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의문은 의문을 낳고.
찰나의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등산로를 벗어나 숲길로 뛰어든 도희.
그 행동이 어찌나 재빠른지, 그 뒷모습을 백 실장과 가드는 황망하게 쳐다봤다.
“허…….”
곧 정신을 다잡은 그들은 거의 동시에 도희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어선 숲은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좁고, 무성히 우거진 잎들에 의해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나무에 앉은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비탈진 숲길은 미끄러웠다.
미끄럽고 경사진 숲길에서 뜀박질을 하자니, 발목이 이리저리 꺾이기 부지기수였다.
두 사람은 잡힐 듯, 말 듯 도망치는 도희를 안간힘을 쓰며 쫓았다.
그러나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도희.
운동 꽤나 한 이들도 힘든 이곳에서 두 사람을 따돌린 일반인이라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검은 사내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발길을 멈췄다.
그는 뛰면서 선글라스는 벗어 던졌는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도희가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보다 몇 발작 뒤, 멈춰 선 백 실장이 무심한 시선으로 검은 사내를 응시한다.
백 실장의 시선을 느낀 검은 사내는 위험을 감지했다.
이내 곧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의 가드는 백 실장을 마주 보게 되었다.
“끼이이이.”
알 수 없는 산 짐승 소리가 숲을 메웠다.
인적 없는 깊은 산 속, 도희를 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만났다.
* * *
소란스러운 경찰서 안.
멍하니 꺼진 모니터를 응시하는 우주가 앉아 있다.
그는 장 기사와의 통화를 되짚어 보는 중이었다.
‘모세 도련님이 또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모세의 말을 듣고 도로 CCTV를 확인했는데 근처에서 호루라기를 분 사람도, 곁으로 다가와 귓가에 속삭인 사람도 없었다는 말을 들은 장 기사의 대답이었다.
혹시나 차 안에서 호루라기를 불었을지도 모르기에, 도로의 차량이 찍힌 신호등 CCTV까지 모조리 확인한 우주였다.
그리고 장 기사는 분명 ‘또’라고 했다.
‘또’ 그런 말을 했냐고.
‘형사님이라고 하셨죠? 더 이상 도련님 사고에 대해 알아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비밀 유지각서 서명하신 거 기억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여태껏 호의로운 태도의 장 기사였다.
그런 그가 협박조라니.
‘절대, 그 누구에게도 오늘 저에게 하신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저희 쪽 사람들도 안 됩니다.’
자기 쪽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라니.
그들 쪽이라면 비산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흐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한 전화였지만 되레 더 큰 의문이 쌓인 격이었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우주였다.
그렇게 한참 사색에 잠긴 우주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확인해? 말어?’
“어쩐다…….”
어린아이 입에서 나온 ‘내놓은 자식’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는 우주였다.
가설이 사실이라 한들 우주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이잉─
그때, 그의 생각을 방해하는 진동이 울렸다. 막 수신 거절을 누르려는데…….
[소녀♥]
휴대전화 액정에 띄어진 이름을 보고 우주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어머니의 전화가 유독 잦아졌다는 건 하나만을 의미했다.
“예, 어머니.”
─아들, 집에 언제 올 거니.
평소답지 않게 낮게 깔린 목소리.
“또 아버지랑 싸우셨어요?”
─아니~ 내가 네 아버지랑 왜 싸우니.
‘왜긴요. 또 그 여자 때문이겠지.’
“그냥 이혼하시라니까…….”
─우주야, 네 아버지 총선이 코앞이야. 이게 다 너…….
“어머니.”
맨날 같은 소리다.
다 널 위해서.
‘뭐가 날 위해서란 말인지.’
“아버지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고, 어머니도 어머니 인생 사세요.”
─아들, 넌 왜 맨날 남처럼 이야길 하니. 엄마 속상하게.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남이 되고 싶었다.
“며칠 내로 집에 들를게요.”
─아들, 엄마가 할 말도 있…….
“우 경위!”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이 경위 목소리에 우주가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우주의 눈에 일사불란하게 서를 빠져나가는 팀원들이 보인다.
우주도 급히 겉옷을 챙기며 따라나섰다.
“사건입니까?”
“나도 몰라. 일단 타!”
모두가 출동 차량에 올라타니, 서 팀장의 입에서 행선지가 흘러나왔다.
“오션 오피스텔로 출발해.”
그곳은 이번 의문의 살인사건 현장이었다.
* * *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대는 차 한 대가 고층 오피스텔 앞에 멈춰 선다.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각 층마다 30호실, 총 18개의 층으로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처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 큰 곳의 주변 탐문 조사를 우주 혼자 맡았었다.
우주 혼자 애를 먹다, 결국 팀원 모두가 달라붙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는데, 크게 도움 되는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띵─
찰칵─! 찰칵찰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쉼 없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복도에 온 사방에 흩어져 증거 수집 중인 KCSI 과학수사팀이 보였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때마침 근처에 있어 먼저 도착한 박 경위가 수첩을 들고 다가왔다.
“범인이 다시 나타났다고?”
“일단 이거부터 보시죠.”
박 경위는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이 영상이 저기 저 카메라에 찍힌 영상입니다.”
박 경위의 손끝은 복도 끝 천장을 가리켰다.
처참히 부서진 방범용 카메라가 아슬아슬하게 천장에 매달린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형사들의 시선이 부서진 카메라를 봤다가, 다시 박 경위의 휴대전화로 향한다.
화면에는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온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한 손엔 무언가 긴 물체가 들려있다.
쇠 파이프였다.
이내 남자는 복도에 설치된 CCTV를 하나하나 부수기 시작했다.
쇠 파이프를 엄청난 속도로 휘두르며 카메라를 쳐대기 시작하는데, 그 광기 들린 듯한 몸짓에 화면을 보던 형사들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음성이 담기는 CCTV는 아닌지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와아, 이 정도로 설치는데 입주자들이 아무도 안 나온…….”
“쉿.”
“다고…….”
영상에 집중한 서 팀장이 이 경위에게 주의를 주자,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상황을 설명하려 입을 떼던 박 경위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둘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다시 영상에 집중한다.
하나, 하나씩 복도에 설치된 모든 방범용 CCTV를 다 부순 남자.
그의 고개가 마지막 하나 남은 카메라로 향했다.
지금 영상을 찍은 카메라였다.
느릿한 걸음으로 복도 끝 설치된 카메라 앞에 도착한 남자.
그는 행동을 멈추더니 고개를 활짝 들었다.
작은 얼굴, 체격은 일반인 보통 남자 체격,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모자 때문인지 그늘진 눈가가 더없이 섬뜩해 보였다.
이내 그의 쇠 파이프가 사정없이 화면 속으로 날아들었다.
앵글이 옆으로 확 꺾이더니 곧 화면이 어두워졌다.
영상 재생이 끝나자 박 경위가 이 경위의 의문에 대한 답을 하려 입을 열었다.
“사건 발생 시간이 오전 10시입니다. 대부분 빈집이었고, 여기 보이십니까?”
박 경위는 영상을 특정 구간으로 돌렸다.
남자가 카메라를 매 타작을 하는 와중 뒤편에 살짝 열렸다, 바로 닫히는 문이 찍혔다.
“저기 저 집, 1005호가 최초 신고자입니다.”
사건 호실 바로 옆집이었다.
“현장에 도착하고 바로 만나봤는데 뒷모습 빼고 아무것도 못 봤답니다. 너무 무서워서 바로 문을 닫았답니다.”
“목격자는 이 경위가 저녁에 다시 만나보고.”
진정되고 나서, 경황없을 땐 몰랐던 사실들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팀장님.”
“어, 왜.”
“문제는 복도 CCTV가 아닙니다. 현장을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 팀장의 발이 움직였다.
서 팀장이 먼저 현장에 들어서고 나머지 팀원들이 뒤를 따랐다.
“허… 미친……!”
“하, 갈수록 골치 아프네.”
“함무라비냐, 뭐야 이 새끼.”
거실 벽에 검게 써진 글씨.
“악(惡)에는… 악(惡)?”
함무라비 법전을 인용한 듯한 글귀였다.
“피해자 신원 전과자 위주로 찾아 봐.”
서 팀장도 직감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난항에 부딪힌 상태였다.
처음엔 현장 증거는 부족하지만, 입주민과 방범용 카메라가 워낙 많은 곳이라 다른 증거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 예상했다.
헌데, 참 기묘한 것이 사건 호실 앞 카메라의 영상 한 달 치를 살펴본 결과, 이 집에 드나드는 이는 단 한 명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오는 청소 아주머니.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일당이 테이블 위에 현금으로 매주 올려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들어간 사람이 없는데 누가 현금을 올려 두었단 말인가.
영상을 조작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님, 거짓 증언이거나.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경비원들의 증언으로, 최근 한 달 내 동안 전체 정전이 두어 번 정도 일어났다고 한다.
짧게 오 분, 길게는 십 분 정도 영상 녹화가 중지되었단다.
경찰은 그날들을 위주로 용의자 확보에 나선 상태였다.
매주 놓여 있던 현금은 여전히 앞뒤가 안 맞지만 어쩌겠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전부 칼로 도려내진 열 손가락 지문과 남김없이 다 뽑힌 치아 때문에 피해자 신원 확보도 못한 상황이었다.
피해자도 몰라, 피의자 특정도 안 돼.
증거도 없어, 목격자도 없어.
뭐 하나 진전 없는 답답한 사건이었다.
혼란스러운 사건 상황에 현장에 있던 강력팀 모두가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 이거 보세요. 이거!”
영상을 다시 보던 막내 지 순경이 무언 갈 발견한 듯 크게 소리쳤다.
소릴 듣고 지 순경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요! 시간!”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화면 속 끄트머리에 적힌 녹화 영상 시간.
[10:04]
모두의 시선이 1004란 숫자로 쏠렸다.
바로 살인사건 발생 호실.
1004호.
“이 새끼… 이거 찐 또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