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몸이 투명해지는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도포에 닿았던 도희의 손이 급히 떨어졌다.
‘이게 다 요물이라고?!’
언뜻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술법에 묶여 기운이 담긴 물건은 썩어 없어지지 않네.
“이 옷엔 어떤 도술이……?”
도포에서 멀찍이 떨어진 도희의 손이 도포를 가리켰다.
─입으면 다른 이들에게 모습이 보이지 않네.
동작이 멈춰진 도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예전에 도사님이 목걸이라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기억력도 좋은 도희였다.
─그 목 가죽끈은 잃어버렸네. 누가 훔쳐 간 게지.
“…….”
어릴 적 몸이 투명해지는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이젠 그 시절, 투명 인간이 되면 무엇이 하고 싶었는지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커 버렸다.
‘당시엔 뭔가 엄청난 상상을 했던 거 같은데.’
─도둑질밖에 더 있겠냐.
“에이, 그건 너무 저급하죠!”
그리고 도사와 함께하면 완벽한 도둑질 방법은 넘쳐났다.
─하이고! 내가 도적을 키웠네. 도적을 키웠어…….
“도사님은 이 옷 입고 도둑질만 하셨어요?!”
─예끼!! 이놈이 도사한테 못 할 말이 없구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한들 도가(道家)의 기본도 모르는…….
“아니, 도사님이 먼저…….”
─도사란 본디 남에게 해 끼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네.
‘나쁜 도사님도 있다고 하셨으면서.’
─그것은… 끄응…….
결국 미간에 큰 세줄 주름이 쌓인 도사는 눈을 감아 버렸다.
─‘원시천존이시여…….’
어쩌겠나.
이 여인도 그의 선택인 것을.
도사도 못 말리는 이 여인의 관심은 어느새 다른 곳에 쏠려 있다.
아주 느릿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겨지는 그녀의 발과 시선은 단출하지만 잘 정돈된 방 안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책상은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네.’
내려앉은 좌식 책상 위엔 가득 쌓인 먼지와 아래 곰방대, 붓, 벼루가 올려져 있었다.
─서안은 버티질 못하였구나.
‘서안? 아, 책상.’
저 부러진 서안도 국립박물관 유물급일 터.
좌식 책상 뒤쪽 벽에는 한자로 써진 족자와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다.
오른쪽에는 삼 층 책장이 있었는데, 계룡산 동굴에서 본 것과 아주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방 곳곳에 크고 작은 궤짝들이 보였다.
‘흐흐, 저게 다 요물이란 말이지, 흐흐…….’
“도사님 빨리 정리하고 내려가요!”
도희는 바닥에 쌓인 먼지를 ‘후후’ 불더니, 서책을 공손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내 가방 속에서 보자기 천 하나를 집어 들고서는 바닥에 예쁘게 깔기 시작했다.
─부디 필요한 것만 챙기거라. 필요한 것만!
“도사님이 유물 관리한다고 하셨으니까 아닌 것들은 제가 관리할게요.”
─네가 뭘 관리한단 말이냐.
“아니, 그럼 저것들 여기서 다 썩게 해요? 저거 책상 한쪽 썩어 무너진 거 안 보이세요?”
‘저 엄청난 유물들을?!’
그녀는 나중에 계룡산에 두고 온 고가구들도 싹 다 가져 내려올 계획이었다.
─둘 곳도 없지 않으냐.
“없긴 왜 없어요.”
도희에겐 신비한 천 보자기가 있었다.
무엇이든 작게 만드는.
“전부 여기 두고 필요한 것만 꺼내 쓰면 되죠!”
도희의 음흉한 미소를 본 도사가 그녀를 말려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아! 도사님 그건 어디 있어요? 그거!”
─옳지! 그것이… 보자… 보자. 일단 궤짝부터 열어 보거라!
네 개의 궤짝이 보였다.
“에이… 일단 다 담을게요!”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려면 시간이 없었다.
끙끙거리면서 고가구들을 보자기 위로 옮기는 도희의 신음 소리와 도적을 키웠다며 끙끙거리는 도사의 한숨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 * *
“아, 선배님들! 진짜 맞다니까요? 일부러 맞춘 거 같지 않아요?”
막내 지 순경은 박 경위에게 맞은 곳이 아직도 얼얼한지 연신 뒤통수를 문질렀다.
“정말 안 이상하다고요? 이 상황이?”
사실 우주도 막내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해자 신분도 안 나와, 증거도 없어, CCTV에도 안 찍혔어. 근데 굳이 다시 와서 복도 CCTV에 모습 드러내고 때려 부수고, 현장에 저런 의미심장한 글을 남긴다?”
억울한 듯 열변을 토하는 막내였다.
“무조건 고의죠! 시간까지 사건 호실이랑 맞춘 거 보면 같은 놈이라니까요!”
듣고 있던 이 경위가 나른하게 한숨 섞인 한마디를 꺼냈다.
“팀장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니까 사건 넘기신 거겠지.”
“이건 아니죠! 둘 다 우리 관할인데 광수대가 왜 낍니까, 광수대가!”
오늘 일어난 CCTV 파손 사건을 광역 수사대에게 넘기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살인 사건과 분리해 조사를 따로 한다기에 ‘왜 그렇게 해야 하냐’며 서 팀장에게 따지다가 박 경위에게 된통 혼난 막내였다.
“분명 광수대 놈들이 냄새 맡은 거죠. 예사 사건이 아니니까 실적 좀 나겠다 싶어서 달려든 거라니까요.”
막내 지 순경이 계속 씩씩거리자 우주가 나선다.
“다른 놈일 수도 있지. 만약 다른 놈이면 수사 혼선 일어날 수도 있어. 수사 공조해 준다니까 같은 놈이라 단정 짓지 말고 우린 우리 할 거 하면 돼.”
우주의 말에 이 경위가 수긍하듯 끄덕이며 막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 막내야. 쉽게 가자. 쉽게. 응?”
“근데 막내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만약 같은 놈이라면 왜 다시 왔을까요. 고작 글 하나 남기려고?”
굳이 모습까지 드러내고.
CCTV 훼손하느라 시간 끌리고.
지극히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광수대가 오피스텔 내 입구부터 모든 CCTV 영상을 역으로 확인하고 있다니, 곧 용의자 동선이 나올 것이다.
“그 외국 영화 보면 사이코패스들이 ‘내가 최고다! 너흴 날 잡을 수 없다. 잡을 테면 잡아 봐라.’ 그런 식으로 형사랑 게임하고 승부하잖아요.”
뽝─!
“영화 찍냐, 아주 헐리웃 영화를 찍고 앉았네.”
화장실 다녀온 박 경위는 막내의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뭐 맨날, 살인만 나면 사이코패스래. 대한민국 살인범은 다 사이코패스냐.”
“하, 선배님. 제정신이면 저런 짓 못 합니다.”
“후배님, 할 거 없으면 같이 보고서 작성이나 할까요?”
“선배님 일을 왜 제가 합니까!”
“아오! 이게…….”
투닥거리는 막내와 박 경위 틈 사이로 우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혹시 우리가 발견 못 한 증거가 있었고, 그걸 회수하러 온 건 아닐까요. 벽 글씨는 페이크고.”
“게임보단 일리 있네.”
“저 현장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 선배 같이 가요!”
갑자기 뛰쳐나가는 우주의 뒤를 막내가 따라나섰다.
* * *
넓디넓은 거실 창으로 짐을 가득 실은 사다리차가 올라왔다.
“더 왼쪽으로! 천천히!”
해가 지기 전 일을 끝내기 위해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음료수 드시고 하세요.”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양손 가득 음료수를 들고 나타났다.
고운 외모의 남자는 잘생긴 만큼 마음씨도 예쁜 듯했다.
“거실 물건들 위치는 전 집처럼 둘까요?”
“예. 방도 똑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옙.”
“감사합니다.”
남자가 직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짐 옮기는 걸 도우려 할 때였다.
“총각, 이 넓은 집에 혼자 살어?”
청소를 도와주러 오신 아주머니가 남자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 예.”
남자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이고, 혼자 이 넓은 집 청소하려면 힘들겠네. 내가 명함 주고 갈게~ 잘 부탁해.”
아주머니가 남자의 손에 명함을 쥐어 주려 그의 손을 낚아채려 하자, 남자는 급히 정색하며 손을 빼버렸다.
여태껏 그의 얼굴에 녹아있던 상냥한 미소를 사라진 상태였다.
“아이고… 내가 실수를…….”
“식탁 위에 올려 두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남자는 서둘러 서재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 버렸다.
아직 정리가 덜 된 서재는 긴 나무 책상 하나만 덜렁 있는 공간이었다.
“하…….”
남자는 잔잔히 쌓인 고요함을 느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이이잉─
[도하씨, 오늘 저녁에 뭐해? —강선미 대리—]
선미의 문자를 무시한 도하는 다른 메시지도 확인했다.
[도하 대리님! 부서 이동하셨다면서요? 저희…….]
[오늘 휴무 아니세요? 저녁에…….]
[대리님~ 같이 영화…….]
문자도, 부재중 전화에도 그가 기다리는 연락은 없었다.
곧 그의 휴대 전화 화면엔 눈부신 미모의 여성 증명사진이 띄워졌다.
도희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었다.
도하는 도희의 사진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문뜩 원인 모를 용기가 솟아나 과감하게 통화버튼을 눌러 버렸다.
“…….”
끝내 그녀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도하였다.
* * *
뉘엿뉘엿 지는 해가 산 능선에 걸려 있다.
붉게 물든 하늘엔 사람 몸통만 한 ‘매’한 마리가 날고 있다.
공중을 날고 있는 매의 굵은 목에는 크디큰 봇짐 하나가 묶여 있었다.
매로 변한 도희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새 발로 겨우 묶어 낸 결과물이었다.
동굴에서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해낸 도희였다.
물건의 크기는 요물 보자기에 담아 작아지더라도 무게는 그대로 느껴졌는데, 도희는 도사에게 빌고 빌어 보자기에 무게도 줄어드는 술법을 건 상태였다.
기를 소진한 덕분에(?) 이동하는 술법은 사용하지 못하고 매로 변해 하산하는 중이었지만 싫은 내색 하나 없는 그녀였다.
방 안의 물건을 신명 나게 쓸어 담은 봇짐을 멘 도희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게~ 다~ 돈이 얼마야~’
─잠깐! 잠깐 속도를 늦추게나!
자기도 모르게 고가구들의 값을 매기고 있던 도희가 깜짝 놀라 비행 속도를 늦췄다.
벌써 하늘 나는 것에 꽤 익숙해진 그녀였다.
‘안 팔아요. 안 팔아! 그냥 생각만 한 거예요. 생각.’
─그자들의 기운이 이 근처에서 느껴지네! 여직 여기 있음이야.
‘예?’
해가 다 저물어 가는데 여태 깊은 산 속에 있단 말은 둘 중 하나였다.
아직도 도희를 찾고 있거나.
길을 잃어 헤매고 있거나.
“…도… 세… 요… 아무… 없…….”
‘어…? 도사님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우측으로 3리 아래!
‘세 리가 얼마큼이에요?’
─천오백 보쯤 될 걸세!
‘천오백 보?’
도희, 아니 ‘매’의 고개를 대충 오른쪽으로 꺾였다.
‘저기 있네.’
멀리 조그맣게 나무가 아닌 형체가 보였다.
나뭇잎들 사이로 딱 붙어 끌어안은 듯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얼씨고……? 저건 또 무슨 상황이야.’
‘매’로 변한 도희가 그들에게 가까이 하강하자, 또 한 번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도와주세요! 아무도오 없나요오!!”
‘여기서 길 잃을 게 있나?’
─도움을 청하는 저들을 외면할 겐가. 어서 내려가 보게나.
‘도사님 나셨네. 도사 나셨어.’
─쯔쯧…….
이젠 불쑥 튀어나오는 도희를 속내를 나무라는 걸 포기한 도사였다.
그들과 살짝 떨어진 곳에 내려앉은 새는 어여쁜 여인으로 변했다.
“두 분 여기서 뭐 하세요?”
“강도희씨!”
도희의 등장에 두 눈 반짝이며 맞이하는 검은 사내, 그리고 생기 잃은 눈빛의 백 실장이었다.