며 재차 허리를 숙였다.
‘기운이 넘치네.’
“반가워요. 두산씨.”
그 뒤로 웬 자그마한 아가씨가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안녕하세요! 윤소하입니다.”
또랑또랑한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소하씨 반가워요.”
“팀장니이임!”
순식간에 도희 곁으로 다가온 소하가 도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진짜, 진짜, 진~짜 뵙고 싶었어요!”
도희는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소하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곤 차마 그 손을 내치지 못한 채 같이 꼬옥 잡아주었다.
“저도 반가워요 소하씨.”
소하는 도희 실종 사건의 모든 진상을 인터넷으로 먼저 접한 사람 중 하나였다.
같은 회사인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며칠 동안 도희 사건 관련 글만 찾아봤더랬다.
도희가 나타나 부장 얼굴에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했단 소리를 들었을 땐,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게 어찌나 아쉽던지.
“팀장님은 제 롤 모델이세요! 맨날 출근하는 회산데 오늘따라 얼마나 설레던지. 저 어때요? 첫날이라 신경 좀 썼어요!”
‘웬 롤 모델?’
도희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말이 아주 빠른 아가씨였다.
속사포 같은 말들이 쏟아지는데, 전달력은 또 어찌나 좋은지 귀에 쏙쏙 박혔다.
큰 리본이 목 뒤에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노란 파스텔 톤 긴 치마를 입은 소하가 사뿐거리며 한 바퀴를 돌았다.
큰 리본이 아주 예쁘게 잘 묶여 있다.
‘직접 묶었나? 센스 있네.’
어깨에 닿지 않은 갈색 똑단발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너무 귀엽고 예뻐요. 귀엽단 말 실례 아니죠?”
“아이 그럼요! 저 귀엽단 말을 더 좋아해요. 세상에 예쁜 사람이 너어무 많아서 전 귀여운 걸로 밀려구요.”
윙크하는 소하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하씨 충분히 예뻐요.”
맑고 또랑한 소하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도희의 목소리는 더욱 온화하게 들렸다.
“어머! 팀장님이 그렇게 말해 주시니까 너무 좋은데요? 팀장님은 매일 거울 보시니까 눈도 높으실 거 아니에요!”
“푸웁.”
소리가 샌 쪽을 바라보니, 입에 물을 머금은 채 그대로 멈춰 있는 두산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물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서… 절대 소하님 말 때문이 아닙니다. 타이밍이…….”
“괜찮습니다.”
민망해진 도희는 급히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럼 이제…….”
“팀장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일순간 모든 시선이 두산과 도희를 번갈아 스쳐간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하.”
도희 말끝이 어색하게 올라갔다.
마치 삑사리 나듯이.
“크흠.”
민망해진 도희가 입을 가리며 작게 기침했다.
“푸흐, 큽.”
“크하하하.”
소하의 웃음을 시작으로 사무실을 메우는 큰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도희도 왠지 모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느라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모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 있을 때 마지막 멤버가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허진명입니다.”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논란의 개선부원 모두가 모였다.
도희와 도하도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마치며, 부서원들에게 첫 업무가 떨어졌다.
“보안팀장님께 협조 요청해 놨습니다. 회사 구경하시고 점심때 뵐게요.”
부서원들의 눈빛에 의아함이 서렸다.
“회사 구경요?”
‘어디? 우리 회사? 아니면 다른 자사?’
모두의 머리 위에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이 건물 내부를 구경하고 오시면 됩니다.”
도하도 처음 회사 구경을 나선다고 했을 때 의아해했지만, 끝나고 나서야 그 의도를 알아차렸었다.
“가 보시면 아실 거예요. 돌아보시고 점심때 뵙겠습니다.”
* * *
다시 사무실엔 도희와 도하 둘만 남았다.
“도하씨 아까 제일 크게 웃는 거 다 봤어요.”
도희가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도하를 쳐다봤다.
“전 안 웃었습니다.”
도하에 대답에도 가늘어진 도희의 눈은 풀릴 줄을 몰랐다.
“아, 팀장님 어제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어? 말 돌릴 줄도 아네?’
“어젠 죄송했어요. 놀라셨죠?”
도희는 민망한지, 도하를 바라보지 못하고 애꿎은 머리만 쓸어넘겼다.
“저에게 죄송하실 건 없습니다.”
“아… 네.”
의도치 않게 딱딱하게 뱉어진 말에 스스로도 놀란 도하가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어제 팀장님 멋있었습니다.”
“네?”
“저는 하고 싶은 말도 삼킬 때가 많거든요.”
‘이도하 대리가? 여사원들 데이트 딱 잘라 거절 잘만 한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팀장님께 배워야겠습니다.”
“풉… 어제처럼 싸우는 거요? 화내는 걸 뭐하러 배워요.”
꾹꾹 참다가 통화 마지막엔 기어코 언성이 높아지고야 말았다.
“뭐든요.”
“나쁜 건 배우지 마세요. 어제 일은 부디 잊어주시고.”
두 눈을 찡긋하며 두 손을 모아 올린 도희를 본 도하가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아 참, 도하씨. 오후 회의 안건 정리한 건데 한번 확인해 줄래요?”
“예.”
서류철을 건네는 도희 손에 도하의 손등을 스치며 짧게 닿았다,
딱!
떨어졌다.
“꺅!”
“괜찮으세요?”
“와아, 정전기가 이렇게 아팠나요?”
도희가 쩌릿한 제 손을 내려다보는 사이 놀란 도하가 덥석 도희의 손을 잡아챘다.
“어디…….”
그때 사무실의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연 진명의 시선이 맞닿은 도희와 도하의 손으로 향한다.
“폰을 두고 가서…… 죄송합니다.”
진명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는 본인 책상에 놓여 있는 휴대전화를 들더니, 도희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 그럼 이만.”
“오해입니다.”
“예예.”
진명은 뒷걸음질까지 치며 서둘러 사무실을 벗어났다.
도희의 말을 안 믿는 게 분명했다.
“…….”
“…….”
정적이 찾아온 사무실엔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여러 대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현장을 메운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의 등 뒤에는 [과학 수사 POLICE]라 적혀 있다.
프로파일러와 함께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KCSI 과학 수사 요원들은 쉴 새 없이 현장을 누비며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다.
우주도 질 새라 증거가 될 만한 흔적이 있는지 현장을 곳곳을 살폈다.
“여기 사건 현장 맞아요?”
이 경위는 뒷머릴 긁적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장님 현장이 너무 깨끗한데요?”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넓은 거실 바닥은 머리카락 한 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지…….”
창가를 제외한 양쪽 벽면 또한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흔한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이곳이 거실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중앙에 놓인 ‘ㄷ’모양의 커다란 소파 하나 덕분이다.
괴기스러운 위화감이 느껴지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검붉은 소파에는 남자 한 명이 곤히 누워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사인이 뭘 거 같대?”
“부검해 봐야 알 거 같답니다. 현장 식별로는 보시다시피…….”
그들도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 않았다면 사건 현장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거다.
“신고는 누가 했다고?”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 청소부 아주머니랍니다.”
“피해자는 이 집 주인?”
“아니요. 집주인 연락해 보니 돈 받고 명의 빌려준 거라는데요.”
“집 명의를 빌려줘?”
“예. 와 본 적도 없답니다.”
“돈 받은 계좌 내역 있을 거 아냐. 조사해 봐.”
“현금으로 받았답니다.”
서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피해자 신원은?”
“그게 아직…….”
“청소부 아주머니께도 여쭤보고, 이 집에서 누구 마주친 적 없는지.”
“아무도 본 적 없고, 오면 테이블 위에 청소비로 받는 현금만 놓여 있었답니다.”
‘또 현금.’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러니까…….”
서 팀장의 걸음이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엔 두꺼운 하얀 이불로 덮인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애매한 이 집에.”
또 그의 발걸음은 천천히 옮겨져 주방으로 향한다.
물기 한 점 없이 텅 빈 싱크대와 긴 아일랜드 식탁이 보였다.
주방은 숟가락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집주인은 누군지도 모르고.”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겨 방금 과학 수사 요원이 나온 문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이다.
아무것도 없는.
“피해자는 당장 신원 파악도 안 된다?”
바닥에 내리깔린 서 팀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전 사건이 너무 쉽게 해결된다 했더니.”
딱 봐도 이번 사건은 몇 개월 고생할 느낌이었다.
이런 미스터리한 사건을 처음 맡은 서 팀장은 속에서 묘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이 경위는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평소 어떤 걸 청소하셨는지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여쭤보고.”
“예.”
“박 경위는 명의 빌려준 사람이 거짓말한 건 아닌지 계좌 내역이랑 근처 보안 카메라 확인하고.”
“예.”
“우 경위는…….”
“네 반장님.”
“속은 괜찮나?”
“예?”
“오늘 사건 현장은 깨끗해서 괜찮은가 보네.”
“아… 네. 괜찮습니다.”
우주는 평소 본인이 지나치게 약한 척을 했나 싶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 경위는 이웃집들부터 탐문 조사부터 시작해.”
“예.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 * *
다소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사무실 안.
도하 대리는 아까 정전기가 통하고 난 후로 내내 저 상태였다.
‘답답한 건 또 못 참지 내가.’
팀원과 어색해지다니.
그녀 사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하 대리님.”
“예 팀장님.”
“왜 자꾸 힐끔 쳐다보세요.”
“예?”
“아까 진명씨가 오해한 거. 첫날이라 잘 몰라서 그럴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도하가 여자들에게 철벽 친다는 건 익히 들어왔다.
“도하 대리님이랑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럴 일 없습니다.”
“네?”
“도희씨랑 어색해질 일 없습니다.”
‘지금 도희씨라고 한 거야?’
원래 예전에도 도희씨라고 부르긴 했는데…….
‘부서 이동하고 팀장님, 팀장님 잘하더니 갑자기 도희씨?!’
“보고 싶어서 봤습니다.”
뭐?
‘보고 싶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이 벌어진 도희와 당당하고 곧은 눈빛의 도하.
이곳에 한층 더 농밀해진 묘하디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