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화 조선 팔도
—그 기운이 아주 옅어, 악의를 느끼진 못했네.
‘아까 부사장과 대화할 때, 그에겐 악의가 느껴진다고 하시더니.’
“주변에 천지네요, 천지. 악의 가진 놈들이.”
도희는 전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었다.
‘끄응. 오징어는 또 왜 이렇게 질겨.’
—오늘 고생 많았네. 애썼어.
“쓸 만한 요물을 더 찾던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도사님과 협력할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어요.”
일이 생겼던 곳이 회사 안이었고, 나중엔 보안 팀장님도 계셨기에 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나쁜 놈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
오늘처럼 사람들 앞에서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고.
‘도술 공부 좀 해야겠네.’
도사님과 합 맞춰서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쓰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방법이 없진 않네.
오징어를 뜯던 도희의 행동이 그대로 멈췄다.
—언제 시간이 나느냐. 다녀올 곳이 한 곳 있다.
“헐! 도사님 설마!?”
—살아생전 사용했던 동굴이 몇 곳 더 있네.
“갑시다!”
도희는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나며 강아의 차 키를 챙겼다.
“이강아, 일어나. 너 술 안 마셨잖아.”
이제 막 맥주 한 잔 마시려던 강아는 황당한 눈빛으로 도희를 노려보았다.
—쯔쯧, 뭐가 그리 급한 게냐. 평안도까지 가려면 갈 길이 머니 천천히 채비하거라.
‘어디? 평… 뭐?’
“도사님 어디요?”
—평안도에 묘향산이라는 곳이 있네. 꽤 긴 여정이 될 게야.
‘평안도?’
“섬이에요? 평안도 처음 들어 보는데.”
—섬은 무슨, 관서 지방에 묘향산을 모른단 말이냐.
“관서 지방……?”
불현듯 학생 시절 국사 시간 때 배웠던 지역명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구나.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다른 이름이 아니라…….”
도희는 재빨리 휴대전화로 ‘평안도’를 검색했다.
“평안도란 평양과 안주의 첫 자를 따서 만든… 평양? 북한?!”
‘…북한이라니… 북한이라니!’
다시 묘향산을 검색했다.
“묘하고 향기를 풍기는 산이라 하여 묘향산이라 불렀다. 위치는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에…….”
웬 흐릿한 조선 팔도 지도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살다 살다 조선 팔도 지도 검색을 다 하네.’
지도에서 표시된 묘향산의 위치가 정확히 한반도의 북쪽이었다.
“하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도희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못 가는 곳인 게냐? 현시대엔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 않았느냐.
“물론 어디든 갈 수 있죠. 어디든! 단 한 곳만 빼고요…….”
전 세계 어디라도 비행기와 자동차만 있다면 못 갈 곳이 어디인가.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못 가는 곳이 딱 한 곳 있다.
바로 북한.
—그것이 무슨…….
도사님을 위해서라도 빨리 국사책 한 권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도희였다.
—그곳엔 금은보화도 꽤 있거늘.
금은보화란 말에 도희는 또 한 번 게거품을 물었다.
곧이어 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내 보물!! 내 요물!!”
아이고, 배 아파!! 아이고, 아이고!
모르면 몰랐지.
“아이고오오!”
알게 되니 여간 욕심나는 게 아니었다.
진짜 속이 쓰려오는 거 같기도 하고…….
강아는 도희가 그러거나 말거나 오징어나 씹을 뿐이다.
“도사님 북한까지 잠깐 갔다 올 수 있는 도술은 없나요?”
저번 계룡산에서도 도사의 도술로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동굴 안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쯔쯧, 네 기운으로는 턱도 없다.
‘맨날 그놈의 기운, 기운, 기운!’
기(氣)가 모자란 것이 또 문제였다.
하긴 그때도 계룡산의 입구까진 직접 갔었고, 내려올 땐 기운이 없어 걸어 내려와야 했다.
“그럼 기운을 북돋을 방법이나 도술은 없어요?”
—차력(借力)이라 하지. 존재하는 다른 사물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는 술법이 있긴 하네. 허나 자네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소용없네.
“받아들일지, 못 할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니에요?”
—자네 그릇으로?
‘그놈의 그릇이 뭔지.’
“제가 술법을 직접 사용하면요?”
—쯧, 아무나 다 술법을 부릴 수 있다면 전부 다 도사지 않겠나.
“어렵다는 거죠?”
—답을 들어야 아느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무얼 한다 해도 그릇이 너무 작네. 자네 그릇이… 끄응.
물론 도사는 그녀가 담을 수 있는 기의 크기를 말하는 거겠지만, 은근 기분 상한 도희였다.
“그럼 그 그릇을 키울 방법은요?”
—산에 올라 수련이라도 할 테냐? 그게 아니고서야 방법이… 어? 있네! 있어!
“있어요? 정말요?!”
도희가 서책을 집어 들며 재차 물었다.
—있네, 있어! 내 그 생각을 왜 이제야!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당장 합시다! 당장!”
* * *
도희의 눈 아래, 검은 그림자가 턱까지 내려와 있다.
아침부터 쾡한 눈의 그녀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밤새 정좌를 틀고 명상을 하느라 잠을 못잔 도희였다.
“어제 일은 잘 해결하셨습니까?”
강아를 본 도하의 첫마디였다.
‘어제? 부사장 일을 말하는 건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긴 했지.
“부사장님은 말씀 잘하시고 가셨어요.”
‘본인도 만족할진 모르지만.’
“그… 어제… 그 모올…….”
“네?”
“몰카…….”
입에 담기도 싫다는 듯, 도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아직 연락이 안 오네요.”
“회사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아직 확실하진 않으니까 우리 좋게 생각해요. 저도 요 며칠 그 화장실 사용했단 말이에요.”
도희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얼굴이 새파래졌다.
“으, 진짜면 가만 안 둬.”
—네가 가만두지 않으면 어쩔 게냐.
‘어쩌긴요. 한 번 더 콱 그냥! 아오.’
도희의 으르렁거리는 표정에 당황한 도하와 팀원들은 그저 잠자코 있었다.
* * *
업무에 열중하던 도희는 몰카 사건 담당 형사의 전화를 받았다.
박현일의 휴대전화에서 여자 화장실 촬영분이 딱 두 개 발견됐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성들의 얼굴만 찍힌 영상이라고.
형사는 박현일이 어제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러 간 것이라 짐작했다.
도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자꾸 말을 걸자, 겁을 먹고 카메라를 회수한 거 같다고.
만약 도희에게 발각되지 않았다면…….
‘이 정신 나간 놈이 회사에서 그딴 짓을 해?!’
“아오!!”
도희는 저도 모르게 책상을 ‘살짝’ 내리쳤다.
팀원들은 그런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말 뿐이다.
* * *
지이잉─
지이이잉─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도희의 하얀 손이 이마에 닿더니 주름진 미간을 쓰다듬는다.
“예. 알겠습니다. 보고하고 당연히 협조하겠습니다.”
심각하게 굳은 도희의 표정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지금 출동하시나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도희는 넋이 나가 있었다.
팀원들의 의아한 시선도 개의치 않고 털썩 자리에 앉더니 눈을 감아 버리는 그녀였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다들 영문 모르겠단 표정으로 도희를 빤히 바라볼 뿐이다.
“하… 일단 보고를, 아니 시설팀 전화, 아니 보안팀을.”
갑자기 벌떡 일어선 도희는 허둥지둥 고개를 좌우로 저어댔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하씨 시설팀 전화번호 좀 부탁드려요.”
“예.”
“소하씨는 보안팀… 아니다. 제가 보안 팀장님께 전화드릴게요.”
혼이 빠진 그녀의 동공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더니…….
“하… 미친 자식, 아오!”
미적거리던 그녀의 손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부장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상위 책임자인 감사부장에게 먼저 보고 해야 했다.
“한 부장님. 강도희입니다.”
지그시 감기는 그녀의 눈.
“박현일 휴대전화에서 남자 화장실 몰카 촬영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 * *
건물 내 모든 화장실은 대대적 보안 점검에 들어갔다.
없길 바랐지만, 박현일이 설치한 불법 카메라들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경찰을 대동한 채, 전사 화장실을 뒤지고 다닌 탓에 소문은 빠르게 퍼져 갔다.
소문을 들은 일부 사원들이 회사 앞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며칠간 사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번 사건은 공문이 내려오면서 일단락되었다.
안전, 보안 점검을 매주 수시로 시행할 테니 외부 화장실 사용을 지양하라는 내용이었다.
주변 건물들에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곤란한데…….’
도사님이 회사에서 악의가 느껴진다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허나 도희도 종종 분노에 차 업무 본 적이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었다.
─악의(惡意)라 하여 다 같진 않네. 그 심의(心意)에 따라 달라지지.
‘다 같은 악의가 아니다라…….’
─그저 악한 생각을 한다 하여 느껴지는 것도 아닐세.
‘그러면요?’
─실제 행하려는 순간 옅은 악의가 느껴지기 시작하네.
나쁜 마음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 악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지.
‘그전에도 몇 번 말씀하셨잖아요. 악의가 느껴진다고, 그 사람들도 다시 살펴봐야 할까요?’
─대개 일시적 분노였으나 어젠 다르더구나.
도사님이 말한 악의가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도희도 어제 화장실에서 설명하기 힘든 괴이한 느낌을 받긴 했었다.
─너도 느꼈다는 말이냐?
‘뭔가 찌릿하면서 싸한 느낌이랄까요.’
물론 도사님의 전음을 듣고 나서였다.
─어젠 약과에 불과해. 진정 조심해야 하는 건 누군가를 해하려는 악의, 개중 가장 지독한 것은 살심(殺心)이네.
‘도사님은 그렇게 세세히 구분이 되시는 거예요?’
도사는 도희에게 그저 악의가 느껴진다고만 했지, 어떻다고 말해 준 적은 없었다.
어제 역시도.
─크음, 나도 자네를 부르는 도술을 쓰고 나선 기운이 허하여…….
‘저도, 도사님도 원기 보충이 필요하긴 하단 말이네요.’
─명일(明日) 다 해결될 것이야.
‘하, 내일 월차까지 내고 가는 건데 수확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도사의 말에 따르면 기운을 늘리기에 명상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미리 채비하거라.
‘암요, 암요.’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나직이 웃는 도희의 눈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