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도사가 예쁘면 생기는 일 (31)화 (31/120)

030화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4층 공용회의실 옆 구석진 여자 화장실.

도희는 낯선 남자와 마주 보고 서 있다.

“아, 제가 배가 아파서 급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화장실을 착각했습니다. 나중에 나가려고 하는데 여성분들이 들어오셔서…….”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선 도희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남자를 살폈다.

“많이 급하셨나 봐요. 화장실을 착각하시고.”

도희가 고른 이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남자는 재차 고개 숙여 사과하더니, 도희를 제치고 급히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잠깐.”

도희가 팔을 뻗어 남자를 막아섰다.

남자는 우뚝 선 자세로 고개만 돌려 도희를 쳐다봤다.

“어느 부서, 누구세요?”

“아… 그건 왜……?”

“오늘 회의실 사용이 재무 부서던데.”

“아, 네. 재무부 맞습니다. 그럼 전 회의에 늦어서 이만…….”

남자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그를 막아선 도희의 팔은 내려가지 않았다.

“재무부 아닌데.”

남자를 빤히 쳐다보는 도희의 한쪽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남자는 당당하다는 듯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도희에게 내밀었다.

“감사2팀 박현일입니다. 됐나요?”

그는 기분 나쁘다는 듯, 도희의 팔을 젖히며 다시 문을 나서려 했다.

그때, 도희가 남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

“뭐 하시는 겁니까? 저 지금 의심하세요?”

오른손에 쥔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이는 도희였다.

“휴대폰 안 가져가세요?”

“아…….”

남자가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낚아채려는데, 그보다 한발 빠른 도희의 손이 뒤로 들어 올려졌다.

남자의 휴대 전화는 여전히 도희 손에 쥐어 있었다.

“근데 무슨 의심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휴대폰 주십시오.”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급변한 표정의 그는 이제 표정 관리할 생각도 없다는 듯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그의 사나워진 눈빛은 휴대전화를 강제로 뺏을 기세였다.

“돌려드리긴 할 건데, 그전에…….”

지이이잉—

도희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보안 팀장님 여기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보실래요?”

“지금 뭐 하자는…….”

보안 팀장이 보안팀 직원 한 명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선다.

“정말 죄송한데, 주머니에 볼록한 그거.”

도희의 손가락이 남자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뭔지 봐도 될까요? 서로 확실한 게 좋잖아요.”

환하게 웃는 도희를 보고 기분 나쁘기 쉽지 않은데.

남자의 이가 악물리더니, 그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아까부터 자꾸 의심, 의심하시는데.”

말을 잇는 도희의 걸음이 보안 팀장 옆으로 옮겨졌다.

“전 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걸로 보일까요?”

문 앞을 막아선 보안 팀장과 직원, 그리고 도희.

남자의 시선이 문 앞을 막아선 그들에게 향했다가 다시 바닥을 향한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눈알이 당황한 그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안 팀장님.”

“네, 강 팀장님.”

“사내 보안 규정상, 여자 화장실에 침입한 남 사원 소지품을 확인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나요?”

“사내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보안 팀장 승인 시 본인 동의하에 임의 수색 가능합니다.”

보안 팀장이 바로 여기 있으니 저 남자만 동의하면 된다는 말.

“자, 그렇다는데.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동의 못 합니다. 상당히 불쾌하네요.”

“네, 그럼 경찰 부르지요. 뭐.”

강제성 없는 상황에서 보안 팀장을 곤란하게 할 순 없었다.

“저기요.”

남자는 갑자기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도희를 위아래로 훑는다.

“제가 아주 바쁜 사람입니다. 경찰을 부르든 특공대를 부르든 알아서 하시고.”

남자는 도희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두 발짝을 남기고 멈춰 섰다.

“오면 감사2팀으로 찾아오세요.”

말을 끝낸 그는 위협적인 눈빛으로 도희를 노려본다.

“제 폰은 이제 주시죠?”

도희는 돌려주기는커녕 그의 휴대 전화를 쥔 채로 팔짱을 꼈다.

“경찰 올 때까지 잠깐 계시죠.”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네가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맴돌자, 이미 상황 파악을 마친 보안 팀장이 나섰다.

“동의하시면 잠깐 몸수색 좀 하겠습니다. 거부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경찰 부르겠습니다.”

보안 팀장에게 당하거나.

경찰에게 당하거나.

남자가 몸수색을 피할 선택지는 없었다.

“진짜 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냥 보내 주시죠…….”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참나, 체격 좋은 보안 팀장님은 무서운가 봐.’

남자의 부탁에도 보안 팀장은 미동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다.

“하, 알겠습니다.”

보안 팀장의 시선이 무거웠는지 남자가 결국 수색을 허락했다.

“잠깐.”

“……?!”

남자는 도희가 ‘잠깐’ 소리를 할 때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감사부라고 하셨죠?”

“예.”

대답하는 남자의 눈빛엔 불만이 가득했다.

‘이 여자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도희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112를 눌렀다.

“네, 경찰서죠? 여기 화정 기획 4층…….”

“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으아아아악!”

방금, 남자가 도희의 폰을 뺏으려 달려들자, 도희는 저도 모르게 팔로 남자를 쳐내며 발로 그의 그곳을…….

남자의 행동에 놀라 그에게 달려들던 보안 팀장과 직원.

이젠 바닥에 엎드려 중요 부위를 잡고 있는 그를 보며 그들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도희는 지극히도 자기 보호적인 행동이었지만…….

—끄응.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도사도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이… 그러니까 왜 폭력을 쓰려고 하세요…….”

누워 있는 남자와 멀쩡한 도희.

상황만 보면 누가 더 폭력적인지, 뭔가 애매한 일이었다.

“아윽, 야 너 이 XX,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불순한 의도로 먼저 도희에게 달려든 것은 저 자였다.

도희는 그저 방어를 했을 뿐.

누워 있는 남자는 연신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도희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남자에게 가져다 댔다.

‘모욕죄 추가다. 이 자식아.’

“욕설 들리시죠? 여기가 어디냐면…….”

*     *     *

그의 주머니에서 소형 카메라와 휴대용 충전기가 발견됐다.

사용처를 물어봤지만 남자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변호사를 불렀다고 한다.

경찰에 끌려가던 그는 도희를 폭행죄로 고소할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정당방위랑 폭행도 구분 못 하는 저 븅X… 아오.’

최초 신고자인 도희도 서까지 같이 동행해야 했다.

이러다 진술서 쓰는데 도가 트일 도희였다.

‘요즘 경찰서 출입이 왜 이리 잦은지.’

도희가 슬쩍 가방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 속에 서책이었지만.

‘이게 다 도사님 때문…….’

—크흠. 잘 해결되었으니 된 것 아니냐.

‘격투기라도 배워야 하나요. 이러다간 제 명에 못 살겠어요.’

—방도를 마련해야겠구나.

사실 아까 남자가 달려들었을 땐, 도희도 너무 아찔했다.

반사적으로 대응하긴 했지만, 혼자 있었다면 제대로 반항도 못 했을 거다.

위험해진다면 도와주실 보안 팀장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행동들이었다.

‘우연히 발길질이 그곳에 닿아서 망정이지.’

…조금 심했나?

많이 아파하는 그를 보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도희가 조서 작성을 마치고 서를 나서려는데…….

“몰카요?!”

‘설마, 설마 했는데.’

도희도 요 며칠은 그 화장실만 사용했다.

순간 도희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조사를 받고 있는 그놈이 보인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 게 방금이었는데.

‘미안하긴 개뿔!’

“야 이, 미친놈아! 할 게 없어서 회사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냐! 몰카아?!”

눈이 뒤집힌 도희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습니다!”

“어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진정하거라! 옥에 갇히고 싶은 게냐!

이런다고 감옥까지 가진 않겠지만, 도사님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도희였다.

“주머니에 있던 소형 카메라의 수신 연결이 저분의 휴대전화로 되어 있었습니다. 디지털 포렌식 검사를 맡겨 놓았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     *     *

“강도희이……!!”

이제 막 사무실로 돌아온 도희였다.

유리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한 부장의 고함 소리에 놀란 팀원들은 도희와 한 부장을 번갈아 쳐다봤다.

도희는 예상했다는 듯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말씀하세요. 한길수 부장님.”

이제 막 의자에 앉은 도희가 고개만 돌려 한 부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 진짜 미친 거야? 박 대리가 왜 경찰서라고 연락 오는 건데! 네가 신고했다면서?”

“잘못을 했으니까 경찰서에 있겠지요.”

“무슨 잘못?”

“글쎄요. 묵비권 행사한다는데 부장님이 직접 물어보실래요? 저도 궁금해서요.”

“너랑 싸우다가 잡혀갔다는데 넌 왜 여기 있냐고.”

한 부장이 도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랑 싸우다 잡혀갔다고?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한 거지.’

“현행범으로 여자 화장실에서 잡혔고, 주머니에서 소형 카메라가 발견됐고, 수신처는 그놈 휴대 전화랍니다.”

“뭐?!”

한 부장은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이다.

“휴대 전화 검사 맡겼고 곧 결과 나온다네요. 아무 죄가 없으면 풀려나겠죠.”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한 한 부장은 입이 쩍 벌어지더니,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린 듯 가만히 서 있다.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보니 그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너 그런 일이 있으면 날 먼저 불렀어야지, 경찰부터 불러? 아무리 경우가 없어도…….”

“무슨 경우요?”

도희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너무 놀란 도하는 멍하니 굳은 채 상황만 지켜볼 뿐이다.

“보안팀도 있는데, 경찰부터 부르면 어떡하냔 말이다!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크큭, 크… 와아…….”

도희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기 시작했다.

한 부장은 이 여자가 드디어 미쳤나 싶어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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